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린양은 오늘 업무상 약속 하나가 취소돼 버리자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잠시 생각하는 척 하다가 바로 극장으로 갔습니다. 극장에서 시간이 맞는 영화를 찾아 보니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있더군요. 예고편에서 신나게 총질을 해 대던게 기억이 나는지라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전에 봤던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 감독의 “The Last Samurai”는 누군가와 함께 보기에 심히 민망할 정도로 난감한 작품이었는데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그 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Glory” 이후로 본 즈윅 감독의 작품들은 다 하나같이 뭔가 민망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Legend of the Fall”은 폼은 나는데 도데체 뭐하러 저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 없는 영화였고 “Courage under Fire”는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비비꼬는지라 참고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최고의 걸작은 “The Last Samurai”가 되겠군요.
당연한 이야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즈윅 감독은 백인 이외의 집단의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주인공은 항상 백인을 썼습니다. “Glory”, “The Last Samurai” 그리고 “블러드 다이아몬드”도 남의 공적인 용무에 끼어드는 백인이 주인공이었지요.
그래도 좀 나아진 점은 갈수록 주인공이 망가진 인물이라는 점 입니다. “Glory”의 주인공은 백인 주류사회의 상류층 인사이지만 “The Last Samurai”의 주인공은 백인 주류사회의 일원이긴 했으나 현재진행형은 “폐인”이었지요. 그리고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는 드디어 아주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생막장의 백인이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아. 물론 그래도 아리따운 여주인공은 그나마 정상적인 인간으로 나왔군요.
디카프리오는 꽤 마음에 듭니다. “The Departed” 보다는 이번 영화에서 더 마음에 드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이런 교훈적인(?) 영화에서 주인공 마저 모범적인 백인이었다면 영화가 이정도로 재미있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백인 용병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비열한 근성을 가진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픽션의 등장인물이지요. 어찌보면 “The Dogs of War”의 주인공 샤농의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르지요. 주인공은 매우 시니컬한데다 잘생긴걸 빼면 정나미 떨어질 짓만 골라합니다. 물론 마지막에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긴 합니다만 모범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요.
어쨌거나 즈윅 감독은 폼 잡는걸 좋아하는지 영화의 마지막에도 교훈적인 메시지를 자막으로 넣어서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아이고 감독님 고맙습니다. 만약 미래의 마누라가 다이아반지를 해달라고 조르면 감독님 영화를 보여주겠습니다.
아.또 하나. 제니퍼 코넬리를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꽤 즐거웠습니다. 이 아줌마는 나이를 먹은 뒤 짝퉁 데미 무어 같은 느낌을 풍기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배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