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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7일 화요일

문화적 충격?

빈센트 브란트Vincent Selden Randolph Brandt라는 미국 인류학자는 1965년 부터 1966년 사이에 충청남도 서산군 석포리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했습니다. 이 사람의 회고록이 얼마전에 번역되었는데 1960년대 한국 농어촌 사회에 대한 제3자의 시각이 꽤 재미있습니다. 이 회고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축첩제도에 관련된 이야기 인데 폐쇄적인 공동체가 외부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여주는 부분 같습니다. 브란트 박사는 밀가루를 얻으러 한 미군기지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낮선 마을에 들러 그곳 주민들의 환대를 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국인 아내에 대한 여성들의 질문은 답하기가 힘들었다.

“예. 제 부인은 한국 사람이고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미국 부인은 어디에 있나요.”

“내 한국 아내가 내 미국 아내입니다.”

“그건 이상한데요. 왜 그렇게 대답하시는 거죠? 뭐 때문에 화가 나셨나요? 우리는 외교관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들이 여기에 있을 때 한국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가 한명입니다. 그녀는 한국 사람이고, 지금은 서울에 있습니다.”

“당신의 미국 아내는 어쩌고요?”

나는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내 아내는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미국에 유학을 갔습니다. 지금은 친정 가족과 함께 서울에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할머니가 그림자가 드리운 구석에서 권위있게 말했다.

“저 사람은 자기도 첩을 두고 있다고 말하려고 하는 게다. 하지만 서투른 한국어 실력 때문에 첩이 한국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는 모르겠구나.”

그녀는 나에게 확실히 하라고 격려했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서울의 높은 사람들이 부도덕하다고 말하지만 여기에도 첩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문제없다고 여기는 한 괜찮습니다.”

빈센트 S. R. 브란트 저, 『한국에서 보낸 나날들 : 인류학자 빈센트 브란트 박사의 마을현지조사 회고록』, (국사편찬위원회, 2011), 61~62쪽

이 이야기의 뒷 부분에서는 미국인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다는 것에 마을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도 실려 있습니다.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되었던 사회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넘어서는 것들을 쉽게 받아들이기란 힘들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