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7일 토요일

검은집

얼마전에 CGV 무료초대권을 몇 장 얻었는데 정작 CGV에는 트랜스포머와 기타 몇 개의 영화가 스크린을 독식하고 있더군요. 트랜스포머도 무료초대권으로 이미 봤기 때문에 몇 개 안 되는 영화 중 아직 안 본 영화를 찾다 보니 결국 "검은집"을 보게 됐습니다.

이 영화는 재미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 주인공과 살인범을 너무 재미없게 묘사했습니다.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했지만 주인공은 너무 착하기만 해서 짜증이 나고 살인범은 조용히 있다가 영화 후반부터 갑자기 미쳐 돌아가 황당합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착하기만 한 주인공은 최악입니다.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남 걱정이나 하고 자빠졌으니 이런 인간에게 어떻게 감정 이입이 되겠습니까! 주연 배우인 황정민의 연기는 좋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인물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살인범을 연기한 유하의 연기도 역시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황정민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꽝이었습니다.

쓸데없이 잔인한 신체훼손이 많이 나오는 것도 지겹습니다. 이야기 전개상 납득할 만한 피칠갑장면은 그럭 저럭 봐 줄 수 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멀쩡한 사람 눈을 꿰메고 보험금을 받기 위해 두 팔목을 절단하는 장면은 끔찍하다기 보다는 짜증을 돋궜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지하실에서의 대결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아무 이유 없이 살인범을 상대로 도망만 다닙니다! 다리를 저는 30대 여자를 상대로 도망만 다니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게다가 살인범은 격투 와중에 한쪽 눈을 잃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역시 주인공은 애인을 데리고 도망만 칩니다. 물론 도망조차 제대로 못 가니 구경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부아가 치밀 지경이었습니다. 만약 미저리에 나온 우락 부락한 여자였다면 공감을 해 줄 수 도 있지만 얼굴도 곱상하게 생긴데다 호리호리하고 한 쪽 다리를 절며 또 한 쪽 눈도 없는 여자를 상대로 도망만 다니니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비현실적인 등장인물들의 행태는 제외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은 더 있습니다. 이야기를 주인공과 살인자 두 명을 중심으로 압축했다면 좀 더 좋았을 듯 싶은데 특히 주인공의 애인은 납치되는 것 말고는 별로 쓸 데가 없는 등장인물이었습니다. 애인이 소개시켜준 정신과 의사도 뜬금없이 나왔다가 뜬금없이 시체가 되더군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또한 별로 필요한 장면 같지는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관객의 등골을 서늘하게 해 주겠다고 넣은 것 같은데 그런 종류의 결말은 다른 영화에서 너무 지겹게 봐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소재는 무난했지만 그것을 잘 다룬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짜로 본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