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헤르베르트 베르너, 『강철의 관』 (일조각, 2015)
얼마전 일조각에서 헤르베르트 베르너가 쓴 『강철의 관』을 한권 보내주어 즐겁게 읽었습니다. 잘 알려진 회고록이긴 합니다만 아직 읽어보지 못하던 차에 훌륭한 한국어판을 읽게되어 즐거웠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헤르베르트 베르너는 독일 잠수함대의 일원으로 1941년 대서양 전투에 참가하여 1945년 종전 까지 살아남은 드문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특이한 경험은 이 회고록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이 책의 이야기 구조는 기본적으로 출격-귀환-출격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출격을 반복할 때 마다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전황과 이것을 극복하면서 살아남는 과정은 굉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량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었는데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프랑스의 기지를 탈출하여 노르웨이로 향하는 여정에 대한 서술이 압권입니다. 그리고 아래로 부터 바라본 대서양 전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대서양 전투를 작전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서적에서는 한척의 잠수함이 출격하고 침몰하는 것을 단지 무미건조한 숫자로 보여주지만 이 책에서는 잠수함에 탄 수십명의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전투 뿐만 아니라 작전을 마치고 귀환한 다음 프랑스와 독일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서술도 흥미롭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전시 독일사회의 모습은 꽤 흥미롭습니다. 1944년 초 까지는 전황이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던 안정이 1944년 여름 이후 잇따른 파국과 함께 무너지는 모습에 대한 묘사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난 육군 장교들과의 대화나 포로로 잡힌 미국 조종사와의 대화 같이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전쟁을 치르면서 가족을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가는 이야기 입니다. 저자는 독일 잠수함 승무원들이 겪은 전쟁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해전의 최일선이라 할 수 있는 한 척의 전투함이 주된 배경이 되기 때문에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서술이 많습니다. 번역과 감수가 충실히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서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번역에 대해서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몇몇 문장을 봤을때 번역자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번역자와 감수자 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부담 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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