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혼식 때문에 대구에 다녀왔는데 대구까지 간 김에 그냥 오긴 그래서 토산품을 조금 사왔습니다.
대구지역에서 발행되는 어제 일자 일간지들입니다. 가판대에서 지역언론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게 꽤 마음에 들더군요. 물론 논조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마침 제가 산 신문들은 모두 가카의 대구 R&D특구지정을 대서특필하고 있군요.
요즘은 지역색이라는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것 같은데 이런 종류의 지역색이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랄까. 정론지를 자칭하는 소위 중앙일간지들만 지역 신문가판대까지 점령하고 있다면 정말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소위 중앙일간지들은 서울이라는 중심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언론의 논조도 중요하겠지만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할수 있는 언론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2010년 3월 7일 일요일
2010년 3월 5일 금요일
어떤 학자의 연구노트
어떤 책의 서문에 있는 구절입니다. 아마 여기에 공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꽤 많을 듯 싶군요.
저도 이 구절을 읽고 살짝 웃었답니다.
나는 얼마전에 내가 아직 학부생이던 15년 전에 작성한 아직 끝내지 못한 연구 과제들의 목록을 찾아냈다. 목록의 열 번째 줄에는 "성과 전쟁"이라는 주제가 있었고 그 옆에는 "가장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렇지만 내 경력을 말아먹을 수 있다. 테뉴어를 받을 때 까진 기다리자"라고 적혀있었다.
Recently, I discovered a list of unfinished research projects, which I had made fifteen years ago at the end of graduate school. About ten lines down is "gender and war", with the notation "most interesting of all; will ruin career -wait until tenure."
Joshua S. Goldstein, War and Gender : How Gender shapes the War System and Vice Vers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p.xiii
저도 이 구절을 읽고 살짝 웃었답니다.
2010년 3월 3일 수요일
1/48이 아닌게 아쉽군
조만간 발매된다는 타미야 신제품 중 꽤 근사한게 있더군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35...
물론 저는 얼빵하게 생긴 75mm 탑재형 셔먼을 선호합니다만 76mm 탑재형들도 나름 좋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개량한 셔먼만 빼면 셔먼은 거의 다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을 1/48로 뽑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저는 얼빵하게 생긴 75mm 탑재형 셔먼을 선호합니다만 76mm 탑재형들도 나름 좋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개량한 셔먼만 빼면 셔먼은 거의 다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을 1/48로 뽑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장의 미식가들
언제나 그렇듯 땜빵용 불법 날림 번역입니다.
인류학과 관련된 글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관찰자들이 자신들이 보기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특이한 관습에 관심을 가지고 쓰는 글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류학 자체가 제국주의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학문인 만큼 관찰자인 '우리'와는 다른 뭔가 특이한 것을 잡아내는게 특출나죠. 그리고 후진적인(?) 지역을 대상으로 한 초창기의 인류학자들은 그런 경향이 아주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불법 날림 번역글도 특이한 대상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인데 이 글에서는 피지, 그리고 볼리비아의 카우카 계곡(Valle del Cauca) 지역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특이한 식성을 가진 전쟁터의 미식가들에 관한 이야기 이지요.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미식가들입니다.
인류학과 관련된 글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관찰자들이 자신들이 보기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특이한 관습에 관심을 가지고 쓰는 글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류학 자체가 제국주의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학문인 만큼 관찰자인 '우리'와는 다른 뭔가 특이한 것을 잡아내는게 특출나죠. 그리고 후진적인(?) 지역을 대상으로 한 초창기의 인류학자들은 그런 경향이 아주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불법 날림 번역글도 특이한 대상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인데 이 글에서는 피지, 그리고 볼리비아의 카우카 계곡(Valle del Cauca) 지역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특이한 식성을 가진 전쟁터의 미식가들에 관한 이야기 이지요.
이 절에서 살펴보게 될 피지와 카쿠아 계곡 지역에서 일어나는 관행은 아마 전쟁 중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일 중에서 가장 충격적일 것이다. 바로 식인 풍습이다.
식인행위는 전쟁에서 부터 다른 생활 양상에 이르기 까지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윌리엄스(Thomas Williams)는 피지인들을 관찰한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식인 풍습은 피지인들의 관습 중 하나이다. 식인 풍습은 사회의 여러 요소들과 조화롭게 존재하고 있다. 식인은 피지인들이 추구하는 일 중 하나이며 그들 대부분은 식인 풍습이 고상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피지와 카우카 계곡 지대의 식인 풍습은 이미 유럽인들이 이 지역에 처음 도착했을 무렵 오래된 관습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이 지역에서 식인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 가 없다. 그렇지만 잡아먹는 대상이 주로 증오하는 적이라는 점을 보면 식인 풍습이 처음에는 적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윌리엄스는 이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피지인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주된 이유는 의심할 여지 없이 복수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시체를 먹음으로써 살아있는 자들에게 겁을 주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적을 잡아 먹는 것 행동 보다 더 증오와 경멸감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도 없을 것이다. 이제 두 사회에서 일어나는 식인 풍습의 양상을 살펴보자.
카우카 계곡 지대의 남자들은 전쟁에 나갈 때 포로들을 묶기 위해 특별히 밧줄을 준비해 간다. 물론 사로잡혀 꽁꽁 묶인 포로들이 목숨이 붙은 채로 그들을 잡은 자들의 마을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전사들은 포로를 묶을 밧줄과 함께 목을 벨 돌칼을 함께 가지고 나가며 종종 전장에서 곧바로 적을 요리해 먹었다.
반면 피지인들은 거의 대부분 전쟁 포로들을 마을로 데려와서 잡아먹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전사들은 바콜로(bakolo - 잡아먹을 사람)가 있을 경우 마을에 들어서기 전 북을 쳐서 포로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북소리를 듣는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주로 여자들)은 북 소리에 한껏 부푼 마음으로 즐거움에 겨워 광란의 춤을 추었다고 한다.
카우카 계곡 지역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머리를 숙이고 정신을 잃을 때 까지 곤봉으로 얻어 맞은 뒤 목이 잘렸다. 그 다음에는 요리를 위해 잘게 토막이 났다. 피지에서 포로를 도살할 때는 칼질에 숙달된 남자가 희생자를 '관절 별로 여러 토막을 냈다.'
피지와 카우카 계곡 지대에서는 종종 더 끔찍한 방법도 사용됐는데 희생자가 살아있는 상태로 토막을 내고 희생자가 보는 상태에서 갈비살을 베어 먹었다. 이것을 직접 목격한 윌리엄스는 이렇게 적었다. "이런 고통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가장 악랄하고 잔혹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지독한 것은 희생자가 아직 살아있는데 그의 몸 일부, 특히 갈비뼈를 잘라내서 희생자가 보는 앞에서 요리를 해 먹어치우거나 때로는 희생자에게 자신의 고기를 먹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두 지역 모두 희생자의 피를 받아 마셨다. 카우카 계곡 지방의 어떤 군장국가에서는 시체의 지방을 녹여 광산용 램프를 켤 때 쓰는 연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피지인들은 바콜로를 요리하기 위해 주로 특수한 화덕을 만들었으나 동시에 삶아 먹는 경우도 많았다. 카우카 계곡 지대에서는 시체를 굽거나 삶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사람 고기를 날 것으로 먹기도 했다. 피지인들은 사람 고기를 날로 먹는 경우가 없었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시체를 통째로 화덕에 넣어 요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피지와 카우카 계곡 지대 모두 시체를 토막 내서 요리했다.
두 지역 모두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사로 잡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성인 남성과 마찬가지로 먹어치웠다. 카우카 계곡 지역의 여자들은 종종 남자들과 함께 식인 축제에 참여했으나 윌리엄스에 따르면 피지에서는 "여자들은 바콜로를 잘 먹지 않았다."
시체는 대부분 식용으로 사용되었다. 카우카 계곡 지역에서는 사람의 갈비살을 가장 즐겨 먹었지만 내장, 예를 들어 심장, 간, 창자도 먹었다. 내장을 발라낸 몸통은 그냥 버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피지인들은 "심장, 허벅지, 팔꿈치 윗 부분의 팔을 진미로 여겼다." 피지인들은 사람을 먹을 때 그 유명한 '식인용 포크'를 사용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피지의 한 추장은 적의 해골로 그릇이나 컵을 만들고 정강이 뼈는 바늘로 쓰게 했다. 그렇지만 피지에서는 카우카 계곡 지역의 뛰어난 전사들이 잘라낸 적의 시체를 전리품으로 잔뜩 쌓아둔 것과 달리 시체를 전리품으로 만드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 추장들은 적의 해골이나 말린 머리를 대나무 장대에 꽂아 자신의 집 밖에 세워두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장식품은 가까운 방문객들이 그 추장의 위대한 힘을 느끼고 공포와 존경심을 가지도록 했다.
최소한 카우카 계곡의 한 군장국가에서는 적의 시체를 통째로 훈제해서 장기간 보관했다. 이 집단의 가장 강한 추장은 시체를 훈제하기 위해 아주 큰 건물을 만들었는데 스페인 인들이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 건물에는 약 400명의 적 전사들의 시체가 무기를 손에 쥐고 다양한 자세로 훈제된 채 빽빽하게 차 있었다.
이 두 지역에서는 식인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 졌을까? 그 규모가 상당했음은 확실하다. 윌리엄스는 1860년대에 피지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전사자는 1,500명에서 2,000명 정도라고 추산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솥이나 화덕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피지보다 인구가 더 많았던 카우카 계곡에서는 잡아먹힌 사람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정복 초기 스페인 연대기 작가 중 가장 신뢰할 만한 인물인 치에자 데 레온(Cieza de Leon)에 따르면 1538년의 대기근 당시 포파야얀의 주민 중 상당수는 "죽은 사람을 자신의 위장에 장사지냈다"고 하며 그 해에 약 5만 명이 살해되어 먹혔다고 한다. 트림본(Hermann Trimborn)은 이 추정치가 과장되었으며 기근으로 인한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이 식인 행위인 것은 사실이다.
헤레라 (Herrera)에 의하면 카우카 계곡의 집단 중 하나인 아르마(Arma) 에서는 1년 동안 8천명이 잡아먹혔다. 트림본은 역시 이 추정치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으나 설사 희생자의 숫자를 줄여 잡는다 하더라도 대규모 식인 행위임은 분명하다.
보다 구체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정확할 가능성이 높은 치에자의 기록에 따르면 카라파(Carrapa)와 피카라(Picara) 두 부족은 그들의 숙적인 포조(Pozo) 족을 무찌른 뒤 300명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뒤에 전세가 역전되어 포조족이 카라파, 피카라, 그리고 파우쿠라(Paucura) 족을 무찔렀을 때는 페레키타(Perequita)라는 포조족의 추장과 그의 수하들은 단 하룻동안 100명의 적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사람을 잡아먹는 잔치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주로 참여한 것은 바로 추장들이었다. 피지의 추장들은 그들이 먹어치운 사람 고기의 무게로 유명했다. 이 중에서 라 운드로인데(Ra Undreundre)라는 추장은 다른 추장들 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 추장은 자신의 집 뒤에 먹어치운 사람의 숫자 만큼 돌을 쌓았는데 돌 한개 당 사람 한 명을 먹은 것 이었다. 당대의 한 목격자에 따르면 라 운드로이네의 집 뒷 마당은 쌓인 돌이 232 걸음에 돌의 숫자는 872개에 달했다고 한다. 게다가 많은 돌이 중간에 없어졌다고 하니 이것들 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가 먹은 사람의 수는 900명은 되었을 것이다.
Robert Carneir, 'Warfare in Fiji and the Cauca Valley', Jonathan Hass(ed), The Anthropology of War(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pp.202~205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미식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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