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4일 금요일

'전격전의 전설' 서평 올렸습니다.

교보문고에 서평을 올렸는데 아직 심사가 완료되지 않아 책 소개에는 뜨지 않습니다. 뛰어난 저작에 비해 서평이 충분하지 못해 걱정이 됩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 올린 서평은 대략 이렇습니다.

1940년 프랑스 전역은 흔히 ‘1940년의 전격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쟁사에 한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국내에는 이렇다 할 연구가 소개되지 않았으며 간간히 개론적인 서적이 소개될 따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번역된 ‘전격전의 전설(Blitzkrieg Legende)’은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본격적인 작전사로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저작은 독일 연방군 산하 군사사연구소(MGFA)에서 간행되는 작전사(Operationsgeschichte)의 일환으로 출간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프리저(Karl-Heinz Frieser)는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작전사 분야의 대가이고 또 이 저작은 그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데 크게 기여한 책이다. 독일은 근대적인 군사사(軍事史) 연구에 있어서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실전에 적용하기 위한 작전사 연구는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군사사의 범주가 사회사, 문화사로 확장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전사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격전의 전설’은 이러한 독일 군사사의 계보를 잇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작전사’라는 특성상 이 저작은 1940년 전역의 수립과 진행 과정, 특히 핵심이었던 스당에서의 돌파 과정을 분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독일의 일차사료는 물론 상대방인 프랑스와 영국의 시각까지 충실히 반영해 복잡한 작전의 진행과정을 객관적, 실증적으로 복원해 내고 있다. 그리고 핵심적인 지역에서의 작전은 중대, 심지어 소대 단위의 소규모 전투까지 다루고 있어 그 치밀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특히 1940년 전역의 핵심이었던 스당 지구에서의 돌파를 분석한 장에서는 양군의 움직임과 상급 제대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분투한 일선 전투부대들의 사투가 소설에 못지 않게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국내에서는 단순히 잘 씌여진 ‘작전사’라는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그 동안 국내에는 2차대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소개되지 못했으며 개론적인 저작들만이 간헐적으로 소개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유럽과 미국의 최신 연구성과는 반영하지 못한 저작들이 뒤늦게 소개되어 항상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이 점에서 ‘전격전의 전설’은 의미를 가진다. 이 저작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뤄진 2차대전사의 연구성과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 1940년 프랑스 전역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 연구를 능가하는 저작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즉 ‘전격전의 전설’은 사실상 2차 대전 초기 전역에 대한 가장 최신의 연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다. 이 책이 영어판으로 번역된 것이 2005년의 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이례적인 사례이다. 이제 ‘전격전의 전설’이 국내에 소개 됨 으로서 2차대전사에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이 지적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이 저작은 군사 문제는 물론 정치 문제에 있어서도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전쟁 초기 히틀러와 독일 고위 장성들 간의 전략적 견해 차이와 전역 수행 과정에서 있었던 히틀러의 작전 간섭 등은 민군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된 민군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주로 민간 관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저자인 프리저는 군인 출신답게 군대의 관점에서 정치인의 군사문제 개입이 가지는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번역은 뛰어나다. 번역판을 읽으면서 다른 번역서를 읽을 때 느끼는 문투의 어색함을 거의 느끼지 못해 놀랐다. 그렇다고 해서 의역이 남발된 것도 아니다. 번역자인 진중근 대위는 원 저자의 의도를 잘 살리면서도 한국의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말로 옮겼다. 이 방대한 저작 전체에 걸쳐 번역의 수준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점에서 번역자가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독서의 계절인 겨울에 이렇게 의미 있는 저작이 유려한 한국어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이 책을 2차 세계대전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은 물론 역사와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지적 호기심을 가진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국내에 좀처럼 소개되기 어려운 종류의 저작이며 게다가 그 수준 또한 높은 저작이기에 앞서 언급한 분들에게 충분한 지적 자극과 독서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