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네. 물론 저는 국한혼용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농담입니다.
영국 육군은 북서유럽에서 대재앙을 겪는 바람에 장갑차량을 대부분 상실했으며 신형 전차를 개발하는 것 보다는 실용성과 유용성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전차라면 무엇이든지 생산부터 하는 것에 우선권을 두었다. 영국은 이미 프랑스가 붕괴하기 이전 부터 전차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질보다 양을 중시하고 있었는데 1940년 여름에는 영국 본토와 다른 지역을 방어하는 문제가 최우선과제였으며 이러한 경향이 1941년 부터 1942년까지 전차 생산을 좌우했다.
이런 압력은 설계도 단계의 전차에 생산 결정을 내리고 시험평가도 부족한 전차를 양산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만들었다. 이 방법은 요구사양의 결정에서 선행양산품(pilot) 생산까지의 시간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시제품을 생산할 필요성을 줄였다. 이러한 정책은 다른 분야에는 적용되지 않았으며 육군은 이 정책을 단지 장갑차량의 생산에만 적용했다. 그 성과는 경우에 따라 달랐다. 실제로 1942년 하원의 보고에서는 '우리는 시제품 생산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곧바로) 생산을 하는 것(we were not avoiding the manufacture of prototypes, we were manufacturing nothing else)'이라는 발언이 있었다.
이렇게 숫자부터 채우자는 정책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불러왔으며 그 중 하나로는 막대한 투자를 퍼부은 A13 코베난터(Covenanter) 전차가 있었다. 이 전차는 무작정 생산을 시작했지만 자체적인 결함과 전반적인 신뢰성 부족 때문에 실전에는 투입도 하지 못 했다. 뿐만아니라 "설계도 단계에서 생산명령이 내려진(off the drawing board)" 또 다른 사례 중 하나인 A22처칠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연합군의 장비 중 효율적이고 유용한 것이 되었으나 처음 배치될 당시에는 자질구레한 문제와 결함에 시달렸다.
John Buckley, British Armour in the Normandy Campaign 1944, Frank Cass, 2004, p.162~163
"적의 최후 방어거점입니다."
"구르카부대를 투입해!"
"메에" "메에" "메에"
"구르카부대, 돌격전진!"
"메에!" "메에!" "메에!" "메에!" "메에!" "메에!" "메에!" "메에!" "메에!" "메에!" "메에!"
"안되겠다"
"항복하자"
(전략)
이상에서 몇 가지 주요 조약과 협정을 통하여 한미관계를 고찰하였다. 결과적으로 느껴지는 것은-적어도 조약 및 협정의 조문을 통해서는- 과연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마땅히 받어야 할 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 다음에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회피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 문제를 하나의 가외(加外)의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아심이다. 그리고 최근의 미일관계를 조감할 때 미국의 한국과 일본에 대한 비중의 격차가 너무나 현격하다는 비애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느낌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한미관계를 어떻게 조정해나가느냐가 한국의 당면한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한미관계를 국가대 국가의 외교관계로서 고찰할 때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기대를 걸고 있는것이 아닌가를 재삼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란 도덕사회도 자선사회도 아니며 그곳에서는 '힘'의 서열에 따라서 응분의 지위가 규정되며 각자의 지위에 따라서 응분의 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한 비중의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것도 그러한 원리로 부터 연유하는 것이며 어느 의미에서 한국은 미국의 대우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무력함을 한탄해야 할 입장인지도 모른다.
일본이 받고있는 정도의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받지 못한다고 반미적 감정에 흐른다거나 한미관계의 역사적 의의를 망각하고 미국 이외의 다른 강국(예컨데 일본)과 새로운 기축(基軸)관계를 형성하려고 덤벼드는 것은 모두가 '한국의 국가이익'에 배치되는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2차대전 말기에 한국을 분점(分占)하게 된 것은 대일전쟁 종결을 위한 전략적 고려의 결과였으며 한반도에 항구적으로 고착할 의도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한정책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한미관계의 기축이 변동할 리는 없을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대미일변도니 사대주의니 하고 비판할는지도 모르나 세계정치의 현세하(現勢下)에서 소위 중립국가를 제외한 국가로서 미국 혹은 쏘련과의 기축에 크고 작고간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가 몇개나 되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국, 서독, 일본 등은 말할 필요도 없고 '드골'의 프랑스가 큰소리 칠 수 있는 것도 역시 미국 세력의 배경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한국처럼 미국의 전쟁처리 과정에서 탄생한 나라가 대미관계를 국가 이익의 기축으로 삼는것은 자명의 이치라 하겠다.
(후략)
朴俊圭,「條約協定으로 본 韓美關係」, 靑脈 第5號(1965.1), 8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