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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7일 금요일

The Evolution of Nuclear Strategy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왜 이런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번역되지 않는 걸까?”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로렌스 프리드먼(Lawrence Freedman)의 The Evolution of Nuclear Strategy도 그런 책 중 하나입니다.

한국은 심심할 때 마다 북한의 핵공갈이 튀어나오는 국가인 만큼 핵전략에 대한 의문도 많을 법 한데 의외로 ‘핵전략’에 대한 관련 서적 찾아 보기가 어렵더군요.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서적들은 많지만 순수하게 ‘핵전략’ 자체에 초점을 맞춘 서적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물론 도서출판615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은 제외하고) 도서검색을 해 보면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는 핵전략에 대한 서적들이 제법 번역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핵전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는지 ‘핵전략’에 대한 서적이 소개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잊을 만 하면 기어 나오는 북한의 핵공갈에서 볼 수 있듯 핵무기가 가지는 정치적 위상은 냉전이 끝났어도 여전합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는 여전히 ‘최종’ 수단으로 존재하고 있지요.

프리드먼의 The Evolution of Nuclear Strategy는 핵무기 문제에 대한 잘 씌여진 개설서 입니다. 1981년에 초판이 나온 뒤 2003년에 제 3판이 나왔으니 거의 30년은 된 책이지요. 여전히 개설서로서 좋은 평을 받으면서 꾸준히 나온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할 수 있겠습니다. 꾸준히 개정판이 나오면서 새로운 내용도 추가되었는데 1980년대의 핵 전략과 냉전 종식 이후의 핵무기 문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본질적으로 미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냉전시기 핵무기 경쟁의 주된 참여자는 미국과 소련이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영국, 프랑스, 중국에 대한 서술이 지나치게 적습니다. 그나마 유럽은 중요하게 다뤄지는 편이라 7장이 유럽의 핵문제에 할애되어 있고 이 중에서 한 절은 영국에, 나머지 한 절은 프랑스와 서독의 핵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럽국가들에 대한 서술이 이렇다 보니 인도나 파키스탄은 그야말로 듣보잡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책 후반부에 짤막하게 언급되는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개설서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책은 전략폭격의 하위 수단으로 인식되던 1940년대의 초보적 핵 전략에서 상호파괴확증전략(Mutual Assurance of Destruction)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핵전략의 발전 과정에 영향을 끼친 여러 이론들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나오는 간략한 설명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분들에게 아주 유용한 참고서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의 핵공갈이 튀어나올 때 마다 우리도 핵무기를 가지면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걸 보면 왜 이런 책은 번역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