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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1일 화요일

북한 공식 문헌의 자료적 가치에 대한 잡담

북한의 공식문헌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보니 진지한 북한 연구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연구자에 따라 북한 자료들을 대하는 태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북한 연구자들은 이 점을 심각하게 비판하고 있지요. 특히 시기가 내려올 수록 자료적으로 문제가 많아진다는 것은 공통적인 견해로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김일성의 유일체제가 확립되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이후의 문헌들이 심각하다는데 견해가 일치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읽어본 약간의 북한 문헌을 생각해 보면 동의할 만한 듯 싶습니다.

몇년전 사망한 서동만 교수는 북한의 공식문헌의 자료적 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한바 있습니다.

“빨치산혁명 전통이 이른바 혁명적 군중노선과 결합하면서 북한 사회주의는 대중적 성격을 강화해가지만 내용적으로는 비속화ㆍ통속화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고도의 이론적 모색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또한 지도부 내의 군사적 성격의 강화는 전반적인 지적 불모화의 경향을 촉진했다. 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글들은 북한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력을 거의 잃은 슬로건 차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때부터 북한의 인문ㆍ사회과학 관련문헌에서는 구체적 사실을 담은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주체사상의 체계화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외부의 북한연구에서 북한의 공식문헌이 갖는 자료적 가치는 이때부터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지루한 김일성 교시의 나열과 그에 대한 동어반복적 해설로 가득 채워진 북한의 공식문헌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북한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란 무엇보다도 이들 문헌을 읽어낼 수 있는 무한한 인내심이었다. 70년대 이후를 대상으로 한 외부의 북한 연구가 주로 이데올로기 분석으로 시종하게 된 것도 이때문이다. 남한을 포함해서 외부의 북한연구가 낙후된 중요이유는 무엇보다도 냉전상황에 있었지만, 60년대 중반 이후 북한 내 지적 불모화 경향이야 말로 그에 못지않게 결정적인 이유라 할 것이다.
서동만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북조선 연구 : 서동만 저작집』, (창비, 2010), 73~74쪽.

얼마전에 읽었던 일본의 소련학자 시모토마이 노부오의 평은 약간 더 신랄한 듯 싶습니다. 인용을 해보죠.

“북한을 둘러싼 정치ㆍ정치사 연구, 그 중에서도 특히 국내정치나 국제관계에 대해 북한 측이 정보를 비밀로 하는 체질로 인해 사료나 문헌 부족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공식 출판물을 이용하더라도 진상해명은 불충분하다. 그 결과 지역연구를 행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불리하다. 사실 『김일성 저작집』과 같은 대부분의 문헌을 보아도, 이 책이 논문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1956년 중반 8월종파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학이 본질적으로 학문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시모토마이 노부오 지음/이종국 옮김, 『모스크바와 김일성 : 냉전기의 북한 1945~1961』, (논형, 2012) , 9쪽.

언어장벽의 문제도 약간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북한 문헌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 때문에 해외의 북한 연구자들은 냉전 종식이후 공개되기 시작한 동유럽 사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소련과 동독의 외교문서가 상당히 수집되어 있지요.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북한 공식문헌 보다는 소련이나 동유럽 문헌이 훨씬 신뢰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연구자별로 편차가 있어서 김광운 같은 경우는 북한 건국과정을 거의 북한문헌만 활용하여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시모토마이 노부오下斗米 伸夫가 그런 경우겠습니다. 그리고 시모토마이 노부오보다 먼저 1950년대의 북한을 연구한 발라즈 샬론타이Balazs Szalontai도 거의 대부분 소련과 동유럽 사료를 바탕으로 서술을 했지요.(발라즈 샬론타이의 Kim Il Sung in the Khrushchev Era: Soviet-DPRK Relations and the Roots of North Korean Despotism, 1953-1964는 제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북한 연구서입니다.)

결국 진지한 연구가 1960년대 이후로 확장되려면 그 시기의 소련과 동유럽, 혹은 중국 자료를 활용할 수 있어야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해당 시기의 북한 문헌을 읽어보면 그럴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시기가 내려갈 수록 북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북한의 폐쇄성도 강화되는데 외국 문헌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동독 자료의 경우 전후 복구시기에는 동독의 기술인력이 대거 파견되거 지방 곳곳에 배치되기 때문에 꽤 심도깊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50년대 이후의 동독 자료는 저도 아직 읽어본게 하나도 없어서 함부로 이야기 하는게 무리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 감소하는 것 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련과 동유럽 자료를 대거 활용하고 있는 해외의 북한 연구자들이 주목할 만한 연구를 내주길 바랄 뿐입니다.

2009년 6월 5일 금요일

서동만 교수님 별세

슬픈 소식입니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 별세

이 분을 처음 뵌 것은 2005년에 출간된 '북조선 사회주의 체제 성립사'의 저작비평회였습니다. 북한 자료를 이해 하는 문제 부터 대북 정책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 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저작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말씀드릴 기회가 있었는데 제 어설픈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답해 주신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가시는군요.

서동만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