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3일 수요일

영국 공군의 불필요한 활약


독일 군사사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고통은 1945년 영국 공군의 포츠담 폭격으로 독일 육군문서보관소가 파괴되어 수많은 사료가 소실되었다는 점 입니다. 이것은 현재 연대급 단위의 미시적인 부대기록까지 충실하게 남아있는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와 대비됩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2차대전 시기만 하더라도 사단급 기록조차 1944년 이후로 넘어가면 양이 급감하는 경향이 나타나니까요.

아래의 문서들은 미국 NARA소장 독일 노획문서 RG242 T315 R111의 독일 제3기갑사단 작전참모처 문서(원 소장번호 W1029a~W1029-5)의 일부입니다. 불 붙은 사단일지를 간신히 살려놓은 것을 알수 있는데 이것과 함께 수집했던 4기갑사단 일지의 경우는 상태가 더 좋지 않습니다.




2016년 11월 8일 화요일

판터 관련 서적에 관한 잡담


 판터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된 책을 꾸준히 모으는 중인데 올해 출간된 Abteilung502 출판사의 Panther: External Appearance & Design Changes(로디 맥두걸, 마틴 블록 공저)은 흥미로운 정보가 많지만 제 관심사인 생산 및 제작공정에 관해서는 살짝 비껴가는 애매한 물건이었습니다. 각 형식의 공장별, 생산 시기별 외형 변화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춘 책이어서 그런지 외형에 대한 연구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새로운 정보가 없습니다. 물론 외형의 변화에 대한 연구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판터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최신의, 가장 훌륭한 저작입니다만 이런 정보는 디테일을 추구하는 모델러들에게 적합한 내용이지요. 물론 저도 재미로 모형을 즐겨만들고 특히 판터 조립을 좋아합니다만, 이 책에 소개된 수준으로 디테일한 조립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실력도 시간도 없지요^^

 개인적으로는 2년 전에 Schneider Armor Research에서 나온 프랑크 쾰러의 Panther: Meilenstein der Panzertechnik에 좀 더 좋은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프랑크 쾰러는 판터 복원 및 정비에 직접 참여한 경력자 답게 기술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형식별로 서술하는 기존의 판터 관련 저작들과 달리 엔진, 변속기, 유압계통 등 전차의 구성품 별로 설명하는 개성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지요. 특히 엔진, 변속기 등 주요 구성품의 기계적 수명을 정리한 부분이 꽤 유용합니다. 무기 체계의 신뢰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그 체계를 이루는 각 구성품의 기계적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두리뭉실하게 '신뢰성이 높다' '신뢰성이 낮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걸 생각하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크 쾰러는 페터 뮐러와 에디 에버를 두 사람이 함께 집필해 출간 예정인 두 권짜리 저작 Panzerkampfwagen Panther, Von allen Gegnern gefürchtet에도 참여했는데 이 책은 어떤 구성일지 궁금합니다. 아마 페터 뮐러와 볼프강 치머만 공저 Sturmgeschütz III. Rückgrat der Infanterie와 유사한 구성이리라 추측합니다. (Sturmgeschütz III. Rückgrat der Infanterie는 영어판도 있죠.) 프랑크 쾰러나 페터 뮐러는 선배격 연구자들과 비교하면 주석을 충실하게 달아 다른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연구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물론 종합적인 측면에서는 토마스 젠츠의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 발터 슈필베르거의 Panzer V Panther und seine Abarten가 여전히 유용합니다.  판터의 각 형식별로 기술적 특성, 생산 및 배치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구성은 매우 모범적입니다. 물론 이 두사람은 주석을 제대로 달지 않는다는 결점이 있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슈필베르거와 젠츠 두 사람이 독일 전차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를 충실하게 해 놓은 덕분에 개설서로서 이 두 권의 책을 뛰어넘을 만한 책은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듯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외형의 변화를 자세하게 파고든 로디 맥두걸의 저작은 꽤 개성있는 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좀 애매한 존재입니다만^^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이번에 번역한 『전쟁론 읽기』에 대한 지적


감사하게도 얼마전 번역한  『전쟁론 읽기』에 대한 전문가 분들의 지적을 받았습니다. 부끄럽게도 번역자인 저의 『전쟁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기인한 것들입니다. 지적받은 문제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수정이 필요한 것들은 추후 2쇄 발행 등 정정할 기회가 있으면  반영하여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2쇄를 발행할 만큼 판매가 되면 좋겠군요.

확실히 '이론'을 다루는 책은 번역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2016년 10월 27일 목요일

이 블로그도 10년이 됐군요

구글 블로거로 옮긴지 10년이 됐습니다. 네이버 블로그까지 포함하면 블로그를 굴린게 13년 정도 되네요. 처음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하다가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아 이글루스로 옮겼다가 10년전에 구글 블로거로 옮겨서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요 몇년새 먹고사는 일 때문에 포스팅이 뚝 떨어지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그동안 굴려온 관성으로 굴러가긴 하는군요. 재미있는 자료와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으니 블로그에 올릴 소재가 떨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제 시간이 문제죠. 으흐흐. 한 1년 책이나 읽으면서 블로그질이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원래는 10주년을 맞아 블로그 오시는 분들께 책도 돌리고 맥주도 한잔 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먹고사니즘의 압박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책 나눠드리는 자리는 숨통 트이는대로 마련해 보고 싶네요. 어쨌거나 10년동안 굴리다보니 꽤 애착이 가는 블로그라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굴려가고 싶습니다. 이 별볼일 없는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역사서술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관점을 보여주는 언론기사 하나

오늘 흥미로운 언론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중국 법원이 설사 '학문적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역사적 영웅'들을 모독하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입니다. '국가적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 자체를 뿌리뽑으려는 아주 졸렬한 태도인데,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군요.




특히 이 기사에서 다음 부분이 의미심장합니다.


청신원(程新文) 최고인민법원 민사1부 재판장은 "학술연구, 상업적 판촉 등을 명분으로, 인터넷 매체들을 주수단으로 삼아 영웅적 인물을 비방, 모욕하거나 그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하고 타인의 정신적 가치를 약화하는 데서 나아가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해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각 법원이 판결을 통해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의 정신을 명백히 밝혀 사회의 영웅 숭상, 수호, 학습, 관심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의 집권을 합리화하는 신화 중 다수가 심각한 수준의 역사왜곡에 기반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직된 분위기가 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학자들이나, 중국 학자들이 외국에 발표하는 저술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 걱정이 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리샤오빙(李小兵)의 China's Battle for Korea: The 1951 Spring Offensive를 읽고 인민해방군 출신의 연구자도 해외에서는 자국 군대의 한계를 비판하는 등 꽤 자유롭게 발언을 한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이런 연구자들이 중국 본토의 이런 퇴행적 기류에 휩쓸리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사족 하나- 위에서 언급한 리샤오빙의 China's Battle for Korea: The 1951 Spring Offensive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1951년 5차 공세 패배 당시 인민해방군 내의 심각한 군기이완(장교 살해, 집단 탈영 등), 미군이나 영국군과의 교전에서 발생한 심각한 손실을 지적하는 점 등 솔직한 서술이 인상적입니다.



독일어 군사용어에 관한 잡담


 외국어의 개념을 한국어로 옮긴다는건 꽤 골치아픈 문제입니다. 외국어 단어는 그 단어가 사용되는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옮길때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꽤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아는 분과 독일어 군사용어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가 이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예를들어 저는 Landwehr를 그대로 직역해서 '향토방위대'라는 단어로 옮겼는데 진중근 중령님은 『독일군의 신화와 진실』에서 이것을 '지방군'으로 옮기셨습니다. '지방군'으로 옮기는 쪽이 영미권의 민병대로 부터 영향을 받은 Landwehr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적합합니다. 문제는 Landwehr를 '지방군'으로 옮길경우 Landsturm을 어떻게 옮겨야 할 지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프로이센의 병역법에서는 현역을 보조할 예비군으로서 Landwehr와 Landsturm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Landsturm은 2차대전 시기의 '국민돌격대'와도 이어지게 되지요. 그래서 저는 일단 Landwehr는 '향토방위대'로, Landsturm은 '향토돌격대'로 옮겼습니다. 아마도 당분간 저는 계속해서 이 용어를 사용할 것 같습니다.

 현재 독일 연방군이 사용하는 용어는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에서 한국어로 옮긴 것이 있습니다만, 2차대전과 그 이전의 과거에 사용되던 역사적인 군사용어 중에는 우리말 번역이 까다로운 것 들이 많습니다. 독일어 사전에서 제대로 다루고 있지도 못하고요. 군사번역을 하는 다른 분들과 번역자들이 공유해서 사용할 수 있는 용어집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가끔 하긴 합니다만 아직까지 제대로 추진하고 있질 못 합니다. 뭐, 저도 번역이 본업은 아니니까요. 군사용어 위키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하신 분도 계신데, 만약 실행할 수만 있다면 이게 가장 좋은 방안이 될 것 같습니다.

2016년 9월 29일 목요일

한국전쟁 시기 공산군의 F-86 운용?


정보문서들을 읽다 보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 중에는 나중에 사실로 드러난 것도 많고, 단순한 착오나 역정보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지요. 아래에서 인용하는 미공군 정보보고의 진위는 제가 아직 확인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꽤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소개를 해 봅니다.


적군이 F-86 기종을 운용할 가능성

(1952년) 9월 26일 15시 30분경 정주(定州) 남서쪽 5마일 지점 상공 22,000피트에서 두 대의 F-86이 적대적인 F-86 한대로 부터 사격을 받았다. 피해는 없었다. 
이 두대의 F-86은 같은 날 15시 35분경 순천(順川) 서쪽 5마일 지점 상공 28,000피트에서 다시 적대적인 F-86 한대로 부터 공격을 받았다. 아군을 공격한 항공기에는 뚜렷한 표식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조직에 속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아군의 F-86한대가 오른쪽 주익에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 두 차례의 공격 모두 같은 F-86이 한 것으로 추정된다. 

9월 29일 13시 45분경 신의주 동쪽 30마일 지점에서 본대와 떨어져 비행 중이던 한 대의 F-86은 후방에서 접근 중이던 두 대의 F-86과 합류하려다가 선두에 있던 F-86이 기종을 알 수 없는 항공기에 사격을 가하는 것을 목격했다. 같은 시각 아군의 F-86한대는 두 대의 F-86으로 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아군의 손실은 없었다. 

극동공군사령부 정보참모부는 과거에도 적대적인 F-86으로 부터 공격받았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초의 보고는 1952년 2월 3일에 있었다. 

공군본부 정보참모부의 평가: 9월 18일에 전투 지역에 있던 한대의 T-6과, 같은 지역에 있던 네 대의 F-80은 공격을 가하지 않는 한 대의 F-84와 조우했다. 직후 검증을 거친 결과 그 시각 해당 장소에는 아군의 F-84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같은날 아군의 F-86 한대가 구성(龜城) 상공에서 두 대의 F-80을 목격했다. 직후 제5공군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그 시각 해당 장소에는 아군의 F-80이 없었다. 그러므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 입증하거나 이 정보가 잘못됐다는 점을 밝힐 수 없는 이상, 공산군 측이 소수의 F-80, F-84, F-86을 재생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난 2년간의 전쟁으로 적군의 점령지역에 많은 수의 해당 기종이 추락했기 때문에, 아군의 기종을 재생하는데 충분한 부품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Directorate of Intelligence USAF, Daily Korean Resume”(1952. 10. 1), Record Group 341: Records of Headquarters U.S. Air Force (Air Staff), 1934 - 2004, Records of the Office of the Director of Intelligence, Office of the Deputy Chief of Staff, Operations 1942~56. p.2,


2016년 9월 23일 금요일

제가 번역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그동안 블로그에는 제가 번역한 책 이야기를 거의 안했던 것 같습니다만, 이번에는 책 광고를 좀 해야 겠습니다^^



이번에 번역한 책은 유명하지만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그 『전쟁론』의 해설서입니다. 저자인 베아트리체 호이저 박사는 영어권에서 활동하는 독일인 연구자입니다. 책은 영어판이 먼저 나왔고 독일어 증보개정판은 몇년 뒤에 나왔습니다. 한국어판은 독일어 증보개정판을 옮긴 것 입니다.

번역 자체는 꽤 일찍 시작했는데 개론서라 그런지 다루는 범위가 넓어서 번역하는 동안 애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영어로 된 책은 몇권 번역했습니다만 독일어 책은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이 책 보다 늦게 시작한 책이 먼저 나오는 참사(?) 까지 있었지요. 제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총력전, 국민동원을 다룬 부분은 비교적 쉽게 번역한 편이지만 뒤로 가면서 냉전기 핵전략 등 평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내용이 나오고는 꽤 애를먹었습니다. 역시 개설서를 쓰거나 번역하려면 많은 공부가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번역을 하면서 『전격전의 전설』로 유명한 진중근 중령님 등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일조각의 편집자 분께서도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영어판과 독일어판의 몇몇 오류를 한국어판에서 바로잡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거의 대부분 일조각 편집부의 꼼꼼한 교정 덕분이었습니다.

다만 번역을 꾸준히 하면서도 실력은 제자리 걸음인 번역자가 문제겠습니다(;;;;;) 꽤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직역투의 문장이 여전히 보이고, 명사를 옮기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꽤 많은 개념, 용어가 등장하는데 몇가지는 일본식 용어가 그대로 사용됐습니다. 감수자 분들의 지적이 있었습니다만 역자의 역량 부족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감수자분들이 지적해 주신 사항이 많은데 역자주와 같은 부분은 모두 반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면의 제한, 역자의 역량 부족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서 자체는 매우 재미있는 좋은 개설서 입니다. 이제 심판의 날이 왔으니 독자분들의 심판을 달게 받겠습니다.

2016년 9월 21일 수요일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에 실린 벌지전투 당시 미 3, 4기갑사단의 전투 데이터



며칠전에 올린 스티븐 잘로가의 저작에 관한 글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표 두 개를 올립니다.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에서 분석에 활용한 벌지전투 시기의 교전데이터 입니다. 지난번 글들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 보고서는 오직 미군의 전투 보고서만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서 교차검증이라곤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이야기 하지요.


BRL798에 실린 벌지전투 당시 미 3기갑사단의 교전 기록은 사례 32부터 54까지 입니다. 제가 참고한 Merriam press에서 발행한 판본에는 34, 36, 38, 45, 50등 총 5건의 사례가 누락돼 있습니다. 추후 원본을 확인할 기회가 있으면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겠습니다. 아래의 표는 해당 교전사례를 일련번호 순으로 정리한 것 입니다. 미군이 교전상대를 판터로 파악한 사례는 노란색으로 표시합니다.


표1. BRL798에 사용된 벌지전투 당시 미 3기갑사단의 교전 데이터

미군 장비 숫자
미군 장비 손실
독일군 장비 숫자
독일군 장비 손실
공격 진영
격파거리
(야드)
미군 장비 형식
독일군 장비 형식
32a
6
2
4
0
독일
2000
M4
TD
판터
32b
5
5
4
0
?
1400
M4
판터
33
?
4
2
0
미국
300
M4
대전차포
35
3
2
1
1
독일
600
M4
판터
37
3
2
2
2
독일
75~400
M4
M5
바주카
판터
39
7
4
2
1
미국
650
M4
M5
대전차포
지뢰
40
16
2
2
0
미국
650
M5
대전차포
(88)
41
14
0
3
3
미국
40?
M5
바주카
4호×1
대전차포×1
42
14
4
1
0
미국
1000
M4
M5
?
43
12
6
7
0
미국
300~1800
M4
M5
전차
대전차포
박격포
44
10
10
7
0
미국
300~1200
M4
M5
판터
대전차포
46
?
0
?
2
미국
500
M4
M5
TD
바주카
자주포×1
4호×1
47
11
2
3
0
미국
800
M4×7
TD×4
대전차포
48
11
3
3+
0
미국
1300~2500
M4×7
TD×4
대전차포
49
?
3
?
0
미국
1500~1700
?
대전차포
51
16
2
2
2
미국
400
M4
M5
자주포(88)
52
8
1
2
2
독일
200
M4
TD
판터
지뢰
53a
6
4
?
0
미국
1000
M4
대전차포
53b
9
9
3
0
미국
200
M5
판터
53c
1
1
3
0
미국
200
M4
판터
53d
1
1
?
0
미국
1200
M4
대전차포
53e
4
3
?
0
미국
1700~2000
M4
판터
54
32
9
3
1
미국
1200
M4
대전차포
[표 출처: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1954. 6), Appendix; Data on World War II tank Engagements: Involving the U.S. Third and Fourth Armored Divisions, (Merriam press, 2012), pp.33~37.]
※ 37번 사례에서 격파된 미군 차종은 M4 1대, M5 1대로 모두 75야드 거리에서 판터에게 격파됐다. 격파된 판터 중 1대는 바주카포에 의해 75야드 거리에서 격파됐으며, 다른 한대는 400야드 거리에서 M4에게 격파됐다.
※ 43번 사례에서 두 대는 300야드에서, 두 대는 1000야드에서, 두 대는 1800야드에서 격파됐다.




다음은 벌지전투 당시 미 4기갑사단의 전투 데이터입니다. 전반적으로 3기갑사단 보다 양호한 전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좀 수상한 사례가 섞여 있습니다. 4기갑사단의 교전 사례는 89~98까지입니다.

표2. BRL798에 사용된 벌지전투 당시 미 4기갑사단의 교전 데이터

미군 장비 숫자
미군 장비 손실
독일군 장비 숫자
독일군 장비 손실
공격 진영
격파거리
(야드)
미군 장비 형식
독일군 장비 형식
89
10
1
?
1
미국
200
M4
M5
판터
90
5
4
2
0
미국
200
M5
자주포
91
16
4
21
0
미국
200
M4
판터
92
15
4
3
3
미국
400미만
M4
판터×2
자주포×1
바주카포
93
5
1
0
0
미국
?
M4
?
94
14
3
1
1
미국
1400
M4
대전차포
95
5
1
1
0
미국
1500
M4
대전차포
96
30
3
1
1
미국
900
M4
자주포
97
4
0
1
1
미국
1300
M4
판터
98a
6
0
5
5
독일
1000
M4
판터
98b
6
0
6
6
독일
100
M4
판터
[표 출처: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1954. 6), Appendix; Data on World War II tank Engagements: Involving the U.S. Third and Fourth Armored Divisions, (Merriam press, 2012), pp.33~37.]
※ 91번 사례에서 원래 손실은 11대이나 이 중 7대는 뒤에 회수했기 때문에 손실을 4대로 계산한 것임. 실제 독일군 장비는 판터가 아니라 1개 중대의 돌격포였음.
※ 92번 사례의 비고란에는 최소 5대 이상의 셔먼이 격파됐다고 적혀있음.(1소대 3대, 2소대 1대, 3소대 숫자 미상)
※ 96번 사례에서는 P-47의 공습도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 자주포의 격파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음.


91, 92번 사례와 같이 이 보고서에는 미군 손실을 축소해서 집계한 흔적이 있습니다. 보고서 작성자가 왜 그런 방식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91번 사례(Chaumont전투)는 독일군의 전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전후 독일군 포로 심문과 노획 문서를 바탕으로 편찬된 미육군 공간사에서는 Chaumont 방어에 투입된 독일군이 제5공수사단 14공수연대의 1개 중대와 11돌격포여단에서 파견된 돌격포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손실은 보병 65명 사상, 셔먼 11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주)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잘로가가 독일군의 손실 집계 방식을 비판할 때 '완전 손실만 집계해 실제 손실보다 축소되어 있다'는 주장을 한다는 것 입니다. 어째서 잘로가는 미국 기록에 그런 사례가 있을때는 같은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집니다.  


주) Hugh M. Cole, THE ARDENNES:  BATTLE OF THE BULGE, (1965, Center of Military History) pp.528~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