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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진명행(무명)은 어떤식으로 사기를 치는가?

제 블로그에 자주 들러주시는 분들은 2년 전에 진명행이라는 블로거가 국공내전에 10만명의 북한군이 참전했다는 주장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논쟁이 심해져서 결국 난장판이 됐는데 나중에는 진명행이 글을 다시 쓰겠다고 하고는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 지워버렸지요. 하여튼 진명행이 글을 다시 쓴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2년 동안 감감 무소식이다가 새로 옮긴 블로그에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올렸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고 예전에 했던 이야기들 뿐이라 김이 새긴 합니다만 2년전에 지적하지 못한 오류들이나 지적해 보지요.

먼저 진명행이 북한군의 국공내전 참전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들고 나온 『중국 내전에 관한 제문헌』(조선인민군 총정치국, 1950)을 살펴보지요. 진명행-무명이 저보고 글을 잘라서 왜곡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중상모략을 해대니 진명행의 원 글을 통짜로 올리겠습니다.


누르시면 커집니다

 진명행은 『중국 내전에 관한 제문헌』에 등장하는 우리당이라는 용어가 조선노동당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그럴리가 있나요. 이건 전형적인 진명행-무명의 사기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왜나하면 『중국 내전에 관한 제문헌』은 북한측이 중국공산당의 문헌을 번역한 자료집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내전에 관한 제문헌』에는 세 편의 번역글이 실려있습니다.

1. 자위 전쟁으로써 장개석의 진공을 전승할데 관한 중공중앙의 지시
2. 적을 각개 섬멸할데 관한 지시 : 중국인민혁명군사위원회 1946 8 16
3. 중공중앙 1948 7, 8, 9 삼개월간의 경험에 관한 총결

글 세편 모두 성주체가 중국 공산당이죠. 한마디로 진명행-무명은 중국공산당을 지칭하는 우리당을 조선노동당이라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겁니다.;;;;; 예시를 조금 들어볼까요.


상식적으로 중공중앙이 작성한 문건에 나와있는 '우리당'을 조선노동당으로 읽는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진명행-무명은 작성주체는 살짝 잘라먹고 저걸 조선노동당이라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죠.

궁금하신 분들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을 제공하고 있으니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매우 짧은 팜플렛이니 금방 읽으실 수 있습니다. 사실 가장 충격적인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진명행의 추종자들은 눈꼽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쯤되면 사이비 교주가 따로없죠;;;;

사실 외국어자료를 왜곡하는 것이야 외국어를 모르는 분들도 있으니 통할 수 있겠지만 한글로 된 자료까지 잘라서 왜곡하다니 진명행의 사기치는 방식은 참 조잡하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그냥 '중국내전에 관한 제문헌'만 치면 나옵니다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

북한인민군의 만주 파병에 대한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의 정보문제

요 며칠간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진명행이라는 분의 블로그에서 북한인민군의 국공내전 참전 주장을 하고 있어서 뭔가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었나 했더니 역시나 거의 20년은 된 쉰 떡밥이더군요.

처음에는 간단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반론하면 이해를 하시려나 했는데 결국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관련 자료라고 글을 하나 올려 주셨는데 당시의 동아일보 같은 신문기사더군요;;;; 군사정보의 내용을 당대의 카더라 통신 수준의 신문기사로 검증하겠다는 사람은 정말로 처음 봤습니다. 정말 진담입니다. 학술대회에 진명행님 같은 자료를 들고 나간다면 개그콘서트가 된다에 500원 걸겠습니다.

물론, 중국측이 북한인민군의 참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당연히 제 견해가 틀렸다는 점을 인정할 것 입니다. 이 글에서는 현재까지 공개된 제한적 자료의 문제에 대해서나 이야기 해 보지요.

잡설이 길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지요.

결국 배가 산으로 가고 말았으니 원점에서부터 정리를 해야 겠군요.

진명행이라는 분이 처음에 북한인민군의 국공내전 참전의 근거로 제시하신 것은 주한미군정보참모부에서 발간한 북한정보요약(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이하 ISNK)의 내용이었습니다. 진명행이라는 분 께서는 북한정보요약에 실린 북한군 관련 내용이 옳다는 전제하에서 논지를 전개하셨습니다.

그러니 먼저 ISNK에 실린 북한의 군사력 관련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해당 정보 보고서에 실린 북한군 병력현황을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진명행님께서는 ISNK가 추산한 북한군의 참전 병력규모를 신뢰하고 계시니 ISNK의 북한군 병력관련 통계가 높은 신뢰도를 보인다면 그만큼 진명행님의 주장도 신뢰도가 높아지겠지요.

ISNK는 주한미군의 정보참모부가 작성했기 때문에 군사문제에 매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군사력 항목은 소련군과 북한군, 중국인민해방군으로 나뉘며 북한군은 다시 정규군(Peoples Army), 철도경비대(Chol To Kyung Bi Dai) 등 세부 항목으로 나뉩니다. 각 항목에 해당되는 정보는 엄격히 분류되어 정리되어 있습니다.

진명행님의 주장에 나타나듯 북한군의 대규모 만주 파병이 시작되었다는 1947년의 북한군 병력 통계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당시 미군이 수집하던 병력 관련 정보가 얼마나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사례 하나를 먼저 들지요.

Information received during the period has tended more than ever to fall into two types, that from comparatively reliable source indentifying those individuals groups which are definitely CCP, and the more alarmist type of statement concerning huge concentrations of Communist Troops. An example of this latter type was the report that an army of 86,000 men had been concentrated on the 38th parallel alone and of this number, 50,000 wore named as CCP troops.

본 보고서의 분석 기간 중 접수된 정보들은 양 극단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믿을 만한 정보에서는 중국공산당임이 분명한 개별 집단이 나타나며 보다 기우에 가까운 정보는 대규모의 공산군이 집결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후자에 속하는 정보 중에는 86,000명에 달하는 공산군이 38선 인근에 집결했으며 이 중 50,000명이 중국공산군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28 For Period of 01 January 1947 to 15 January 1947, p.4

1947년 1월에 중국공산군 5만 명이 38선 인근에 집결했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다들 아시겠지요. 이렇게 극과 극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병력관련 정보분석은 최대한 신중히 행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NK의 북한군 병력 현황 분석은 황당한 수준입니다. 이제 구체적 사례를 들어 보도록 하지요.

c. Conscription : The initial conscription program called for the drafting of a force to be taken from various sections of the population as follows : city dwellers – 800,000; farmers – 500,000; students – 400,000; labor unions – 300,000

징병 : 다양한 계층을 징집하는 최초의 징병 계획이 선포되었으며 내역은 다음과 같다. 도시 거주자 800,000명, 농부 500,000명, 학생 400,000명, 노동조합 300,000명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30 For Period of 1 February 1947 to 15 February 1947, p.13

1947년 2월에 북조선 정부가 200만명의 징병계획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경천동지할 일 입니다!

다음은 조선인민군(!) 이야기입니다.

General Comment on Peoples Army

(중략)

This Army, consisting of three major commands each containing from three to seven subordinate “Divisional” level units, has a strength which in conservatively estimated at 125,000

인민군에 대한 총평

인민군은 각각 3개에서 7개의 사단 급 부대가 소속된 세 개의 주요 사령부로 구성되어있으며 병력은 신중히 평가하더라도 125,000명으로 추정된다.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35 For Period of 15 April 1947 – 30 April 1947

1947년 4월 시점에서 “인민군”만 125,000명이라고 신중한(conservatively) 분석결과를 내 놓고 있습니다. 참고로 1947년 5월 경 인민군의 전신인 인민집단군은 제1 경보병사단, 제2 경보병사단, 제3 독립혼성여단의 세 개 부대 뿐이었습니다. 의문이 나시거든 장준익 등 인민군에 대한 국내 연구를 참고 하십시오.

그리고 다음 보고서를 보시죠.

e. Strength of North Korean “Army”

(중략)

There is no doubt that a total of 125,000 trained man has been reached and possibly far surpassed, however the present location of these trained men is admittedly obscure

4-e. 북한군의 병력

훈련받은 병력이 125,000에 달하는 것은 틀림없으며(no doubt) 아마 이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 병력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36 For Period of 1 May – 15 May 1947

아! 그리고 이 보고서에는 중국인민해방군에 소속된 북한인(North Koreans)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Percentage of North Koreans in CCP units

As of 1 April, all columns, ie, 22d, 23, and 24th, of the CCF in Manchuria had in their ranks 15~25% Soviet trained North Koreans.

4월 1일 기준으로 만주에 주둔한 인민해방군의 22종대(纵队), 23종대, 24종대를 포함한 모든 종대는 각 부대별로 소련이 훈련시킨 북한인 15~25%가 포함되어 있다.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36 For Period of 1 May – 15 May 1947, p.12

이야. 드디어 나왔군요!

그런데 22종대, 23종대, 24종대는 인민해방군의 전투서열에는 없는 “유령 부대”입니다.

아하! 북한 인민군은 존재한 적도 없는 인민해방군 부대에 소속되어 싸운 것이로군요. 그래서 10만 명이나 참전했는데 그 존재를 아무도 몰랐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이제 다음 보고서로 넘어가지요.

미국의 분석에 따르면 1947년 5월까지 인민군은 총 125,000명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의 보고서는 충격적인 정보분석을 내 놓습니다.

3. The Total Strength of the Forces of the Department of Internal Affairs
: These figure were also furnished by Source PUKTO

Bo An Dai (including the Chol To Bo An Dai) : 30,000
Chol To Kyung Bi Dai(Railway Constabulary) : 20,000
Soo Sang Kyung Bi Dai (Coast Guard) : 12,000
Total : 62,000

Note : PUKTO did not have figure available on the Fire Brigade, but estimated that they did not exceed 5,000
Total : 67,000 Dept. Int. Affairs.

Total Force Available to the Peoples Committee of North Korea

Bo An Kan Boo Hul Yun So : 306,000
Force of the Department of Internal Affairs : 67,000
Total : 373,000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36 For Period of 15 June 1947 – 30 June 1947, Incl #1, The Evolution of the Armed Forces of the North Korean Peoples Committee August 1945 – June 1947 p.16

이거 정말 충격적입니다. PUKTO라는 암호명의 정보원에 따르면 북한의 무장력은 내무성 산하 부대를 제외하고도 무려 306,00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병력이 18만 명이나 늘어났습니다!

자. 다음에는 다시 북한 인민군의 만주 파병 건입니다.

1. CCF-North Korean People’s Committee Mutual Assistance Pact

(중략)

(d) 60,000 North Korean troops to be shipped to Manchuria by the end of July

1. 중국인민해방군-북조선인민위원회간 상호조약

(중략)

(d) 60,000만 명의 북한군을 7월 말 까지 만주로 파병한다.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44 For Period of 1 September 1947 – 15 September 1947, p.18

보시다시피 60,000만명의 북한군이 7월까지 만주로 파병될 계획이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된 북한군의 병력이 약 30만명이니 이후의 보고서에는 북한 인민군의 병력이 24만명은 되어야 정상입니다.

북한군 병력에 대한 다음 번 보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4) Strength of the People’s Army

(중략)

It is not believed possible at this time to alter the estimate of 125,000 People’s Army troops under the control of or available to the People’s Committee of North Korea.

현재로서는 북조선 인민위원회의 통제하에 있는, 또는 동원가능한 인민군의 숫자가 125,000명이 아니라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45 For Period of 15 September – 30 September 1947, p.13

네. 결국 6월의 보고서에 나온 인민군 30만명은 틀렸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만주로 파병된 병력에다가 7월에 파병되었다는 6만 명을 빼면 북조선에는 도데체 어느 정도의 인민군이 있는 걸까요?

자. 이제 다음달의 보고서를 보지요.

3. People;s Army Fiscal Matters

(중략)

First Center (Division) – 65,000
Second Center(Division) – 55,000
Third Center(Independent Mixed Brigade of Division) – 45,000
Pyongyang Academy – 3,000
Staff School – 3,000
Central Guard Unit – 2,000
Battalion Department – 2,000
Total – 175,000

Intelligence Summary Northern Korea Nr.46 For Period of 1 October – 15 October 1947, p.10

네. 전투서열은 정확하게 1사단과 2사단, 3독립여단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병력은 1사단이 65,000명, 2사단이 55,000명, 3여단이 45,000명이고 총 병력은 175,000명입니다. 한 달만에 인민군의 총 병력이 5만명이나 늘어났군요.

지금까지 제가 간단히 정리해 놓은 북한인민군 병력 통계에 대한 ISNK의 분석을 보셨다면 제가 왜 여기 나온 정보들에 대해 극도로 의심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병력 통계가 한 달만에 5만, 많으면 15만씩 바뀌는데 이걸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북한군이 포함되었다는 중국군 부대는 실재하지도 않는 보고서 상의 부대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점을 검증할 중국 자료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주구장창 외친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글에 대한 토론에서 제가 진명행님께 북한군 총 병력이 17만이 넘는다는 주장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진명행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자. 그런데 진명행님의 답 글을 주목하십시오. 이 답 글은 진명행님이 ISNK를 직접 읽고 분석한 것이 아니라 백학순의 논문 「중국내전시 북한의 중국공산당을 위한 군사원조 – 북한군의 파병 및 후방기지 제공」에 달린 각주 38번을 그대로 올린 것 입니다. 백학순의 논문에 달린 각주 38번을 한번 보실까요?

북조선 인민위원회 재정국 소속으로서 1947년 6월까지 북한군 주요 부대의 월별 지출표 작성을 담당하였던 한 미군 정보원에 의하면, 지출표에 의한 북한군의 숫자는 1947년 2월부터 6월까지 173,000명이었다고 한다.(ISNK, no.46. p.10) 이 숫자가 사실이라면, 그때까지 만주에서 중공군과 함께 북한으로 퇴각한 조선 의용군 병사들의 숫자(약 50,000 내지 70,000명, ISNK, no.30 p.6)와 북한에서 같은 해 4월부터 만주로 파병하기 시작했던 북한 병사들의 숫자까지 모두 포함한 숫자로 보인다. 커밍스는 만주 파병 북한 병사의 숫자를 100,000 내지 150,000명으로 잡고 있다.

이 각주 38번에서 언급하고 있는 ISNK, no.46. p.10의 통계는 제가 마지막으로 인용한 보고서에 나와 있는걸 아실 수 있습니다. 제가 인용한 보고서의 통계 변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백학순은 아무 근거도 없이 자신의 상상으로 저 통계를 해석한 것 입니다. 백학순의 연구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죠. 그리고 진명행님께서는 ISNK의 통계는 전혀 보지 않고 백학순의 각주에 달린 해석을 그대로 베낀 것이죠.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1. 진명행님은 실제로는 ISNK는 읽지도 않았고 그냥 백학순의 글만 베꼈다.

2. 진명행님은 ISNK의 통계를 모두 검토했으나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백학순의 해석만 인용했다.

두 가지가 되겠습니다.

어떻게 하든 진명행님께서는 대놓고 거짓말을 하신 것 입니다.

제가 왜 진명행 님께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