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4일 일요일

더글라스 내쉬의 「잊혀진 병사」에 대한 글 중에서

지난번에 쓴 「조선족들의 한국전쟁 회고담」에서 잠깐 기 사예르의 『잊혀진 병사』에 대한 논쟁과 이 논쟁에서 기 사예르를 옹호한 더글라스 내쉬의 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한 글은 내쉬가 Army History 1997년 여름호에 기고한 “The Forgotten Soldier : Unmasked”라는 글인데 상당히 흥미롭게 읽은 바 있습니다.
2차대전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기 사예르의 회고록은 많은 오류 때문에 1990년대에 들어와 진위여부에 대한 논쟁이 한차례 진행된 바 있습니다. 내쉬는 구술작업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인간의 기억이 가지는 문제점, 구술자료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 그 점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중 흥미로운 부분을 조금 인용해 보지요.

케네디Edwin L. Kennedy. Jr가 지적한 것 처럼 사예르의 회고록에는 많은 자잘한 오류들이 있다. 즉 화기의 구경, 차량의 명칭, 부대 그리고 용어 같은 것이다. 이런 오류 중 많은 것들은 영문판의 군사용어 번역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애당초 사예르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으며 번역을 하면서 독일 군사용어에 대응되는 프랑스어 어휘를 무리해서 끼워맞춘 것이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번역된 용어들을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소한 오류들을 더욱 심화시켰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예르는 초고를 연필로 썼는데 알아보기 힘든 부분 때문에 처음 출판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수도 있다. 게다가 사예르는 전쟁이 끝난 뒤 잠시 프랑스군에 복무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사용하는 어휘에 프랑스 군사용어가 들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한가지 더 명심해야 할 것은 사예르는 열 여섯살에 입대했다는 점이다. 사예르는 3년 뒤 전쟁 포로가 되어 독일군에서 제대했는데 이 때는 열 아홉살의 청년이었다. 사예르는 겨우 어린애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독일어를 제대로 말할 줄도 몰랐으며 세부적인 군사지식에 대한 안목도 없었다. 전혀 다른 문화를 갑자기 접하게 된데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졌는데 사예르가 자신이 경험한 것 들을 뚜렷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확실한 사실은 사예르가 사소한 사실들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긴 해도 전체적인 틀에서는 정확하다는 것이고 이점은 저자의 신뢰성을 충분히 뒷받침 해주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22년이 지난 뒤에 이런 사소한 사실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하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야 말로 인간답고 훨씬 믿을만 하지 않은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국인 중 수개월의 전투를 경험한 뒤 대략 25년쯤 흐른 뒤에 모든 자잘한 사실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군사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러지는 못 할 것이다. 대학교육을 받은 군사사 전공자나 직업군인, 혹은 취미로 2차대전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군복, 무기, 군장, 그리고 차량 등을 수집하는 애호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세부적인 사실들은 사예르에게 있어서는 사소한 것 들이었으며 이 때문에 군사적인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심지어 대충 서술한 것이다.

케네디가 가장 강하게 확신하고 있는 부분은 사예르가 군복에 부착하는 표식의 위치를 잘못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사예르는 부대의 소매띠 위치를 잘못 서술하고 있다. 이 점 때문에 필자는 현재 그로스 도이칠란트 사단 전우회장을 맡고 있는 퇴역 소령, 헬무트 슈페터씨와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케네디가 생각하기에는 이 점을 비난하는 것 만으로도 사예르의 회고록 전체가 조작이라는 딱지를 붙이기에 충분할 것이다.(케네디의 글을 인용하자면 “[소매띠의]  위치를 잘못 기억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가 없다”) 그로스 도이칠란트 사단이 독일육군의 정예 부대로서 부대원들의 오른쪽 소매에 소매띠를 달도록 허가받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로스 도이칠란트 사단의 소매띠는 쥐텔린Süttelin 서체로 Großdeutschland라는 글자를 수놓은 것으로 당시에는 오늘날의 레인저 부대 마크나 다른 특수부대의 상징만큼 명예로운 상징이었다. 무장친위대 사단들 또한 소매띠를 달도록 허가받았는데 이들은 왼팔에 달았다. 사예르는 그의 회고록에서 자신과 전우들이 소매띠를 받았을 때 왼팔에 달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썼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른팔에 달라고 명령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예르는 소매띠에 대해서 틀린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점이 뭘 입증해 준다는 것인가? 사예르의 회고록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세부적인 군사지식이 아니라 느낌과 분위기, 그리고 경험이다. 소매띠의 위치 같은 내용은 사예르가 너무나 뚜렷히 기억하고 있는 공포나 무용담과 비교하면 하잘데 없는 것에 불과하다. 사예르는 그저 소매띠를 어디에다 달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2차대전 시기 독일군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오류가 그렇게 까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사예르는 이런 세부적인 사실에 대해 부주의한 면을 자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세부적인 사실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참전용사들에겐 흔한 일이다. 나는 해외근무기장Overseas service stripes을 어느 쪽에 다는지 모르는 2차대전 참전용사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필자의 조부는 1944년 6월 6일 82공수사단 소속으로 생-메르-에글리제Sainte-Mère-Église에 강하한 분인데 자신이 82공수사단 마크를 달았는지 비공인 508강하연대 마크를 달았는지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가 노인이어서가 아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세부적인 지식들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대 휘장과 같은 것들을 잘못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사예르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소한 것에 얽매여 큰 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 짓이다.

“The Forgotten Soldier : Unmasked”, Army History No.42(Summer, 1997), pp.15~16

더글라스 내쉬는 그의 대표작 Hell's Gate: The Battle of the Cherkassy Pocket January - February 1944에서 잘 보여주었듯 전쟁을 이야기 하면서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제가 내쉬의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인용한 것 처럼 내쉬는 사예르의 회고록을 둘러싼 논쟁에서 군사적인 지식들의 오류를 근거로 비판하는 측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쉬가 구술 경험이 풍부하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한데 그는 인간의 경험과 기억이 전쟁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인용한 조선족들의 경험담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관심사가 같을 수가 없고 전쟁을 대하는 태도도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행위이지만 전쟁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속의 인간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쉬와 같은 관점을 가진 역사가들은 반가운 존재입니다.

댓글 17개:

  1. 드레드노트2:24 오전

    하긴 소매띠 위치나 차량 명칭/형식 같은 건 후세의 밀덕들에게나 관심사항이겠네요.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쟁터에서 구르고 있는데 그런게 중요하겠습니까. 일단 살아남는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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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준님5:42 오후

    1. 이전 글을 보면서 이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했는데 독심술을 하셨는지 역시 올리셨군요. 어린양님 감사합니다.

    2. 사실 저 문제는 짅영논리까지 가서 대단히 지저분한 이야기까지 돌아가는게 현실이긴하지요. 남과 북의 문제뿐 아니라 종군위안부 문제나 남경 학살 관련 일본 우익과의 논쟁에서도 말씀하신 이야기가 쟁점이 된건 사실입니다. 제 3자가 들으면 일본 우익의 말이 "그럴듯한데?"라고 여겨지는게 사실 더글러스 내쉬가 지적한 바로 그런 증언자들의 문제들때문이지요.

    일본 우익과 무관한 저조차도 여러 수기에 천연덕스럽게 나오는 "솔로몬 군도에서 영국군(!)이 쏜 어뢰에 배가 격침되서"나 "페리 중장(오타 아님)이 일본을 개항하여"라는 이야기나 언급조차 하기 싫은 황당한 이야기들을 보고 혀를 찼으니 어떤 분들에게는 말 그대로 까이기 좋은 것이지요 흠

    3. 이런걸 볼때 증언 채록뿐 아니라 증언에 대한 부가 설명을 하는 분들도 나름 공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조작같은 걸 하면 절대 안되지만 적어도 각주나 기타 설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는 "폭로"내지는 "증언채록"에 급급한 나머지 그런건 몰라도 되는 걸로 나갔고 역설적으로 반대진영에게 충분히 까일거리를 주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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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이번에 인용한 내쉬의 글은 정말 괜찮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2. 예. 맞는 말씀입니다. 일본 우익들이 공격하는 부분도 그 지점인데 초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위안부 피해자나 중국의 농민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알 턱이 없으니 구체적인 증언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요. 그런걸 물고 늘어지는 일본 우익들은 정말 혐오스러운 종자들이죠.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1950년대 이전에는 초등교육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드물었고 게다가 기술교육은 더 심했으니 한국전쟁 관련 증언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3. 그렇지요. 한국의 경우 구술채록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연구의 역사가 서구나 일본에 비해 늦다보니 그 점에서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 것 처럼 80년대 이후 이 방면에서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주력이 되다 보니 "폭로"나 "증언채록"에 지나치게 무게가 쏠리기도 했고요. 증언자료는 매우 중요하지만 역시 문헌을 통한 교차검증이 없다면 반쪽짜리 자료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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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박종민7:50 오후

    <span>사람의 기억은 유한것이기 때문에, 역사상 등장하는 많은 사료들이 의심받고 또 검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실로 증명된 것들이 더욱 더 가치를 더하게 되는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종종 무시하고는 하는데, 저같은 둔중이는 스스로 한일도 깜박깜박할때가 많아서 메모지를 끼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자기검열을 꼭 해 사실만을 행하려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은 일같습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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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는것은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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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 '증언'관련해서는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에서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다루면서 언급하기도 했었지요.

    2. 인용하신 내쉬의 글은 확실히 설득력이 강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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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과 일본 우익들이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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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한국구술사학회/휴머니스트)'이 출간되었던데 이 책은 어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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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직 읽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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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지나가다12:23 오전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그 상황을 진술할 때, 진술내용이 사실과 다른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런 오류가 있다는 점이 그 사람이 그 상황을 직접겪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라는 내용이 있어서 그 구절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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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우리는 (사실에 입각한) 진실과(truth)과 진정성(truthfulness)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강간당한 여성의 진술(트라우마와 관련된 다른 어떤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에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 진술이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고, 혼란스러우며,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피해자가 모든 정보를 일관된 순서로 정렬해 제시해 가며 자신의 고통스럽고도 치욕적인 경험을 명확한 말투로 말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그 진술이 과연 진실인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그 자체로 해결책의 일부다. 가령 트라우마를 겪은 주체가 자신의 경험을 진술할 때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면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 점이야말로 그 진술에 진정성이 깃들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진술된 내용이 진술하는 방식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흔히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구술에는 믿지 못할 만한 부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만일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한 증인이 자신의 수용소 체험을 아주 명확하게 서술할 수 있다면, 바로 그 명확함 때문에 그의 증언에는 의심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27쪽, 슬라보예 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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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 나치에 의한 대학살의 피해자들도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공격할 때도 그런 점을 노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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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위장효과8:09 오전

    PTDS의 주요 증상이 1.기억상실(기억을 전부 영구적으로 잃는 게 아니라 해당 사건과 관련된 부분만 잊어버리는 거죠.) 2. 갑작스런 회상으로 인한 발작적 행동 3...또 뭐더라...(배운지 하도 오래돼서) 이거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내쉬의 저 서술은 정말 당연한 사항을 집어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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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 그런데 사예르의 회고록에 대한 진위여부 논쟁에서 가장 처음 지적된건 사예르가 부대의 소매띠를 어디다 다는지도 모른다는 것 따위였으니 어찌보면 좀 답답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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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이해란 점에서 내쉬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구술채록을 하는 인터뷰어가 해당 주제에 매우 잘 알고 있어서 구술자가 알고있음직한 내용을 잘 끌어내고, 또 회고록 편집자가 회고록의 내용에 적절한 주석을 달아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게 없으면 일반 독자들로서는 이 이야길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지에 대해 대단히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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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 정치인들의 회고록 같은 경우 당사자들이 살아있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럴때 마다 이런 걸 누가 주석을 달아주는게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특히나 거짓말 투성이인 조병옥 회고록 같은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굴뚝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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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전역한지 반년 쫌 넘었는데...부대마크 찍찍이를 왼쪽어깨에 붙였었는지 오른쪽에 붙었는지가 기억이 안남 ㅡ,.ㅡ;;;평소에 고도의 주의력과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찰리 채플린처럼)가 아닌 이상 자서전이나 회고록 쓸 때 자신이 경험한 사실도 틀리게 쓰는 경우가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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