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0일 토요일

2차대전기 미영 연합군의 전차 손실에 대한 통계 :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 - (2)

이번 포스팅은 지난번에 올렸던 ‘2차대전기 미영 연합군의 전차 손실에 대한 통계 :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의 후속입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보고서에 실린 전반적인 경향을 보여드렸으니 이번부터는 세부적인 내역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각 전역별 상세 통계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실수로 비전투손실Misc-Non Enermy Weapon을 빠트려서 이번에는 포함시켰습니다. 전반적인 경향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간략히 말씀드렸으니 이번 포스팅에서는 통계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표에서 HE로 표기한 것은 독일군의 경우 판처파우스트/판처슈렉입니다.


1. 서유럽전역에서 미영연합군의 기갑차량 손실(1942~1945)

표본
포격
지뢰
HE
박격포
기타
비전투
원인불명
미군
1944
2579
1051
375
236
16
95
292
514
미군
1945
1678
687
239
176
9
48
224
295
영국군
1944
1103
621
293
56
7
50
21
55
영국군
1945
582
308
126
123
0
17
0
8
캐나다군
1942
30
19
0
0
0
2
5
4
캐나다군
1944
473
161
37
14
4
12
66
179
캐나다군
1945
342
99
37
32
4
17
112
41
[표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


2.북아프리카전역에서 미영연합군의 기갑차량손실(1941~1943)

표본
포격
지뢰
HE
박격포
기타
비전투
원인불명
미군
1942
72
23
1
0
0
1
12
34
미군
1943
205
36
18
0
0
13
14
124
영국군
1941
413
357
30
0
1
25
0
0
영국군
1942
1123
884
188
0
1
49
1
0
영국군
1943
182
140
42
0
0
0
0
0
프랑스군
1943
39
30
9
0
0
0
0
0
[표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


3. 시실리 전역에서 미영연합군의 기갑차량손실(1943)

표본
포격
지뢰
HE
박격포
기타
비전투
원인불명
미군
1943
58
10
2
0
0
5
4
37
영국군
1943
31
23
7
0
0
1
0
0
캐나다군
1943
20
6
9
0
0
1
4
0
[표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


4. 이탈리아 전역에서 미영연합군의 기갑차량 손실(1943~1945)

표본
포격
지뢰
HE
박격포
기타
비전투
원인불명
미군
1943
55
18
8
0
0
1
17
11
미군
1944
471
180
87
12
3
22
103
64
미군
1945
159
26
42
25
0
14
30
22
영국군
1943
128
60
39
0
1
3
6
19
영국군
1944
652
309
118
47
12
17
18
131
영국군
1945
115
57
25
12
0
4
0
17
캐나다군
1943
73
21
18
0
2
3
22
7
캐나다군
1944
631
146
72
10
2
12
246
143
캐나다군
1945
15
3
3
2
0
0
5
2
[표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



다음은 태평양-아시아 전역의 통계입니다. 꽤 재미있는게 태평양전역의 경우 개별 전투별로 상세한 통계를 작성해 놓았습니다. 아마 지리적인 기준으로 통계를 작성한 듯 싶은데 그 덕분에 태평양쪽은 꽤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5. 버마 전선에서 영연방군의 기갑차량 손실(1945)

표본
포격
지뢰
HE
박격포
기타
비전투
원인불명
영연방군
1945
102
64
19
9
0
3
0
7
[표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


6.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의 기갑차량 손실(1942~1945)

표본
포격
지뢰
HE
박격포
기타
비전투
원인불명
미해병대
과달카날
5
3
1
0
0
1
0
0
미해병대
부갱빌
2
2
0
0
0
0
0
0
미해병대
타라와
33
6
0
0
2
2
23
0
미해병대
사이판
38
2
3
0
0
5
17
11
미해병대
뉴브리튼
5
0
1
0
0
0
4
0
미육군
솔로몬-콰잘레인
9
1
0
0
0
0
8
0
미해병대
뉴기니
3
0
0
0
0
0
3
0
미해병대
42
12
9
0
0
2
10
9
미해병대
티니안
15
4
5
0
0
6
0
0
미육군
필리핀
145
40
58
0
2
25
11
9
미해병대
이오지마
137
44
40
0
5
10
30
8
미육군
오키나와
239
93
55
0
5
67
19
0
미해병대
오키나와
136
54
42
0
1
27
12
0
[표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

2013년 4월 17일 수요일

애버딘 박물관 근황

미국에 사는 친구가 얼마전 애버딘에 있는 구 육군병기박물관(Army Ordnance Museum)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을 한 장 보내줬습니다. 올 여름 버지니아의 포트 리(Fort Lee)로 이전한 육군병기박물관이 일시적으로 개관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이전작업이 완료된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있는 차량이 꽤 있군요. 사진을 보니 T-34의 뒤쪽에 T-55와 BTR계열의 차륜형 장갑차도 보입니다. 미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 박물관이 이전하는 중이라고 해서 가보질 못했는데 남아있는 장비를 여전히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모양이네요.



2013년 4월 14일 일요일

연방의 신형전차

독일군은 1943년 말 부터 소련이 개발하고 있는 신형 중전차 ‘스탈린’에 관한 정보를 조금씩 포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정보업무가 다 그렇듯 ‘스탈린’ 전차에 대한 정보는 꽤 다양해서 독일군은 1944년 봄에 처음으로 이 전차를 상대하기 전 까지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1943년 말에 수집된 정보들은 대개 이 신형전차를 목격했다는 소련 포로들의 목격담을 취합한 수준이었습니다.


1943년 10월 16일 육군본부 동부정보과Abteilung Fremde Heere Ost에서 육군 병기국과 기갑총감부에 보낸 정보문서에 따르면 소련 제124소총병사단에서 탈주한 소위가 ‘스탈린’ 전차를 목격하고 증언한 내용이 있습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RG242 T78 R619
[제124소총병사단 622소총병연대에서 탈주한 소위(의 증언) : 레닌그라드 근교에서 있었던 훈련에 ‘스탈린’이라는 명칭을 가진 100톤급 신형 전차 6대가 참가했다. 이 전차들은 레닌그라드에서 생산되었다. 궤도의 폭은 1.50m, 전면장갑은 25cm이며 속력은 시속 40~50km이다. 무장은 10cm포 1문과 기관총 3정이다. 승무원은 12명이다. 궤도 양쪽에는 위쪽으로 접을 수 있는 장갑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보병 30~50명 정도를 태울 수 있다고 한다. 방수설계가 되어 있어 수심 4m까지 도하가 가능하다. 신형 전차는 KV-1 보다 길이가 3m 더 길어서 기존의 대전차호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연료 소비량은 KV-1 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습니다. 2차대전의 승패는 여기서 갈린 것 입니다. 파시스트 다 죽었습니다...


이 증언에 따르면 ‘스탈린’ 전차는 이렇게 생겼다고 합니다.

출처 : RG242 T78 R619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김일성은 1971년의 대선을 어떻게 봤는가?

2010년에 나온 윌슨 센터의 North Korea International Documentation Project Working Paper 2호를 읽었습니다. 이글이 막 발표됐을 때 아는 분이 흥미로운 글이니 한번 읽어보란 말을 하셨는데 한참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뒤늦게 읽게 되는군요. 이 논문에서는 1971년 6월 10일에 있었던 김일성과 차우세스쿠의 회담 녹취록을 인용하고 있어서 함께 읽어 봤습니다. 전반적으로 김일성의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이 드러나는 재미있는 내용이더군요. 슬슬 경제 성장의 동력도 떨어져 가고 경제개발 계획도 꼬여가고 있는 상황인데 차우세스쿠 앞에서 엄청난 자신감을 보여줍니다. 사실 김일성은 1980년대 까지도 한국의 경제성장을 역전할 수 있다는 허세를 부리고 있을 정도로 상황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으니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1971년 대선에 대한 김일성의 평가가 재미있어서 조금 인용해 봅니다.


(전략)


박정희는 헌법을 고쳐서 대통령 선거에 세번째로 출마하려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야당들은 선거를 보이콧 했고 박정희는 단독으로 선거를 진행하려 했습니다. 박정희는 헌법을 개정하려 하면서도 언제든지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게 아니라는게 드러났습니다. 야당들은 힘을 합쳐서 진보적이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민주전선을 조직했습니다.


학생들도 자체적으로 조직화했고 모든 대중단체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박정희를 제거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통일 전선이 구축된 것 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김대중이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김대중은 훌륭한 공약을 몇개 내걸었는데 통일에 관한 부분은 우리의 입장과도 비슷합니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다면 이 지역의 모든 분쟁을 해소할 것이며 이북과의 통일을 지지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다음으로는 경찰과 중앙정보부를 개혁하고, 군대를 감축하는 한편 문민정부를 세울 것이며, 외국 자본의 침투를 줄이는 한편 민족자본을 보호 육성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미국 및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는 한편 중화인민공화국 및 소련과도 외교관계를 가질 것이라 하였습니다. 김대중은 남조선의 모든 대중단체 및 사회단체에 광범위한 민주적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김대중의 공약에서 빠진 것이 한가지 있다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의 공약은 남조선의 민중들을 움직였습니다. 심지어 박정희는 지난 선거에서 패배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선거 분위기에서 김대중은 서울시에서 전체 득표의 80%를 차지했습니다. 김대중은 시골에서도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당선 가능성에 위협을 느끼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는 한편 선거를 조작해 120만표 차로 승리를 했습니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총선이 열렸습니다. 총선에서도 선거전은 매우 치열했습니다. 박정희는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지만 또다시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총선에서 박정희 측은 113석을 확보했고 민주진영은 89석을 확보했습니다.


이 때문에 남조선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더욱 더 강해졌습니다. 거의 2개월에 걸쳐 수많은 학생과 청년들이 치열한 투쟁에 가세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만약 미국이 남조선에 계속 주둔한다면 선거를 통한 승리는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통일 문제는 미군 문제와 연동되어 있는 것 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남조선에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군대가 사라진다면 남조선 인민들은 주체적으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권을 세울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선다면 북남간의 관계가 가까워 질 것이고 전쟁을 하지 않고도 조국을 통일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우리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이 물러가고 일본이 미국을 대신하지 않을 경우에 통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일본은 남조선에 대한 경제적 투자 같은 방식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토(佐藤榮作)는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가장 반기는 사람일 것 입니다. 박정희는 식민지 시기 일본군의 간부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토는 박정희를 높게 평가합니다. 사토는 7월 1일에 있을 박정희의 취임식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사토가 참석한다는 사실이 공표되자 서울 대학교와 다른 고등교육기관은 물론 국회에서도 이를 성토하는 선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남조선의 정세는 이렇습니다. 동지께서는 최근 최고인민회의에서 남조선의 혁명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문제와 통일에 대한 선언이 채택된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박정희만 몰아낸다면 우리는 통일을 원하는 모든 세력과 통일 문제를 논의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정세는 이렇습니다. 남조선의 정세 변화는 민주적인 세력의 투쟁과 남조선 인민의 투쟁에 달려있습니다.


해당 인용문을 모두 읽으면 느끼시겠지만 뭐랄까요. 모든 상황을 자신이 유리한대로 해석하려는 김일성의 사고방식은 참 대단합니다. 이런 인간이 지도자로 수십년을 통치했으니 북한이란 국가가 제대로 될 수 있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