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1일 수요일

고지전 단평

얼마전에 nishi님이 영화 고지전에 대한 제 감상을 물어보셨는데 한마디로 별로였습니다.

한국일보 라제기 기자는 영화에 나타나는 남북한 군인들의 교류가 퇴행적인 욕망을 보여준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매우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전쟁영화라는 평도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전쟁영화를 못 만드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지요. 예. 솔직히 이 영화의 반전메시지가 지겹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한두편도 아니고. 솔직히 저는 반전영화는 1930년에 나온 서부전선 이상없다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들은 제법 진지한 척 폼을 잡으며 전쟁의 허무함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제 눈엔 조성모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에서 절규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전쟁이 나쁘다는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수없이 계속해온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서 영화를 한 편 더 만들 필요는 없지요.

고지전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생각하는 전쟁이 뭔진 모르겠는데 전쟁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본인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진지한 반전영화라기 보다는 반전영화 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저 그런 영화입니다. 걸작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제가 보기엔 10년도 가지 않아 잊혀질 그저그런 영화입니다. 한국영화계는 남북문제를 다룰때 수십년간 작용한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작용인지 지나치게 무리해서 그 반대로 나가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을 다루는 영화 중에서 가장 짜증나는건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은 겉멋만 잔뜩 든 골빈 영화인데 고지전은 그보다는 수준이 조금 낫지만 비슷한 영화로 보입니다. 솔직히 고지전을 걸작이라고 추켜세우는 영화 평론가 중에서 전쟁영화가 아닌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한국전쟁에 대한 진정한 걸작이 나오려면 일단 한국전쟁의 유산이 완전히 과거의 역사로 사라져야 할 것 입니다. 한국전쟁이 현실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한 걸작 보다는 진지한 척 하고 싶어하는 겉멋만 잔뜩 든 영화만 나올 가능이 훨씬 높습니다.

댓글 19개:

  1. SWORDOFJUS5:09 오전

    최소한 그 여자 저격수가 그냥 영화 마지막까지 그림자만 나오고
    마지막 전투후에 시체를 보고서야 알았다던지 햇으면 나앗을텐데
    김옥빈씨를 띄워주려는건지 억지스러운 전개가 되버려서
    (첫 확인때 이유없이 살려줘서 나중에 말 그대로 엿먹죠)
    '반전은 어리석은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려는건가!'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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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김옥빈은 예쁘게 나와서 괜찮더군요. ㅋㅋㅋ

      뭐하러 나온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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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imishel10:09 오전

    전쟁을 겪어본 사람이 쓴 전쟁 이야기와 전쟁을 글로만 배운 사람의 전쟁 이야기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야 없죠. 전 이 영화 재미있게 봤지만 감히 누가 이런 영화를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 어쩌고 하며 평가하는지 놀라울 뿐이네요;;

    아...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전쟁영화라는 말에는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한국영화계의 한계 안에서라면 잘 뽑힌 거거든요. 한국군 무장 재현이 불법행위로 단속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찍으며 투자자 압박으로 좀비물처럼 보일 뻔 했다가 심령물처럼 보일 뻔 했다가 하던 GP506 같은 영화를 보면 그나마 이 정도로 순탄하게(?) 한 덩어리의 영상물을 뽑아낸 건 기적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부사정을 이해하고 '한국영화 최고의 전쟁영화다' 이러는 게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전쟁의 참상을 알았어요 흑흑 ㅠㅅㅠ' 이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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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 예. "한국영화계의 한계" 내에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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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일단 <span>nishi님은 커플이 되었으므로 죽창으로 공격하고 자아비판부터 합시다(응?)</span>

    어린양님의 말씀과 유사한 평가가 많이 나와서 안봤는데.. 개인적으로는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세련되게 표현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p.s:혹시 첫 번째줄의 농담이 기분나쁘시다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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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굳이 극장에 가서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상영관에 걸려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당시의 역사적 정황 같은 것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서 할 수 밖에 없을 텐데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투박했습니다. 주인공인 신하균의 친일파 타령이나 나이 어린 중대장의 팽덕회 이야기나 약간 실소가 나왔습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한국현대사나 한국전쟁에 대한 지식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이걸 좀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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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리고 커플링은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활동입니다. 본 블로그는 극좌 솔로비키들을 배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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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a펭귄1:26 오후

    ...

    원래 예술 좀 한다 하는 친구들은 뭔가 자기가 사회에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암암리에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뭔가 메시지는 던지고 싶은데 밑천은 없을 경우, 그낭 서식화된 것을 베껴다가 대충 손본다음 던지는 거죠...  그리고 '서식화된 그 무엇'에 영화를 때려맞추려다 보니 매칭이 잘 안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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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아. 그렇습니다. 정말 적절한 지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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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텐보로7:33 오후

    저는 이영화에 등급을 매겼습니다.

    <재미를 기대하고 보는 사람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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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만 없으면 다행이죠. 허세 말곤 남는게 없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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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영화감싱이 원래 개인적인 것이라 남들 다 재미있다는 영화도 나는 전혀 재미없는 영화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런 영화 여럿 경험했죠^^ 반대의 경우도 많았구요.^^

    저는 고지전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언급하신 한국일보 기사도 "그래도 '고지전'이 있었기에 올 여름극장가가 아주 공허하진 않았던 듯하다"고 나음 호평을 했네요.

    고지전이 만듬새가 좀 거칠고 이야기구성에 단점이 여럿 눈에 띄긴 했습니다.( 그 2초라는 저격수도 좀더 잘 활용할 수 있었을텐데 싶기도 하고) 고증도 과거 전쟁영화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죠. 남북한병사의 교류부분은 JSA가 연상되서 동어반복적인 부분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이 짜증나거나 해서 재미없었다는 사람도 충분히 있겠구나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특정영화가 마음에 안들었다 해고 그 감정을 장르 전체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확대하는 것은 상당히 않좋게 보입니다.

    "반전영화는 1930년에 나온 서부전선 이상없다 정도면 충분하다"는 부분이나  "수없이 계속해온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서 영화를 한 편 더 만들 필요는 없지요."는 졸지에 30년대 이후 제작된 수많은 전쟁비판영화들을 만들필요가 없는 뻔한 것들로 규정하는 말입니다.

    특히 후자의 표현은 반전영화뿐 아니아 장르영화 자체를 부정하는 표현이죠. 사실 영화뿐 아니라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수없이 반복되는 뻔한"요소들로 가득하니까요.

    그나저나 영화가 참 어지간히 마음에 안드셨나봅니다. 저런 막말을 하실 정도면^^;;;
    항상 는끼는 거지만 영화는 역시 취향을 많이 타는 건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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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부전선 이상없다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은 그 정도의 메시지를 담으면 충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반전영화를 더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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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준님9:29 오후

    1. 어느 분 말씀처럼 박쥐에서의 김옥빈이 과대 평가되었다면 김옥빈의 위치에서 딱 맞는 역할이 이 영화에서의 "2초"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이 이상 옥빈양의 비중이 높았으면 그건 더 심각해진 문제였겠지요 ㅋㅋ

    2. 흔히 좌(혹은 우)에 계신분들의 전가의 보도처럼 나오는 "나는 가만 있는데 세상이 우(혹은 좌)로 가서 내가 극단으로 보인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게 현재 한국전쟁을 다루는 영화들의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감독의 책임이 아니라고 할수도 있지만 그 도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요. 전 개인적으로 동막골을 진짜 짜증나게 봤으니까요 ㅋ

    3. 사실 80년대 후반 그러니까 5공화국 정권 말기. 그리고 6공 시절만 해도 북한과의 교류 문제로 극단적인 반공(혹은 반공에로)들이 자취를 감추고 전쟁 자체를 객관적인 역사로 보는 영상물들이 나오긴 했었죠. KBS의 "백마고지"나  "오성장군 김홍일"같은 경우는 극화적인 맛은 밍밍하지만 감독들의 지나친 겉멋이 없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지요. 이후 전쟁영화들이 이것을 계승하지 못하고 반공 이데올로기의 "반대"내지는 겉멋으로 나간게 아쉽긴 합니다.

    덧: 한국에서도 70년대 헐리웃 대작들이나 (의외로 정치적으로도 공정했던) 80년대 미국 TV시리즈 수준의 작품이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유일하게 이쪽에 근접했덧 작품이 여명의 눈동자이지만 그 작품 자체도 고증부터 날라다니고 깊은 성찰이 부족한 점은 없지 않아 있었으니까요. 물론 감독이나 작가의 책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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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동감입니다. 옥빈양은 대사가 적을수록 매력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2. 저도 동막골을 짜증나게 봤습니다. 그냥 멍청한 영화죠.

      3. 백마고지는 꽤 재미있게 봤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KBS에서 다운로드 서비스를 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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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오오.. 솔로부대에서도 종파투쟁이 일어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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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추가적으로 문제라면 그런 반전메세지를 강하게 집어넣고 반공이데올로기에 반대역행만을 강조하려는 듯한 것으로 가다보니.. 영화속에서도 역사왜곡과 반한주의적 성향을 보인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예로 포항철수작전에서 아군끼리 교전하고 아군을 사살했던일을 본다면 실제 역사와 비교해서 전혀 말도않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버린점 그리고 마치 북괴군은 뭔가 전쟁을 아는데 한국군은 그냥 막무가내로 억지로 끌려와서 죽지못해 사는 것과 같은  행동하는 모습을 강조하는 듯한 이상한 역발상..

    한국전쟁 소재에서 특히 문제로서 작용할수 있는 광복군 출신을 반드시 삽입해서 광복군 출신은 매우 유능한 베테랑이고 일본군 출신은 열등감이 그런 존재에게 열등감이 강하고 막장으로 가는 원균형을 보이려고 한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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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길 잃은 어린양12:58 오후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북한군 장교에게 싸우는 이유를 물었을 때 북한군 장교가 잊어버렸다고 대답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어이가 없다는 듯 욕을 하지요. 이 장면을 보면 영화에서 북한군을 미화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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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이렇게 장문의 글을 써주시다니 정말 황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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