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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0일 일요일

재활용

얼마전에 읽은 스페인 내전에 대한 논문에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습니다. ‘비교적’ 유사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내전이 일어날 경우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직접 인용해 보겠습니다.

내전에서 어느 한 쪽이 인력자원을 상실하는 것은 다른 쪽이 인력자원을 얻을 가능성을 뜻했다. 국민파는 공화파의 포로나 투항자 중 절반 정도가 국민군에 복무해도 될 정도로 믿을 만 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재활용’은 국민군이 새로운 병력을 얻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재활용한’ 병력은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모로코 용병들과 함께 국민군이 징병해야 할 인력을 줄일 수 있도록 했다. 국민군은 진격할 때 마다 편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공화군 포로를 잡아들여 여분의 인력자원을 꾸준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1937년 9월, 국민군 총참모부는 병력과 저렴한 노동력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 포로수용소장 마르틴 피닐로스(Martin Pinillos) 대령에게 “신규 노동대대의 편성을 시작하기 위해 포로의 신속한 등급분류를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분류는 다음과 같이 문자를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국민파의 대의에 충성’하는 것으로 간주되면 A, ‘(국민파의 대의에) 적대적이고 반대하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간주되면 B, ‘유죄’이며 법적 처리를 받아야 하는 포로들의 경우 범죄가 ‘경미할’ 경우에는 C, ‘심각할’ 경우에는 D로 분류되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분류에 해당되지 않으면서 그 충성심도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의심스러운 A’로 분류되었다. 이렇게 분류한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는데 공화파 포로 중 무려 50퍼센트가 A, 20퍼센트가 ‘의심스러운 A’, 20퍼센트가 B에 해당됐다. C와 D는 합쳐서 전체 포로의 10퍼센트에 불과했다. 이것은 국민군이 거의 절반에 달하는 공화군의 포로를 자기 편으로 ‘재활용’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하며 의심스러운 A와 B로 분류된 포로는 노동대대에 배치되었다.

또한 이 통계는 공화군 병사의 상당수가 자신의 안위가 위협을 받을 때는 편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충성심이 약했다는 가설을 뒷받침 한다. 스페인 내전 전시기의 통계 자료는 없지만 국민군은 1937년 말 까지 107,000명의 공화군 포로를 잡았다. (이 중에서) 거의 59,000명이 곧바로 국민군에 입대했으며 약 30,000명은 노동대대에, 거의 12,000명 정도가 재판에 회부되었다. 나머지 6,000명은 이 보고서가 작성될 때 까지 아직 분류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1937년 가을, 아스투리아스(Asturias) 전역이 끝나갈 무렵 국민파는 다음과 같은 선전을 했는데 사실 이것은 많은 공화군 포로들의 현실을 정확히 설명했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거의 10만명의 포로를 잡았다. 아스투리아스 점령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거의 7만명의 포로를 잡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수일 내로 우리의 군인이 될 것이다.”

데 라 시에르바(De la Cierva)는 이중에서 대략 2/3이 1938년에 국민군으로 싸웠다고 추정했으며 인민군에 있었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했다고 보았다.

개별 모병소(Cajas de Recluta)의 보고서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전향이 이루어 졌음을 보여준다. 1937년 10월에서야 북쪽에 있던 공화파의 마지막 거점이 국민군에게 함락되었다. 그러나 북부전역이 진행되는 동안 함락된 산탄데르(Santander)의 모병소는 이미 9월 10일 부터 업무를 시작해 얼마전 까지 공화군에 있던 병사들을 국민군 일선 부대로 보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38년 5월의 보고서를 보면 부르고스(Burgos) 한 곳 에서만 15,000명을 ‘재활용’ 했다고 한다. 1938년 7월 14일 부터 20일 까지 단 일 주일간 사라고사 한 곳에서만 ‘적군 소속이었던’ 345명을 국민군에 입대시켰다. 마찬가지로, 바야돌리드(Valladolid) 에서는 같은해 7월, 단 10일 동안 246명을 모집했다.

공화군 병사로서 국민군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정파에도 속해 있지 않고 A로 분류될 경우 아주 빠르게 편을 바꿀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예를 들어 루이스 바스티다(Luis Bastida)는 공화파 북부군에 복무하다가 1937년 말 국민군의 포로가 되었다. 바스티다는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국민군 제35 ‘메리다’ 연대에 입대해 갈리시아(Galicia)의 비고(Vigo)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상을 바꾸지 않고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진영, 군대, 군복, 군가, 그리고 깃발을 바꾸었다. 대단한 기록이었다.”

놀랍게도 바스티다는 국민군 소속으로 공화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아이러니하다는 듯이 기록했다.

“나는 회색 상의와 카키색 바지의 국민군 군복이 우리의 모든 과거를 덮어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일부 병사들은 너무 빨리 편을 바꾸는 통에 황색과 적색의 왕당파 깃발에 충성을 서약할 시간도 없었다.

James Matthews, “'Our Red Soldiers': The Nationalist Army's Management of its Left-Wing Conscripts in the Spanish Civil War 1936-9”,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Vol 45 No 2(2010), pp.354~356

이미 국민국가를 형성한 단계에서 내전이 일어나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골치 아파집니다. 약간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다시 하나의 국민으로 편입될 존재들이기 때문에 적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주 애매해 지지요. 물론 독소전쟁의 경우 처럼 다른 국가와의 전쟁에서도 ‘재활용’이 이루어 지는 경우 많긴 합니다만 내전 처럼 간단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하지요. 어찌 보면 사상적 균열이 꽤 심각한 문제이긴 합니다만 같은 사회구성원간의 내전에서는 의외로 쉽게 덮어버릴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유사한 집단에서 특별한 표시가 없다면 그 사람이 빨갱이인지 파시스트인지 구분하기란 꽤 어렵지 않겠습니까?(반대로 독일과 소련이라면 그 문제는 훨씬 쉽겠지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한국전쟁 당시 남한과 북한도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특히 인력이 부족하던 북한은 한국군 포로를 대규모로 인민군에 편입시켰지요. 한 기록에 따르면 북한은 휴전 직전 13,094명의 한국군 포로를 억류하고 이중 6,430명을 인민군에 편입시켰다고 합니다.1)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포로가 되었던 박진홍 교수의 회고록을 보면 포로 송환 당시 한국군에서 인민군에 편입된 포로가 침통한 표정으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2)

어쨌든 동일한 사회적 집단, 특히 민족이라는 집단의 테두리 내에서는 균열을 완전히 봉합하지는 못하더라도 적당히 은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친인척이 과거 ‘빨갱이’나 ‘친일파’ 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충격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스페인 내전 당시 상대방의 포로를 전향시키는 과정을 보고 우리의 과거가 겹쳐지는 것 같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1) 션즈화/최만원 역, 『마오쩌뚱, 스탈린과 조선전쟁』(선인, 2010), 413~414쪽
2) 박진홍, 『돌아온 패자 : 북한 포로수용소, 그 긴 전장을 가로지른 33개월의 증언』(역사비평사, 2001), 177~178쪽

2007년 12월 15일 토요일

조선일보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서평

허헛. 간만에 컴퓨터 앞에 진득허니 앉아서 블로그 질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이 취소되긴 했지만 좋은 점이 있긴 있군요.

오늘 자 조선일보를 읽고서 Adrian Goldsworthy의 Caesar : Life of a Colossus가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번역본이 864쪽이나 되는군요. 제가 가진 하드커버 영어판은 각주와 색인을 합쳐 583쪽인데 확실히 알파벳으로 된 언어를 우리 말로 옮기면 분량이 확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평을 쓴 기자가 책을 읽지 않았거나 대충 읽고 쓴 모양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제대로 언급하고 있지 않거든요.

조선일보 서평 - 아내에게 불성실했던 ‘유혹의 달인’

Goldworthy의 이 책은 카이사르의 전기이긴 하지만 그의 군사적 행적에 초점을 둔 책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Goldworthy는 로마군을 연구하는 군사사가 입니다. 이 책의 내용 상당수는 갈리아전쟁과 내전 등 카이사르가 치른 군사작전에 관한 것인데 서평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군요. 책의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니 굉장히 유감입니다.

한마디로 아주 형편없는 서평입니다. 변죽만 울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