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본시 외방의 궁벽한 나라이나 간혹 기인이 나타나 이름을 떨치니 평화왕 문선명은 일찌기 천조에 입조하여 많은 작위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간혹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자도 많으니 허경영(許京寧)이 그러하다.
허경영은 한국의 서울 사람으로 트루먼 6년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경영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허다하게 많으나 하나같이 허황되어 기록할 바가 못 된다. 경영은 스스로 한국 제일의 거상인 이병철의 양자요, 국왕 박정희의 적통이라 하였으나 종로를 지나가는 비둘기와 고양이조차 비웃었다.
조지 H. W. 부시 5년, 허경영이 패망한 이씨의 중조(重祚)를 외치며 진리평화당(眞理平和黨)의 깃발을 걸고 무리를 모았으나 뭇 백성들의 조롱거리만 되었다.
빌 클린턴 5년, 허경영이 다시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의 깃발을 내걸고 무리를 모았다. 때마침 백성들의 삶이 곤궁하고 온갖 사교가 기승을 부려 허경영도 다소나마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때 허경영은 자신이 박정희의 적통이라 참칭하고 소위 혁명공약 10조를 내거니 많은 백성들이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허경영은 이후 무리들과 함께 검은 수레에 황소의 상(像)을 싣고 저자를 누비고 다녔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3년, 허경영은 재차 청와궁에 들겠노라 외치며 무리를 모았으나 저자의 무뢰배들 조차 외면하였다.
허경영은 그 하는 말과 행동이 허황되고 참람된 점이 없지 않았으나 기이한 행동으로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니 결코 그 공이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허경영 전(傳)을 지어 후대에 알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