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동안 예고편만 때려댔던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원래는 2009년에 논쟁을 간단하게 정리한 글을 썼는데 중간에 빼먹은 논문도 많고 게다가 2010년에 논쟁의 주인공인 테렌스 주버(Terence Zuber)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는 새로운 논문을 쓰기도 했으니 그동안 진행된 논쟁을 다시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예전 글에서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빼먹은 논문들을 모두 정리할 생각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 논쟁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 많은데 군사사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다른 분들도 저와 같으시리라 짐작해 봅니다. 위에서 적은 것 처럼 이 논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문과 서적들을 최대한 소개할 것이기 때문에 글을 몇 편으로 나눠서 연재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썼던 글들은 제 귀차니즘과 블로그 글을 손에 책 잡히는 대로 쓰는 습관 때문에 논쟁 중간에 발표된 논문들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폐해(!!!)가 있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런 폐해를 줄여보려 합니다.
슐리펜 계획
먼저 슐리펜 계획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군사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계획의 하나인 만큼 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들은 아주 잘 아시겠지만 그래도 예의상 간략히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네요.
주버가 슐리펜 계획의 실체를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하기 전 까지 학계의 통설은 슐리펜 계획의 입안자인 독일군 총참모장 슐리펜이 양면전쟁의 불리함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쟁 초기 서부전선에 주력을 집중해 단기결전으로 승리를 이끌어내고자 했으며 이때문에 우익에 주력을 최대한 집중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 입니다.
기존의 통설은 독일군 수뇌부는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닫게 될 경우 독일이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해 진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총참모장에 임명된 슐리펜도 이점을 염두에 두고 개전 초반에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결전을 치르기 위한 계획을 준비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독일과의 국경지대의 요새선을 강화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이 때문에 1870/71년 전역과 같이 프랑스 국경을 조기에 돌파할 가능성이 사라진 것 입니다. 슐리펜은 1905년 퇴임하게 될 때 까지 다양한 대안을 구상했으며 그 결과 최종적으로 1905년에 슐리펜 계획이 완성됩니다. 이 계획은 서부전선에서 조기에 승리를 거두기 위해 독일군의 가용한 전력을 서부전선에 집중하는 것 이었고 프랑스의 국경지대 요새들을 무력화 하기 위해서 중립국인 벨기에를 통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습니다. 주력은 독일군의 우익을 담당할 1, 2, 3군이었으며 이 중에서도 최우익에서 포위망을 형성할 1군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독일군의 주력은 벨기에를 돌파한 뒤 대규모 포위 기동을 실시하고 특히 최우익을 맡은 제1군은 루앙(Rouen)을 우회하여 프랑스군을 섬멸하는 포위망을 형성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렇게 대규모 포위망으로 프랑스군 주력을 조기에 포위 섬멸하는 것으로 슐리펜 계획은 마무리 될 것 이었습니다.
실제로 1차대전 초기 독일군의 작전이 이렇게 수행되었고 전후 독일측의 공간사도 동일한 주장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는 없었습니다.
주버의 주장, 슐리펜 계획의 실재 여부에 대한 논쟁의 시작
그런데 1999년 War in History 6권 3호에 당시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테렌스 주버(Terence Zuber)의 "The Schlieffen Plan Reconsidered"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 논문은 꽤 도발적인 내용으로 이후 10년이 넘는 슐리펜 계획의 실재여부에 대한 논쟁의 시발점이 됩니다. 이 논쟁에는 여러명의 학자가 참여했으나 주버가 처음 논문을 투고한 War in History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테렌스 주버가 논쟁의 포문을 연 뒤 그를 상대한 테렌스 홈즈(Terence M. Holmes)와의 논쟁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주버가 The Schlieffen Plan Reconsidered를 발표해 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뒤 테렌스 홈즈와 논쟁을 진행하다가 2003년 같은 학술지에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 Again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포했을 때 까지입니다. 이때까지의 논쟁은 주버와 홈즈간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 논쟁에 대한 주요 논문과 저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Terence Zuber, “The Schlieffen Plan Reconsidered”, War In History 1999; 6(3)
Terence M. Holmes, “The Reluctant March on Paris: A Reply to Terence Zuber's `The Schlieffen Plan Reconsidered'” War In History 2001; 8(2)
Terence Zuber,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1; 8(4)
Terence M. Holmes, “The Real Thing: A Reply to Terence Zuber’s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2; 9(1)
Terence Zuber, Inventing the Schlieffen Plan: German War Planning 1871-1914(Oxford University Press, 2002)
Terence M. Holmes, “Classical Blitzkrieg: The Untimely Modernity of Schlieffen's Cannae Programme”,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2003; 67(3)
Terence Zuber, “Terence Holmes Reinvents the Schlieffen Plan - Again”, War In History 2003; 10(1)
두 번째 단계는 이 논쟁에 다른 1차대전 전공자들이 개입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입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로버트 폴리(Robert T. Foley)가 The Origins of the Schlieffen Plan라는 논문으로 전통적인 학설을 보완ㆍ지지하면서 논쟁에 개입했습니다. 이어 아니카 몸바우어(Annika Mombauer), 독일의 게르하르트 그로스(Gerhard P. Groß) 등이 논쟁에 참여함으로써 판이 아주 커졌습니다. 이 시기의 주요 논문과 저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Robert T. Foley, “The Origins of the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3; 10(2)
Terence M. Holmes, “Asking Schlieffen: A Further Reply to Terence Zuber”, War In History 2003; 10(4)
Terence Zuber, “The Schlieffen Plan Was an Orphan”, War In History 2004; 11(2)
Terence Zuber, German War Planning, 1891-1914: Sources and Interpretations(Boydell Press, 2004)
Annika Mombauer, “Of war plans and war guilt: The debate surrounding the Schlieffen Plan”,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2005, 28(5)
Robert T. Foley, “The Real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6; 13(1)
Terence Zuber, “Der Mythos vom Schleffenplan”, Der Schlieffenplan : Analysen und Dokumente, (Schöningh, 2006)
Annika Mombauer, “Der Moltkeplan : Modifikation des Schlieffenplans bei gleichen Zielen?”, Der Schlieffenplan : Analysen und Dokumente, (Schöningh, 2006)
Robert T. Foley, “Der Schlieffenplan : Ein Aufmarschplan für den Krieg”, Der Schlieffenplan : Analysen und Dokumente, (Schöningh, 2006)
Gerhard P. Groß, “There Was a Schlieffen Plan: Neue Quellen”, Der Schlieffenplan : Analysen und Dokumente(Schöningh, 2006)
Terence Zuber, Everybody Knows There Was a `Schlieffen Plan': A Reply to Annika Mombauer, War In History 2008; 15(1)
Gerhard P. Groß, There Was a Schlieffen Plan: New Sources on the History of German Military Planning, War In History 2008; 15(4)
Terence M. Holmes, "All Present and Correct: The Verifiable Army of the Schlieffen Plan", War In History 2009; 16(1)
Terence Zuber, There Never Was a ‘Schlieffen Plan’: A Reply to Gerhard Gross, War In History 2010; 17(2)
두번째 단계 부터는 약간 복잡해 집니다. 전통적인 학설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이 대거 개입했기 때문에 주버가 반박논문을 발표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납니다. 먼저 위에서 언급한 아니카 몸바우어가 2005년에 발표한 Of war plans and war guilt: The debate surrounding the Schlieffen Plan에 대한 반박논문은 2008년에 씌여졌으며 게르하르트 그로스의 2006년 논문, There Was a Schlieffen Plan: Neue Quellen에 대한 반박 논문은 2010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재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주요 논문과 저작들을 모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전 글에서 좀 불성실하게 이야기를 진행한 것에 대한 반성이라고나 할까요. 좀 느긋하게 연재하되 하나도 빠짐없이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