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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7일 일요일

이승만 국부론에 대한 잡상

Big Train님의 이글루에 들렀더니 이승만 국부론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올라와 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Big Train님의 글에 달린 댓글과 트랙백으로 엮인 글들도 흥미롭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승만을 매우 싫어합니다. 이승만을 비판할 이유야 넘쳐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전쟁 초기 무책임하게 서울을 버리고 피신했다는 점 입니다. 물론 전황이 불리했기 때문에 서울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승만의 피난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국회는 사전 통보조차 받지 못해 많은 국회의원들이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김규식과 같은 재야의 거물들은 또 어떻습니까? 이승만이 피난하면서 버려둔 수많은 문서들은 북한에 노획되어 북한의 선전도구가 되었지요. 이승만의 피난은 체계적으로 조직된 것이 아닌 공황상태에서의 도주에 불과했습니다. 긴급시에 국가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대통령이 공황상태에 빠져 도망쳤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이승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습니다.

더더욱 우울한 것은 이승만이 25일 오후 부터 도망칠 궁리나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1970년대 후반에 공개된 미국 대사관의 전문은 이승만이 25일 밤에 미국 대사를 불러 피난할 생각을 털어놓았다는 것을 밝혀냈지요. 그런데 이 자료가 공개되어 널리 알려진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우익은 내용의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프란체스카 비망록을 들먹이며 이승만이 27일까지도 서울을 사수하려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글, “1950년 6월 27일 이승만의 서울탈출” 에 서도 언급했지만 프란체스카 비망록의 6월 25일~28일 기록은 작성된 시기조차 확실하지 않고 이승만에 대한 비난을 막고하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강한 글 입니다. 결정적으로 주한 미국대사 무초가 25일 밤~26일 새벽에 이승만을 면담하고 국무부에 보낸 전문이 남아있기 때문에 프란체스카 비망록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프란체스카 비망록의 내용을 따르는 글들이 ctrl+c+v되어 인터넷 곳곳에 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6월 25일~27일 경무대에서 일어난 일들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입니다. 전선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대통령이 먼저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정말로 가장 먼저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승만이 정부기관과 국회의 피난을 책임졌다면 그가 서울을 버리고 피난한 것을 비난하지 못할 것 입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전쟁 당일 부터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정말로 가장 먼저 도망쳤습니다. 더욱 더 비참한 것은 정작 외국인인 주한미국대사 무초가 최후까지 남아 대통령이 도망치고 나서 공황상태가 된 한국군 수뇌부를 도우려 했다는 것 입니다.

무초 대사는 1950년 6월 27일 오전 6시에 다음과 같은 짤막한 전문을 보냈습니다.

966. 서울 북쪽의 북한군은 지난 밤 사이 조금 더 진격해왔습니다. 가장 신뢰할 만한 상황 평가에 따르면 서울 근방의 적군 병력과 전차 숫자가 과대평가되긴 했어도 숫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사관은 현재 고립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대통령과 대부분의 각료들은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피신했습니다. 국무총리서리 겸 국방부장관 신성모와 한국군 참모부는 아직 서울을 사수할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수의 지원자와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until bitter end) 서울에 남을 것이며 드럼라이트 참사관 및 소수의 대사관 직원을  자동차 편으로 대통령을 따르게 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한국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막기 위해서 주한미군사고문단의 핵심 요원은 사태의 추이에 따라 차량을 이용해 남쪽으로 보내고 그밖의 군사고문단 요원들은 항공기편으로 피신시켜야 합니다.

The Ambassador in Korea(Muccio) to the Secretary of State(1950. 6. 27),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Vol.VII Korea(U.S.GPO, 1976), p.173

이승만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정부의 수뇌인 이승만이 생포되면 대한민국이 붕괴될 수 있으므로 이승만의 피난을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옹호는 이승만이 정부와 의회, 그 밖의 국가 기관들을 체계적으로 피난시키려고 노력했을 때에나 가능할 것 입니다. 결정적으로, 주한미국대사인 무초는 한국군 수뇌부와 함께 글자그대로 서울이 함락되기 직전까지 서울에 남았습니다. 한국에 대한 무초의 책임은 이승만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벼웠지만 무초는 위험을 무릅쓰고 외교관으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외국인보다도 대한민국에 대한 책임감이 없던 자를 국부로 추앙하려는 정신나간 움직임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국민이 주권을 가진데서 오는 것이지 억지로 만든 국부 따위를 받들어 모신다고 생기는게 아닙니다.

2010년 2월 28일 일요일

이건순 중위의 월남에 대한 미국쪽 기록

슈타인호프님이 이건순 중위의 월남에 대한 글을 하나 써 주셔서 저도 관련된 글을 하나 올려봅니다.

1950년 4월 28일 이건순 중위의 월남 사건은 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건순 중위는 월남한 뒤 북한의 남침 의도와 북한 공군의 현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남침에 대한 경고가 많았지만 바로 남침 직전에 북한군의 장교가 월남해서 남침에 대한 정보를 알린 것은 파급력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순 중위가 제공한 정보에 대한 미국쪽 반응은 살짝 심드렁 했던 것 같습니다. 주한미국대사대리 드럼라이트(Drumright)가 국무부장관에게 보낸 전문을 보면 말입니다.

1950년 5월 11일 오후 6시 서울.

대사관전문 683호. 대사관전문 675호 참조. 5월 11일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 발표한 북한의 군사력1)에 대한 주한 미 대사관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한미대사관은 현재 북한의 군사력 수준에 대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 발표한 통계와 다르게 판단하고 있으며 그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북한의 총 병력은 103,000명으로 여기에는 "인민군", 만주에서 귀환한 조선인 의용군 부대, 국경경비대, 공군 항공사단, 기갑부대와 해군이 포함됩니다. 여기에 대해 지방의 경찰력이 약 25,000명으로 판단됩니다. 북한군의 유일한 기갑전력은 한개의 여단규모 부대로 총 65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가장 강력한 것은 소련제 T-34입니다. 북한군의 포병 전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습니다. 76.2mm 보병포와 유탄포 224문, 122mm 유탄포 72문, 82mm 박격포 637문, 120mm 박격포 120mm문, 45mm 대전차포 356문, 경기관 총 및 중기관총 6,032정.

4월 28일 이건순 중위가 귀순하기 직전까지 북한 공군의 전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Yak 전투기 35대, 쌍발 폭격기 3대, 쌍발수송기 2대, 훈련기 35대. 이건순 중위가 제공한 정보는 F-3 등급2)으로 이 정보에 따르면 북한공군은 훈련용 전투기를 포함해 Yak 전투기 100대, IL-10 공격기 70대, PO-2 정찰기 8대, 미제 연락기 2대 입니다.

만약 본 대사관의 추정치가 정확하다면 한국측이 주장한 추정치는 아마도 의도적으로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측이 정보를 과장한 것이라면 그 이유는 우방국, 특히 미국으로 하여금 남북간의 군사력 격차를 납득하도록 만들어 군사원조를 더 받아내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오늘 있었던 면담을 포함해 최근 면담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추가적인 군사원조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성명은 한국 언론인들을 외국 언론인들과의 회견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고 외국 언론인들에게만 별도로 북한 군사력에 대한 보다 상세한 보고서를 제공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외국의 여론을 의식한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북한 군사력에 대한 일부 추정치가 한국의 일반 대중들의 불안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언론에게는 자세한 보고서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드럼라이트.

Department of State,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Vol. VII. Korea(Washington, USGPO, 1976), pp.84~85

이건순 중위는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셈인데 문제는 미국측에서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미 전쟁이 임박한 시점이라 한국군의 증강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어쩔 방법이 없지만 말입니다.




1) 위에서 인용한 같은 책의 pp.83~84에 따르면 신성모가 발표한 북한 군사력에 대한 대한민국 국방부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총 병력 183,000명, 준군사조직을 합하면 30만명. 인민군 정규사단 6개 및 보안대 3개 여단 118,000명, 여군을 포함한 보조 인력을 포함할 경우 여기에 37,000명이 더 추가됨. 1개 전차 여단 1만명, 해군 15,000명, 공군 2,500명.

기계화 부대는 경전차 18대와 중형전차 155대 등 총 173대의 전차와 장갑차 30대, 오토바이 300대로 편성.

북한군의 포병전력은 76mm포와 122mm포를 합쳐 총 609문, 82mm 박격포와 120mm 박격포를 합쳐 총 1,162문, 대공포 54문, 대전차포 627문, 경기관총 및 중기관총 9,728정.

해군은 총 32척의 함정 보유.

공군은 총 195대의 항공기를 보유했으며 1개 항공사단으로 편성.

2) 위에서 인용한 이건순 중위가 제공한 정보 등급이 F-3 이란 것은 이건순 중위가 정보제공자로서의 신뢰도가 F, 아직 판단할 수 없으며 이건순 중위가 제공한 정보는 정보로서의 신뢰도가 3,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에서 1995년에 출간한 『미군정기정보자료집 1-3 : CIC(방첩대) 보고서(1945.9~1949.1)』에 있는 설명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원 및 정보 등급 분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공원(Source)
A. 완전히 믿을 만함(completely reliable)
B. 통상 믿을 만함(usually reliable)
C. 꽤 믿을 만함(fairly reliable)
D. 통상 믿을 만하지 않음(not usually reliable)
E. 믿을 수 없음(improbable)
F. 판단할 수 없음(cannot be judged)

정보(Information)
1. 다른 원천에서 확인(confirmed by other source)
2. 아마 사실이다(probably true)
3. 사실일 수 있다(possibly true)
4. 사실인지 의심된다(doubtfully true)
5. 사실같지 않다(improbable)
6. 판단할 수 없다(cannot be judged)

2007년 7월 3일 화요일

코낼리 상원외교위원장 인터뷰 사건

애치슨 국무장관의 극동방위선 관련 발언으로 한국이 어수선하던 1950년 5월 5일, 미국 상원의 외교위원장 코낼리 의원은 U.S. News & World Report와의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코낼리 의원은 한국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합니다.

Q - 의원께서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A - 저는 우리가 원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한국은 포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한국을 돕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을 돕기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북부 지역은 아시아 본토, 즉 소련과 접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소련이 한국을 정복하려는 의도만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만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Q - 그렇지만 한국은 미국의 방위 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요?

A - 물론입니다. 한반도의 모든 지역은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이 가장 중요한 지역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일본과 오키나와, 필리핀을 잇는 방어선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인터뷰가 나가자 국무부는 당황합니다. 애치슨 라인 덕분에 이 박사로부터 별로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있던 국무부는 코낼리 상원의원의 인터뷰가 한국 내에서 일으킬 반향을 걱정하게 됩니다. 국무부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대략 다음과 같은 대책을 강구합니다.

극동차관보(러스크)가 국무부차관(웹)께

대외비 워싱턴 1950년 5월 2일

미국의 대한정책에 대한 코낼리(Connally) 상원의원의 발언

이 문서에는 코낼리 상원의원이 1950년 5월 5일자 U.S. News and World Report에 실린 “국제 정책과 초당파적단결”이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한국 문제에 대해 대답한 두 개의 문제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차관께서는 주말로 예정된 코낼리 상원의원과의 면담에서 코낼리 의원의 발언이 미칠 파급효과, 특히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제기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국무부는 다음과 같은 대응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1) 코낼리 의원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국무부의 기본 입장과는 무관한 패배주의적 경향을 드러낸 것이며 이것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반박해야 합니다. 미국이 남한을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국무부의 기본 입장은 1950년 3월 7일에 국무부장관이 코낼리 의원도 참석한 상원외교위원회에서 한 발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이렇습니다. :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가 입니다. 최근 있은 논의에서 많은 의원들이 미국이 한국을 원조하기 위해 지원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했습니다. 저는 미국의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대신 성공하겠다는 결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대내외적 문제와 한국의 자치 경험의 부족과 기술적, 행정적 노하우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안정성과 공공질서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의 체제 전복 시도도 일시적이나마 효과적으로 차단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우리의 원조에 힘입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도 될 만큼 충분한 희망을 가져도 됩니다. 물론 100%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원조가 없다면 이런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2)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코낼리 의원의 답변은 대한민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문제입니다. 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있는 “방위권(Defense Perimeter)"에 대한 국무장관의 프레스 클럽 연설 이후 국무부는 한국정부의 외교관과 미국의 극동방위권에 한국까지 포함시켜야 된다는 (미국 내의) 집단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현 행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대한민국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 포함시키는) 공약을 제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이 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방위선에 대해 보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미국에 대한) 신뢰와 지속적인 공산주의의 위협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을 것입니다.
코낼리 의원의 발언과 관련해서, 만약 언론기자들이 국무장관께 코낼리 의원의 인터뷰에서한국에 대한 발언에 대해 질문한다면 다음과 같은 맥락으로 대답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과 관련해서 코낼리 의원 및 코낼리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원외교위원회와 많은 의견을 나눴으며 또한 하원외교위원회(House Foreign Affairs Commitee)와도 의견을 나눴습니다. 저는 의회와 국무부간에는 어떤 의견이나 견해 차이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독립된 국가로서 생존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미국정부는 직간접적으로 국제연합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것입니다.”

“저는 코낼리 상원의원이 말한 것은 한국과 사실상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공산주의의 압제로부터 독립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미국에게 있어 극도로 중요한 것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의회가 군사원조나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USGPO 1976, pp.64~65

당연히 한국의 언론들은 이 심각한 발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리대사(드럼라이트)가 국무부 장관께

코넬리 의원의 한국 문제에 대한 발언으로 언론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들은 5월 5일에 코낼리 의원의 발언에 대한 소식을 추가적인 설명 없이 전송 받았습니다.
5월 6일자 석간 신문 두 곳(서울, 경향)은 AP통신이 보도한 무초대사의 발언을 대서특필했습니다. 경향신문의 “코낼리의 어리석은 발상을 반박함”이라는 제목의 사설은 한국은 미국의 소련에 대한 투쟁의 동반자이며 특히 한국이 공산주의와의 투쟁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단호한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경향신문 사설은) 코낼리 의원이 상원 외교위원장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은 미국 국민과 민주당의 영향이 강한 국무부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으며 소련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은 코낼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설은 미국의 대한 원조 공약을 언급하면서 만약 한국이 공산화 된다면 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방어선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후 략)

Ibid, pp.66~67

또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박사는 심기가 아주 불편하셨습니다.

드럼라이트 대리대사와 이승만 대통령의 회견록

2급비밀, 1950년 5월 9일, 서울

주제 : 코낼리 상원의원의 한국 관련 발언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지적


오늘 아침 이승만 대통령과의 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코낼리 상원의원이 최근 인터뷰에서 한 한국관련 발언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는 매우 분노에 찬 목소리와 냉소적인 태도로 한국에서 수천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한국과 3,000만의 한국인이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가치가 별로, 아니면 아예 없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고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코낼리 의원의 발언은 공산당에게 대한민국을 쳐들어와도 좋다고 초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코낼리 상원외교위원장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과연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제정신일 수 있겠냐고 비난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코낼리 의원의 발언은 매우 해로운 것이며 코낼리 의원이 국무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상 그의 발언은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후 략)

Ibid. p.77

그리고 대략 한 달 뒤에 수령님께서는 스탈린 동지가 하사하신 땅크를 몰고 진짜로 쳐 내려왔지요. 전쟁이 터지기는 했지만 이 전쟁은 이 박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미국으로부터 버림받는 일은 없도록 해 줬습니다. 이박사에게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군요.

2007년 5월 13일 일요일

자칭 민족주의자의 이중 플레이

다음은 1950년 4월 28일에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 입니다.

한국 국회의 반응 : 국무부장관 각서와 호프만 서한의 번역본은 4월 7일, 헌법수정안 표결 다음날 개회 직후에 배부됐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사전 통보 없이 의회에 참석했으며 만약 국회의원들이 정부가 미국에게서 받은 경고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경제협력처나 미국 대사에게 문의한다면” 미국의 원조가 삭감되거나 철회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래티모어(Owen Lattimore)와 미국에 거주하는 불특정 다수의 한국인들을 비난한 뒤 1950/51년도 예산안으로 이야기를 옮겨서 의원들이 “개인적” 이해관계를 떠나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총선을 5월 25일에서 30일 사이에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한편 이전에 총선의 연기를 요청한 것은 (국회의원들이)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중요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을 하고 사과했습니다. 부록 2(Enclosure 2)은 4월 7일 국회 회의의 요약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부장관 각서에 대해서 언급하자 대한국민당 당수인 윤치영 국회부의장이 즉각 발언을 했습니다. 윤치영은 자신의 생각에는 미국이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국무부장관 각서 뿐 아니라 이전에 번스 박사가 의회에 발언한 내용도 함께 비난했는데 이것은 마치 1920년 하니하라 주미 일본대사가 일본 의회에서 발언한 이후 있었던 상황과 유사했습니다. 윤치영은 “우리는 다시는 외국인들로부터 이런 문서를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의 우방 미국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국가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평상시 보다 선동적인 어조로 말했습니다. 부록 2에는 국회속기록에서 발췌 번역한 윤치영 부의장의 발언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민족주의자” 윤치영 선생께서는 국회에서는 이렇게 민족의 존엄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양반 미국인들을 만나시더니 말씀이 이렇게 돌변하시네요.

부록 3의 윤치영과 대사관 직원과의 대화에 나타나 있듯 윤치영은 “국회의원 대부분은 한국이 형식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생존 여부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한국은 미국의 방침을 따를 것 이기 때문에) 핵심적인 문제는 미국의 방침에 따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국가의 입법부로서 최소한의 체면을 차리는 것.”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윤치영은 국무부장관 각서와 호프만 서한이 미국정부에 의해 발표됐다는 점이 유감이라고 지적한 뒤 이와 관련해서 한국의 언론 매체들이 국무부장관 각서의 전문을 직접 보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아마도 이승만 대통령의 국회 출석과 윤치영 자신이 국무부장관 각서와 호프만 서한을 비판했다는 내용, 워싱턴의 특파원들이 송고한 내용 정도나 보도하는데 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Drumright, Everret. F, 'Reaction to the Secretary’s Aide-memoire, April 28, 1950',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Vol.VII Korea, (Washington DC: USGPO, 1976), 54~55

이래서 민족 팔아먹는 정치인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도 목청 높이며 민족 외치는 높으신 분들께서는 이런 짓을 하신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