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5일 일요일

스탈린그라드 시가전 초기 소련군 부대의 무장 상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초반 장면이 너무나 강렬했던 탓에 이후에도 빈손으로 소리만 지르며 달려가다 총을 맞고 고꾸라지는 소련군 보병에 대한 묘사는 게임과 같은 몇몇 대중매체에서 재생산 됐습니다. 실제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연구한 미국의 군사사가 데이빗 글랜츠는 이 영화의 모델이 된 제284소총병사단의 경우 3개 연대 중 1개 연대만 소총을 지급받은 상태였다고 지적하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다른 소련군 부대들의 무장 상태는 어땠을까요?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외곽 지역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시가지를 공격하기 직전이었던 1942년 9월 11일 기준으로 소련 제62군 예하 전투부대들의 병력 및 장비 현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표1. 소련 제62군 소속 부대들의 병력 및 장비현황(1942. 9. 11)
부대명
병력
마필
소총
기관단총
경기관총
중기관총
박격포
야포
대전차총
33근위소총병사단
864
60
189
92
4

21

11
35근위소총병사단
454

271
115
2
1

6
28
87소총병사단
1819
315
509
40
1

13


98소총병사단
465
20
219
20
2



1
112소총병사단
2297
638
1181
117
5
6
11


131소총병사단
2540
443
1918
215
4
3
11

14
196소총병사단
1004
107
605
162
3

3
1
6
229소총병사단
192
48
73
14





244소총병사단
3685
860
989
141
14
5
115
29
130
315소총병사단
2873
333
1797
260
15
10
6
23
126
399소총병사단
565
18







10NKVD사단
8615
406
7069
1080
129
38
102
12
63
10소총병여단
1912
280
1148
18
11
34
26

24
115소총병여단
4868
308
2625
113
100
40
93
30
69
149소총병여단
4125
630
3472
590
115
29
51
23
78
124소총병여단
3607
620
2438
341
84
22
56
25
68
42소총병여단
5032
336







9차량화소총병여단
1073

630
82
39
6
13
2
13
38차량화소총병여단
2370
71
1671

119
6
45
21
48
[표 출처: Алексей Исаев, Сталинград- За волгой дия нас земдли нет (ЕКСМО, 2008) p.161~162]


이 표에 언급된 대부분의 소총병사단들은 8월부터 전투에 투입되었고 9월 초 스탈린그라드 외곽의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완편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화기 조차 편제에 미달하는 사단이 대부분이라는 점은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의 양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스탈린그라드 시가전 중에 증원된 다른 부대들의 무장 상태는 어땠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제284소총병사단은 편제의 3분의 1 수준의 소총만 갖추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부대들은 어땠을까요? 역시 알렉세이 이사예프의 같은 책 170쪽에 따르면 9월 14일 볼가강을 건너 시가전에 투입된 제13근위소총병 사단의 경우 도강 직전인 9월 13일 기준으로 병력 9,603명에 장비는 소총 7,745정, 기관단총 170정, 경기관총 30정, 중기관총 16정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충실한 편이지만 장비 보유량으로 봤을때 공용화기병은 개인 무장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고 기타 비전투병력은 무장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안의 부대들은 볼가강 때문에 보급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 입니다.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밖의 부대들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울 듯 싶군요. 역시 알렉세이 이사예프의 책 184쪽을 보면 9월 15일 기준으로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외곽의 북쪽에서 독일군을 견제하던 제1근위군 예하 사단들의 병력 및 장비 현황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표2. 소련 제1근위군 소속 부대들의 병력 및 장비현황(1942. 9. 15)
부대명
병력
소총
기관단총
경기관총
중기관총
박격포
야포
대전차포
대전차총
173소총병사단
7194
6179
679
166
53
188
44
30
198
207소총병사단
4789
3882
583
57
29
95
37
20
145
221소총병사단
5724
6341
653
142
56
230
41
28
215
258소총병사단
13429
9174
746
225
85
222
44
30
277
260소총병사단
13303
8913
649
207
80
207
44
30
269
273소총병사단
12770
9001
739
200
81
222
44
30
279
308소총병사단
8671
8408
713
195
56
260
44
30
275
316소총병사단
10495
6820
858
188
46
180
44
30
239
292소총병사단
9970
6212
911
210
81
188
44
30
228
[표 출처: Алексей Исаев, Сталинград- За волгой дия нас земдли нет (ЕКСМО, 2008) p.184]

전체적으로 중화기와 공용화기는 충실히 갖추고 있는 편이지만 소총의 경우 편제의 70%선인 사단이 더러 보입니다. 소화기 손실이 엄청났고 이것을 제때 보충하기가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7년 3월 4일 토요일

AHEC 도서관에서 러일전쟁 당시 미국 관전무관 보고서를 판다고 하네요


펜실베니아에 있는 미육군 AHEC에서 도서관 정리를 하면서 헌책들을 대거 방출하고 있습니다.




 목록을 살펴보니 러일전쟁 당시 미국 관전무관이 작성한 보고서(1906년 간행) Reports of Military Observers Attached to the Armies in Manchuria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가 있네요. 1권은 없고 2~5권이 올라와 있는데 가격도 각권 35달러로 괜찮은 편 입니다. 물론 이 책은 E북도 있긴 합니다만 이왕이면 종이책이 좋죠.

 젠장. 내가 갔을땐 왜 이런게 안나온건지.

2017년 3월 2일 목요일

[번역글] 독일의 약점- 유럽의 지도국은 정보 개혁 부터 해야 한다

며칠 전 번역했던 Merkel and Whose Army?와 관련 있는 글을 한 편 더 번역했습니다. 이글은 1월에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실렸던 칼럼인데 안보적 위기 상황에서 무능력함을 드러낸 독일 정보기관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안보적 위기는 난민 유입으로 인한 테러리즘의 창궐이지만, 여기서 지적하는 독일 정보기구의 무능함은 다른 안보위기에서도 마찬가지 일듯 싶습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독일이 안보적으로 무능해 진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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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슈타인베르크Guido Steinberg


2016년 12월 19일 독일은 최초로 이슬람주의자의 대규모 테러 공격을 받았다. 튀지지 출신의 ISIS 지지자 아니스 아므리는 트럭을 몰고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광장을 공격해 12명을 죽이고 53명에 부상을 입혔다. 과거 서베를린 중심가에서 벌어진 이 공격으로 독일에서는 어떻게 테러에 대응해야 하는지 격렬하고 신경질적인 논쟁이 일었다. 이 논쟁의 결과는 아마 2017년 9월에 있을 독일 총선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독일 사법집행기관이 테러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제 독일에서는 국내 안보조직을 신속하고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현 체제에 만족하는 베를린과 대부분의 지역 정치인들은 독일이 극우 포퓰리즘과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두개의 위협으로 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국내 안보조직을 완전히 개편해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예외는 바이에른 정도 이다. 만약 독일 중앙정부가 현재의 방향을 유지한다면 조만간 총선에서 현 집권당이 패배할 것이며 아마도 더 많은 테러 공격이 발생할 것이다.


독일은 위기에 처해서도 허세를 부리고 있다
독일은 이미 2007년 부터 지하디스트의 테러 위협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때 미국 NSA가 제공한 정보 덕분에 독일 정부는 알 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세명의 조직원으로 이루어진 지하드 그룹인  ‘자우어란트 집단’의 테러 음모를 저지할 수 있었다. 자우어란트 집단은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 등 독일내에 있는 목표를 공격하려고 했다. 당시 독일은 이웃의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훨씬 작은 테러 위협을 받고 있었다.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 훨씬 오래 전 부터 북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의 옛 식민지로 부터 유입된 지하디스트 조직들이 준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의 무슬림 집단은 대부분 터키 출신이어서 아랍 출신들에 비해 지하디스트가 되는 경우가 훨씬 적었고, 시기도 늦었다.

하지만 이런 유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남아시아나 중동으로 성전을 치르러 가는 독일 무슬림의 숫자는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2010년에 이르자 파키스탄에서 준동하는 서방 출신 지하디스트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것은 독일인 무슬림이었다. 알 카에다에 가입한 몇몇 독일인 무슬림은 독일에서 테러를 저지르기 위해 귀국했다. 하지만 CIA와 NSA의 노력으로 이런 시도는 대부분 사전에 적발됐다. 이 중 하나가 2011년에 일망타진된 뒤셀도르프 테러단이다. 2010년 초 지하디스트의 위협은 잠시 가라앉았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ISIS가 준동하면서 젊은 독일 무슬림들이 선동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초기에 시리아로 향한 독일 무슬림들은 대개 바샤르 알 아사드에 맞서 싸우는 수니파 무슬림 동포들을 돕겠다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곧 샤리아에 따른 통치를 내세운 이슬람 국가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동기를 제공했다. 2017년 초 현재 약 900명의 독일 무슬림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론 독일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시리아에서 돌아온 지하디스트들이 국내 정치에 심각한 위협이 되리라는 예측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와 벨기에의 테러 공격처럼 독일에서 2016년에 테러를 저질렀거나 테러 음모를 꾸민 무슬림은 대부분 2014~2015년에 걸쳐 유럽에 유입된 아랍이나 북아프리카 출신이었다. 이 테러리스트들은 2014년 시작된 난민의 물결에 섞여들어왔으며, 2015년 9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발칸반도를 통해 유입된 난민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서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ISIS는 메르켈이 제공한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경험이 풍부한 테러리스트들을 보냈다. 그 중 하나가 2015년 11월에 프랑스에 발생한 테러였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은 벨기에와 독일에서도 테러를 준비했다. 또 ISIS는 독일에서도 새로운 테러리스트들을 충원하려 했다. ISIS는 난민들이 자신들을 받아준 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난민사태로 인해 ISIS 추종자들은 수많은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지난 12월 베를린 테러 직전까지 벌어진 일이다.


신속하고도 촘촘한 감시망이 필요하다
독일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보 수집을 거의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해 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독일이 전통적으로 정보기관을 불신해온데 있다. 20세기 나치의 게슈타포나 동독의 슈타지와 같은 조직이 남긴 잔재였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테러 이후에도 독일 정부는 자체적인 정보 조직을 강화하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자국의 안보를 동맹에 의존했다. 미국이 독일내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적발하려고 했을때 독일 정부가 한 일은 기껏해야 이미 잠재적인 위협으로 인식된 인물에 대한 감시를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중동과 남아시아에서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위협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2016년에 적발한 테러 위협들을 살펴보면 독일이 얼마나 정보를 외국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다. CIA와 NSA가 독일 정부에 테러 첩보를 알려서 독일은 테러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도 미처 정보를 파악 못한 경우에 독일 정부는 그저 운에 모든 것을 맡겨야 했으며 테러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예를들어 미국 정부가 독일 정부에 시리아 ISIS 소속의 야베르 알 바크르가 베를린-테겔 공항을 공격할 것이란 정보를 제공한 덕분에 독일은 2016년 10월 라이프치히에서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측이 외부로 부터 정보를 받지 못한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알레포에서 온 시리아 ISIS 소속 무함마드 달렐이 2016년 7월 안스바흐 음악축제에서 테러에 실패한 이유는 그가 설치한 폭탄의 기폭장치가 고장났기 때문이었다.

현재와 2015년 이전의 상황을 비교했을때 가장 큰 차이는 미국과 유럽 모두 난민 사태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로 이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파리 테러 가담자들은 지속적으로 상호 교류를 하면서 시리아와 이라크를 오가던 ISIS 지휘관과 접촉했지만 유럽의 정보당국은 물론 NSA 조차 이들이 나눈 메시지를 감시할 수 없었다. 현재 사용되는 통신의 암호화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NSA의 감시망을 피해 파리 테러와 같은 공격을 계획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 유럽에는 지하디스트가 급증했고 ISIS의 테러 계획 수립도 훨씬 정교해졌다. 게다가 싸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널려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크게 유리한 상태다.

아니스 아므리가 저지른 테러 처럼 독일의 정보 및 안보 기구가 실패한 것은 문제다. 그는 2016년 2월 이래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그는 튀니지로 송환되지도 않았고 난민 신청이 기각된 뒤 체포되지도 않았다. 이런 심각한 안보적 참사가 있을 수 있는가. 아니스 아므리는 독일의 ISIS 지지자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고 그가 테러를 준비한다는 첩보까지 있었지만 2016년 9월 이래 그에 대한 사찰은 중단된 상태였다.


법치국가를 재건하자
베를린 테러 이후 독일 정부는 여러가지 후속조치를 취했다. 그 중에는 정부당국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에 전자 팔찌를 채워 감시하고,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 중 안보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자는 체포한다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이지만 너무 늦었다. 이보다는 독일의 국내 안보 체계를 총체적으로 개혁해 앞으로 닥칠 테러를 막아내는게 필요하다.

독일 내에서 지하디스트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중구난방인 조직들을 중앙집권화 해야 한다. 각 주정부는 자체적인 정보 기구와 수사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는 바이에른 주정부 처럼 강력한 조직을 갖춘 곳도 있고 베를린 처럼 형편없는 수준인 곳도 있다. 각 기관들의 협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고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아므리의 테러 사태때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모든 정보기관과 경찰 조직은 업무 효율화를 위해 연방정부 산하의 헌법수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과 연방범죄수사청Bundeskriminalamt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또한 연방정부의 정보조직도 강화해야 한다. 독일 내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고 해외의 테러리스트들과 자유롭게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은 심각한 사태다. 특히 최근 수년간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가 중동에 있는 상부조직과 수개월간에 걸쳐 연락을 주고 받은 뒤 일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독일 정보기관은 수년 내에 역량을 강화하고 연방정부는 정보기관의 활동 강화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미국 NSA의 광범위한 활동 범위와 역량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하지만 2016년에 실패한 것을 교훈 삼아 발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에는 난민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2016년에는 280,000명에 그쳤다. 하지만 이것은 발칸 반도의 국가들이 국경을 통제했고 터키가 에게해를 통해 난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유입된 뒤 북상하는 난민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언제든지 폭증할 수 있다. 게다가 솅겐 조약 가맹국간의 정보 교류가 부실하고 독일 당국은 현재 다른 유럽연합 국가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위에서 언급한 개혁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낮다. 왜냐하면 정보 조직을 중앙집권화하자고 제안하면 강력한 저항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방 내무장관 토마스 드 메지에르가 2017년 1월 위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제한적인 개혁을제안했지만 각 주정부가 반발해 물거품이 됐다. 또한 독일의 안보 체계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혁하려면 정치 체계 부터 바뀌어야 한다. 즉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거나 더 많은 테러 공격이 있기 전엔 어렵다는 뜻이다. 유감스럽게도 독일의 엘리트들은 이런 충격이 없는 이상 현상유지에 만족할 것이다.

2017년 2월 27일 월요일

[번역글] Merkel and Whose Army?

폴더를 정리하다가 번역하려고  긁어놨다가 까맣게 잊어먹은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트럼프 당선 직후 멘붕해서 독일 찬양가를 부르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독일 연구자의 포린 폴리시 칼럼 “Merkel and Whose Army?”인데 내용이 하드 파워를 중시하는 제 취향에 딱 맞아 번역을 해 봅니다. 자국의 문제를 냉철하다 못해 시니컬하게 비판하는 점이 아주 좋습니다. 제목은 좀 의역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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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그런데 군대는?


한스 쿤드나니Hans Kundnani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엄마’라고 불린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직후 전 세계의 부정적인 반응을 고려하면, 조만간 다른 나라들도 메르켈을 그렇게 부를지 모른다. 트럼프가 미국이 “자유세계의 지도국” 역할을 그만둬야 한다는 뜻을 내비칠 수록 메르켈의 독일을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 본인도 인정한 것 처럼 그런 생각은 말도 안된다. 메르켈은 지난 11월 20일 총리 4선에 도전하면서 한 연설에서도 이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독일의 국력이 항상 유럽이라는 지역에 국한됐다는 점이다. 독일은 전 세계적 규모의 강대국이 아니며, 아시아에 있는 취약한 서방의 동맹국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독일은 미국을 대신해 ‘자유 유럽의 지도국’ 정도나 될 수 있을까 싶다.


사실 독일은 ‘자유 유럽의 지도국’ 조차 버겁다. 만약 리더쉽이라는 단어를 순수하게 ‘도덕적 상징성’에 국한한다면 독일은 그 기준을 충족할 지 모른다. 물론 그러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리더쉽에는 냉전 이래로 다른 국가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확고한 군사적 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독일은 그럴 능력이 없다. 독일의 군사력은 최소한도의 수준인데다 독일인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화적 국력 조차 발휘할 의지가 없다.
뉴욕 타임즈의 캐롤 지아코모는 미국 대선 직후 독일이 “나토에서 미국을 대신할 지 모른다”는 예측을 했다. 하지만 어떤 나라가 장갑차에 기관총 대신 검은색으로 칠한 나무막대기를 달고 다니는 나라에게 그 역할을 맡기려 들겠는가. 독일이 2014년 나토 훈련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그냥 단순히 독일과 미국의 국방비만 비교해도 답이 나온다. 2015년 기준으로  IISS의 통계를 보면 미국의 국방예산은 5975억 달러였다. 하지만 독일의 국방예산은 367억 달러로 미국의 1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의 국방예산은 프랑스(468억 달러)나 영국(562억 달러) 보다도 적다. 게다가 프랑스와 영국은 미국과 같은 핵무기 보유국이다. 현재 프랑스와 영국의 정치적 상황이 엉망이긴 해도, 군사력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나라가 독일 보다는 ‘자유세계의 지도국’에 더 적합할 것이다.


독일의 국방예산 규모는 독일의 경제력과 비교했을때 더 심각하다. 나토 가맹국들은 GDP의 2퍼센트를 국방예산으로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하면 오직 그리스, 에스토니아, 폴란드, 영국 등 4개국만이 이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독일은 고작 1.3퍼센트만 국방예산으로 지출했는데 이것은 나토 가맹국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1.2퍼센트 미만으로 까지 떨어졌다. 겨우 올해에 와서야 메르켈은 GDP의 2퍼센트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공표했다.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 독일 총리는 재차 이 목표를 표명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 정부가 실천한 것은 2017년에 국방예산을 8퍼센트 증액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GDP의 고작 1.22퍼센트가 됐다.


국방예산도 그렇고 독일군의 능력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냉전당시 독일연방군은 소련의 유럽 침공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약 50만의 병력과 레오파르트2 전차 2,50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독일연방군은 176,752명과 레오파르트2 전차 200대로 줄어들었다. 병력면에서 보면 130만에 달하는 미군의 7분의 1 남짓한 규모다. 독일 공군은 109대의 유로파이터 타이푼과 89대의 구식 토네이도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미국 공군은 수많은 F-35, F-22, F-16, F-15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을 비교하면 그 격차가 더 크다. 미 해군은 12개 항모전투단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해군의 가장 강력한 군함은 프리킷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달랑 10척이다.


올해에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독일 국방부장관은 향후 15년간 군장비에 1300억 유로(14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예산은 신규장비 구매에 편성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산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장비를 유지보수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일련의 보고서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장비들은 2010년 이래의 국방예산 감축으로 운용할 수 없게된 것들이다. 즉 독일군은 전투력을 증강하는게 아니라 겨우 현존 전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예를들어 독일 공군의 유로파이터 109대 중 42대, NH90 헬리콥터는 겨우 2대만 운용가능한 상태이다. 그리고 2014년 나토훈련에서 있었던 악명높은 검은 나무막대기 사건의 원인은, 독일연방군 내부 보고서를 인용한 독일 공영방송 ARD 보도에 따르면 중기관총이 부족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독일의 낮은 국방예산 수준과 독일연방군의 부족한 능력은 독일의 전략 문화에 그 원인이 있다. 독일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원인이 독일이 과거 일으킨 군사적 재난에 대한 반동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현상은 지난 25년간 진행되었던 일이다.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첫 10년간 군사력 사용 문제에서 프랑스 및 영국과 협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경향은 독일이 1999년 코소보 전쟁에 개입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독일의 대외정책에서 “또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구호가 “아우슈비츠를 되풀이 하지 말자”로 바뀌는 듯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의 군사 개입이 실패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또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독일은 2011년 리비아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독일인들이 이 결정을 지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전략적 충격 조차 독일인들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못했다. 지난 여름 독일 외무장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는 독일도 참여한 나토 군사훈련을 ‘무력 도발’이라고 했다.


독일인들은 자국을 평화세력(Friedensmacht)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단어는 원래 냉전당시 동독이 자국을 칭하면서 사용했으며 1980년대에 녹색당에서 활동하다가 극우 정당으로 전향한 전직 독일공군 대령 알프레트 메흐터샤이머가 1993년 독일에 적용한 것이다. 독일인들은 미국 처럼 군인을 영예롭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 군인들은 공항에 들어설 때 미국인들로 부터 박수 갈채를 받지만 독일 군인은 그럴 일이 없다. 그래서 독일 연방군은 모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국방부는 모병을 위해 TV 리얼리티 쇼 까지 끌어들였다. 지난 5월 라이엔 국방장관은 2023년까지 독일군을 7,000명 증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독일인들의 태도도 조금 바뀐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독일연방군사사-사회과학 연구소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설문 대상자의 절반이 국방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이것은 2000년 이래 처음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독일 연방군 증강을 지지했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발트 3국이나 폴란드 처럼 러시아를 위협으로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여론이 급변한 원인은 난민 문제였다. 난민 문제를 러시아 보다 독일에 더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 보다 난민이 독일을 휩쓰는 것을 더 우려해 안보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듯 하다. 최근 정부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인의 다수는 안정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훈련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전투 작전을 중요시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21세기에는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한 사건이나 아시아에서 전개되는 영토 분쟁과 군비경쟁에 미뤄 볼때 설득력이 없다. 독일 처럼 수출, 즉 해외 시장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국가에게 있어 경제력은 국력의 근원이면서 약점이다.


독일이 유럽 바깥에서는 군사력이건 경제력이건간에 하드파워를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메르켈은 기껏해야 ‘자유 세계의 도덕적 지도자’ 정도나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유로 위기에서 메르켈이 보인 행태를 보면 그 조차도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메르켈을 성토할 그리스인, 스페인인, 이탈리아인이 넘쳐난다. 설사 메르켈이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된다 해도 전체주의의 부활을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보다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교황에 대해 했다는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래 교황은 몇개 사단이나 가지고 있소?”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조만간 출간될 기대되는 책 몇 권


 흥미로운 책이 홍수와 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더 눈에띄는 책이 있습니다.


1. Kursk 1943: Die größte Schlacht des Zweiten Weltkriegs, Roman Töppel

저자인 로만 퇴펠은 몇년전 있었던 무장친위대에 대한 학술회의에서 쿠르스크 전투 당시 독일 국방군 소속 기갑부대와 무장친위대 소속 기갑척탄병사단의 전투력을 비교한 작전사연구를 발표한 사람입니다. 다음달에 출간될 예정인 Kursk 1943: Die größte Schlacht des Zweiten Weltkriegs는 군사서적을 꾸준히 출간하는 페르디난트 쇠니히 출판사의 새 시리즈, Schlachten – Stationen der Weltgeschichte의 첫번째 세 권 중 하나입니다. 다른 두 권은 러일전쟁의 쓰시마해전, 미국 내전의 게티스버그 전투입니다.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가장 최신 저작으로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총괄하는 책이 되리라 예상됩니다. 원래는 올해 1월 출간 예정이었다가 3월로 일정이 조정됐습니다.


 2. Krieg in der Geschichte: Die Waffen-SS: Geburt einer Legende: Himmlers Krieger in der NS-Propaganda, Jochen Lehnhardt

 이 책도 역시 다음달에 페르디난트 쇠니히 출판사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독일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선전기구의 프로파간다 정책에서 무장친위대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자인 요헨 렌하르트도 위에서 언급한 로만 퇴펠 처럼 무장친위대에 대한 학술회의에서 독일의 프로파간다 정책과 무장친위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논문의 확장판인듯 싶습니다. 요헨 렌하르트의 논문 "Die Inszenierung des nationalsozialistischen Soldaten- Die Waffen SS in der NS-Propaganda"는 전쟁당시 독일의 선전정책이 무장친위대, 특히 친위대의 엘리트부대들을 부각시키면서 무장친위대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확산시켰고, 전쟁 중 형성된 이미지가 현재까지 이어진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꽤 흥미로운 저작이 될 듯 싶습니다.


 3. The Battle of Kursk: Controversial and Neglected Aspects, Valeriy Zamulin

 러시아의 저명한 군사사가 발레리 자물린의 논문집입니다. 올해 6월에 출간될 예정인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을 듯 해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어를 못해서 영어로 번역되는 것 만 읽을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참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