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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4일 토요일

맹수 퇴치법


여기저기서 인용되는 꽤 유명한 이야기죠. 노르망디 전선에 새로 부임한 장교와 부관이 나눈 대화라고 합니다.

"독일군이 보유한 전차 중에서 가장 흔한건 뭔가?(What do the Germans have most of?)" 
"판터입니다. 판터는 1마일 떨어진 거리에서도 처칠의 장갑을 버터 자르듯 뚫어버리죠.(Panthers. Panthers can slice through a Churchill like butter from a mile away.)" 
"그러면 처칠 전차로 어떻게 판터를 잡나?(And how does a Churchill get a Panther?)" 
"먼저 천천히 접근합니다. 근접하면 판터의 포방패 아래 부분을 쏴서 도탄을 시키는 겁니다. 운이 좋으면 도탄된 탄이 조종수의 머리 윗부분의 얇은 장갑을 뚫게 됩니다.(It Creeps up on it. When it reaches close quarters the gunner tries to bounce a shot off the underside of the Panther's gun mantlet. If he's lucky, it goes through a thin piece of armour above the driver's head.)" 
"이걸 성공시킨 사람이 있나?(Has anybody ever done it?)" 
"있습니다. C중대의 데이비스입니다. 데이비스는 막 본부에 복귀했는데 정신을 추스리는 중입니다.(Yes, Davis in C Squadron. He's back with headquarters now, trying to recover his nerve.)" 
"처칠 전차로 티거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How does a Churchill get a Tiger?)" 
"2백야드 이내로 접근한 뒤 관측창을 명중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It's supposed to get within two hundred yards and put a shot through the periscope.)" 
"이걸 성공시킨 사람이 있나?(Has anybody ever done it?)" 
"없는데요.(No.)" 

John Buckley, British Armour in the Normandy Campaign 1944, (Frank Cass, 2004), p.106

2014년 3월 27일 목요일

기갑총감부 보고서 "노르망디 전선에서의 대전차전 경험"

독일육군 기갑총감부 문서 중에서 1944년 6월 25일에 작성된 “노르망디 전선에서의 대전차전 경험Erfahrungen der Panzer-Bekämpfung an der Invasionfront Normandie”라는 문건은 1944년 6월 6일 부터 6월 24일까지 독일군이 미영연합군의 기갑부대를 상대하면서 얻은 경험에 대해 담고 있습니다.1) 독일군의 정보분석에 대한 문제점과 미영연합군의 기갑전력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7월 5일에 작성된 다른 문서의 부록인데 해당 폴더에 원문서는 없어서 이 문서만 인용합니다.

이 보고서의 서두에서는 노르망디 전역 초기에 독일군의 야전 부대들이 연합군 기갑장비들을 식별하고 정보를 수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된 이유는 노르망디에 배치되었거나 증원된 부대들이 전차식별에 필요한 정보자료를 제대로 보유하지 못했거나 오래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정보 때문에 연합군의 기갑장비에 대해 과장되거나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되어 전차공포증Panzerschreck에 걸릴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로 연합군 포로로 부터 획득하는 정보가 늘어나면서 이것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합니다.2)

이 보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연합군의 기갑장비 및 대전차화기에 대한 평가

이 보고서는 6월의 교전을 통해 새롭게 파악한 연합군의 전차가 크롬웰 순항전차와 M4A4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셔먼에 대해서는 “서방의 T-34(T-34 des Westen)”라고 칭하고 있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M4A4에 대해서는 기존의 셔먼과 달리 58구경 76.2mm포가 주무장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M4A4 중에 많은 수가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다 보니 모든 M4A4가 17파운드포를 탑재한 것으로 혼동한 모양입니다. 또한 신형 셔먼의 장갑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75mm포의 경우는 원거리에서 격파할 수 있으며 50mm포도 근거리에서 관통이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3)
크롬웰 순항전차에 대해서는 포탑은 처칠 보병전차와 유사하고 차체 및 전반적 형태는 크루세이더 전차와 유사한 혼종Kreuzung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크루세이더 전차 보다는 장갑이 강화되었지만 처칠 보다는 약하다고 지적합니다. 크롬웰은 50mm급 이상의 화기라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처칠 보병전차에 비해 공격이 쉽다고 평가합니다.4)

M4A4와 크롬웰 순항전차를 제외한 차종은 이미 정보가 있기 때문인지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M5 경전차에 대해서는 별칭이 코만도Commando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칠 보병전차의 경우는 공병전차AVRE, 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로 개조된 차량에 대해 특기하고 있습니다. 테트라크 공수전차는 장갑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20mm 대공포로 상대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군이 M6 중전차를 노르망디에 투입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면서 추후에 전장에 투입할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투입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M6 중전차에 대해서는 드레드노트라는 별칭을 붙이고 있는데 정보 출처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영연합군이 M3 그랜트나 발렌타인 같은 구식 전차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특기하고 있습니다.5) 구식전차를 투입하지 않았다는 점은 전쟁 말기까지 온갖 잡다한 차종을 사용하던 독일군의 입장에서 특이하게 생각됐을 수도 있겠습니다.

대전차포 중에서는 영국군의 6파운드 대전차포(독일군은 5,7cm Pak L/70으로 호칭)와 3인치 대전차포(독일군은 7.62mm Pak Mk.I L/52로 호칭) 두 종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6파운드 대전차포의 성능은 독일군의 중전차를 격파하기에 부족하지만 교전거리가 짧은 노르망디 지역의 특성상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3인치 대전차포에 대해서는 Pak40과 관통력이 비슷하지만 포 자체의 무게가 무거워서 전술적인 기동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한편 연합군에 92mm 대전차포가 있다는 정보에 대해서는 대공포를 대전차포로 오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6)


2. 연합군의 전술에 대한 평가

연합군의 기갑전술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습니다. 독일군은 미영연합군이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서 실행한 상륙작전과는 다르게 초기에 보병과 함께 전차를 상륙시킨 것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상륙 제1진으로 투입된 영국군 전차들이 상륙하자 마자 곧바로 공격으로 전환해 보병의 지원도 받지 않고 독일군의 화점이나 저항거점을 공격한 것을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화점과 저항거점을 대전차지뢰와 대전차호 같은 거부수단으로 보강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7)

연합군의 기갑전술에 관한 부분에서 꽤 재미있는 내용은 미군과 영국군 전차 승무원들의 사격이 독일군 만큼이나 신속하고 정확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점 입니다.8)

또한 미영연합군이 기갑수색부대를 활발하게 활용하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전차가 대규모로 투입되고 있으며, 여기에 장갑차와 기계화보병이 함께 편제되어 정찰을 수행하는 점을 특기하고 있습니다. 연합군이 정찰임무에 경전차를 대량으로 투입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각 부대에 전차가 나타난다 해도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교전할 것을 숙지시키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가지에서는 소화기로도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이 없는 지역이라 하더라도 경전차를 동반한 연합군의 기습적인 정찰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숙지시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9)

Caen 일대에서 영국군이 보여준 기갑 전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독일군은 영국군이 캉 일대의 개활지에서는 보통 50대 내외의 소규모 전차부대를 투입하고 있으며 보병의 직접지원이 부족해서 상황이 유리한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카쥬 지형에서는 기갑 부대들이 보병의 지원을 잘 받으면서 작전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차를 호위하는 보병들이 독일군 보병의 근접공격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10) 포병과 기갑부대의 협동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포병 관측이 곤란한 지역에서도 매우 모범적인mustergültig운용을 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11)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연합군 공군의 강력한 전술지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독일군의 대응에 대한 평가

독일군의 대응에 대한 평가 중에서는 대전차자주포와 돌격포의 운용에 대한 평가가 재미있습니다. 대전차자주포나 돌격포는 전차부대에 비해 단차 단위나 소대 단위의 전투 훈련을 많이 받은 편이기 때문에 보카쥬 지형에서 유리했다는 점 입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회전포탑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견인식 대전차포에 대해서는 혹평이 중심입니다. 자체적인 기동력이 없기 때문에 교전거리가 짧은 보카쥬 지형에서는 운용하기가 어렵고 적의 포격이나 폭격에 쉽게 무력화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역에 투입된 제21기갑사단 소속의 견인식 88mm 대전차포 대대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88mm 대전차포는 유효사정거리가 매우 길기 때문에 넓은 간격을 두고 배치해도 화력의 집중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12)

독일군의 대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병의 육박공격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 입니다. 독일측의 기록에 따르면 6월 6일 부터 6월 24일까지 총 108대의 미영연합군 전차를 보병 육박공격으로 격파했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6개의 독일군 사단이 격파한 미영연합군의 전차 숫자와 격파 수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르망디 전선 독일군의 연합군 전차 격파 대수 및 격파 수단

전차
돌격포
대전차
자주포
견인식
대전차포
견인식
88mm
대공포
야포
보병공격
17SS

7

5



5
352보병


21


21
25
30
2기갑



15


4
5
교도기갑
85

16
7


4
40
12SS
105


16



23
21기갑
37


15
43

3
5
[표출처 :  “Anl 5 zu Gen .Insp.d.Pz.Tr, Chefgruppe Nr.1839/44 g.k.v, ‘Panzerabschuss-Liste’”(1944. 7. 3), H16/201 Pz Offz b Chef Gen St d H, RG242 T-78 R620 Folder 3, NARA, pp.1~2.]

노르망디 전역 초기 3주간에 해당하는 보고서이기 때문에 이후 미영연합군의 전술적인 개선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없지만 독일군의 초기 대응과 시행착오에 관해서는 흥미로운 점을 보여주는 보고서입니다.


주석
1) “Erfahrungen der Panzer-Bekämpfung an der Invasionfront Normandie”(1944. 6. 25), H16/201 Pz Offz b Chef Gen St d H, RG242 T-78 R620 Folder 3, NARA
2) ibid., pp.1~2.
3) ibid., pp.2~3.
4) ibid., p.3.
5) ibid., pp.3~4.
6) ibid., pp.5~6.
7) ibid., p.7.
8) ibid., p.8.
9) ibid., p.8.
10) ibid., p.10.
11) ibid., p.11.
12) ibid., pp.12~13.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질보다 양?!

'영국'이라는 단어와 '전차'라는 단어는 따로 사용할 때는 뭔가 멋진 느낌을 주지만 함께 사용할 경우에는 희극의 탈을 쓴 비극이 된다지요.

영국 육군은 북서유럽에서 대재앙을 겪는 바람에 장갑차량을 대부분 상실했으며 신형 전차를 개발하는 것 보다는 실용성과 유용성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전차라면 무엇이든지 생산부터 하는 것에 우선권을 두었다. 영국은 이미 프랑스가 붕괴하기 이전 부터 전차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질보다 양을 중시하고 있었는데 1940년 여름에는 영국 본토와 다른 지역을 방어하는 문제가 최우선과제였으며 이러한 경향이 1941년 부터 1942년까지 전차 생산을 좌우했다.

이런 압력은 설계도 단계의 전차에 생산 결정을 내리고 시험평가도 부족한 전차를 양산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만들었다. 이 방법은 요구사양의 결정에서 선행양산품(pilot) 생산까지의 시간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시제품을 생산할 필요성을 줄였다. 이러한 정책은 다른 분야에는 적용되지 않았으며 육군은 이 정책을 단지 장갑차량의 생산에만 적용했다. 그 성과는 경우에 따라 달랐다. 실제로 1942년 하원의 보고에서는 '우리는 시제품 생산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곧바로) 생산을 하는 것(we were not avoiding the manufacture of prototypes, we were manufacturing nothing else)'이라는 발언이 있었다.

이렇게 숫자부터 채우자는 정책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불러왔으며 그 중 하나로는 막대한 투자를 퍼부은 A13 코베난터(Covenanter) 전차가 있었다. 이 전차는 무작정 생산을 시작했지만 자체적인 결함과 전반적인 신뢰성 부족 때문에 실전에는 투입도 하지 못 했다. 뿐만아니라 "설계도 단계에서 생산명령이 내려진(off the drawing board)" 또 다른 사례 중 하나인 A22처칠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연합군의 장비 중 효율적이고 유용한 것이 되었으나 처음 배치될 당시에는 자질구레한 문제와 결함에 시달렸다.

John Buckley, British Armour in the Normandy Campaign 1944, Frank Cass, 2004, p.162~163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다들 잘 아시죠?

2007년 9월 26일 수요일

British Armour in the Normandy Campaign 1944 - John Buckley


이 녀석은 필요 이상으로 비싼 Frank&Cass에서 나온 책 입니다.

이 책의 전반적인 인상은 “꽤 재미있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인걸” 입니다.

저자인 Buckley는 노르망디 전투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지나치게 영국 육군 기갑부대의 전술적 실패와 전차의 열악한 성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노르망디 전투에서 영국 기갑부대가 고전을 거듭한 원인을 단순히 전차의 성능적 열세와 전술단위의 역량 부족에만 돌리는 것으로는 노르망디 전역의 기갑전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르망디의 영국 기갑부대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먼저, 노르망디 전투에서 영국 육군 기갑부대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역할을 잘 수행했으며 1944년 8월 이후로는 전술적으로 개선되는 경향이 뚜렷했다는 것 입니다. 또 전후 독일군의 회고나 상당수의 연구자들이 영국군의 우수한 항공지원과 포병화력에 주목한 나머지 전차부대의 기여를 과소평가했는데 실제로 전투의 대부분을 담당한 것은 전차와 보병이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기술적인 면에서는 영국군 기갑부대는 티거와 판터를 제외한 다른 독일군의 기갑차량에 대해서 동등하거나 우세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노르망디에 투입된 독일 기갑전력의 3분의 2이상을 차지한 4호전차와 돌격포의 경우 화력면에서 다소 우수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셔먼이나 크롬웰 보다 부족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는가? 여기에 대해 Buckley가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점은 작전과 전술교리, 방어자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노르망디의 지형, 그리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화력의 부족입니다.

작전적 측면에서는 영국군의 고급 지휘관들과 사단장 급 지휘관들의 역량 부족을 심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특히 몽고메리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상당히 좋은 지휘를 했지만 노르망디에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자가 꼽는 몽고메리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는 ‘당연히(?)’도 Goodwood 작전입니다. Buckley는 영국군 고급지휘관들은 전반적으로 기갑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 전술과 교리도 영국 기갑부대가 큰 손실을 입은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영국군은 1944년까지도 제대로 된 보전협동 전술이나 교리가 없었다는 것 입니다. 노르망디 같은 대규모 전투를 치르는 도중에야 겨우 보전협동을 체득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공격자에게 불리한 노르망디의 지형도 영국 기갑부대에 큰 손실을 강요한 요인 중 하나로 들고 있습니다. 그 예로서 독일군의 기갑부대 역시 방어가 아닌 제한적인 반격 작전에서는 영국군 기갑부대 만큼이나 큰 손실을 입었다고 히틀러유겐트 사단의 몇몇 작전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화력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히고 있습니다. 저자는 영국의 전차개발자들이 아프리카 전선의 경험에 주목해 전차의 화력은 독일군의 대전차포를 제압할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 1944년의 실패를 불러온 요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아프리카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독일군의 전차를 상대했지만 노르망디에서는 갑자기 독일군의 정예 기갑사단들과 대규모로 맞닥뜨리게 됐는데 정착 영국군 전차들의 화력은 대전차포를 상대할 경우를 상정한 수준이었다는 것 입니다. 특히 노르망디의 지형에서는 방어력 보다는 화력이 중요했고 방어력이 비교적 우수한 처칠 전차 조차도 이 점에서 문제였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는 우수한 화력에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아 매복에 유리한 4호전차와 돌격포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쭉 읽고 나니 확실히 재미는 있었는데 정리해 보면 다 한번씩은 들어 봤던 것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렇지만 재미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노르망디 전역에서 영국군이 수행한 중요한 작전들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