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정치파동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민군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군부 일각에서 이승만의 헌정유린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기도한 것 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육군참모총장 이종찬(李鐘贊)
중장은 미국에 쿠데타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습니다. 라이트너(E. Allan Lightner, Jr.) 미국 대리대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종찬 중장은 약간의 육군과 해병대 병력을 동원하면 이승만 대통령과 이범석 내무부장관, 원용덕 계엄사령관을 쉽게 체포하여
상황을 정상화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은 권력에 관심이 없으며 새 대통령을 선출하면 일주일 내에 군대를
복귀시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종찬 중장은 한국군이 유엔군의 지휘계통에 있는 만큼 미국의 지지만 있다면 쿠데타를 결행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1)
이종찬 중장은 정치 정상화를 미국이 지원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종찬 장군은 미국이
국회정상화를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무렵 제2병참사령부 예하의 병력을 동원해 이를 지원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2)
이렇게 이종찬 중장이 쿠데타 또는 미국의 이승만 제거에 협력하려 했던 것은 생각 이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익희의 측근이었던 신창현(申昌鉉)의 기록에 따르면 부산정치파동이 일어난 직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3) 꽤 재미있는 내용이니 조금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전략)
이날 저녁 무렵 서상렬(徐相烈)이 문병차 내방하였다. 서상렬은 일본 유학 중 학도병으로 끌려 나가 북지(北支) 전선에서 전투에
가담하여 중국군을 토벌하다가 일본 진중을 탈출하여 중경 임시정부의 경호대장을 지낸 사람이다. 경호대는 내무부에 예속되어 있었던
관계로 해공에게 가깝게 수종하던 터수였다.
이날 이 사람이 와서 뵙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박사의 폭거를 통렬하게 비난하였다. 그런 뒤 분을 참을 수 없다면서 “대구에 있는 육군
참모총장과는 지기(志氣)가 상통(相通)하는 처지이니 군을 동원해서 이 폭정을 응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이 말을 듣고 해공께서 “그거 아주 위험한 발상이야. 우리가 공산당과 싸우느라 병력을 자꾸 증강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 하지만 전체 국민에 대한 수치 비례로 보아 너무나
방대하여 앞으로 어떤 사람이 대통령에 될지 모르겠으나 이 군부를 다루는 일이 아주 중요한 문제로 남을 것이오.
아직은 이박사의 과거 독립운동 역사로나 국제적 성망 등 카리스마적 위력으로 지탱해 나가고 있는데,
지금 그분이 국헌을 뒤엎고 주권을 짓밟는다고 하여 군대의 힘을 빌어 확청(廓淸)하였다고 칩시다. 당장은 분풀이도 되고
속시원하겠지만, 그 군권 밑에 매달려 있는 정부가 무슨 민주 정부가 되겠으며, 어떻게 정부 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군부가
정치에 깊숙이 간여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 이라오. 그것은 군부가 자기들 끼리 또 찢고 당기고 할 테니 결국 군부 쿠데타라는
악순환의 씨를 뿌려 준 결과가 된다는 말이라오.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준조 절충(樽俎折衝)하고 토론ㆍ협상해 가며 차츰차츰 시정하고 광정(匡正)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라오.
나라와 민족의 일에 감정은 절대 금물이지. 우리가 길의 중요한 요지를 목이라고 하는데, 정치는 긴 목 잡고 한다는 것이라오.
감정도 금물이려니와 조급하게 굴어서도 안 되지요. 여기에 정치력이 아닌 무력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은 위험 천만한 일이야.
양호유환(養虎遺患) 되고 말아요. 아예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말아요.”
(후략)
신익희의 통찰력은 주목할 만 합니다. 물론 이종찬 중장은 신태영 국방부장관이 계엄군을 증원하기 위해 2개 대대를 차출하라고 했을 때
군의 정치개입에 반대하며 거절한 바 있고 권력에는 뜻을 두지 않은 태도로 존경받는 군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마무리가 잘 되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요. 군부가 쿠데타를 생각할 정도로 강력해진 시점에서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주된 원인은 신익희가 높이 평가한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군부통제와 통치능력에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민군관계에 주목하는 연구자들은
군부내 파벌을 이용한 이승만의 군부통제가 효율적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지요.4)
미국이 이승만 제거계획을 구상하다가 대안을 찾을 수 없어 포기한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 이승만은 개인의 정치력으로 강력한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이라는 강력한 통제자가 사라지자 군부를 견제할 존재는 국내정치무대에 존재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 조성되지요. 5ㆍ16 쿠데타를 이야기 할 때 부산정치파동을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입니다.
신익희가 예상했던 것 처럼 5ㆍ16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민주당에 실망한 상당수의 국민들은 군부가 ‘구악’을 일소하고 혁신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그대로 권좌에 눌러앉아 이후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세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장기집권을 하게되지요. 1961년은 군대가 양적으로 팽창한 상태에서 그나마 군부와 균형을 맞출만한 집단은 ‘썩어빠진’
기성 정치집단인 민주당 정도였고 기성 정치권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군부는 견제세력 없이 독주하게 됩니다. 공짜란 존재하지 않았고
군부를 통해 손안대고 코를 풀어보려던 세력은 제대로 한 방 얻어맞게 됩니다.
주
1) ‘Oral History Interview with E. Allan Lightner, Jr.’(1973. 10. 26), Truman Library, p.114
2)
‘Memorandum by the Director of the Office of Northeast Asian
Affairs(Young) to the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Far Eastern
Affairs(Allison)’(1952. 6. 13),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2~1954 Vol. XV Korea, Part 1, (USGPO, 1984), p.333
3) 申昌鉉, 『내가 모신 海公 申翼熙 先生』, (海公申翼熙先生紀念會, 1989) , 505~506쪽
4) 도진순ㆍ노영기,「군부엘리트의 등장과 지배양식의 변화」,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와 지식인』, (선인, 2004), 67~68쪽
한국전쟁은 여러모로 괴상한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에게는. 근대화된 전쟁을 치를 능력은 커녕 제대로 된 군대조차 조직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에게 전쟁은 대재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전쟁이 터졌으니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싸워야지요.
가장 큰 문제는 갑자기 늘어난 군대를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이 시절 한국의 처지는 그야말로 딱해서 군인들을 먹이는 것 조차 똑바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한국전쟁 이전에도 군인들을 배불리 먹일 능력이 없었으니 전쟁이 터지고 군대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안봐도
뻔한 상황이 연출 될 수 밖에요. 1948년 9월 26일의 미군사고문단 기록을 보면 이범석 국방부장관이 국회에 사병의 급식 개선을
위해 추가 예산 편성을 요청하면서 병사 한 명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이 육군의 기준치인 3,162칼로리에 못 미치는
2,322칼로리에 불과하다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1) 한국전쟁 당시 미육군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은 4200~4500칼로리 정도였으니 창군 초기의 한국군의 급양 수준은 미군의 절반 수준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습니다.2) 사실 식단의 질로 따지면 더 형편 없었겠지요. 예전에 썼던 ‘한국군 5사단의 일일 식량 지급’ 이
라는 글에서 한번 다루었지만 전쟁 초기 한국군 전투부대의 일일 칼로리 섭취량은 대략 3100칼로리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식단을 보면 영양소의 대부분을 밥에 의존하는 형편이지요. 보급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훈련소 같은 곳에서는 3600칼로리
수준이었던것 같습니다.3)
먹는게 형편없으니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긴 어려웠을 겁니다. 전쟁 당시 한국군의 비전투 장비손실 중 상당수가 춥고 배고픈 병사들이
장비를 팔아 먹을것이나 땔감을 구입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미군사고문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많은 한국군 병사들이 음식이나
땔감을 구하기 위해 소총까지 팔아 치웠으며 자신의 소총을 팔아버린 뒤에는 다른 사람의 소총을 훔쳐 채워넣는 사고가 꽤 많았다고
합니다.4) 가난한 한국군 병사들이 배를 곯는 동안 돈 많은 미군들은 전투식량이 맛이 없어 내다버리고 있었다죠. 백선엽의 회고록에는 포로수용소를 가 보니 포로들이 한국군 보다 더 잘 먹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죠.5)
1953년 5월 12일에 의무병과 선임고문관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군병원에 입원한 한국군 병사 중 7.6%가 영양실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양부족으로 인한 질병인 결핵환자도 포함하면 이 수치는 조금 더 높아집니다. 여기에 11.9%의 결핵환자까지
합하면 거의 20%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6)
게다가 이 외에도 많은 질병이 영양실조가 주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었으니 꽤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것도 그나마 보급체계가
정비되고 미국의 원조가 꽤 들어온 1953년 5월의 상황이니 1950~1951년 경에는 더 심각했을 것 입니다.
병사들에게 밥도 제대로 못주는 형편이었으니 봉급도 제대로 챙겨주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한국군의 비참한 상황은 미국도 우려하는
문제였습니다. 전쟁 통이라 군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챙겨줘야 할 판인데 줄게 없을 정도로 엉망이니;;;;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한국군의 비참한 실정 때문에 미국측에서 한국군이 각종 부대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묵인해 줄 정도였지요.
1953년 기준으로 한국군의 급여체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7)
1953년도 기준 한국군의 급여
계급
|
급여(원화)
|
실질급여
|
급여(달러환산)
|
대장
|
90,000
|
85,400
|
14.23
|
중장
|
72,000
|
68,000
|
11.35
|
소장
|
66,000
|
62,500
|
10.41
|
준장
|
60,000
|
56,800
|
9.46
|
대령
|
56,100
|
53,400
|
8.90
|
중령
|
51,300
|
48,835
|
8.14
|
소령
|
46,500
|
44,275
|
7.38
|
대위
|
38,100
|
36,457
|
6.07
|
중위
|
35,700
|
34,126
|
5.68
|
소위
|
33,300
|
31,801
|
5.30
|
준위
|
32,300
|
30,937
|
5.15
|
일등상사
|
26,100
|
25,012
|
4.17
|
이등상사
|
24,300
|
23,171
|
3.86
|
일등중사
|
7,200
|
7,200
|
1.20
|
이등중사
|
6,000
|
6,000
|
1.00
|
하사
|
4,500
|
4,500
|
0.75
|
일병
|
3,600
|
3,600
|
0.60
|
이병
|
3,000
|
3,000
|
0.50
|
대한민국 육군 대장의 급여가 14달러 밖에 안되는 것도 안습입니디만 이것은 그나마 공정환율인 1달러당 6,000원으로 계산한 것
입니다. 1953년 초 암시장 환율은 1달러당 21,000~25,000원이었으니 이 환율을 적용하면 한국군 대장의 한달 급여가
3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 되는 것 이었습니다. 육군 이등병은 한달 50센트에 목숨을 걸어야 하니 정말 비참하지요.
글자 그대로 외부의 원조가 없으면 당장 붕괴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 전쟁을 위한 대규모 동원을
해야 했으니 국가는 물론이고 동원되는 국민으로서도 난감할 수 밖에요. 국민방위군 같은 대규모 동원계획이 참사로 끝난데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이 한 몫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자체가 그러한 대규모 동원을 할 역량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
1) ‘Supplemental Budget - FY 1948/1949’(1948. 9. 29), RG 338, PMAG 1948-49/KMAG 1948-53 Box 1
2)
‘Ration for the Armed Force, Korea’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8),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3)
‘Ration for the Armed Force, Korea’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8),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4)
‘Individual Rifles for ROK Army Soldiers’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2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장비가 부족했던 국립경찰이 병사들의 소총을 강제로 빼앗은 사례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5) 백선엽, 『군과 나』(서울, 시대정신, 2009) 299~300쪽
6)
‘Alleged Undernourishment of ROK Army Patients’(1953. 5. 1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7)
’Pay of ROK Army’ Current ROKA-KMAG Problems(1953. 2. 22), RG 338,
KMAG, Box 61 Plan for the Organization of a ROK Field Type Army
1948년 8월 30일,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이범석은 임시군사고문단장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과 국방부 조직, 국방조직법*을 협의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이 밖에 임시군사고문단 참모장 라이트(W. H. Sterling Wright) 대령, 보스(Voss) 대령, 하우스만(James H. Hausman) 대위와 이범석의 통역(신원미상)이 동석했습니다.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의 문서철에는 8월에 진행된 이범석과의 회의 속기록이 남아있어서 이날 회의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날 논의된 내용 중에서는 국방부와 각군 본부의 조직문제가 핵심사안이었는데 한국측은 규모가 큰 조직을 원했던 반면 미국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전 략 - 헌병병과 관할 문제)
이범석 : 좋습니다. 좋습니다. 해군과 공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국방부 편제에 추가할 겁니까?
로버츠 : 여기서는 육군만을 논의하는 것 입니다. 해군이나 공군은 아닙니다. (국방부 조직도를 보여주며) 라이트 대령이 짠 조직도는 육군만 해당되는 것 입니다.
라이트 : (이범석의 통역에게) 국방부장관께 이것은 국방조직법이며 의회에 상정되어 법안으로 확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십시오. 이것은 상위조직에 대한 문제이며 저것은 하위조직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범석 : 하위조직이라. 알겠소. 대령은 이것이 육군에만 해당된다는 것이군요.
로버츠 : 그렇습니다. 장관님께서 규정을 만드시는 겁니다.
이범석 : 알겠소. 알겠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국방부 참모총장의 아래에 해군과 공군의 참모장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로버츠 : 국방부 참모총장과 육군총참모장은 여기에 있습니다.
라이트 : (로버츠에게?) 한국측에게 이것(국방조직법 초안)을 주기 전에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해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상위조직에 대해 한미간에 합동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입니다. 육군, 해군, 국립경찰, 그리고 공군 총참모장은 이 조직 아래에 두게 될 것 입니다. 오늘 오전에 논의할 것은 육군 문제입니다.
통역관 : 한국에서는 이것을 그냥 참모총장으로 번역합니다. 이것은 총참모장보다 더 높은 직위를 뜻하는 것 입니다.
이범석 : NP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이트 : 국립경찰입니다.
이범석 : 한국에서는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을 총괄하는 단 한명의 참모총장이 있을 뿐 입니다. 채병덕(Mr. Chae) 입니다.
라이트 : 미국에서는 (합참의장을) 한번은 해군이, 다음에는 육군이, 다음에는 공군이 맡는 식 으로 합니다.
로버츠 : 이 조직도에 있는 국방부 참모총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습니다. 합동참모본부입니다. 삼군과 하나의 위원회, 하나의 협의체를 두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국방부 참모총장은 아마도 육군 출신으로 임명될 테니 말입니다. 미국에서 하는 것 처럼 하나의 협의체인 합동참모본부를 두는 것이 더 잘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이범석 : 그 문제는 여기서 논의할 사안이 아닌 것 같소.
로버츠 : 합동참모본부를 법안에 의거해 만들어야 한다면 현재의 초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국방조직법을 만들면 될 것 입니다. 새로운 법안 말입니다.
로버츠(?) : 국립경찰도 국방부 예하에 두는 것 입니까?
이범석 : 아니오. 그건 아니오.
로버츠 : 그렇다면 경찰 부분은 지우고 그 자리에 공군을 넣으면 되겠군요.
이범석 : 3군의 총참모장이 국방부 참모총장(Big C/S)를 보좌할 것이오.
라이트 : (로버츠에게?) 이범석은 국방부장관의 직속으로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를 하나 두려는 모양입니다.
(이범석에게) 그 법안은 무엇입니까? 저희는 이것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 했습니다.
이범석 : 국회에서 만든 법안이오. 헌법 말이오.
로버츠 : 마샬은 육군만을 지휘했습니다. 그는 해군이나 공군까지 통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참모총장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모든 병종을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통제합니다. 하나의 협의체 말입니다.
로버츠 : (통역에게?) 이러다간 하루가 36시간이 되겠군. 국방부 장관에게 말하게.
이범석 : 육군에 대한 구상은 매우 좋습니다. 첫 번째는 강력한 참모총장, 두 번째가 육군과 해군, 공군이오.
로버츠 : 그것은 장관님이나 국방부 차관이 담당할 업무입니다.
이범석 : 유감스럽게도 그게 불가능하오.
라이트 : 저희가 반대하는 이유는 국방부 참모총장은 육군 출신이 될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육군에만 신경을 쓸 겁니다. 해군에 대해서는 지랄같겠죠.(to hell with the navy)
로버츠 : 미국에서는 매우 좋은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삼군의 참모총장이 한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를 명확하게 처리하는 것 입니다.
이범석 : 육군 출신은 참모총장이 되어도 육군 위주로 생각할 것이오. 나도 국방부장관인데 육군 문제만을 생각하고 있소.
로버츠 : 그런데 그는 공군 출신입니다.(누굴 지칭하는지 불명)
이범석 : 국방부 장관은 삼군 모두를 신경써야 하는 직위요. 국방부 참모총장도 삼군 모두를 신경써야 하오. 넓은 아량과 지혜를 갖춘 좋은 인물이어야 하오.
라이트 : 국방부 참모총장은 어디 출신입니까? 육군입니까, 해군 아니면 민간인 출신입니까?
이범석 : 아직은 국방부 참모총장을 어디 출신으로 할 지 말할 수 없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육군 장교들 말고는 좋은 사람을 구할 수 없소.
라이트 : 그게 문제입니다.
이범석 : 그래서 육군 출신으로 임명하게 될 것 같소. 그렇지만 국방부 참모총장 아래의 각군 총참모장은 해군, 육군 그리고 공군 출신이 될 것이오. 국방부 참모총장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요.
인도에서 전문을 하나 받았소. 해군 장교인데 매우 유능한 인물이오.***
하우스만 : 아마 영국해군 출신이었지오? 아닙니까?
이범석 : 그렇소 영국 해군 출신이지. 선장이오. 장군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오. 56살인가 54살인가 할 것이오.
라이트 : 그가 해군총참모장이 되는 것 입니까? 허?
로버츠 : 그를 국방부 참모총장에 임명해도 되겠군요.
이범석 : 유감스럽게도 그는 육군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오. 해군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오.
내 생각에는 아마 1년 정도의 협력으로는 육군 업무 만을 다룰 수 밖에 없을 것 같소. 두번째 단계에서는,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다면 1년이나 2년 정도 미국의 협력으로 해군 업무를 조금 추진할 수 있을 것이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세가지 구상이 있소. 4년 내지 5, 6년이 지난 뒤 미국 대통령이나 맥아더 장군과 회견을 하는 것이오. 이 문제는 한국의 고위 정치, 고위급 문제이오(? 통역의 문제로 미국측이 이해를 못함) 만약 대한민국이 전시에 미국과 협력하지 못한다면 나는 물러나야 하고 여기서 죽어야 할 게요. 우리 나라는 민족적 민주주의 국가요. 우리는 미국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오.
로버츠 : 설사 지금 올바르게 하지 못하더라도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범석 :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 참모총장 세명 말이오?
-라이트 대령과 로버츠 준장은 합동참모본부의 업무, 임무, 기타 제반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이범석 : 귀측의 구상이 마음에 들지만 나는 권한이 없소.
하우스만 : (국방부) 참모총장을 민간인으로 해도 되겠지요.
라이트 : 아냐. 이범석 장관에게 물어봤지만 아직까지는 모르겠다잖아.
로버츠 : 나는 삼군을 모두 총괄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인재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하우스만 : 우리 미군에서도 찾을 순 없을 겁니다.
이범석 : 만약 참모총장이 무능하다면 교체할 수는 있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로버츠 : (통역에게) 이범석 장관에게 미국에서도 그런 인재를 찾을 순 없을 거라고 말하게.
이범석 :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로버츠 : 왜 국방부차관이 그 업무를 담당할 수 없습니까? 한국 내에서 유능한 인물을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국방부차관을 국방부 참모총장으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범석 : 큰 문제가 있소. 한 사람이 두개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오.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로버츠 : 그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그 업무를 다룰 수 있을 겁니다.
이범석 : 장군과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정치인들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에는 많은 문제가 있소. 정치인들은 국방부를 비난할 것이고 아마도 엉망이 될 것이오.
로버츠 : 국방부 조직을 우리가 제안한 대로 하고 한 두달 정도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도록 하지요. 천천히 진행하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조직을 개편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범석 : 만약 국방부 참모총장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헌법에서 국방부 참모총장을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오.
라이트 : 우리는 국방에 대한 부분을 언급한 대한민국 헌법의 영문 번역본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역시 유능한 번역가가 담당해야 겠지요...
이범석 : 아마도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개념은 만주국군, 소련군 또는 일본군 등과 비슷한 것 같소.
로버츠 : 명칭은 무엇으로 합니까? 우리는 이 참모총장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범석 : 영어로는 Chief of Stafft이오. 한국어로는 다르오.
라이트 : 이 직위를 국군 참모총장으로 불러도 되겠지요. 그리고 한국어로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단어로 부르면 될 겁니다.
<이 단어의 번역을 두고 토의가 이어졌는데 내가[속기록 기록자] 듣기로는 COMO CHONG JON 이었다. CHONG은 모든 것을 총괄한다는 뜻으로 로버츠 준장이 제안한 supreme에 해당된다>
로버츠 :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Supreme C/S로 부르기로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누굴 임명합니까? 어떤 사람을 임명합니까?
이범석 : 대통령 각하께 여쭤보겠소. 만약 쓸만한 사람이 아니면 대통령 각하께 다른 사람을 제안해 보겠소. 전문가들 몇몇에게 문의해 볼 수도 있겠고. 만약 참모총장이 신통찮다면 000<한국어로 길게 이야기 했는데 로버츠 준장은 이것을 kick him out으로 요약했다> 할 수 있을 것이오.
라이트 : 참모총장은 매우 중요한 직위이기 때문에 조언을 할 참모진이나 그 비슷한 것이 필요할 겁니다.
로버츠 : 한국의 문제는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높은 직위에 몰려있어 각 연대를 지휘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만약, 국방부 참모총장을 두게 된다면 그도 유능한 장교들을 필요로 할 것 입니다. 이 유능한 장교들, 이 유능한 장교들을 참모총장의 참모진으로 데려간다면 일선 연대장 자리에는 쓰레기 같은 자들 말곤 남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이범석 :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만약 그가 생각을 잘 한다면 유능한 인재를 모두 쓸어가진 않을 거요.
로버츠 : 아닙니다. 저는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범석 :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능력이 있소. 어떤 사람은 보급에, 어떤 사람은 일선 지휘관에, 어떤 사람은 의무나 그밖의 다른 능력이 있을 것이오. 이런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을 참모부의 각 직위에 임명하는 것이오.
로버츠 :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군이) 학교에 가야 할 어린아이 같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기 전에 잠옷, 교복, 정장과 제복을 사줘야 합니다. 시작은 단순합니다. 뒤에 계속 추가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군은 아직 초창기이고 앞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 입니다. 한국군의 성장에 맞춰 추가해 나가는 것 입니다.
이범석 : 맞소. 맞소. 같은 것이오. 미국은 지금 대국입니다. 미국의 육군, 해군, 공군은 전쟁을 치르면서 세계 최고가 되었소. 장군도 아시다 시피 이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니잖소? 아마 300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소. 일본은 60년에 걸쳐 육군과 해군을 건설했소. 그리고 그들은 아마 25년이면 다시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오. 대한민국은 지금 당장 신속히 대규모 육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해군과 공군도. 장군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소.<시계를 보니 0900였다>
미안하오.
한국군은 500명의 대위와 100명의 소령만 있소. 작은 군대요. 반드시 증강되어야 하고 고급 장성도 많이 필요하오.(Must expand; many big generals)
라이트 : 추장만 있고 부족원은 없군요.(All Chiefs and no Indians)
이범석 : 대한민국 전역에서 군 문제에 대해 경험이 있는 인재를 모아들이고 있소. 현재 사정이 매우 어렵소. 우리는 많은 육군을 가져야 하오.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오. (한국어로 길게 이야기 함)
라이트 : (통역관에게) 내 생각에는 국군조직법을 이범석 장관의 뜻에 따라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공군은 육군 예하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범석 : 해군은 사소한 문제요. 육군은 큰 문제고.
로버츠 : 당분간 공군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논의할 수 있겠지요.
이범석 : 우리는 미국으로 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
로버츠 : 예. 우리나라가 귀국에 비행기를 준다면 공군부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후략 - 족청단원의 군입대 문제)
“Conference between Lee Bum Suk, Premier of Korea, Gen Robts(1948. 8. 30)” RG338, KMAG, 1948-53, Box 4, Files : Brig. General W. L. Roberts
*이 당시에는 아직 명칭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만.
**1948년에는 국방부장관과 국방부차관, 국방부 참모총장과 참모차장 아래에 육군 총참모장과 해군 총참모장이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크게 다르죠.
*** 신성모 이야기인데 사실과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통역이 실수한 것인지 아니면 이범석이 실수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성모는 2차대전 중 소식이 두절되어 있다가 1948년 8월에 생존해 있다는 것이 한국에 알려졌지요. 신성모의 생존에 대한 동아일보기사(1948. 8. 5)
농담삼아 이야기 하면 이미 건국초부터 육방부의 재앙(???)을 예측한 사람들이 있군요. ㅋ
이미 로버츠 준장의 지적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한국군의 증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는 유능한 장교의 부족이 꼽히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1947년 부터 시작된 조선경비대 증강당시에도 지적된 문제입니다. 단순히 원조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닌 것이죠. 실제로 한국전쟁이 터진 뒤에 미국의 원조가 본격화 되었지만 육군의 증강, 특히 포병이나 기갑등의 증강이 매우 매우 더디게 진행된 이유 중 하나도 유능한 장교의 부족이었습니다. 사실 냉전의 최전방에 던져진 대한민국으로서는 군대의 증강이 시급한 문제였지만 여러가지 제반여건들은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