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翼をください - Chorale Résonances

다들 잘 아시는 그 노래입니다. 느낌이 좀 묘하지만 아주 좋군요.

히틀러 집권기 독일의 보탄(Wotan)신앙

히틀러 집권기의 보탄(Wotan, 오딘) 신앙은 과거 이글루스 시절에 댓글로 한 번 언급했던 문제인데 이글루스를 날려먹었으니 재탕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용한 책은 "그 때의 그 책" 입니다.

히틀러가 독일을 통치하던 시기(1933~1945)에는 이단 신앙이 널리 고취되었다는 서술이 많은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원인 중에는 1933년 의회에서 가톨릭 정당의 나치당 지지가 있었는데 이로인해 나치당은 집권당이 될 수 있었다. 수많은 가톨릭과 개신교 성직자들이 나치 정권을 열렬하게 지지했다. 나치 정권이 이교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은 2차세계대전 중의 전시선전을 통해 형성되었다. 신비학자(Occultist) 루이스 스펜스(Lewis Spence)는 대독일선전의 일환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오딘과 토르 신앙'으로 알려져 있는 고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신앙은 수많은 문학적 찬양의 대상이었다. 나는 민속학과 신화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고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신앙이 다른 하급 종교는 물론 폴리네시아나 고대 페루의 신앙과 비교하더라도 특별히 품격있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고대 독일신앙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극단적인 나치 광신자들이 부활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히틀러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몰락한다면 인위적으로 부활시킨 다른 이교신앙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히믈러와 헤스라는 두 명의 '극단적인 나치 광신자'들은 우수인종이 미래의 지배자가 된다는 믿음을 고무하는 아리아 신비주의를 적극적으로 추종했던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1941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보탄(Wotan) 신앙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 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야. 우리의 고대 신화는 기독교 신앙이 확립되었을 때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스펜스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군사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국가사회주의를 "나치의 이단 교회"인 다신신앙과 결부시키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존 요웰(John Yeowell)의 최근 연구는 다신교도들이 나치 독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커녕 박해받는 존재였다는 점을 밝혀냈다. 다신종교의 지도자들은 나치정권에 의해 탄압받고 체포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루넨마이스터(Runenmeister) 프리드리히 베른하르트 마르비(Friedrich Bernhard Marby)는 1936년에 체포되어 이후 9년동안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마르비만 체포된 것이 아니었다. 1941년에 하인리히 히믈러의 명령에 의해 수많은 다신교와 밀교 단체가 불법화 되었다.(이 중에는 보탄 숭배자이며 아리아주의자였던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추종자들도 포함되었다.) 수많은 다신교도들이 다른 히틀러 정권의 희생자들처럼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Prudence Jones and Nigel Pannick, A History of Pagan Europe, (Routlege, 2000), pp.218~219

물론 여기서 제가 인용한 구절은 사실의 일부분을 전달할 뿐 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프리드리히 마르비가 탄압받았던 원인으로는 다신교간의 교파 분쟁으로 히믈러의 지원을 받은 교파가 승리한 결과라는 주장이 있으며 히틀러의 경멸에도 불구하고 나치당의 소수 인사들이 이교도 신앙에 심취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치 집권기를 통해 독일의 전통 신앙이 광범위하게 부활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와 만화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이런 이상한 선입견이 확산되는 것은 찝찝한 일이지요.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할로스캔으로 부터 해방(???) 되었습니다.

할로스캔의 서비스가 2009년 12월 26일부로 종료된다기에 JS-KIT의 ECHO로 갈아탔습니다.

1년에 9.95달러인 유료서비스인데 할로스캔의 데이터를 그대로 이어받아 쓸 수 있으니 이것을 쓰는게 좋을 것 같더군요. 아무래도 2년 가까이 쌓인 댓글을 날려먹는 것은 아까우니 1년에 만원을 내는게 좀 더 나을 듯 싶었습니다.

한번 써 보니 한글지원기능이 확실히 할로스캔보다 좋아진 것 같습니다. 세글자 이상의 한글 아이디도 잘리지 않고 제대로 표시되니 앞으로 방문객 분들의 아이디를 몰라서 당혹스러울 일은 없어질듯 싶군요. 그동안 할로스캔의 부족한 한글지원 기능으로 애를 먹었는데 이것하나는 해결된 것 같습니다.

유료서비스라 살짝 아쉽지만 기존의 댓글이 그대로 남았으니 적당히 만족할까 합니다. 일단 써보고 신통치 않으면 다른 서비스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추가 - ECHO의 공지사항을 보니 아직 할로스캔의 데이터 전환이 완료되지 않아 트랙백은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댓글의 경우 몇가지 선택사항이 있는데 댓글이 등록되면 블로그 운영자가 댓글을 선별해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있더군요. 일단 저는 게을러서 댓글이 올라오는대로 달리도록 해 놓았습니다. 욕설이나 광고메일만 골라서 삭제하면 되겠지요.

앞으로도 욕설이나 광고메일이 아니라면 삭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ECHO 서비스는 할로스캔보다는 안정적일 듯 싶으니 예전 처럼 지우지도 않은 댓글을 지웠다고 난리를 치는 인간들은 더이상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추가2 - 새로 설치한 댓글창에 글자가 너무 작게 나온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ctrl을 누르시고 마우스휠을 굴리는 것으로 글자크기를 조정하실 수 있습니다.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Weapons and Warfare in Renaissance Europe

번동아제님이 쓰신 군기시(軍器寺)터 발굴에 대한 글을 읽던 중 '건물지 11호'에서 조선시대의 화약이 출토되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번동아제님이 지적하신 것 처럼 이를 통해 조선시대 화약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읽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Bert S. Hall의 Weapons and Warfare in Renaissance Europe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중세말기~르네상스 시기의 군사적 발전을 '기술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인데 3장 전체를 할애해 15세기의 화약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어서 읽을 당시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생각이 난 김에 이 책에 대해서 조금 소개를 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출간한 기술사연구(Johns Hopkins Studies in the History of Technology)의 열 다섯번째 저작입니다. 몇 년전 2차대전에서 근대유럽전쟁 전반으로 관심사가 옮겨가면서 근대전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기의 전쟁에 대해 쓸만한 서적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Bert S. Hall은 중세말~르네상스 시기의 군사기술이 전쟁의 양상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라면 유사한 주제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과 어떠한 차이점이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올 법 합니다. 네. 그래서 Hall은 화약 무기에 대한 기술적 분석과 전술의 변화를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약 무기의 생산을 뒷받침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분석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저자는 14세기에 공성병기로서 화약무기의 사용이 확산된 데 대해 대포의 위력뿐 아니라 1380년대를 기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한 화약의 가격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반에 걸쳐 화승총으로 대표되는 개인용 소화기가 급속히 발달하게 된 데에도 단순히 화약의 개선과 기술적인 요인만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자는 화승총의 개발과 확산이 독일과 이탈리아에 의해 주도된 데 주목하여 이 지역의 분열된 정치체제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봅니다. 즉 영국, 프랑스와 달리 작은 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치자들은 공세적인 전쟁을 치르기 보다는 자신들의 영역을 방어하는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이때문에 방어 전투에 적합한 개인용 소화기가 급속히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입니다.(이러한 주장은 초기 화승총의 운용이 야전에서도 창병과 참호의 지원을 받아 방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단순히 군사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전쟁의 변화를 고찰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중한 설명으로는 해결하기 곤란한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또한 기술적 측면에 대한 분석도 충실합니다. 15세기 화약 생산을 분석한 3장과 초기 화약무기의 탄도적 특성을 분석한 5장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장의 경우 20세기에 실시된 15~16세기 화약무기에 대한 실험 등 초기 화약무기의 기술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을 분석하여 기술적 한계가 어떻게 화약무기를 활용한 전술을 형성했는지 고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1988년 부터 1989년 사이에 오스트리아에서 실시된 실험인데 이 실험의 결과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저자는 활강식 총신과 탄두의 형태로 인한 낮은 명중율과 원거리에서의 위력 부족으로 초기의 소화기는 근거리에서 대규모 일제사격을 퍼붓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런 전술에서는 명중율 보다 발사속도가 중요해 질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총신에 강선을 파는 방식으로 명중율을 높이는 방법이 있음에도 널리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장전속도가 느려져 대규모 보병전투에는 약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이런 구성은 꽤 마음에 듭니다. 이렇게 한 시기의 전술적 변화에서 다른 시기의 전술적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면서 중간에 변화의 요인이었던 기술적 문제에 대해 별도의 장을 활용해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지는 장을 이해하는데 훨씬 편리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술적 변화와 전술적 변화를 함께 서술하는 것 보다 명료한 구성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예로 들고 있는 역사적 사례가 매우 풍부하다는 점 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영미권 학계에서 이 시기의 전쟁을 기술 할 때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어느정도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독일, 이탈리아, 보헤미아, 스페인 등 기술적, 군사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다른 지역의 사례도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후스전쟁과 이베리아 반도 재정복전쟁 말기의 화약무기 운용에 대한 부분입니다. 후스전쟁에 대한 군사적 분석은 꽤 드문편이라 읽으면서 반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대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저작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