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심란해서 심야 영화로 윈터스 본(Winter's Bone)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도 매우 무겁고 암울한 영화여서 심란한 기분만 더해졌습니다. 차라리 김명민이 주연인 코미디 영화나 볼 걸 그랬습니다.
사실 영화 자체는 꽤 괜찮게 잘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이 시궁창 같은 상황에 처해있고 계속해서 시궁창 같은 현실이 계속되지만 어쨌든 아주 아주 약간의 희망은 있는 결말이었으니 평온한 때에 봤다면 나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영화는 폐쇄적인 시골마을이 배경이고 빈곤층 소녀가장(?!)이 주인공입니다. 이쯤되면 뭐 말 다했지요. 주인공은 원치 않게 소녀가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약을 제조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는데 집을 담보로 가석방 비용을 마련한 뒤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사라져 버렸으니 집이 압류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의 어머니는 폐인입니다;;;; 어쨌든 씩씩한 소녀가장은 가정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합니다만 아버지의 주변 인물들도 만만치 않은 인물들입니다.
스릴러에서 시골을 그리는 공식은 거기서 거기인지 이 영화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연출이 꽤 좋습니다. 범죄로 얽힌 폐쇄적인 소규모 공동체는 꽤 흔한 소재라서 연출이나 연기가 엉망이면 망하기 쉽지요.(한국 영화 '이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행히 이 영화의 연출은 정말 좋습니다. 동시에 연출이 너무 좋다는 게 문제입니다. 여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친한 친구를 제외하면 등장인물 중 제대로 된 인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마약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동네 보안관도 전형적인 부패경찰 입니다. 이 답답하고 소름끼치는 공동체의 일상을 들여다 보는 건 고역입니다.
게다가 이야기는 암울한데서 그치지 않고 제법 현실적인 방향으로 나갑니다. 현실적으로 빈곤층 소녀가장이 폐쇄적인 공동체에 맞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행히 주인공이 살해되는 최악의 상황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권선징악이 이루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폐쇄적인 시골마을은 늘 돌아가던 대로 돌아가고 주인공은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방안을 취합니다. 물론 완벽하게 암울한 결말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일상은 이미 충분히 엉망이긴 하지만 가정이 완전히 공중분해되는 상황도 피하고 길거리로 나 앉는 상황도 피하긴 합니다.
좀 여유있는 상황에서 봤으면 좋았을 영화였는데 시기를 잘못 골랐습니다. 그래도 영화 자체는 괜찮았으니 그나마 다행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