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히틀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히틀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8년 5월 6일 화요일

총통각하의 지휘 방식

1942년 12월 11일, 소련군은 제 6군을 구출하기 위한 만슈타인의 진격을 막아내는 동안 돈 강을 따라 방어선을 형성한 이탈리아 제 8군을 목표로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소련군은 이탈리아군의 방어선에 대해 위력수색을 실시해 이탈리아군의 전방 진지들을 탈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소련군의 위력수색이 개시된 다음날, 총통께서 자이츨러와 기타 똘마니들을 데리고 동부전선의 현황에 대해 회의를 가지셨는데 우리와 같은 후대의 호사가들에게는 다행히도 이 회의의 녹취록이 남아있습니다. 이 회의록은 총통각하의 꼼꼼한(???) 지휘 스타일이 나타나서 꽤 재미있는데 분량이 많으니 몇몇 부분만 발췌해 볼까 합니다.


(전략)

자이츨러(Kurt Zeitzler, 육군 참모총장) : 만슈타인은 계획안을 손으로 써서 보냈습니다. 아마 총통 각하께서도 읽으실 수 있을 것 입니다.(만슈타인은 좀 악필이었나 봅니다???) 16(차량화)사단*에 대해서는 논의할 상태가 아닙니다. 만약 16(차량화)사단을 빼 낸다면 루마니아군의 전선 전체가 무너질 것 이고 다시는 (루마니아군을) 안정시키지 못 할 것 입니다. 아마도 만슈타인은 (소련군의 방어선) 어디엔가 허술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 곳으로 기갑군의 공세를 돌리려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만슈타인이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히틀러 : 만슈타인이 어떻게 할 것인지는 지켜봐야겠지. 어쨌건 만슈타인은 강력한 기갑사단 두 개를 가지고 있어. 하나는 전차 95대를 가지고 있고 하나는 전차 138대를 가지고 있지않은가.

자이츨러 : 만약 그 두 기갑사단을 빼낸다면 위험이 닥칠 수 있습니다.

히틀러 : 그 점에 대해서는 나 또한 이견 없이 동의하네. 하지만 만슈타인은 공군부대를 가지고 있고 또 추가로 도착할 부대도 있지 않은가? 다음 보병사단이 증원되는 건 언제인가?

자이츨러 :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전선에 배치하는데 8일이 소요됩니다. 11기갑사단을 그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이 다소 위안입니다. 이 정도(11기갑사단의 이동)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11기갑사단을 차출(해 공격을 지원할) 수 없다면 두 기갑사단의 진격은 정체될 것 입니다. 23기갑사단은 측면에서 꾸준히 진격하고 있으며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할 것 입니다. 다음은 6기갑사단 입니다. 이 사단은 적의 반격을 받고 있으며 또 인접부대와 접촉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이 어렵습니다. 만약 17기갑사단을 이 지역에서 빼 낸다면 역시 위험해 질 것 입니다. 하지만 두 기갑사단(23, 6)의 공격을 중단하고 17기갑사단을 투입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린다면 그 동안 이틀이 소요될 것이고 하루의 시간을 추가로 더 잃을 수 있습니다.

히틀러 : 만슈타인은 17기갑사단을 이 지역에 투입하려는 모양인데.

자이츨러 : 만슈타인은 17기갑사단을 이 지역에서 빼내 이 곳에 투입하고 싶어합니다.

히틀러 : 하지만 17기갑사단은 전투력이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야.

자이츨러 : 그렇다면 11기갑사단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히틀러 : 이 사단은 전차가 달랑 45대 뿐이지 않은가.

자이츨러 : 현재 49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장난 전차는 소수입니다. 11기갑사단의 1개 대대는 여기에 위치해 있고 급한대로 306보병사단 소속의 1개 연대를 증원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 : 그런데 11기갑사단이 어느새 이렇게 많은 전차를 잃은 건가? 지금쯤 70~80대 정도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자이츨러 : 제가 알기로는 49대 입니다.

히틀러 : 고장난 전차가 있는 모양이군.

자이츨러 : 물론 언제나 하루 정도의 수리를 요하는 잔고장이 발생합니다. 지금과 같은 날씨라면 내일쯤 가동 가능한 전차가 더 늘어날 것 입니다.

호이징어(Adolf Heusinger, 육군본부 작전국장) : 11기갑사단은 이쯤에서 내려올 때 57 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 : 여기서 출발할 때는 73대에서 75대 정도였는데.

자이츨러 : 총통각하. 다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정확한 숫자를 모릅니다. 이런 날씨에서는 보통 (보고할 때) 10대에서 20대 정도가 차이 납니다.

히틀러 : 일단은 전선의 상황을 계속 보고하게. 11기갑사단의 현황은 마지막에 다시 이야기 하지.

(중략)

히틀러 : 17기갑사단이 보유한 전차는 몇 대인가?

자이츨러 : 별로 많지 않습니다. 58대의 단포신형 전차뿐입니다.

히틀러 :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이는구만. 최소한 이 전차들은 대전차고폭탄(Hohlladungsgranaten)을 사용해야 그나마 쓸 데가 있겠군.

자이츨러 : 11기갑사단은 장포신 (3호)전차를 30대 보유하고 있습니다.

히틀러 : 이 전차들은 보병 뿐 아니라 대전차고폭탄을 사용하면 T-34도 상대하겠어. 단포신형 전차는 전부 몇 대나 있는가?

자이츨러 : 4호전차가 19대, 3호전차가 29대 입니다.

히틀러 : 단포신형 전차들이 대전차고폭탄을 사용할 수 있더라도 공격작전에서는 11기갑사단만이 쓸모가 있겠군.

Walter Warlimont, Im Hauptquartier der deutschen Wehrmacht 1939 bis 1945 Band II, (Weltbild Verlag, 1990), s.304~306

왠지 총통각하 답습니다.;;;;;;;

루즈벨트가 마샬을 불러 놓고 노르망디의 미군 기갑사단에 셔먼은 몇대가 있고 이게 판터를 때려 잡을 수 있는지 묻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왠지 총통각하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제16기갑사단으로 해석했는데 채승병님의 지적을 참고해 제16차량화사단으로 고쳤습니다. 제16차량화보병사단이 당시 제4기갑군과 제1기갑군 사이의 전선을 기동방어로 책임지고 있었으니 채승병님의 지적이 타당합니다.

2008년 3월 1일 토요일

뉘른베르크

바드 퇼츠를 답사한 뒤에는 바로 뮌헨에서 저녁 기차를 타고 뉘른베르크로 출발했습니다. ICE를 타니 잠깐 눈 붙일 시간도 없더군요. 그러나 뉘른베르크에 도착하니 뭔가 좀 심심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근처에 있는 Bamberg로 갔습니다. 그런데 Bamberg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야밤에 겨울비를 맞기는 뭐 해서 시내를 조금 둘러 보다가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플랫폼에서 뉘른베르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올해 겨울이 따뜻해서 난리라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춥더군요.. 덜덜덜... 그리고 덤으로 배도 고파서 플랫폼에 있는 자판기에서 과자 하나를 샀습니다.


그런데 좀 짜더군요. 맥주 안주로는 쓸만합니다.

한참을 기다려 뉘른베르크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하루를 통째로 말아먹는건 아닐까 걱정이 되더군요.


다행히도 오전 9시 정도 되니 비가 그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잘 아시겠지만 뉘른베르크는 레니 리펜슈탈이 제작한 1934년 전당대회의 기록영화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그덕에 뮌헨과 더불어 나치의 소굴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도시가 되었지요.
뉘른베르크 여행은 Deutsch님의 블로그에 소개된 The Third Reich in Ruins가 아주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구시가지의 경우 관광명소가 아니면 유럽의 건물에 익숙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모두 비슷 비슷해 보이는데 이 사이트에는 제 3제국 시절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놓아 매우 유용했습니다.

뉘른베르크 중앙역 바로 옆에는 1935년에 지은 우체국 건물이 있습니다. 여전히 우체국으로 쓰이더군요.


구 시가지로 들어가서 뉘른베르크 시 광장, Hauptmarkt 쪽으로 가다 보니 꽤 재미있는 동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 안되는 독일 화가 중 한 명인 뒤러(Albrecht Dürer)의 동상입니다. 생각해 보니 뉘른베르크는 뒤러의 고향이더군요.;;;


그런데 아직 오전이라 광장으로 가봐야 썰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방향을 바꿨습니다. 잠깐 성벽 구경이나 할 참으로 Weisser Turm쪽으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Weisser Turm은 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얀색이 아니라서....

잠깐 구시가지 밖으로 나가 성벽 구경을 했습니다. 뉘른베르크 구시가지는 전쟁 중에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복구한 곳이 많다고 하는데 성벽 중에서 복구된 구간과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구간은 어떤지 궁금하더군요.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와서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중세 후기의 건축물 중 하나인 로렌츠 교회가 있던데 막상 구경을 하니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시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개의 유명한 다리가 있는데 하나는 Museumsbrücke고 하나는 Fleischbrücke입니다. Fleischbrücke는 1934년 전당대회 당시 히틀러가 지나간 다리라고 하더군요.



아래 사진은 Museumsbrücke쪽에서 바라본 Fleischbrücke입니다.


Museumsbrücke를 건너니 좀 괴이한 미술품이 하나 있더군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시간을 끌다가 11시를 조금 넘겨서 뉘른베르크 시 광장에 도착했는데 아직 장사를 시작한 좌판이 몇 개 없더군요. 독일식 만만디인가 봅니다.


광장의 전체적인 느낌은 좋았습니다. 근처에 Frauenkirche도 있어서 그림이 좋더군요. 좀 아쉬운 점이라면 구 시가지에서는 쓸만한 서점을 찾지 못 했다는 점 정도... 광장을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주워먹으며 놀았습니다. 리펜슈탈의 영화에서 봤을때는 광장이 매우 넓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막상 돌아다녀보니 그다지 넓지는 않았습니다. 역시나 영상이 주는 힘이 컸나 봅니다.


Fraunenkriche

아래는 뉘른베르크 시 광장의 명물인 Schöner Brunnen입니다. 화려하긴 한데 울타리를 쳐 놓아 좀 아쉽습니다.


Schöner Brunnen을 지나가는 히총통. Triumph des willens 중에서


광장을 둘러본 뒤에는 바로 시청을 지나 뉘른베르크 성으로 갔습니다. 시청은 전후에 복구하면서 원형과는 다른 모양으로 만들었다기에 조금 구경만 하고 말았습니다.

뉘른베르크 성은 낮은 언덕위에 있어서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곳 이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특별한 느낌은 없더군요. 아래의 사진은 모두 뉘른베르크 성에서 찍은 사진 입니다.







성에서 뉘른베르크 시가지의 경치를 감상한 다음에는 Deutscher Hof 호텔로 향했습니다. 이 호텔은 히틀러가 뉘른베르크에 올 때 자주 묵던 곳이라고 하지요. 리펜슈탈의 영화에도 이 호텔이 나옵니다.



도이처 호프 호텔로 듭시는 히총통. Triumph des willens 중에서


이 호텔에는 히틀러를 위해 특별히 발코니도 만들었다는데 전쟁 이후에는 없애 버렸습니다. 만약 그 발코니까지 남아 있었다면 아주 재미있는 관광명소가 됐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쉽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열렸던 곳으로 가 봤습니다.



그런데 교통비를 좀 아껴보자고 걸어간게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이 건물을 구경하고 나니 바로 날씨가 나빠져서 비가 오더군요.;;;;;
그 덕분에 Ehrenhalle와 Zeppelinfeld를 구경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뭐, 나중에 독일에 가면 구경하는 수 밖에 없겠더군요.;;;;;

그러나 달러 약세와 유로 강세가 계속되고 있으니 언제쯤 독일에 다시 갈 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가 제발 유로 좀 폭락시켜 주소!!!

2008년 2월 14일 목요일

뮌헨

뮌헨에 도착한 첫날 밤은 유일하게 미리 예약해 둔 방에서 잤습니다. 물론 이 이후의 여행은 마음 내키는 대로 일정을 바꾸다 보니 예약이란 걸 할 필요가 없었지요. 예약한 호텔은 Hotel Dolomit라는 호텔로 역에서 가깝고 가격도 그럭 저럭 나쁘지 않은 편 인 것 같아서 예약했습니다. 물론 한인 민박이 호텔보다는 압도적으로 싼게 사실인데 어차피 당분간 돌아다니게 되면 호텔에서 잘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아 일반 호텔로 정했습니다.

첫 날 묵은 방은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방 안에 뭔가 하나 있더군요. 성냥인가? 싶었는데...

열어 보니 바느질 도구입니다. 아이구 이런 알뜰한 독일인들을 보았나...

다음날 아침 시내로 나가는 길에 잠깐 뮌헨역을 지나갔습니다. 참 밋밋하게 생긴게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역 입니다.


시 중심가의 관광지는 낮에 보기로 하고 일단은 펠드헤른할레(Feldherrnhalle)로 직행했습니다.

가는 길에 뮌헨 오페라하우스가 있더군요.


드디어 펠드헤른할레에 도착했습니다.


펠드헤른할레는 바이에른의 국왕이었던 거대 건축물狂 루드비히 제 1세(Ludwig I. 1786-1868)가 뮌헨을 공사판으로 만들던 무렵 건설한 건축물로 바이에른 육군이 배출한 걸출한 용장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청년 히틀러가 1차대전 선전포고 소식을 들으며 환호하던 바로 그 곳 입니다.

참 유명한 사진이지요. 펠드헤른할레 앞에서 환호하는 청년 히틀러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히틀러가 뮌헨 폭동을 일으켰을 때 경찰의 저지를 받고 풍비박산난 곳이기도 합니다. 총통에게는 꽤 의미있는 장소이지요.

펠드헤른할레에 있는 틸리 원수의 동상입니다.


펠드헤른할레를 지나 역시 루드비히 1세가 만든 개선문으로 향했습니다. 개선문으로 가는 길에 친숙한 이름의 표지판이 하나 있더군요.


드디어 바이에른 육군의 개선문 입니다.



개선문을 구경한 뒤에는 쓸만한 서점을 찾아 다녔습니다. 걸어다닌 거리에 비하면 성과는 아주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 이런 재미있는게 나타나서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물건... 재미있게 생기긴 했습니다.

결국 서점 수색도 허탕을 친데다 약간의 빗발도 날려서 시내 구경을 위해 부리나케 시청광장으로 향했습니다.

구시가지의 축소모형이 광장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은 뮌헨의 명소 Frauenkirche로 들어갔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야 교회에 가면 지겹게 보는 물건이지만 멋은 있더군요. 교회는 참 볼만했는데 사진을 거의다 말아먹어서 올릴 만한게 별로 없습니다;;;;

이건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루드비히의 관이라는군요.


교회 구경을 마치고 마리엔플라츠로 나왔습니다.

역시 마리엔플라츠에서는 마리아의 동상(Mariensaule)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동상의 네 귀퉁이에 조각된 아기천사들의 동상도 인상적이더군요.

정말 역동적(!!!) 입니다.

에. 그리고 역시 관광명소인 뮌헨의 시청건물...


멋지긴 한데 뭔가 번잡해 보이는 건물입니다.




마리엔플라츠를 구경한 뒤 일반적인 관광객의 패턴에 따라 시장으로 가서 소세지를 사먹었습니다. 먹고나니 뭔가 허무한 느낌이 밀려오더군요. 시차적응이 안된 탓인가...


잠시 시내를 더 돌아다닌 뒤 뮌헨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날 뮌헨의 박물관 같은 곳은 귀국하는 길에 구경하기로 정했습니다. 물론 여행 후반기에 오스트리아에서 죽치느라 결국은 못 갔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