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6일 금요일

[妄想大百科事典]박정희(朴正熙)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고의 연예인.

그의 광적인 팬인 김재규에게 살해 당해 종종 존 레논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실제 차지하는 위상은 엘비스 프레슬리에 가깝다. 역대의 어떤 연예인도 박정희의 인기를 뛰어 넘지 못했으며 단지 대한민국의 특정한 지역에서만 그 인기가 덜한 편이다.

박정희는 1961년 차지철 등과 함께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이후 솔로로 전향해 1963년 세종로 차트 1위를 석권한 이후 1979년 살해 당하기 까지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 한때 슬럼프에 빠졌으나 1972년 제 3집 “유신헌법” 발표로 기적적으로 부활했으며 유신헌법은 아직도 국가보안법과 1위를 다투는 대한민국 연예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정희 이후 이른바 군사독재 스타일이 한국 연예계를 강타해 전두환, 노태우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으며 아직도 그 영향력이 남아있다.

박정희의 인기는 아직까지도 식지 않아서 그의 대표곡인 “혁명공약”, “국민교육헌장”은 아직까지도 애창되는 인기곡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최고 히트곡은 이승만의 작품인 “국가보안법”으로 박정희가 리메이크 한 이래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물론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 곡은 아직도 꾸준히 리메이크 되고 있다는 점에서 종종 My Way에 비견되고 있다. 이후 국가보안법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에 이르기까지 애창됐으며 아직까지도 삼류 연예인들에 의해 거듭 리메이크 되고 있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가업을 이어 연예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나 한국의 마릴린 맨슨이라 불리는 이명박의 등장으로 현재 그 인기가 수그러 들고 있어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박근혜는 한국의 마이클 잭슨으로 통하는 허경영으로 부터 구혼을 받은 전례가 있어 한국판 리사 프레슬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낳았으나 현재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박정희의 아들로 한때 아버지의 뒤를 이을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은 박지만은 부친의 사후 그의 예술적 재능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마약에 빠져드는 등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현재 박지만은 마약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했으며 예능인의 꿈을 접고 사업에 매진하고 있어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박정희는 지역, 계층을 불구하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나 젊은 층에서는 인기가 덜한 편이다. 현재 한국의 연예계는 박정희의 뒤를 이을 수퍼스타를 기다리고 있으나 제 2의 박정희를 선언한 이인제 등 허접한 삼류들만 나오는 실정이다.

박정희의 라이벌로는 김대중이 꼽히고 있으나 실제 그 인기나 영향력에서 박정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연예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대중의 인기가 박정희 보다 못한 이유로는 요절하지 못 했다는 점, 발표하는 작품들이 밋밋하고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 등이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팬 층을 갖춰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한때는 김영삼도 박정희의 라이벌로 꼽혔으나 세종로 차트 1위에 오른 뒤 박정희의 아류로 전락해 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국가보안법 표절은 한국 연예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꼽힌다.

박정희의 인기는 아직까지 높기 때문에 그의 안티가 되는 것은 신상에 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정희는 특히 노년층, 장년층에 인기가 높기 때문에 어버이날에 박정희 찬가를 부르는 것은 가족의 화목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적극 권장하고 있다.

댓글 17개:

  1. 1. 명곡 국가보안법도 연예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일본 근대의 "치안유지법" 엔카의 곡을 그대로 땄다는게 정설이지요. 소시적 불멸의 작곡가 오제도옹의 희대의 걸작-너무 걸작이라서 듣다가 사망사고도 일어난-으로 평가되는 "보도연맹"역시 일제 말기의 비슷한 작품에 대한 표절로 알려졌으니..

    2. 남한의 박정희라면 북쪽에는 불멸의 예술인이자 스스로를 "나는 롹커가 아닌 아리스트"로 불러달라는 본좌 김일성이 있지요. 김일성 같은 경우는 무려 "남한"에도 박순희들이 많으니... 그 폐해를 알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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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루에 오이세개를 자시면서 칠옥타브를 넘나드는 배고픈 롹의 정도를 추구하시던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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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준님 // 아아. 표절로 얼룩진 대한민국 연예계의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바보이반님 // 북쪽의 그분이라면 주체사상이라는 뉴에이지 장르의 선구자 아니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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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박정희 열전을 어떻게 쓰실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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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행인님 // 이 카테고리는 '망상대백과사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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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본문보다 리플이 더 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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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김재규는 한때 같은 그룹 맴버였지요.
    나름대로 세션팀에서 좋은 호흡을 맞췄습니다.

    그래도 북쪽의 그분도 한때 만주쪽에서는 전설적인 락커 아닙니까.
    왕년에는 진짜 7옥타브 했다던데.
    정작 아티스트는 연출가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가요계로 뛰어든 그분의 아들이지요.
    능히 그분은 스스로 "롹커가 아닌 아티스트"라
    공언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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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텐보로님 // 어이쿠! 큰일이군요.

    티앙팡님 // 오호. 김일성 동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렇게 많은 설이 분분한 것을 보면 역시 그 양반 인물은 인물인가 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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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어허! 이명박이 마를린 멘슨이라니요!!

    애초 국가보안법은 1회용의 성격이 상당히 짙었다고 하죠... 그걸 지금까지 우려먹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할 일이죠.. 그리 "껀수" 가 없는겐지....

    p.s : 박정희의 인기는 청년층의 인기도 상당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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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특별 앨범 고난의 행군은 과연 어느 장르에 해당하련지... 재밌게 잘 일고 갑니다.(눈물이 날 정도로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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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카린트세이님 // 좀 닮지 않았나요? 하하핫.

    라피에사쥬님 // 고난의 행군 역시 뉴에이지 장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북조선의 뉴에이지는 주로 주체사상을 위한 명상음악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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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확실히 박정희안티가 되면 화목한 집안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발휘하지요.
    그와 그룹으로 등장했던 차지철은 비공식석상에서 독집앨범 '킬링필드를 꿈꾸며'를 발표하려다 황천길로 가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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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확실히 아버지를 능가하는 아들은 나오기 어려운가 봅니다.

    남쪽의 아들은 음악을 포기하고 사업에 투신, 북쪽의 아들은 아예 출발을 '유훈통치'라는 추모앨범으로 스타트를 끊은데다 아버지가 세워놓은 장르의 틀 안에서 벗어날 기미를 안 보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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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oldman님 // 차지철의 문제는 박정희와 달리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지 못한데 있다고 봅니다.

    기껏 문화 후진국 간포채의 3류 뮤지션들을 표절할 생각을 했으니...

    스카이호크님 // 아니다 싶으면 한시라도 빨리 제 갈길을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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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고 박정히 옹의 주옥같은 명반들 중에서 저는 당연 2집이자 싱글엘범이었던
    '불행한 군인'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인디밴드가 본격적으로 주류 밴드로 성장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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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박정희의 불멸의 명반중에는 당시 유행가를 그가 편곡했다고 알려진 '내무덤에 침을 뱉어라'도 있습죠.
    이후 그 곡 그대로 확신범적 사고로 락의 기본 규칙까지 파괴하고 한국적 롹이란 새로운 장르를 만들려다, 결국은 그룹구성원의 분열과 난방비상승으로 인한 그룹유지비의 압박(석유파동) 팬층의 반발등으로 가수생명이 끝나고 말았지만....

    개인적으론 그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좋게 평가하는 편이지만,유신선언이후 관객에게 들을것을 강요하던 사운드는 ,엔터테인먼트의 기본을 망각한 사도였지요. 그래도 이후 한국 음악계에 남긴 족적이 워낙 커서 앞으로도 두고 두고 회자 될 인물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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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학상님 // 넵. 좋은 지적이십니다.

    45acp님 // 원래 아티스트들이란 괴팍한 면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천재들은 더욱 그런 법이지요.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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