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번역본이 출간된 『보급전의 역사』덕분에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많은분들이 2차대전기 군수보급문제에 대해 이해를 넓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보급문제를 주로 거시적인 작전단위에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급부대의 편성같은 세부적인 문제도
다루지만 어디까지나 본문의 맥락을 끊지 않는 범위내에서 제한을 하고 있지요.
그러고보면 2차대전기 독일군의 사단급의 전술단위에서 보급문제를 다루는 독립적인 글을 찿는 것은 더 어려운 일 같습니다. 제가 읽어본 글 중에서는 스톨피R. H. S. Stolfi가 German Panzers on the Offensive의
127쪽에서 131쪽까지 독일 제15기갑사단의 보급부대 운용을 짤막하게 다룬 절이 그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아프리카 전선의 사단급 보급부대 편성과 운용을 잘 설명해 놓아 이해하기가 쉽고 유용합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지요.
제15기갑사단의 보급부대는 제33보급대대Panzer-Divisions-Nachschubführer 33였습니다. 이 부대는 대대급 부대로 북아프리카로 출동할 당시 총 12개의 보급대Kolonne와 사단의 예비전차를 수송하는 40톤급 제33보충전차수송대Panzer-Ersatzteil-Kolonne 33, 그리고 3개 정비중대Kraftwagen-Werkstatt-Kompanie로
편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새로 2개 보급대가 추가되어 제33보급대대는 총 14개 보급대를 예하에 두게 됩니다. 각
보급대는 30톤의 수송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제8~제11 수송대는 연료운반, 제13~제14 수송대는 물을 운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1개 보급대는 10대의 트럭으로 편성되었는데 독일군이 차량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각 보급대의 수송능력에 맞춰 차량이
배치되는 경우도 흔했던 모양입니다. 한편 사단 군수참모부도 보급품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보급대대와 함께 움직였습니다. 또한
무전기를 탑재한 3대의 통신트럭과 차량화된 8문의 20mm 대공포와 37mm 대전차포가 배치되어 기관총 14정에 불과한
보급대대의 빈약한 방어능력을 보충했습니다. 이 외에도 자체적인 방어능력을 갖추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는데 1942년 2월에는
아프리카 기갑군이 각 수송대의 수송용 차량은 2명이 탑승하여 한명이 자체 방어를 담당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보급부대를 호위하는 것은 꽤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영국군의 정찰부대나 영국군에 고용된 현지인들의 습격은 물론
공습이 다반사였습니다. 게다가 유동적인 전선 상황 때문에 영국군의 전차부대와 마주치는 최악의 경우도 일어났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941년 기준으로 37mm 대전차포 정도면 영국군의 장갑차는 물론 부실한 순항전차들도 제한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는 점
이었습니다. 심지어 20mm 대공포의 철갑탄으로 영국군 순항전차의 측면을 노려 격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뒤에는
박격포를 장비한 차량화보병 1개 소대가 추가되었고 경우에 따라 노획한 영국군의 중장비를 배속시키기도 했습니다.
롬멜의 1942년 하계공세에서 가잘라 방어선을 둘러싼 전투가 유동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독일군 보급부대는 다양한 위협에 스스로
대처해야만 했습니다. 보급대는 후방에 위치한 기갑군 물자집적소에서 최전방의 사단집적소로 끊임없이 물자를 실어날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독일군은 가잘라 방어선을 조기에 분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급로가 비르 하케임Bir Hacheim을
끼고 우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국군은 이 길게 늘어진 보급로를 수시로 타격했으니 독일군으로서는 환장할 일이었겠지요. 저자인
스톨피는 이러한 상황이 마치 해전의 유동성과 같았다고 평가하는데 저도 괜찮은 비유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