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2일 수요일

책 받아가실 분들께 (2)

간단한 공지를 하나 드립니다.

얼마전 책을 나눠드리는 행사를 해서 추첨을 했지요. 지난주 부터 제가 시간이 날 때 마다 당첨된 분들께 책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책을 받으신 분들은 확인 차원에서 블로그에 댓글 한개만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연락처를 보내주신 분 중에서 아직 책을 부쳐드리지 못한 분도 있고 연락처를 보내주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책을 받으실 것인지 따로 의사표명을 하지 않은 분들은 일주일 내로 답이 없을 경우 같은 책을 신청한 분에게 책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타임라이프 2차대전사를 받기로 하신 zvezdasijaet님은 분량이 많다 보니 제일 늦게 보내드릴 것 같습니다. 책을 보내드리게 되면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드리겠습니다.

2013년 5월 16일 목요일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3 : Steven F. Udvar-Hazy Center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1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2
Me 262에 대한 미군 시험조종사들의 평가


작년 10월 중순에는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의 분관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분관이라고 적긴 했는데 소장하고 있는 항공기 및 각종 항공장비의 양으로 따지면 '분관'이라고 적은 Steven F. Udvar-Hazy Center가 본관을 압도합니다.

이날 찍은 항공기 사진을 몇 장 올려보겠습니다.


1. Nieuport 28C.1

Nieuport 28C.1은 제1차대전 당시 미육군항공대에서 사용되었고 전후에는 미해군항공대에서도 사용한 기종이라고 합니다. 박물관의 안내문을 보면 프랑스 육군항공대에서 SPAD XIII에 밀려 채용이 안 된 기종인데 마땅한 전투기가 없던 미육군항공대가 이거라도 감사합니다 하고 채용한 물건이라는군요.







2. SPAD S.XVI

제1차대전 당시 프랑스군과 미군에서 정찰기로 사용한 2인승 기종입니다.







3. Halberstadt CL.IV

제1차대전 말기에 독일 육군항공대에서 지상공격기로 사용한 기종입니다. 전쟁 말기에 그 당시로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독일 육군항공대의 지상공격기 부대의 상징과 같은 기종입니다.







4. Caudron G.4

이 기종은 제1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에서 경폭격기와 정찰기로 운용되었다고 합니다.





5. FB-5

1920년대에 미해군항공대와 미해병항공대에서 전투기로 사용된 보잉의 FB-5 입니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기종은 미해병항공대에서 사용한 형식으로 되어 있네요. 개인적으로 화려한 도색 때문에 1920~1930년대의 미육군항공대와 미해군항공대에서 운용한 전투기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6. P-26

1930년대 미육군항공대의 주력 전투기였던 기종입니다. 전시된 기종은 그리 화려하지 않은 색상으로 칠해져 있는데 다른 부대에서 운용했다는 기체들을 보면 꽤 화려한 색상으로 칠해진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 죽이는 물건 치고는 꽤 귀엽게 생겼죠.




사진을 꽤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리하고 보니 그리 많지는 않네요. 혹시나 다음에 이 곳을 한번 더 갈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다음에는 제2차대전에 사용된 기종들의 사진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밴 플리트의 현리 전투 회고담

현리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한국군이 당한 패배 중 손꼽히는 참패입니다. 워낙 유명한 전투이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이 전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당시 제3군단을 지휘하고 있던 유재흥 장군에 관한 것 입니다. 특히 제3군단이 붕괴된 뒤 밴플리트 장군과 나눈 대화는 너무나 유명해서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지요.


이 포스팅에서는 이에 대한 밴 플리트 대장의 회고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전략)


윌리엄스 중령 :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밴 플리트 : 아니, 아니. 5월에 중국군이 또 한번 공세를 감행했었소. 이 이야기를 하는게 좋겠네.


윌리엄스 중령 :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밴 플리트 : 적군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동부와 중부에 병력을 증강하고 5월에 공세를 감행했소. (중국군은) 이 공세에서 꽤 많이 진격해서 돌출부가 형성되었지. 중국군은 공세가 중단될 때 까지 50마일 정도를 진격했소. 나는 4월의 공세를 통해 적은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적은 필요한 물자를 확보할 수 없었고 탄약이 크게 부족했소. 적의 선두 제대는 농사 짓는 사람들이 쓰는 말로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죽을(die on the vine)” 것이었고 공세를 멈출 수 밖에 없었소.


적군은 한국군 제2군단과 그 예하의 2개 사단을 쓸어버렸소. 한국군 총참모장 정일권 장군과 나는 동해안으로 비행기를 타고 간 뒤 차량편을 구해서 군단장을 찾아가 만났소. 군단장은 유(재흥) 장군이었소. 나는 유재흥에게 물었소.


“유장군, 당신의 군단은 어디 있소?(General Yu, where is your corps?)”


유재흥은 이렇게 대답했소.


“모르겠습니다.(I don’t know)”


“수송수단과 야포를 모두 잃었소?(Have they lost all of their transportation and artillery?)”


그는 이렇게 대답했소.


“그런 것 같습니다.(I think so.)”


나는 이렇게 말했소.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은 지금 부로 해체할 것이오. 그 예하의 2개 사단도 마찬가지요. 귀관은 나와 함께 온 정일권 장군에게 전출 신고를 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정일권 장군은 최대한 패잔병과 장비를 수습하도록 하시오.(General Yu, your corps is deactivatied as of now, and so are your two divisions. You will report back to General Chung, here with me, for reassignment. In the meantime, General Chung, you collect all the stagglers and equipment you can.)”


유재흥 장군은 나중에 2개국에서 대사를 역임했소. 우리 두 사람은 몇 번 만났고 지금 그는 한국 국방부 장관이오. 유재흥 장군은 좋은 친구요. 우리는 만날 때 마다 현리 전투의 일을 생각하며 웃곤 한다오.(He is very warm friend of mine, and every time we meet, we have a smile remembering that action.) 한국에서 나는 완전한 지휘권을 행사했소. 불행히도 베트남에서는 우리가 완전한 지휘권을 행사하지 못했지.


다시 적군에 대해서 말하면, 나는 적의 진격이 한계에 달했으며 적이 진격을 재개하려면 더 많은 준비와 재보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소. 나는 중국군의 공세 3일차에 제2보병사단과 웨스트모어랜드 대령이 지휘하는 제187공수여단... 전투단으로 적의 측후방을 공격했소. 이 두 부대는 돌파하여 동해안 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아군 부대와 접촉하는데 성공했소. 대승을 거둔 것이오. 그리고 적군이 완전히 패배했기 때문에 나는 한국군으로 상륙부대를 편성해서 원산을 탈환하고 적군의 후방을 점령하도록 하려고 했소. 그러나 리지웨이 장군은 이 작전을 위해 일본으로 부터 상륙함정과 보급물자를 지원할 수 없으므로 승인을 거부했소. 나는 이렇게 말했소.


“맷. 이 작전은 추격전입니다. 그리고 추격전에는 병력의 일부만 투입하기 때문에 탄약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추격전의 사례를 연구해보면 내 말이 사실이란 걸 알 것이오. 패튼 장군이 프랑스에서 추격전을 펼친 것이나 다른 추격전 사례를 보면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이 투입되었고 탄약 소모량도 많지 않았음을 알 수 있소. 추격전을 펼치는 부대는 식량과 연료가 필요하지. 하지만 아군이 추격을 시작한 직후 휴전회담이 시작되어 나는 진격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소.


윌리엄스 중령 : 제가 알기로는 현리에서 패배한 것은 한국군 제3군단 이고 유재흥 장군 예하의 사단은 한국군 제5사단과 제7사단 이었습니다.


밴 플리트 : 내가 기억하기론 한국군 제2군단인데.


윌리엄스 중령 : 제2군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지요.


밴 플리트 : 중령. 좋은 질문을 여러가지 해 주었는데 내가 따로 적어 놓은 것이나 다른 기록을 보고 답변하는 게 아니라 20여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한다는 것을 유의해 주시오.


(후략)


“Interview with General James A. Van Fleet by Lieutenant Colonel Bruce Williams, Tape 4”(1973. 3. 3), Senior Officers Debriefing Program, US Army Military History Institute, pp.26~28.


다른 내용은 익히 알던 것이었는데 밴 플리트가 이런 참패를 당한 유재흥과 꽤 친해졌다는게 다소 의외였습니다. 게다가 현리 전투 패배를 가지고 서로 낄낄거릴 정도가 되었다니 말입니다(;;;;)

2013년 5월 7일 화요일

책 받아가실 분들께

제가 이번 주 금요일~토요일 까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프에서 뵙고 책을 드리는 건 다음 주 부터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다섯 분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책을 우편으로 받고 싶으신 분들은 제 이메일 panzerbear@지메일로 연락을 주십시오. 분량이 큰 '타임라이프 2차세계대전사'를 빼고 모두 다음 주 월요일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프에서 받고 싶으신 분들은 panzerbear@지메일로 연락처 한개만 남겨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