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인민해방전쟁, 즉 우리가 말하는 국공내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지도와 함께 인민해방전쟁시기 양군의 인명손실에 대해서 정리해 놓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구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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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7 ~ 19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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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7 ~ 194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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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7 ~ 194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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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7 ~ 195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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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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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해방군 사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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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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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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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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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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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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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군 사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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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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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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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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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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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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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해방군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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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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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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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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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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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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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군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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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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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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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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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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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6,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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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군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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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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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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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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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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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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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군 집단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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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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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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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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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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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6,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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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군 재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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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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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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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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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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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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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해방군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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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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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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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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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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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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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점은 사상자 자체는 양군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 입니다. 물론 양군의 전력차를 감안해 보면 인민해방군이 상당히 선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만. 비록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국민당군의 손실 대부분이 포로, 또는 귀순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꽤 재미있는 점입니다. 이것을 직접 통계로 보니 느낌이 색다르군요. 내전 초기 단계부터 60만이 넘는 포로가 발생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 합니다. 1946년 7월부터 1947년 6월까지는 국민당군이 공산군을 압박하면서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포로만 60만이 넘었다는 점은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포로의 숫자는 전쟁 후기로 갈수록 급증하며 여기에 더해 자발적인 투항, 즉 귀순하는 비율도 월등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 귀순이나 집단 귀순만 150만 가까이 된다는 점은 국민당군이 내부적으로 결속력이 떨어지는 집단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잘 정리된 통계를 보는 것은 또 색다른 느낌입니다. 통계 작성과정의 신뢰성은 둘째 치고라도 상당히 재미있는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