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성범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성범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8년 11월 2일 일요일

2차대전 중 독일 국방군의 성범죄 문제 - Birgit Beck의 연구

살인적인 유로의 환율 때문에 요 몇 달간 독일책은 전혀 구입하지를 못했습니다. 구입하려고 찜해놓은 책이 몇 권 있긴 한데 1유로당 1800원에 육박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그저 침만 흘릴 뿐 이죠. 이렇게 살 생각만 굴뚝같고 경제적 문제로 못 사는 책 중 한권이 비르기트 벡(Birgit Beck)의 Wehrmacht und sexuelle Gewalt : Sexualverbrechen vor deutschen Militärgerichten 1939-1945입니다. 제목부터 흥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즘 읽고 있는 A World at Total War라는 책에 비르기트 벡이 자신의 저작 중 일부를 요약해 놓은 에세이, Sexual Violence and Its Prosecution by Courts Martial of the Wehrmacht가 실려 있더군요. 비록 경제적으로 궁해서 비르기트 벡의 책은 못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축약해 놓은 에세이라도 읽을 수 있으니 나쁘진 않더군요.

이 에세이에서는 독일 국방군이 자행한 성범죄가 독일 군법회의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자인 벡은 1차대전 초기 독일군에 의해 자행된 벨기에와 프랑스에서의 강간이나 일본군이 중일전쟁 기간 중에 저지른 강간, 또는 남북전쟁 기간 중 양측에서 대량으로 자행된 성폭력 등은 비교적 연구가 많이 이뤄졌는데 2차대전 중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가 자행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벡의 연구에 따르면 2차대전 기간 중 독일군의 민간인 강간 사례 중 실제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것은 5,300여건에 불과하며 실제 강간에 의해 처벌받는 비중도 적었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양상을 보면 독일군에 의한 강간은 프랑스의 패전 이후 급증했다가 1943년 이후 줄어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1943년 이후는 독일군이 패배하면서 도망치기 바쁜 시기이니 강간할 정신이 없어서 그랬나 봅니다.;;;;
프랑스의 패전 이후 일어난 강간사례에 대한 분석은 흥미로운데 독일군 또한 강간대상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독일군의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106보병사단과 211보병사단에 의해 자행된 강간 피해자의 연령대는 6세의 아동부터 67세의 노인(;;;;)까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나마 프랑스는 다행이었던 것이 독일군 고위 지휘관들이 프랑스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군율로 통제가 가능했다는 점 입니다. 1940년 7월 5일에는 육군총사령관 브라우히취(Walther von Brauchitsch)가 각 야전군사령관들에게 강간범에 대한 처벌 문제에 대한 명령을 하달합니다. 프랑스에서 강간으로 기소되는 경우 유죄가 인정되면 10년의 징역을 선고 받는 사례도 나타납니다. 독일군 지휘부는 프랑스에서 대민관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선전 목적에서도 성범죄자에게 중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군요. 프랑스에서는 1944년까지 독일군이 주둔하면서 성범죄 예방을 위해 국방군이 관할하는 위안소를 대량으로 설치했는데 이것도 나름대로 문제가 되긴 합니다.

서부전선과 달리 동부전선은 인종전쟁이라는 막장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범죄에 있어서도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저자인 벡은 독일군 지휘관들도 동부전선에서는 군율을 무너뜨릴 정도가 아닌 강간은 묵인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통계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서부전선에서 강간으로 기소된 병사는 유죄가 10년 형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동부전선의 경우는 기소받는 경우도 드물었고 유죄로 판결 받더라도 1년에서 2년 형이 최고형이었다고 합니다. 나치의 인종적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슬라브인 여성에 대해서는 독일인 여성과 같은 정조(Geschlechtehre)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강간도 강간이 아니게 되는 황당한 결정이 자주 내려졌다고 합니다. 서부전선, 특히 프랑스의 경우 성범죄는 피해자가 직접 해당 경찰서에 신고하면 프랑스 경찰이 독일 헌병과 협조해서 처리하는 등 상식적으로 처리되었으나 동부전선에서는 그나마 양심적인 독일군인들이 성범죄를 신고해야 기소가 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가혹한 점령통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소련 여성들이 독일 점령군을 상대로 직접 강간피해를 신고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하는 군요. 벡은 소련에 대한 전쟁은 정복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강간은 그 정복 행위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범죄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