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영화평들을 찾아 보던 중 영화 평론가 듀나가 쓴 평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평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닙니다만 재미있는 구절이 하나 눈에 들어오더군요.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강제규의 [마이웨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미군의 심문을 받는 동양인 사진 한 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앰브로스의 책 [디-데이]에 실린 이 사진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 군복을 입은 이 동양인 포로는 자신이 '코리언'이라고 밝혔다죠.
듀나의 영화 낙서판 - 마이웨이
여기서 말하는 사진은 바로 유명한 아래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스티븐 앰브로즈의 D-Day(1994년에 출간된 페이퍼백판)에는 동양인 포로의 사진이나 이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브루어 중위가 독일 군복을 입은 동양인 포로들을 생포했고 이들을 심문한 결과 ‘코리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나올 뿐이지요.(D-Day의 다른 판본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혹시라도 다른 판본에 그 동양인의 사진과 조선인이라는 설명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겠지만 해당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독일이 1943년 쿠르스크에서 패배한 이후 이른바 동방대대는 갈수록 신뢰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때문에 이 부대들은 독일인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대신해 프랑스로 보내졌다. 제101공수사단 506강하연대의 로버트 브루어Robert Brewer중 위는 침공 당일 유타라고 명명된 해변에서 독일군복을 입은 네 명의 동양인을 생포했다. 이들과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이들은 조선인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해서 조선인들이 히틀러를 위하여 미군에 맞서 프랑스를 방어하는 싸움에 참여하게 된 것인가? 이들은 1938년 당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때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1939년 국경지대의 전투에서 붉은군대에 생포되었고, 붉은군대에 강제로 편입된 뒤에는 1941년 12월 모스크바 근교에서 독일 국방군에 포로가 된 뒤 독일군에 강제로 편입되어 프랑스로 보내진 것으로 생각되었다.(브루어 중위는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떠올리지 못 했으나 아마 조선으로 되돌아간 듯 싶다고 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믄 이들은 다시 한번 남한이나 북한중 어느 한쪽에 징집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이들이 한반도의 어느쪽에 속했느냐에 따라 1950년에 미국에 대항해서 건 혹은 미군과 함께 건 다시 한번 싸움을 하게 되었을 가능이 있다. 이것은 20세기 정치의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아닐 수 없다.) 1944년 6월 경에는 서부전선의 독일군 소총병 여섯 명 중 한 명이 동방대대 소속이었다.
Stephen E. Ambrose, D-Day June 6, 1944 : The Climactic Battle of World War II, (Touchstone Book, 1994), p.34
인터넷 상에 노르망디의 조선인이라고 해서 널리 퍼진 이 사진에 언제부터 ‘조선인’이라는 설명이 붙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앰브로즈의 책에서 나온 설명은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앰브로즈의 책에 나온 서술을 이 사진에 달아놓은 것을 보긴 했는데 어쩌면 이것이 발단인지도 모르겠군요.
“마이웨이”의 영화 홍보도 정체가 불분명한 동양인의 사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홍보하는 것을 보면 제작진도 상당한 자료를 준비했을 것이고 D-Day는 당연히 읽었을텐데 왜 그런 방향으로 홍보를 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물론 영화 홍보에서 “스티븐 앰브로즈의 책에서 어쩌구” 하는 것 보다는 한 장의 사진을 제시하는게 시각적으로 더 효과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사진에 실린 인물이 어느 민족에 속하는지 확실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실체가 불확실한 사진을 중심으로 한 홍보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계속 재생산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한편으로는 텍스트가 지나치게 홀대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섭섭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