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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9일 수요일

아아... 허본좌

예전에 박정희를 "엘비스 프레슬리"에 비유한 농담글을 쓰면서 허경영 총재에 대해서는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평을 바친바 있습니다.

[妄想大百科事典]박정희(朴正熙)

그런데 오늘자 언론 기사들을 보니...

허경영 "마이클 잭슨 영혼, 사망 3일 전 찾아왔었다"

왠지 이 기사는 사실로 믿고 싶습니다.

역시 허총재님은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듯 싶습니다. 동류이다 보니 서로 통한게지요.

2007년 11월 26일 월요일

승리의 총재님

기호 8번 허경영



경부운하 따위는 버로우!


총재님은 바이칼호다!

2007년 10월 20일 토요일

세계적 대인배 허경영 총재

모당의 대통령 후보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뒷구멍으로 추진하다가 나라망신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아. 정말 통탄치 않을 수 없는 비극입니다. 일국의 대통령 후보가 고작 이정도의 소인배라니 말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 한반도에 세계적 대인배가 한 분 계십니다.

말 안해도 다 아실 그분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2001년 1월 18일부터 28일까지 내가 미국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 당선 축하파티에 초청되어 워싱턴에 가서 부시대통령(사진 참조)과 부통령, 그리고 상하원의원들을 만났었다. 그리고 미국 공화당과 한국 공화당과 자매결연도 맺었었다.


그런데 그때 미국의 고위 공직자 한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중략)

“미국이 진정 존경하는 지도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거대한 미국과 맞서서 싸우며 자기 민족을 살리겠다고 몸부림친 민족주의자 반미주의자인 박정희 대통령과 월맹의 호지명, 그리고 허경영 총재 당신 같은 민족주의자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입니다.

(중략)

그는 미국이 변해가고 있음을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여야와 자민련까지도 고어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고 지지를 했었는데 나는 표범상인 부시가 염소상인 고어를 이기고 대통령이 될 것을 미리 내다보고 부시에게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여야의 국회의원 20여명이 워싱턴의 호텔에 머물렀지만 그들은 결국 부시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허경영,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10판), 도서출판 새나라, 2000, 2002년, 313~314쪽

2007년 1월 26일 금요일

[妄想大百科事典]박정희(朴正熙)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고의 연예인.

그의 광적인 팬인 김재규에게 살해 당해 종종 존 레논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실제 차지하는 위상은 엘비스 프레슬리에 가깝다. 역대의 어떤 연예인도 박정희의 인기를 뛰어 넘지 못했으며 단지 대한민국의 특정한 지역에서만 그 인기가 덜한 편이다.

박정희는 1961년 차지철 등과 함께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이후 솔로로 전향해 1963년 세종로 차트 1위를 석권한 이후 1979년 살해 당하기 까지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 한때 슬럼프에 빠졌으나 1972년 제 3집 “유신헌법” 발표로 기적적으로 부활했으며 유신헌법은 아직도 국가보안법과 1위를 다투는 대한민국 연예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정희 이후 이른바 군사독재 스타일이 한국 연예계를 강타해 전두환, 노태우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으며 아직도 그 영향력이 남아있다.

박정희의 인기는 아직까지도 식지 않아서 그의 대표곡인 “혁명공약”, “국민교육헌장”은 아직까지도 애창되는 인기곡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최고 히트곡은 이승만의 작품인 “국가보안법”으로 박정희가 리메이크 한 이래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물론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 곡은 아직도 꾸준히 리메이크 되고 있다는 점에서 종종 My Way에 비견되고 있다. 이후 국가보안법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에 이르기까지 애창됐으며 아직까지도 삼류 연예인들에 의해 거듭 리메이크 되고 있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가업을 이어 연예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나 한국의 마릴린 맨슨이라 불리는 이명박의 등장으로 현재 그 인기가 수그러 들고 있어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박근혜는 한국의 마이클 잭슨으로 통하는 허경영으로 부터 구혼을 받은 전례가 있어 한국판 리사 프레슬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낳았으나 현재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박정희의 아들로 한때 아버지의 뒤를 이을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은 박지만은 부친의 사후 그의 예술적 재능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마약에 빠져드는 등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현재 박지만은 마약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했으며 예능인의 꿈을 접고 사업에 매진하고 있어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박정희는 지역, 계층을 불구하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나 젊은 층에서는 인기가 덜한 편이다. 현재 한국의 연예계는 박정희의 뒤를 이을 수퍼스타를 기다리고 있으나 제 2의 박정희를 선언한 이인제 등 허접한 삼류들만 나오는 실정이다.

박정희의 라이벌로는 김대중이 꼽히고 있으나 실제 그 인기나 영향력에서 박정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연예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대중의 인기가 박정희 보다 못한 이유로는 요절하지 못 했다는 점, 발표하는 작품들이 밋밋하고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 등이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팬 층을 갖춰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한때는 김영삼도 박정희의 라이벌로 꼽혔으나 세종로 차트 1위에 오른 뒤 박정희의 아류로 전락해 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국가보안법 표절은 한국 연예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꼽힌다.

박정희의 인기는 아직까지 높기 때문에 그의 안티가 되는 것은 신상에 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정희는 특히 노년층, 장년층에 인기가 높기 때문에 어버이날에 박정희 찬가를 부르는 것은 가족의 화목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적극 권장하고 있다.

2006년 12월 3일 일요일

[美利堅史] - 韓國傳 허경영 列傳

한국은 본시 외방의 궁벽한 나라이나 간혹 기인이 나타나 이름을 떨치니 평화왕 문선명은 일찌기 천조에 입조하여 많은 작위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간혹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자도 많으니 허경영(許京寧)이 그러하다.

허경영은 한국의 서울 사람으로 트루먼 6년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경영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허다하게 많으나 하나같이 허황되어 기록할 바가 못 된다. 경영은 스스로 한국 제일의 거상인 이병철의 양자요, 국왕 박정희의 적통이라 하였으나 종로를 지나가는 비둘기와 고양이조차 비웃었다.

조지 H. W. 부시 5년, 허경영이 패망한 이씨의 중조(重祚)를 외치며 진리평화당(眞理平和黨)의 깃발을 걸고 무리를 모았으나 뭇 백성들의 조롱거리만 되었다.

빌 클린턴 5년, 허경영이 다시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의 깃발을 내걸고 무리를 모았다. 때마침 백성들의 삶이 곤궁하고 온갖 사교가 기승을 부려 허경영도 다소나마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때 허경영은 자신이 박정희의 적통이라 참칭하고 소위 혁명공약 10조를 내거니 많은 백성들이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허경영은 이후 무리들과 함께 검은 수레에 황소의 상(像)을 싣고 저자를 누비고 다녔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3년, 허경영은 재차 청와궁에 들겠노라 외치며 무리를 모았으나 저자의 무뢰배들 조차 외면하였다.

허경영은 그 하는 말과 행동이 허황되고 참람된 점이 없지 않았으나 기이한 행동으로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니 결코 그 공이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허경영 전(傳)을 지어 후대에 알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