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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3일 화요일

영국 해군의 팔레스타인 검역 작전

쓸데 없이 책값이 비싼 Frank Cass에서 나온 The Royal Navy and Maritime Power in the Twentieth Century를 읽는 중 입니다. 돈이 궁한지라 지금 다니는 학교에 신청을 했더니 바로 사주더군요.

역시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이와 유사한 종류의 책들이 그렇듯 개론적인 내용들을 종합해 놓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요약이 잘 되어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익숙한 내용들이 많더군요. 그렇지만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기는 어려운 글들도 같이 실려 있다는 점은 아주 좋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Geoffrey Till이 쓴 “Quarantine Operations : The Royal Navy and the Palestine Patrol” 입니다. 말 그대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 해군이 팔레스타인으로 밀입국하는 유태인 난민들을 단속하기 위해 벌인 검역 작전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해 놓은 부분입니다. 이 시기를 다루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경우 꽤 많은 시각들이 밀입국 하는 유태인의 시각으로 사태를 보고 있는지라 이를 단속하는 영국 해군의 시각에서 쓰여진 점은 상당한 매력이 있더군요.

Till이 지적하는 영국의 가장 큰 문제는 1차 대전 이후의 유태인에 대한 탄압, 특히 나치의 유태인 대량 학살로 시오니즘에 대한 국제적인 동정여론이 높아졌다는 것 입니다. 이미 30년대부터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드는 유태인 문제는 영국의 중동 지배에 골칫거리가 되고 있었지요. 여기에 히틀러가 기름을 부어줬으니 영국으로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영국은 아랍인들의 반발 때문에 유태인의 이주를 제한하려 노력했지만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유태인들을 막는 것은 어려웠다고 합니다. 특히 프랑스의 정보기관은 영국을 엿먹이기 위해 유태인들의 밀입국을 지원하며 유태인들에게 영국의 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지요. 프랑스가 아닌 다른 유럽국가들도 굳이 영국을 지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나가는 유태인들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영국의 새로운 큰형님이 된 미국은 유태인의 팔레스타인 이주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으로서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미국의 유태인들은 선박을 지원하면서 유태인들을 열심히 실어 날랐다지요.

영국 해군은 1945년 10월에 공식적으로 유태인 검역 작전을 시작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해군 감축에도 불구하고 이 임무에 필요한 병력을 증강합니다. 이 임무가 시작될 당시 영국 지중해 함대는 14척의 구축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 6척이 1946년 초 까지 유태인 검역 임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1948년에 유태인 검역작전이 중단될 때 까지 영국 해군은 이 임무에 순양함 10척, 구축함 20척, 프리킷 9척, 소해함 11척, 기타 소형함정 20척을 투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중해 전체를 담당하기에는 검역작전에 투입되는 군함의 수가 너무 적었고 유태인들은 이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검역 작전 초기에 유태인들은 아주 간단하게 영국의 봉쇄망을 뚫었는데 그것은 한번에 여러척의 선박을 출항시키는 것 이었습니다. 자고로 숫자 앞에 장사 없다지요. 영국은 부족한 군함을 지원하기 위해서 영국 공군을 초계 임무에 증강했고 이것은 검역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합니다.

전술적인 면에서도 꽤 흥미로운 발전이 있었습니다. 선박 검역 임무들이 다 그렇듯 유태인을 실은 선박들은 영국 해군이 검역을 위해 승선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 했습니다. 1947년의 엑소더스호 사건에서는 사망자까지 나올 정도였지요. 유태인들은 영국군이 선박에 오르지 못하도록 뜨거운 기름을 뿌리고 그래도 올라탈 경우 숫적으로 불리한 영국군들을 포위하고(!) 쇠막대기나 칼 같은 물건을 휘둘러 댔다고 합니다. 이건 무슨 중국 어선 단속하는 한국 해경의 고난을 연상케 하는 군요. 이런 근접전에서 영국 해군이 쓰는 리-엔필드 소총은 너무 길어 불편했고 그 결과 검역임무에는 기관단총이 대량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유태인들이 휘두르는 무기를 방어하기 위해 방패도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영국 해군은 선박에 쉽게 올라탈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사다리 등을 만드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보통은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핵심 인물들만 분리해서 제압할 경우 선박내의 저항은 쉽게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난민들이 정규군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는건 무리겠지요.

Till은 검역작전에 투입된 병력을 고려하면 영국 해군의 검역임무는 전체적으로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육지의 영국 육군이 죽을 쑨 것과 비교하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