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1990년, 붕괴 직전 소련군의 일화

우울한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생각나는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죠.

1990년 6월 '병사의 어머니들' 이라는 운동단체가 과거 4~5년간 15,000명의 병사가 사망했다고 발표한 이후 부터 병사의 사망에 대한 통계가 다른 출처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990년 8월, 인민대표회의의 우즈베키스탄 대표 한 명은 "최근" 타쉬켄트 한 지역에서면 190명의 신병이 사망했으며 이미 1989년에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신병 430명이 사망했다는 폭로를 했다.

이 대표의 요청에 따라 국방부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병사들을 노린 살인범죄가 자행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했으며 국방부 대변인은 (1990년) 11월에 발표하기를 1989년 (1월 부터 ) 9월까지 사망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병사는 167명이며 같은 기간 동안 러시아 출신은 123명, 우크라이나 출신은 25명, 카자흐스탄 출신은 15명, 벨라루스 출신은 13명, 그루지야 출신은 7명, 아제르바이잔 출신은 7명, 그리고 이 밖의 다른 공화국 출신 병사 일부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이러한 증거는 우즈베키스탄 출신들만 차별적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사망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다른 민족(공화국)들이 그다지 수긍하지 않았으며 우즈베키스탄에서 처음에 제기한 의심을 더 확신하게 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병사의 사망에 대한 통계자료가 일관성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으나 발표된 통계를 보면 사망자의 숫자는 1990년 이후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야조프 원수는 12월에 있었던 한 비공개 회의에서 1990년 한 해에만 500명의 징집병이 자살했으며 같은 기간 동안 69명의 장교와 32명의 부사관이 살해당했다는 발언을 했다. 이 회의에서 중앙정치국장 니콜라이 쉴랴가 대령은 1990년 (1월부터) 11월까지 2,000명의 병사가 사망했다고 말했다.(이렇게 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이 수치에 타지키스탄과 카프카즈의 전투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포함되었기 때문으로 추즉된다.)

Odom, William E. The Collapse of the Soviet Military, Yale University Press, 1998, p.293

붕괴될 무렵의 소련군대나 옐친 시절의 러시아군대 이야기를 읽어보면 한국군의 병영생활이 아무리 열악하다 해도 따라잡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옐친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군대내의 가혹행위를 촬영한 영상이 유포되어 문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 무렵의 소련군 이야기는 술자리 안주거리로 적당한데 반복해서 이야기 하다보면 살짝 오싹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2009년 11월 16일 월요일

1973년, 붕괴 직전 캄보디아 정부군의 일화

저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부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붕괴와 공산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 마음을 사로잡혔습니다. 당시의 반공교육을 위한 책자들은 캄보디아의 학살로 대표되는 이 지역의 비극을 생생하게 묘사했고 정체모를 공포감과 함께 상상력을 자극했지요. 나이를 조금 더 먹은 뒤 군사사 서적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어린시절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접근하게 됐습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요즘도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당시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건들입니다. 뭐랄까요,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 여전히 머릿속 한 구석에 짜릿함(?!?!)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그렇습니다;;;;

오늘도 일을 하다가 딴청을 피우던 중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책을 한권 집어들고 예전에 표시해둔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 부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캄보디아 정부가 계속해서 패배하자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던 부대도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의 군사원조관계자들은 캄보디아 정부군의 7사단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1973년) 4월 초 이 사단의 예하 부대는 타케오(Takeo)성의 성도 부근에서 매복공격을 받자 공황상태에 빠져 105mm 유탄포 8문 중 5문과 트럭 40대 분의 포탄을 적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집단적인 기강해이"로 인한 사고는 더 늘어났는데 이러한 사고의 원인은 주로 정부가 병사들에게 제때 월급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5월 중순, 수백명의 병사들이 프놈펜(Phnom Penh) 북서쪽의 방어진지를 이탈해 봉급 지불을 요구하면서 수도의 중심지로 행진했다. 이 병사들은 총사령부를 향해 대로를 따라 가면서 허공에 소총을 난사해 행인들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이 병사들은 봉급을 전혀 지불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3일 동안 급식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크게 놀란 참모장교들은 즉시 병사들에게 올림픽 경기장에서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정심이 많은 대령 한명이 자신의 돈으로 몇 자루의 빵을 사서 지프에 싣고 올림픽 경기장으로 왔다.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지프에서 빵 자루를 내리자 마자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빵을 집어들고는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캄보디아군 중위 한 명이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요?"

새 정부란 미국의 요구에 의해 얼마전에 조직된 '최고 정치 위원회'를 뜻하는 것 이었다.

"나는 그들이 지금 당장 여길 와 봤으면 합니다."

캄보디아군 장교단은 더할나위 없이 무능했으며 여기에 부패하기 짝이 없었다. 크메르 정부가 미국 정부와의 공식적인 합의에 따라 "병사들의 급여에 사용할 자금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전용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방지하는것에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발표한 지 2년이 지난 뒤에 대략 4만명에서 8만명의 '유령'이 군대의 급여 명부에 올라와 있었다. 이런 유령 병사들은 한달에 최고 2백만 달러를 받았는데 이 돈은 부패한 장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미국 국방부의 한 장군은 1973년 5월 상원의 비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서투른 변명을 해야 했다.

"캄보디아 정부군 사령부는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첫 단계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원님께서 주장하신 것과 같은 부패행위, 급여 명부에 없는 사람을 집어 넣는 행위, 전투에서의 무능력함 같은 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Issacs, Arnold R. Without Honor : Defeat in Vietnam and Cambodia,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3, pp.218~219

이왕 군사사에 관심을 가질 바에는 좀 멋진(???)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텐데 하필이면 이런 암울하고 한심한 이야기가 더 솔깃하더군요. 이 책에 표시해 놓은 다른 부분들도 이와 비슷한 한심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이런 혼란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 흥미롭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짜증

이런 이야기에 실명을 거론하면 큰일나겠죠. 진짜로 맞을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 몇년간 인터뷰를 몇 번 하다보니 일종의 편견이 생깁니다. 무슨 편견이냐면 알맹이도 없는 양반들이 쓸데없는 말은 더럽게 많으면서 까탈스럽다는 것 이죠. 오늘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는지라 아주 화가 납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절에는 그저 어중간한 지위에 있었을 뿐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만나야 하는데 왜이리 까탈스러운지 모르겠군요. 그시절이라면 잔챙이에 불과했던 인물이 다른 거물들(장관급) 보다 사람 신경을 더 긁습니다.

뭐. 먹고 살려면 이런 짜증나는 양반들 비위도 잘 맞춰줘야 겠지요. 별수있겠습니까.

박정희 때리기에 대한 잡생각

잡담을 조금 하고 싶군요.

저는 진보진영의 박정희 때리기가 당분간은 별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현재 진보진영이 쏟아넣는 노력만큼 성과를 거두는게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물론 장기적으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 있겠지요.) 박정희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미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내려놓은 상태이며 박정희에 대한 어지간한 공격은 그런 '믿음'에 상처를 주기에는 약합니다. 박정희의 좌익경력이야 이미 그가 처음 대통령으로 나왔을 때 윤보선이 한 번 써먹어 봤지만 별로 재미도 보지 못했으며 만주국 군대에 복무했다는 점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박정희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흠'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박정희를 때리는데 힘을 쏟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로 보일 뿐 입니다.

재미있게도 어제 읽은 김헌태의 『분노한 대중의 사회』(후마니타스, 2009)에도 제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해당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국민 모두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함께 노력한 시절에 대한 대중의 향수는 박정희가 거론될 때마다 되살아나는 대중의 기억에서 중심에 있다. 물론 반대로 박정희의 업적에 대한 비판도 무겁다. '친일논란', '군사 쿠데타 과정', '일본 제국주의식 국민 동원 모델에 대한 논란', '대일 굴욕 외교', '정적 제거와 인권 탄압', '산업화 과정에서의 영남 중심 경제개발과 화남에 대한 차별' 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상에서는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이런 결과에 대해 대중들이 그의 부정적 실체를 보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대중들은 이미 '박정희'에 대해 그들이 알아야 할 만큼의 진실을 알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런 평가를 내린 것일 수도 있다.

김헌태, 『분노한 대중의 사회 : 대중여론으로 읽는 한국정치』, 후마니타스, 2009, 274쪽

김헌태의 지적은 저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진보쪽에서는 박정희의 지지자들의 무지함을 비웃을 수 있겠지만 박정희 지지자들은 그들 나름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저와 같이 민주당을 찍는 사람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정치적 영향력도 꽤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보쪽에서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중을 향해 '계몽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은 박정희에 대해 심각하게 재평가하는 움직임을 일으키지는 못 했으며 그저 진보진영에 한정된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무지몽매한 박정희 교도'들을 깨우쳐 주겠다는 희생정신(?)은 나름 숭고해 보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성과가 신통치 않다면 방법을 조금 바꿔볼 필요도 있을 것 입니다. 실제 박정희가 냉혹한 독재자라 하더라도 박정희를 지지하는 대중들이 생각하는 박정희는 좀 긍정적인 모습일 수 있을 것 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고친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인데 여기에 대해 지적인 우월감을 들고 가볍게 달려든다는 것은 참 난감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