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포린 폴리시 인터넷판에 올라온 로버트 해딕Robert Haddick의 글, “Shipping Out : Are aircraft carriers becoming obsolete?”을 읽고나서 몇가지 잡생각을 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감축에 따라 국방비도 크게 감축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예산을 잡아먹는 항공모함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가 있는 모양입니다. 막대한 유지비가 소요되는데다가 고속의 장거리 대함미사일의 발전 때문에 갈수록 작전에 제약을 받게될테니 “값싼”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하는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 입니다. 특히 최대의 가상적인 중국은 접근거부전략을 취하면서 대함미사일을 중시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데 이 경우 항공모함 항공단의 주 용도인 지상타격은 꽤 곤란해 질 수 있습니다. 항공모함이 항공기들의 작전범위 내에서 미사일 때문에 활동의 제약을 받게된다면 그야말로 돈낭비가 되겠지요. 특히 항공모함은 미국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정치적 자산이기도 한데 싸구려 미사일 몇발 때문에 써먹을 수 없다면 미국의 정치적 위신이 실추될 수도 있습니다.(이건 꽤 심각한 타격이 되겠지요.)
재미있게도 이런 상황에서 항공모함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공군의 B-1이나 B-52 같은 장거리폭격기들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비춰지는 모양입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드러난 것 처럼 긴 항속거리와 많은 탑재량을 가진 장거리폭격기는 새로운 전장 환경에 잘 맞는 유용한 무기였습니다. 신속대응이 가능하면서도 항공모함에 비하면 ‘저렴한’ 무기체계라는 점에서 예산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이 상황은 마치 트루먼 행정부에서 ‘제독의 반란’이 일어날 당시의 상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트루먼 행정부도 국방예산 삭감을 추진하면서 비용이 많이드는 항공모함 중심의 해군 보다는 B-36으로 대표되는 장거리폭격기와 핵무기를 중심으로 한 국방정책을 취하려 했지요. 똑같은 상황은 아닙니다만 예산감축이 필요한 상황에서 장거리폭격기가 항공모함의 대안으로 비춰지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2012년 9월 4일 화요일
2007년 11월 25일 일요일
지름신 앞에 장사없다 - 레이건 행정부 시기 국방예산 증액에 따른 문제점
에. 오늘도 날림 번역으로 때우게 됐습니다.;;;;
요상하게도 대한민국의 우국충정에 넘치는 많은 분들께서는 신무기만 잔뜩 들여오면 군사력이 알아서 강해지고 나라가 강해진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승하하신 미리견 황제 레이건 폐하께서도 가지고 계시던 것인데 잘 아시다시피 미군은 레이건 폐하의 이런 관심에 힘입어 1980년대에 신무기를 잔뜩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좋기만 했을까요?
요상하게도 대한민국의 우국충정에 넘치는 많은 분들께서는 신무기만 잔뜩 들여오면 군사력이 알아서 강해지고 나라가 강해진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승하하신 미리견 황제 레이건 폐하께서도 가지고 계시던 것인데 잘 아시다시피 미군은 레이건 폐하의 이런 관심에 힘입어 1980년대에 신무기를 잔뜩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좋기만 했을까요?
합참은 국방예산의 증액에 대해 복합적인 반응을 보였다. 와인버거는 군대가 요구하는 만큼의 예산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콜린 파월은 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이것은 마치 2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았고 네트를 치우고 테니스를 치는 것 같았다. 합참은 즉시 필요한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요구한 내역은 국방예산을 대략 9% 정도 증가시켰다."
역사상 처음으로 합참은 국회나 행정부의 반대를 받지 않고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군은 베트남전 직후의 반군정서 때문에 교체하거나 개량할 수 없어서 노후화된 장비를 대규모로 교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군은 마구잡이로 '질러대기' 시작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첫 2년 동안 군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축복에도 불구하고 군의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예를 들어 존스 장군은 이런 대규모 증강이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비록 적은 금액이라도 장기적이고 꾸준한 예산 증액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존스 장군은 와인버거에 의해 예산이 통제 불능으로 폭증하는 것에 반대해 '실질적인' 국방예산 증가를 주장했다.
신형 장비, 그리고 특히 값비싼 장비를 대규모로 사들인 레이건 행정부 초기의 군사력 증강은 사실 명확한 개념이 없는 상태로 진행되었으며 미국의 전체적인 군사력 구조나 전쟁 준비상태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려도 없었다.
결국 존스 장군의 우려는 얼마가지 않아 현실로 구체화 되었다. 1983년 회계연도에 국방예산은 물가상승률 보다 25%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불과 5년만에 국방부의 예산은 두배로 폭증했다. 그러나 예산의 대부분이 신무기를 구매하는데 소비되었기 때문에 군대는 갈수록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84년에는 "레이건 행정부가 6320억 달러를 군사력 증강에 쏟아부었지만 전투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육군 부대는 1980년의 25%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런 문제는 육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유럽전구 부사령관인 로슨(Richard L. Lawson) 장군은 1985년 의회에서 “대대급 야전기동과 비행훈련시간, 군함의 기동훈련은 불충분한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중략) 일부 탄약, 특히 공대공미사일과 해군의 탄약, 특수 탄약의 재고량은 규정량 이하로 감소했으며 이 때문에 전쟁 수행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1985년에 이르자 국방부가 안게된 예산 문제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게 되었다. 존스 장군과 합참의 여러 관계자들이 경고했던 것들이 현실화 된 것이었다. 합참과 군부의 요구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넌(Sam Nunn) 상원의원은 와인버거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우리는 국방부가 예산 문제를 현실적으로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의회가 기존에 승인한 신무기 도입계획에 소요될 1500억에서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충원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하며 신무기를 도입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의회와 대립하는 와인버거의 행태는 국방력 강화에 대해 국회와 대중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있던 레이건 행정부 초기에는 그럭 저럭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국회의원들은 타협을 거부하는 와인버거에 대해 역겨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레이건이나 와인버거가 아니라 의회가 나서서 국방부의 예산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1984년에 접어들면서 조치가 취해지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의 재정은 군사력 유지와 이미발주되었지만 아직 지불은 되지 않는 신무기 도입을 동시에 추진할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공화당 소속의 상원의원들 마저도 우려를 나타낼 지경이었다. 공화당측은 '레이건 행정부의 첫 1년에 국방부가 얻어낸 연간 9%의 국방예산 증가율보다 훨씬 낮은 3~4% 수준의 예산 증액을 이끌어 내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와인버거는 국방예산을 늘리는데 있어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가 7년간 장관직을 수행하고 퇴임했을 때 그는 '1982년 회계연도에 1807억 달러였던 국방예산을 1987년 회계연도에는 2740억 달러로'늘렸다. 와인버거는 아슬아슬한 시기에 퇴임을 한 덕분에 그가 마구잡이로 "질러댄"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었다.
예산 문제를 손보는 것은 1987년에 새로 국방부장관이 된 프랭크 칼루치(Frank Carlucci)의 임무가 되었다. 칼루치는 의회가 국방예산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은 와인버거와 같은 대립적인 태도는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와인버거와 달리 신무기의 생산과 도입 시기를 늦추면서 예산을 절감하려 했고 국방예산 증가율을 낮추려 했다. 실제로, 칼루치가 1988년 2월 상원에 출두했을 때 그는 국방예산 증가율을 2%로 낮췄다고 의원들에게 설명했다. 와인버거가 3320억 달러의 예산을 요구한데 반해 칼루치는 2990억 달러를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상원은 3000억 달러의 예산을 승인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군비증강 노력이 끝나갈 무렵, 국방부는 대통령이 약간 도움이 된 정도라고 생각했다. 합참은 MX 미사일, B-1 폭격기, 트라이던트 미사일, 그리고 새 항공모함을 도입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했다. 1985년 10월 1일, 베시(John W. Vessey Jr.) 장군을 대신해서 합참의장에 취임한 크로우(William Crowe Jr.) 제독은 레이건 행정부 초기에 무분별하게 집행된 예산으로 인한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았으며 비록 행정부 초기 예산의 일부가 적절하게 사용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군은 예산 사용에 있어 현명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레이건 행정부 초기 후하게 책정된 국방예산은 국방부 내에서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때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던’ 시기였다. 국방부가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예산이 떨어졌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과연 우리가 5년 뒤에는 이 정도의 예산을 받을 수 없을지언정 예산이 있을 때 일단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되더라도 써야 하는가? 그리고는 결정이 이뤄졌다. - 그래. 지르자! 예산이 들어오는 동안은 수중에 있는 모든 돈을 써 버리자! 그래서 국방부는 예산을 써 버렸고 예산이 모두 현명하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국방부는 5년이 지난 뒤 더 이상은 많은 예산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돈이 있을 때 쓰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 당시의 판단에 대해 비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체계적인 군생활을 거친 군인들은 예산이 증액되던 초기에 이미 레이건 행정부가 군대를 심각한 문제에 처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한 해병대 장군은 다음과 같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해병항공대 사령관 핏맨(Charles H. Pitman) 중장은 '만약 누군가 내일’ 해병대가 앞으로 3~5년간 극복해야 할 것에 대해 묻는다면 '일단 나를 혼자 내버려 두면 내부개혁을 한 뒤 좀더 나은 계획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그러지 못하겠다면,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싸울 것이다. 만약 해병대가 현재의 3-5년 예산안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경우 사업 입찰에 참여한 회사들은 그들의 직원들을 내 눈 앞에서 꺼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목표를 세우고 결정을 내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군예산의 문제는 레이건이 집권했을 때 보다 레이건이 퇴임했을 때 더 악화되었다. 국방부의 한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1970년대와 같은 구제불능의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미 시작된 것 이죠. 육군은 레이건이 집권했을 때 보다 더 축소되었고 해군은 군함들을 퇴역시켜야 했으며 공군은 비행단 규모를 감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빴던 것은 군대의 전투수행태세가 악화된 것 이었다. 사실상 이제는 국방예산이 현재 보유한 장비들을 운용하는 데도 벅찰 지경이 되었다. 국방예산에 관한한 레이건이 남긴 유산은 복합적인 성격을 가졌다.
Dale R. Herspring, The Pentagon and the Presidency : Civil-Military Relations fron FDR to George W. Bush,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5), pp.275~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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