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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마이웨이를 봤습니다

마이웨이를  봤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꽤 볼만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것 처럼 연출상의 문제가 심각하고 사소한 고증 문제가 있기는 한데 참으면서 볼 정도는 됐습니다. 7광구 같은 졸작을 이미 경험했다 치더라도 예상외로 나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좋은 영화라고 할 수 는 없겠지만 괜찮은 영화라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요소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1. 주인공 김준식이 너무 평면적이고 매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심한 고생을 하고 학대를 당한것 치고는 감정의 기복이 없어 보입니다. 캐릭터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묘사하는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사실 일본군 병영이건 소련 포로수용소건 노르망디 해안이건 어디서나 줄구장창 마라톤 연습을 하는게 어색할 정도로 작위적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소련 수용소라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중노동에 시달렸을 텐데 달리기 할 기운이 남아있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미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연출이 아쉬웠습니다.

2. 판빙빙이 연기한 쉬라이라는 캐릭터는 너무 엉뚱해서 짜증이 났습니다. 쉬라이라는 인물을 삭제하고 대신 독일군 포로수용소나 이야기의 개연성을 강화시켜 줄 다른 부분을 넣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습니다.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인지 억지로 ‘항일애국지사’를 집어 넣은게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주인공을 두 사람으로 만든 지점에서 이미 해야 할 이야기가 산더미 같은데 뜬금없는 등장인물이 하나 더 튀어나오니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3. 이야기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이야기에 비해 시간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16부작 정도 되는 TV용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훨씬 괜찮은 이야기가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Das Boot처럼 TV용으로 따로 편집을 한다면 훨씬 좋을 것 같은데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노몬한에서 독소전쟁 까지는 어쨌거나 이야기가 그런대로 이어지는데 주인공 두 사람이 헤어진 뒤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면서 1944년의 프랑스로 이동하는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4. 전투 장면의 연출이 매우 아쉽습니다. 처음의 1차 노몬한 전투는 상당히 스펙터클한 느낌도 들었고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2차 전투가 영 아쉽더군요. 압도적인 소련군의 전력과 일본군의 비인간적이고 무모한 전술을 비교하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전차와 인간의 대결에 집중한 것 같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한 전차들만 스크린을 가득 덮고 있으니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간 중간 소련 보병이라도 튀어나와 주었으면 덜 밋밋했을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독소전쟁은 너무 애너미 앳 더 게이트의 느낌이 나는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노르망디는 극적인 흐름을 위해서 다소 무리한 연출을 한 느낌이 듭니다. 상륙부대가 해안을 휩쓴 뒤 공수부대가 낙하하는 건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 무리하게 집어넣은 장면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 외에도 황당한 요소가 많은데 영화이니 그냥 넘어가지요;;;;

5. 마라톤이라는 요소가 사건의 발단 외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영화 도입부의 마라톤 장면도 일본의 폭압적인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서 단순하게 묘사되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김준식이 계속해서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것 말고는 마라톤이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요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상선수 출신의 주인공을 다룬 영화 ‘갈리폴리’에서는 달리기라는 요소가 영화의 막바지에 비극을 강조하는 요소로 잘 녹아들었는데 마이웨이에서는 그 점이 참 아쉽군요.

이런 부분들이 개선되었다면 더 볼만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대작 답게 볼만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나름 돈 값은 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조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1. 공동주연 중 한명인 오다기리 조가 연기한 하세가와 타츠오는 영화를 통해 큰 변화를 겪는 인물이어서 ‘마라토너 김준식’에 비해 훨씬 좋은 캐릭터였습니다. 지나치게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군인인 할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조선인에 대한 증오로 뭉쳐 전쟁을 열망하게 된 청년이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해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인간적으로 성장해 가는 설정은 뻔하지만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특히 소련 포로수용소가 묘사된 부분은 이 배우의 매력을 잘 살려준 것 같습니다. 주인공 다운 인물이었습니다.

2. 조연으로 나온 배우들이 괜찮습니다. 김인권이 연기한 안똔은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인물입니다. 김준식과 이 인물을 합쳤다면 영화가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영화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무너진 인물인데 이 인물 덕분에 소련 포로수용소 장면이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볼만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김인권이 조연으로 나온 영화를 보면서 그다지 주목한 일이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타츠오의 부관으로 나온 소좌도 분량은 짧지만 인상 깊은 인물입니다. 가족을 그리워 하며 나무인형을 다듬는 소박한 모습이나 비극적으로 사망하는 장면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영화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인간성’ 때문에 집어넣은 것 같지만 충실히 제 역할을 해 준 것 같습니다. 타츠오를 인간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후하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어떤 배우인지 궁금해서 네이버나 다음의 영화 정보를 뒤져봤는데 정보가 없더군요.
그리고 천호진은 짧게 등장했지만 정말 좋습니다. 짧게나마 이 배우를 보여준 감독께 감사. 이 배우는 무슨 역을 해도 잘 어울리는것 같습니다. 별로 중요한 역할은 아니지만 천호진의 연기를 본 것 만으로도 9천원 중 천원 이상의 가치는 되었습니다.

3. 자잘한 디테일이 마음에 듭니다. 저는 홍보에서 강조한 노몬한이나 노르망디 전투 보다는 영화 초반에 묘사한 1930년대 경성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1950년대의 서울을 묘사한 바 있는데 그 당시 보다 이 도시를 훨씬 더 잘 다룬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배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삭제된 장면 중에는 베를린을 다룬 부분도 있는 듯 한데 그것도 아쉽군요. 공간적으로 풍부한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오다기리 죠는 끝내 런던까지 가는군요.

4. 영화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인간성의 회복 문제는 지겹도록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전쟁영화에 가장 잘 맞는 주제 같습니다. 엉성하게 민족의 비극 타령이나 하는 영화들에 비하면 훨씬 낫지요. 연출이 부실해서 안타깝지만 영화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 알지만 속아주고 싶은 그런 느낌입니다.


이 영화는 현재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다른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어딘가 엉성한 부분도 있고 영화적인 완성도가 썩 높다고 할 수도 없지요. 하지만 지나치게 저평가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최소한 별 한개짜리 영화는 아닙니다) 저는 영화를 볼 때 열심히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면 좀 더 후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마이웨이도 그런 영화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 번 더 극장에서 볼 생각이 있습니다. 감독판으로 재개봉 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영화 "마이웨이"에 관한 잡담 하나

강제규 감독의 신작 “마이웨이”는 제작을 시작한다는 보도가 나올 때 부터 꽤 관심을 가졌던 영화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그럭 저럭 나쁘지 않게 본 기억이 있어서인지 관련된 내용이 조금씩 공개될 때 마다 재미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시사회가 끝나고 난 뒤 나오는 평들이 우호적이지가 않군요.

그런데 영화평들을 찾아 보던 중 영화 평론가 듀나가 쓴 평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평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닙니다만 재미있는 구절이 하나 눈에 들어오더군요.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강제규의 [마이웨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미군의 심문을 받는 동양인 사진 한 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앰브로스의 책 [디-데이]에 실린 이 사진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 군복을 입은 이 동양인 포로는 자신이 '코리언'이라고 밝혔다죠.

듀나의 영화 낙서판 - 마이웨이

여기서 말하는 사진은 바로 유명한 아래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스티븐 앰브로즈의 D-Day(1994년에 출간된 페이퍼백판)에는 동양인 포로의 사진이나 이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브루어 중위가 독일 군복을 입은 동양인 포로들을 생포했고 이들을 심문한 결과 ‘코리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나올 뿐이지요.(D-Day의 다른 판본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혹시라도 다른 판본에 그 동양인의 사진과 조선인이라는 설명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겠지만 해당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독일이 1943년 쿠르스크에서 패배한 이후 이른바 동방대대는 갈수록 신뢰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때문에 이 부대들은 독일인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대신해 프랑스로 보내졌다. 제101공수사단 506강하연대의 로버트 브루어Robert Brewer중 위는 침공 당일 유타라고 명명된 해변에서 독일군복을 입은 네 명의 동양인을 생포했다. 이들과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이들은 조선인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해서 조선인들이 히틀러를 위하여 미군에 맞서 프랑스를 방어하는 싸움에 참여하게 된 것인가? 이들은 1938년 당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때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1939년 국경지대의 전투에서 붉은군대에 생포되었고, 붉은군대에 강제로 편입된 뒤에는 1941년 12월 모스크바 근교에서 독일 국방군에 포로가 된 뒤 독일군에 강제로 편입되어 프랑스로 보내진 것으로 생각되었다.(브루어 중위는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떠올리지 못 했으나 아마 조선으로 되돌아간 듯 싶다고 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믄 이들은 다시 한번 남한이나 북한중 어느 한쪽에 징집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이들이 한반도의 어느쪽에 속했느냐에 따라 1950년에 미국에 대항해서 건 혹은 미군과 함께 건 다시 한번 싸움을 하게 되었을 가능이 있다. 이것은 20세기 정치의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아닐 수 없다.) 1944년 6월 경에는 서부전선의 독일군 소총병 여섯 명 중 한 명이 동방대대 소속이었다.

Stephen E. Ambrose, D-Day June 6, 1944 : The Climactic Battle of World War II, (Touchstone Book, 1994), p.34

인터넷 상에 노르망디의 조선인이라고 해서 널리 퍼진 이 사진에 언제부터 ‘조선인’이라는 설명이 붙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앰브로즈의 책에서 나온 설명은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앰브로즈의 책에 나온 서술을 이 사진에 달아놓은 것을 보긴 했는데 어쩌면 이것이 발단인지도 모르겠군요.

 

“마이웨이”의 영화 홍보도 정체가 불분명한 동양인의 사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홍보하는 것을 보면 제작진도 상당한 자료를 준비했을 것이고 D-Day는 당연히 읽었을텐데 왜 그런 방향으로 홍보를 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물론 영화 홍보에서 “스티븐 앰브로즈의 책에서 어쩌구” 하는 것 보다는 한 장의 사진을 제시하는게 시각적으로 더 효과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사진에 실린 인물이 어느 민족에 속하는지 확실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실체가 불확실한 사진을 중심으로 한 홍보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계속 재생산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한편으로는 텍스트가 지나치게 홀대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섭섭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