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일 일요일

Thomas E. Hanson저, Combat Ready? : The Eighth U.S. Army on the Eve of the Korean War

몇달 전에 네비아찌님과 트위터로 한국전쟁에 대한 책 이야기를 하다가 올해에 출간된 토마스 핸슨(Thomas E. Hanson)의 Combat Ready? : The Eighth U.S. Army on the Eve of the Korean War에 대한 소감문을 하나 써 보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제가 늘 그래왔듯 공수표를 발행한 뒤 깜빡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더군요. 서평이라고 할 정도는 아닌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핸슨은 현역 미육군 장교입니다. 저자의 신분이 육군장교라는 점은 이 책의 문제의식에 꽤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 점은 뒷 부분에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는 한국전쟁 초기 미육군이 연전연패를 거듭한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는 해묵은 문제를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제기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 책임이 바로 “2차대전 직후 평화분위기에서 무리하게 육군을 감축한 트루먼 행정부와 5년간의 일본 점령기간 동안 전투준비를 소홀히 한 극동군사령부 및 8군 사령부”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답안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근본적인 책임은 육군을 감축하고 준비태세를 위험할 정도로 떨어트린 트루먼 행정부와 군수뇌부에 있으며 일본 현지의 8군 사령부는 이런 열악한 상황속에서 전투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상당부분을 미8군 예하부대들의 훈련 및 전투준비태세 확립을 분석하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핸슨이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바로 오늘날과 같은 인식을 확립한 페렌바흐(T. R. Fehrenbach)의 저서 This Kind of War와 애플만(Roy E. Appleman)이 저술한 미육군의 공간사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입 니다. 저자는 페렌바흐가 한국전쟁 초기 연전연패의 책임은 미군 수뇌부와 일선의 부대 모두에 있다는 입장을 정립했으며 이것이 이후 수십년간 한국전쟁 초기 미육군에 대한 일반적인 서술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약간 재미있는 점은 페렌바흐가 미해병대를 높이 평가하고 미육군을 평가절하했다고 지적하는 것 입니다. 저자가 현역 미육군 장교라 그런가?) 또한 이런 논리를 비판해야 할 미육군도 공간사를 통해 이런 시각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비판합니다.

책의 내용은 어찌보면 꽤 단순합니다. 먼저 2차대전 이후 트루먼 행정부와 군 최고 수뇌부의 안이한 안보정책이 육군을 약화시키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잘 알려진 것 입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해외에 대규모 육군을 주둔시킨 경험이 적었으며 트루먼 행정부는 2차대전으로 변화한 국제정세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미육군이 방대한 점령지 유지를 위해 대규모 지상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후 국방예산의 감축과 대규모 육군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 때문에 미육군은 급속히 감소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초대 국방부장관 포레스탈과 2대 국방부장관 존슨 모두 미국의 안보를 해군이나 공군에 의존하는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육군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육군에 대한 예산도 크게 삭감되어 일본에 주둔한 미8군의 예하 사단들은 1950년이 되면 인력과 장비면에서 심각한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여기에 육군 감축으로 인한 장교단의 감축 또한 경험많은 장교와 부사관의 부족을 불러왔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부분은 주일미군의 훈련 및 전투준비태세를 분석한 4~7장 입니다. 분석의 대상은 25보병사단의 27보병연대, 7보병사단의 31보병연대, 24보병사단의 19보병연대, 1기병사단의 8기병연대입니다. 저자는 이 4개연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8군이 점령기간 중 부대의 전투력 유지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많은 장교와 부사관의 부족, 예산 삭감으로 인한 장비와 훈련장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미8군의 예하부대들은 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한국전쟁 직후 널리 유포된 “게이샤들과 놀아나느라 기강이 해이해진 육군” 이라는 인식을 깨고자 합니다. 비록 미육군이 개전 초기에 연전연패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선 부대의 장교나 사병들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육군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 미국의 거시적인 안보정책에 있다는 것 입니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 저자인 핸슨은 현역 미육군 장교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한국전쟁 당시 미육군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군사사를 연구하는 군인답게 한국전쟁의 교훈을 통해 오늘날 미국 안보정책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저자는 미국이 여전히 충분한 육군을 유지하는데 적극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고 특히 부시 행정부 초기를 비판합니다. 저자는 정부의 잘못된 안보정책의 댓가를 전장에 투입된 장병들이 치뤄야 했던 한국전쟁으로 부터 배울 것을 강조합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드러났듯 미국은 강력한 해군과 공군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상군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자가 현역 미육군 장교라는 점 때문에 육군에 대한 변호로 읽힐 소지도 다분하지만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은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잡담 하나. 공수표 하나를 처리했으니 공수표 하나를 또 발행해야 겠군요. 그래도 올해가 한국전쟁 60주년이라고 관련저서들이 꽤 나왔는데 그 중에서 브루스 커밍스가 올해에 낸 한국전쟁에 대한 소개글도 써볼까 합니다.

댓글 16개:

  1. 커밍스가 새로 책을 냈다면, 방선주 교수가 찾은 노획문서에 대한 본격적인 반박을 담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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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뚱띠이10:30 오전

    나름 애는 썼지만...결국 영양실조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운동이 아니라 영양공급이란 생각이 듭니다.



    덧. 브루스 커밍스라면....6.25 관련해서 혼돈의 서막을 여신 그분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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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길 잃은 어린양11:49 오전

    커밍스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1권에서 이야기했던 논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커밍스의 2권은 엉망이었지만 1권의 논지는 아직도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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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길 잃은 어린양11:51 오전

    혼돈이라? 혼돈의 정의가 뭡니까? 커밍스의 책은 읽으셨습니까? 제 개인적으로 커밍스의 2권은 엉망이지만 1권에서 제시한 기본적인 논지는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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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뚱띠이5:25 오후

    예...솔직히 읽지는 않았습니다.(읽으려고 했는데 근처에서 다들 말리더군요. 나같은 수꼴은 읽어봤자 욕질만 한다고...)

    하지만. '6.25 남침유도설'의 대표주자로 거론되는 이가 바로 커밍스 박사고, 그로 인해 시작된 온갖 설레발과 배틀을 따지자면 혼돈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혼돈의 서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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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길 잃은 어린양6:30 오후

    한국전쟁의 발발을 음모론적으로 설명한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2권은 심각한 논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에 나온 이 책은 얼마 안되어 구소련문서의 공개로 철저하게 반박되었기 때문에 설레발이고 혼돈이고 자시고 할 게 없습니다.

    그리고 남침유도설은 이미 1950년대 부터 제기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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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뚱띠이7:15 오후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 나온 책은 사서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덧. 리플다는데 오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계속 글이 지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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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길 잃은 어린양7:22 오후

    저는 댓글이 정상적으로 잘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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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이준님10:48 오후

    1. 사실 패랜바흐의 책은 그냥 읽어봐도 대단히 민망할 정도의 "자국 까기"에 치중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후반부는 분명히 행정부 비판이지만 앞부분은 미 육군 까기였죠. 사실  몇몇의 서술은 정말로 "재미"있습니다만 대단히 불쾌한건 사실이지요. 재밌는건 80~90년대까지의 수꼴(보수도 아니고)의 바이블이라고 볼수도 있었죠. 좌빨(진보)이 커밍스나 리영희의 책을 바이블 삼아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것의 완전한 반대 논리였지요.

    이쪽에서 나름 재밌던게 신동아의 이기봉과 월간 "길"과의 수령 논쟁입니다. 여기 반박한 사람중에 하나가 무려 박명림이었죠. 이기봉 말대로라면 박명림도 좌빨이라능

    2. 진정한 남침 유도설의 바이블은,, 90년대초반 일부 진영에서 글쓰기 비법을 그대로 배워온 I.F 스토운입니다. 커밍스가 2권을 쓸때 상당히 많이 참조했지요. 어린양닌 말씀처럼 2권이 엉망이 된건 기본적으로 스토운의 이론을 너무 맹신한 측면이 있습니다. 스토운의 책도 80년대 번역이 되었는데 일부 번역쪽은 원서를 봐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명이인이거나 100% 사기에 가까운 서술이 들어 있어서요.

    3. 뚱띠이님//커밍스가 1권을 쓰고 각광받은 이유는 전쟁에서 남한과 북한의 사회변동이라는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남과 북은 더 이상 상대진영의 괴뢰정부가 아닌 주체적인 의사결정론자라는 거지요. 박명림의 연구 자체도 커밍스의 연구가 유효하다는 걸 바탕으로 나온거지요. 다만 커밍스가 "북에 경도"되었다면 박명림은 "남에 경도"된걸로 커밍스 이론을 발전 시킨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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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길 잃은 어린양11:11 오후

    1. 페렌바흐가 좀 심하게 까긴 했는데 트루먼 행정부 시기의 육군 정책은 안 깔수가 없습니다. 사족인데 한국전쟁쪽은 아니지만 박명림 교수도 간혹 요상한 음모론 이야길 하긴 합니다.

    2. 커밍스가 스톤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맹신했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2권에서 지나치게 음모론 쪽으로 빠지긴 했지만 운을 띄우는 수준이지 스톤처럼 막나가지는 않지요. 국내판 번역이 별로인건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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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드레드노트12:04 오전

    <span>육군 지휘학처 사이트에서도 스미스대대 장병이 햇볕이 뜨겁다고 양산쓰고 배식받는 사진을 곁들이면서 6.25 초반부 미군의 군기이완을 설명(혹은 강조)하더군요. 뭐 제 여동생도 지나가다가 그 사진을 보면서 '군인이 양산같은 거 써도 돼???' 라고 할 정도니....</span>
    <span></span>
    <span>어린양님이 소개하신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습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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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드레드노트12:06 오전

    <span><span>육군 지휘학처 사이트에서도 스미스대대 장병이 햇볕이 뜨겁다고 양산쓰고 배식받는 사진을 곁들이면서 6.25 초반부 미군의 군기이완을 설명(혹은 강조)하더군요. 뭐 제 여동생도 지나가다가 그 사진을 보면서 '군인이 양산같은 거 써도 돼???' 라고 할 정도니...</span></span>
    <span><span></span></span>
    <span>근데 결론은 역시 높으신 분들이 문제였다는 거군요.
    <span></span> 
    <span>어린양님이 소개하신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습니다.</span></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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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길 잃은 어린양12:31 오전

    어떤 출판사에 지금 작업 끝나면 이걸 해보자고 건의하긴 했습니다. 일단 지금 하는게 끝나야 검토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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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네비아찌7:10 오후

    그런데 해군과 공군이 육군 예산을 다 가져가서 육군이 피를 봤다 하기엔....
    막상 해군도 항모 예산 잘려서 포레스탈 장관이 투신자살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원저자의 친정 편들기가 좀 심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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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길 잃은 어린양7:35 오후

    해군은 대형항공모함 건조가 취소된 정도지만 육군, 특히 극동지역 미육군은 1947~48년 무렵에는 사실상 쓰레기 재활용을 하는 수준으로 보급이 악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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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길 잃은 어린양7:37 오후

    아무래도 또 공수표를 발행해야 겠는데 여유가 생기는 대로 냉전 직후 미군의 감축과 육해공군간 갈등, 제독의 반란에 대한 연재물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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