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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0일 수요일

백선엽 회고록의 숙군 당시 박정희 구명에 관한 서술

백선엽의 회고록은 여러 차례 출간된 바 있습니다. 백선엽 회고록의 사료적인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창군 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 백선엽의 회고는 내용이 풍부한데다 백선엽의 지위 때문에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회고록이 여러 차례 나오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서술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숙군당시 체포된 박정희가 구제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는 2009년 시대정신에서 간행한 『군과 나』와 2012년 책밭에서 간행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에 실린 내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한편 숙군 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된 군인 중 유일하게 구제된 경우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박정희 소령이었다. 방첩대 수사반은 남로당 군사책 이재복李在福이 육군사관학교에 조직을 침투시켜 일부 중대장을 통해 생도들까지 좌익 활동에 가담시킨 사실을 포착했다. 이 수사에서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체포된 사람이 육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었고, 당시 육본 작전교육국 과장이던 박 소령이었다.

숙군 1단계 작업이 완결될 즈음인 1949년 초 어느 날, 방첩대 김안일 소령(준장 예편ㆍ육사)이 나에게 “박 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말이 있다고 간청하고 있으니 면담을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박 소령이 조사 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 조직을 수사하는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실 사관학교 등 군내 좌익 조직 수사는 최초 단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었다.

나는 면담을 승낙했다. 당시 내 사무실은 국방부와 방첩대 두 곳에 있었다. 내가 박 소령을 만난 곳은 명동 구 증권거래소 건물 3층 정보국장실이었다. 박 소령은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한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작업복 차림의 그는 초췌해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태도는 전혀 비굴하지 않고 시종 의연한 자세였다. 평소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들어 알고 있었으나 어려운 처지에서도 침착한 그의 태도가 일순 나를 감동시켰다. 그래서였을까.

“도와드리지요.”

참으로 무심결에 내 입에서 이런 대답이 흘러나왔다.

약 20분간 면담을 마치고 그를 돌려보냈다. 나는 일단 내 입으로 한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숙군 작업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로버츠 미 군사고문단장도 간여하고 있었다. 나는 정보국 고문관 리드 대위로 하여금 참모총장 고문관 하우스만 대위와 로버츠 준장에게 박 소령 구명에 관해 양해를 구했다. 동시에 육군본부에 재심사를 요청했다. 육본은 참모회의를 거쳐 형집행정지를 내렸고, 박 소령을 불명예 제대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백선엽, 『군과 나』(시대정신, 2010), 416~417쪽.

2012년에 나온 회고록에서 서술하는 내용은 약간 미묘하게 다릅니다.

박정희 소장, 그는 내가 군대 생활을 하면서 자주 머리에 떠올렸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 또한 나와는 함께 근무한 적이 없어 개인적인 관계만을 따지면 특히 걸릴게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순간 숙명처럼 내 앞에 다가온 적이 있다. 아주 결정적인 장면이었으나, 나는 그가 나중에 5ㆍ16을 일으키고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그를 떠올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만큼 그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군인은 아니었다.

그는 1948년 좌익 남로당의 군사책이라는 혐의를 받아 숙군 작업에 걸려들었다. 단심인 군사재판에서 결국 무거운 혐의를 벗지 못해 사형을 판결 받고 말았다. 나는 당시 숙군작업을 모두 지휘하는 입장이었고, 그는 밧줄에 묶인 사형수로서 지금의 명동에 있던 증권거래소 지하 감방에 갇혀 있었다.

나는 이전에 내가 펴낸 회고록에서 이를 자세히 서술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1949년 1월 어느 날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군 생활을 하면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어 그의 얼굴을 나는 기억했다. 그는 수갑을 찬 상태였다. 그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정보국 방첩과 김안일 과장이 그 만남을 주선했다.

나는 숙군을 지휘하는 정보국장이어서 김안일 과장이 마지막으로 그의 동기생인 박정희의 구명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퇴근 무렵 내 사무실에 들어선 박정희 당시 소령은 구명을 위해 내 앞에 섰으나, 분위기는 매우 침착해 보였다. 그는 내가 먼저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권유에도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다소 긴 침묵이 흐른 뒤 그는 “한 번 살려 주십시요...” 라면서 말끝을 흐리다가 눈물을 비치고 말았다. 나는 그 모습이 어딘가 아주 애처로워 보였다. 당시 그의 혐의 자체는 무거웠으나 실제 남로당 군사책으로 활동한 흔적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숙군작업의 진행을 위해 솔직하게 남로당 군사 조직을 조사팀에게 제공해 개전의 여지를 보였다.

나는 그런 내력을 감안해 그의 구명 요청을 들은 뒤 “그럽시다. 한 번 그렇게 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육군 최고 지도부에 그의 감형을 요청했고, 결국 그는 풀려나 목숨을 구했다. 나는 또 군복을 벗게 된 그의 생계를 염려해 정보국 안에 민간인 신분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나는 정보국에 김종필을 비롯한 나중의 5ㆍ16 핵심 멤버를 이룬 육사 8기생 31명을 선발해 정보국에 배치했다. 역사의 우연이라면 큰 우연이다. 나는 꺼져가는 박정희의 생명을 붙잡았고, 결국 육사 8기생까지 선발해 그와 만나게 한 셈이었다.

백선엽,『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책밭, 2012), 124~125쪽.

뭔가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서술입니다. 2012년에 나온 회고록에 실린 내용은 진영에 따라서 아주 재미있게 다룰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군요.

2010년 7월 14일 수요일

지금 당장 더 많은 군대를!

 1948년 8월 30일,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이범석은 임시군사고문단장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과 국방부 조직, 국방조직법*을 협의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이 밖에 임시군사고문단 참모장 라이트(W. H. Sterling Wright) 대령, 보스(Voss) 대령, 하우스만(James H. Hausman) 대위와 이범석의 통역(신원미상)이 동석했습니다.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의 문서철에는 8월에 진행된 이범석과의 회의 속기록이 남아있어서 이날 회의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날 논의된 내용 중에서는 국방부와 각군 본부의 조직문제가 핵심사안이었는데 한국측은 규모가 큰 조직을 원했던 반면 미국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전 략 - 헌병병과 관할 문제)

이범석 : 좋습니다. 좋습니다. 해군과 공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국방부 편제에 추가할 겁니까?

로버츠 : 여기서는 육군만을 논의하는 것 입니다. 해군이나 공군은 아닙니다. (국방부 조직도를 보여주며) 라이트 대령이 짠 조직도는 육군만 해당되는 것 입니다.

라이트 : (이범석의 통역에게) 국방부장관께 이것은 국방조직법이며 의회에 상정되어 법안으로 확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십시오. 이것은 상위조직에 대한 문제이며 저것은 하위조직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범석 : 하위조직이라. 알겠소. 대령은 이것이 육군에만 해당된다는 것이군요.

로버츠 : 그렇습니다. 장관님께서 규정을 만드시는 겁니다.

이범석 : 알겠소. 알겠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국방부 참모총장의 아래에 해군과 공군의 참모장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로버츠 : 국방부 참모총장과 육군총참모장은 여기에 있습니다.

라이트 : (로버츠에게?) 한국측에게 이것(국방조직법 초안)을 주기 전에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해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상위조직에 대해 한미간에 합동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입니다. 육군, 해군, 국립경찰, 그리고 공군 총참모장은 이 조직 아래에 두게 될 것 입니다. 오늘 오전에 논의할 것은 육군 문제입니다.

통역관 : 한국에서는 이것을 그냥 참모총장으로 번역합니다. 이것은 총참모장보다 더 높은 직위를 뜻하는 것 입니다.

이범석 : NP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이트 : 국립경찰입니다.

이범석 : 한국에서는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을 총괄하는 단 한명의 참모총장이 있을 뿐 입니다. 채병덕(Mr. Chae) 입니다.

라이트 : 미국에서는 (합참의장을) 한번은 해군이, 다음에는 육군이, 다음에는 공군이 맡는 식 으로 합니다.

로버츠 : 이 조직도에 있는 국방부 참모총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습니다. 합동참모본부입니다. 삼군과 하나의 위원회, 하나의 협의체를 두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국방부 참모총장은 아마도 육군 출신으로 임명될 테니 말입니다. 미국에서 하는 것 처럼 하나의 협의체인 합동참모본부를 두는 것이 더 잘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이범석 : 그 문제는 여기서 논의할 사안이 아닌 것 같소.

로버츠 : 합동참모본부를 법안에 의거해 만들어야 한다면 현재의 초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국방조직법을 만들면 될 것 입니다. 새로운 법안 말입니다.

로버츠(?) : 국립경찰도 국방부 예하에 두는 것 입니까?

이범석 : 아니오. 그건 아니오.

로버츠 : 그렇다면 경찰 부분은 지우고 그 자리에 공군을 넣으면 되겠군요.

이범석 : 3군의 총참모장이 국방부 참모총장(Big C/S)를 보좌할 것이오.

라이트 : (로버츠에게?) 이범석은 국방부장관의 직속으로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를 하나 두려는 모양입니다.
(이범석에게) 그 법안은 무엇입니까? 저희는 이것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 했습니다.

이범석 : 국회에서 만든 법안이오. 헌법 말이오.

로버츠 : 마샬은 육군만을 지휘했습니다. 그는 해군이나 공군까지 통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참모총장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모든 병종을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통제합니다. 하나의 협의체 말입니다.

로버츠 : (통역에게?) 이러다간 하루가 36시간이 되겠군. 국방부 장관에게 말하게.

이범석 : 육군에 대한 구상은 매우 좋습니다. 첫 번째는 강력한 참모총장, 두 번째가 육군과 해군, 공군이오.

로버츠 : 그것은 장관님이나 국방부 차관이 담당할 업무입니다.

이범석 : 유감스럽게도 그게 불가능하오.

라이트 : 저희가 반대하는 이유는 국방부 참모총장은 육군 출신이 될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육군에만 신경을 쓸 겁니다. 해군에 대해서는 지랄같겠죠.(to hell with the navy)

로버츠 : 미국에서는 매우 좋은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삼군의 참모총장이 한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를 명확하게 처리하는 것 입니다.

이범석 : 육군 출신은 참모총장이 되어도 육군 위주로 생각할 것이오. 나도 국방부장관인데 육군 문제만을 생각하고 있소.

로버츠 : 그런데 그는 공군 출신입니다.(누굴 지칭하는지 불명)

이범석 : 국방부 장관은 삼군 모두를 신경써야 하는 직위요. 국방부 참모총장도 삼군 모두를 신경써야 하오. 넓은 아량과 지혜를 갖춘 좋은 인물이어야 하오.

라이트 : 국방부 참모총장은 어디 출신입니까? 육군입니까, 해군 아니면 민간인 출신입니까?

이범석 : 아직은 국방부 참모총장을 어디 출신으로 할 지 말할 수 없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육군 장교들 말고는 좋은 사람을 구할 수 없소.

라이트 : 그게 문제입니다.

이범석 : 그래서 육군 출신으로 임명하게 될 것 같소. 그렇지만 국방부 참모총장 아래의 각군 총참모장은 해군, 육군 그리고 공군 출신이 될 것이오. 국방부 참모총장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요.
인도에서 전문을 하나 받았소. 해군 장교인데 매우 유능한 인물이오.***

하우스만 : 아마 영국해군 출신이었지오? 아닙니까?

이범석 : 그렇소 영국 해군 출신이지. 선장이오. 장군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오. 56살인가 54살인가 할 것이오.

라이트 : 그가 해군총참모장이 되는 것 입니까? 허?

로버츠 : 그를 국방부 참모총장에 임명해도 되겠군요.

이범석 : 유감스럽게도 그는 육군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오. 해군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오.
내 생각에는 아마 1년 정도의 협력으로는 육군 업무 만을 다룰 수 밖에 없을 것 같소. 두번째 단계에서는,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다면 1년이나 2년 정도 미국의 협력으로 해군 업무를 조금 추진할 수 있을 것이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세가지 구상이 있소. 4년 내지 5, 6년이 지난 뒤 미국 대통령이나 맥아더 장군과 회견을 하는 것이오. 이 문제는 한국의 고위 정치, 고위급 문제이오(? 통역의 문제로 미국측이 이해를 못함) 만약 대한민국이 전시에 미국과 협력하지 못한다면 나는 물러나야 하고 여기서 죽어야 할 게요. 우리 나라는 민족적 민주주의 국가요. 우리는 미국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오.

로버츠 : 설사 지금 올바르게 하지 못하더라도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범석 :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 참모총장 세명 말이오?

-라이트 대령과 로버츠 준장은 합동참모본부의 업무, 임무, 기타 제반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이범석 : 귀측의 구상이 마음에 들지만 나는 권한이 없소.

하우스만 : (국방부) 참모총장을 민간인으로 해도 되겠지요.

라이트 : 아냐. 이범석 장관에게 물어봤지만 아직까지는 모르겠다잖아.

로버츠 : 나는 삼군을 모두 총괄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인재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하우스만 : 우리 미군에서도 찾을 순 없을 겁니다.

이범석 : 만약 참모총장이 무능하다면 교체할 수는 있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로버츠 : (통역에게) 이범석 장관에게 미국에서도 그런 인재를 찾을 순 없을 거라고 말하게.

이범석 :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로버츠 : 왜 국방부차관이 그 업무를 담당할 수 없습니까? 한국 내에서 유능한 인물을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국방부차관을 국방부 참모총장으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범석 : 큰 문제가 있소. 한 사람이 두개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오.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로버츠 : 그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그 업무를 다룰 수 있을 겁니다.

이범석 : 장군과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정치인들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에는 많은 문제가 있소. 정치인들은 국방부를 비난할 것이고 아마도 엉망이 될 것이오.

로버츠 : 국방부 조직을 우리가 제안한 대로 하고 한 두달 정도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도록 하지요. 천천히 진행하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조직을 개편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범석 : 만약 국방부 참모총장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헌법에서 국방부 참모총장을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오.

라이트 : 우리는 국방에 대한 부분을 언급한 대한민국 헌법의 영문 번역본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역시 유능한 번역가가 담당해야 겠지요...

이범석 : 아마도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개념은  만주국군, 소련군 또는 일본군 등과 비슷한 것 같소.

로버츠 : 명칭은 무엇으로 합니까? 우리는 이 참모총장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범석 : 영어로는 Chief of Stafft이오. 한국어로는 다르오.

라이트 : 이 직위를 국군 참모총장으로 불러도 되겠지요. 그리고 한국어로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단어로 부르면 될 겁니다.

<이 단어의 번역을 두고 토의가 이어졌는데 내가[속기록 기록자] 듣기로는 COMO CHONG JON 이었다. CHONG은 모든 것을 총괄한다는 뜻으로 로버츠 준장이 제안한 supreme에 해당된다>

로버츠 :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Supreme C/S로 부르기로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누굴 임명합니까? 어떤 사람을 임명합니까?

이범석 : 대통령 각하께 여쭤보겠소. 만약 쓸만한 사람이 아니면 대통령 각하께 다른 사람을 제안해 보겠소. 전문가들 몇몇에게 문의해 볼 수도 있겠고. 만약 참모총장이 신통찮다면 000<한국어로 길게 이야기 했는데 로버츠 준장은 이것을 kick him out으로 요약했다> 할 수 있을 것이오.

라이트 : 참모총장은 매우 중요한 직위이기 때문에 조언을 할 참모진이나 그 비슷한 것이 필요할 겁니다.

로버츠 : 한국의 문제는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높은 직위에 몰려있어 각 연대를 지휘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만약, 국방부 참모총장을 두게 된다면 그도 유능한 장교들을 필요로 할 것 입니다. 이 유능한 장교들, 이 유능한 장교들을 참모총장의 참모진으로 데려간다면 일선 연대장 자리에는 쓰레기 같은 자들 말곤 남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이범석 :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만약 그가 생각을 잘 한다면 유능한 인재를 모두 쓸어가진 않을 거요.

로버츠 : 아닙니다. 저는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범석 :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능력이 있소. 어떤 사람은 보급에, 어떤 사람은 일선 지휘관에, 어떤 사람은 의무나 그밖의 다른 능력이 있을 것이오. 이런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을 참모부의 각 직위에 임명하는 것이오.

로버츠 :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군이) 학교에 가야 할 어린아이 같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기 전에 잠옷, 교복, 정장과 제복을 사줘야 합니다. 시작은 단순합니다. 뒤에 계속 추가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군은 아직 초창기이고 앞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 입니다. 한국군의 성장에 맞춰 추가해 나가는 것 입니다.

이범석 : 맞소. 맞소. 같은 것이오. 미국은 지금 대국입니다. 미국의 육군, 해군, 공군은 전쟁을 치르면서 세계 최고가 되었소. 장군도 아시다 시피 이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니잖소? 아마 300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소. 일본은 60년에 걸쳐 육군과 해군을 건설했소. 그리고 그들은 아마 25년이면 다시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오. 대한민국은 지금 당장 신속히 대규모 육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해군과 공군도. 장군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소.<시계를 보니 0900였다>
미안하오.
한국군은 500명의 대위와 100명의 소령만 있소. 작은 군대요. 반드시 증강되어야 하고 고급 장성도 많이 필요하오.(Must expand; many big generals)

라이트 : 추장만 있고 부족원은 없군요.(All Chiefs and no Indians)

이범석 : 대한민국 전역에서 군 문제에 대해 경험이 있는 인재를 모아들이고 있소. 현재 사정이 매우 어렵소. 우리는 많은 육군을 가져야 하오.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오. (한국어로 길게 이야기 함)

라이트 : (통역관에게) 내 생각에는 국군조직법을 이범석 장관의 뜻에 따라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공군은 육군 예하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범석 : 해군은 사소한 문제요. 육군은 큰 문제고.

로버츠 : 당분간 공군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논의할 수 있겠지요.

이범석 : 우리는 미국으로 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

로버츠 : 예. 우리나라가 귀국에 비행기를 준다면 공군부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후략 - 족청단원의 군입대 문제)

“Conference between Lee Bum Suk, Premier of Korea, Gen Robts(1948. 8. 30)” RG338, KMAG, 1948-53, Box 4, Files : Brig. General W. L. Roberts

*이 당시에는 아직 명칭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만.
**1948년에는 국방부장관과 국방부차관, 국방부 참모총장과 참모차장 아래에 육군 총참모장과 해군 총참모장이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크게 다르죠.
*** 신성모 이야기인데 사실과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통역이 실수한 것인지 아니면 이범석이 실수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성모는 2차대전 중 소식이 두절되어 있다가 1948년 8월에 생존해 있다는 것이 한국에 알려졌지요. 신성모의 생존에 대한 동아일보기사(1948. 8. 5)

 농담삼아 이야기 하면 이미 건국초부터 육방부의 재앙(???)을 예측한 사람들이 있군요. ㅋ

 이미 로버츠 준장의 지적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한국군의 증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는 유능한 장교의 부족이 꼽히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1947년 부터 시작된 조선경비대 증강당시에도 지적된 문제입니다. 단순히 원조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닌 것이죠. 실제로 한국전쟁이 터진 뒤에 미국의 원조가 본격화 되었지만 육군의 증강, 특히 포병이나 기갑등의 증강이 매우 매우 더디게 진행된 이유 중 하나도 유능한 장교의 부족이었습니다. 사실 냉전의 최전방에 던져진 대한민국으로서는 군대의 증강이 시급한 문제였지만 여러가지 제반여건들은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