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nishi님이 영화 고지전에 대한 제 감상을 물어보셨는데 한마디로 별로였습니다.
한국일보 라제기 기자는 영화에 나타나는 남북한 군인들의 교류가 퇴행적인 욕망을 보여준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매우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전쟁영화라는 평도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전쟁영화를 못 만드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지요. 예. 솔직히 이 영화의 반전메시지가 지겹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한두편도 아니고. 솔직히 저는 반전영화는 1930년에 나온 서부전선 이상없다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들은 제법 진지한 척 폼을 잡으며 전쟁의 허무함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제 눈엔 조성모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에서 절규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전쟁이 나쁘다는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수없이 계속해온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서 영화를 한 편 더 만들 필요는 없지요.
고지전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생각하는 전쟁이 뭔진 모르겠는데 전쟁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본인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진지한 반전영화라기 보다는 반전영화 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저 그런 영화입니다. 걸작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제가 보기엔 10년도 가지 않아 잊혀질 그저그런 영화입니다. 한국영화계는 남북문제를 다룰때 수십년간 작용한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작용인지 지나치게 무리해서 그 반대로 나가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을 다루는 영화 중에서 가장 짜증나는건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은 겉멋만 잔뜩 든 골빈 영화인데 고지전은 그보다는 수준이 조금 낫지만 비슷한 영화로 보입니다. 솔직히 고지전을 걸작이라고 추켜세우는 영화 평론가 중에서 전쟁영화가 아닌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한국전쟁에 대한 진정한 걸작이 나오려면 일단 한국전쟁의 유산이 완전히 과거의 역사로 사라져야 할 것 입니다. 한국전쟁이 현실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한 걸작 보다는 진지한 척 하고 싶어하는 겉멋만 잔뜩 든 영화만 나올 가능이 훨씬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