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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

클린턴이 대선 출마를 고려하던 무렵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클린턴과 그의 측근들은 대체로 대선의 가능성에 대해 약간 긍정적이거나 최소한 분위기를 살펴보자는 쪽이었다. 대선에 출마한다는 구상은 4년 전 부터 주지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측근들이 고려하던 것 이었다. 클린턴은 1988년 대선을 얼마 앞두고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그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철회해야만 했다. 그러나 대선 출마에 대한 구상을 결코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1990년, 클린턴은 재선 운동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와 그의 참모들은 적절한 시점에 성공적인 전략을 사용했으며 그는 다시 낙승을 거둘 수 있었다. 클린턴과 그의 아내 힐러리, 그의 선거참모인 프랭크 그리어(Frank Greer), 여론조사가인 스탠 그린버그(Stan Greenberg), 그리고 소수의 가까운 측근들은 주지사직을 확보하자 즉시 1992년 대선에 대해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모두 클린턴이야 말로 민주당을 통털아 가장 유능한 중도적 인물이라고 믿었다. 이들의 모임은 1990년 12월 초 부터 시작되었으며 1991년 초에는 더욱 더 심각하게 진전되었다. 그러나 그때 걸프전쟁이 터졌으며 부시의 인기도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별반 잃을 것이 없던 클린턴 조차도 대선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클린턴은 그리어에게 이렇게 물었다.

"미국인들이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대통령을 내쳤다는 이야길 들어 봤나?"

그리어는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 했다고 대답했지만 또한 매우 유동적인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적 대중매체의 위력 때문에 과거의 규칙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다는 것 이었다. 그리어는 정치적 흐름은 훨씬 빨리 변화하고 예측하기 어려워 졌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었는데."

그리어가 대답했다.

"저도 군대에 가지 않았고 베트남전에 반대했습니다."

그리어는 한 반전단체의 활동을 도운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리어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리고 국민 대부분이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클린턴은 마침내 대선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David Halberstam, War in a Time of Peace : Bush, Clinton, and the Generals, (Scribner, 2001), p.19

지원병제를 실시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병역이 한 번 정도는 고려해 봐야 할 문제였다는 점에서 꽤 재미있게 읽은 부분입니다.

최근의 사건들을 보면 군복무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 참으로 뜨거운 감자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회창 같은 거물도 자녀의 병역문제로 격침당했고 최근에는 정운찬 총리가 비슷한 문제로 고역을 치렀지요. 그리고 한 편에서는 또다시 식지않는 떡밥인 군가산점 문제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만약 대한민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지원병제로 전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집니다. 최소한 요즘 처럼 병역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정치인들은 없겠지요. 클린턴은 걸프전 때문에 병역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다지만 특별히 전쟁할 일이 없는 대한민국이라면 의무 병역이 폐지될 경우 정치에 뛰어들려는 엘리트들은 한가지 부담은 덜게 될 것 입니다.

시민의 상당수가 군대와 무관한 상황이 오게 된다면 병역문제는 어떤 존재가 될까요? 의무 병역제는 인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아주 고약한 제도이긴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그나마 엘리트들이 적어도 선거철에는 시민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장치라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물론 병역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치인들이 시민의 눈치를 봐야할 것이 많긴 합니다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병역 만큼 효과적인 것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2009년 3월 27일 금요일

박정희 전역식에 동원된 부대의 규모

박정희는 1963년의 제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군에서 예편합니다. 군부는 대내외적인 압력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민정이양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고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2년 12월에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선거를 국민직선제로 바꿉니다. 이것은 꽤 현명한 선택이었는데 만약 제2공화국과 같이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한다면 군부출신이 집권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제법 꽃 피었을 것 입니다.

하여튼 군부가 지지하는 유력한 카드인 박정희는 대통령선거에 대비하기 위해서 급히 전역합니다. 박정희의 전역식에 대해서 육군본부가 발간한 『육군발전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63년 8월 30일에는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구출하기 위하여 5∙16군사혁명을 통수한 박정희 대장의 역사적인 전역식이 당 군단 관할지역인 강원도 철원 지포리의 TCPC사격장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 전역식에는 제3사단 예하의 3개연대와 포병 11 및 833대대 1개 포대, 제 3전차대대 제 1중대 및 2중대(M-47 27대), 4.2중포 1개 포대, 제 6대전차유도탄 소대의 병력과 장비가 동원되었다.
이 식전의 참가인원은 3부요인, 주한 외교사절, 3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사령관, 주한 미 8군사령관 외에 600여명이 참석하였다.

육군본부, 『육군발전사』2권, 1970, 191쪽

그리고 아래는 전역식 동영상입니다.



인용한 글에 언급된 동원 부대나 링크한 동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상의 대선출정식을 겸한 행사여서 그런지 군부의 과시욕이 느껴집니다. 거의 사단급 병력이 동원된 셈인데 뉴스를 통해 접하는 외국의 4성급 장성들의 전역식 중에서 저 정도 규모의 전역식은 아직 보지를 못 했습니다.

저런 과시성 행사를 위해 동원된 사병들이 불쌍하군요.

참고로, 주한미군 사령관을 역임한 버웰 벨(Burwell B. Bell) 대장의 전역식 동영상을 링크합니다. 박정희의 전역식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군요.

Tennessee: Gen. Bell changes command

2008년 12월 13일 토요일

마누라의 실수랍니다.

미국의 1948년 대선은 여론조사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힙니다. 대부분 트루먼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상황을 낙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트루먼 대통령은 선거자금을 모금할 때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민주당은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9월 1일에도 재정위원장이 공석인 상태였다. 트루먼은 9월 첫 째 주에 선거 자금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루이스 존슨(Louis Johnson)을 포함한 80여명의 부유층 당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초대 받은 당원 중 50명만이 참석한 이 모임에서 트루먼은 필요한 자금이 조달된다면 자신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리고 트루먼은 당 재정위원회의 위원장에 지원할 사람은 없는지 물었다. 당연하게도 어느 한 사람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한 민주당 당원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선거에 질 것이 거의 확실한 사람을 위해 앞장서서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받아내는 어려운 일을 누가 하려고 했겠는가?”

Keith D. McFarland and David L. Roll, Louis Johnson and the Arming of America : The Roosevelt and Truman Years, Indiana University Press, 2005, p.137

결국 트루먼의 절친한 친구인 루이스 존슨이 이 어려운 일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 시피 트루먼이 이겨 버렸습니다.

내가 이겼지롱!

그러자…

대선이 끝난 다음날부터 루이스 존슨에게 자신의 비서나 부인이 자신의 선거후원금을 ‘깜박하고’ 보내지 않은 것을 ‘이제 막’ 알았다고 하는 개인 기부자들이 대선 이전 날자로 서명한 수표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해리’에게 자신들이 ‘언제나’ 그를 후원하겠다는 성의를 보이려는 사람들이 뒷북으로 보낸 기부금은 수십만 달러에 달했다. 마가렛 트루먼(Margaret Truman)이 뒤에 회고했듯 트루먼이 선거가 끝난 뒤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트루먼 선거캠프의 재정 담당자인 루이스 존슨은 승자의 편에 붙으려는 사람들이 보낸 ‘날자를 앞당겨 쓴’ 엄청난 양의 수표를 받았고 그 액수는 75만 달러에 달했다.

Ibid, p.144

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지요;;;;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마누라 탓을 하는 찌질한 남편들은 언제 어느 곳에나 있군요;;;;

2008년 11월 3일 월요일

최종보스 부시

Russians With Pumpkins Protest Many U.S. Plots

러시아인들 중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매케인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그루지야 분쟁을 도발했다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올해 알게 된 음모론 떡밥 중 가장 썰렁한 떡밥이기도 하군요.

하지만 기사에서 이 부분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When that will happen, we will totally control all humanity,” said the actor playing Mr. Bush, swigging a beer, as a picture of the globe in chains glowed behind him.

직접 봤다면 얼마나 재미있었겠습니까.

역시 황상폐하는 최종보스!

2008년 10월 5일 일요일

게이츠 장관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살아남을 것인가?

며칠 지났지만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Obama Aide Lauds Defense Secretary - Top Adviser Hints Gates Could Keep Job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기사인데 오바마의 국방분야 참모인 Richard Danzig가 게이츠의 여러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오바마도 게이츠의 여러 정책에 공감한다는 발언을 했다는군요. 오바마와 게이츠가 이라크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지만 아프가니스탄 문제등에서는 유사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것 입니다. 게이츠 장관은 다른 민주당 의원들로 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니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경우 당분간 국방부장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것 같습니다. 비록 정권교체를 하더라도 안보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니 말을 갈아타는 것은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겠지요. 게다가 럼즈펠드가 남긴 좋지 않은 유산들도 정리를 해야 할 터이고.

꽤 재미있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가디언에 좀 난감한 소식이 하나 실렸습니다.

Zimbabwe on the brink of new crisis as food runs out

정치적 난장판을 겨우 정리한 짐바브웨에 기아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 정말 지구촌에는 바람잘 날이 없습니다. 뭐;;; 인류가 멸망할 때 까지 그럴 것이 100% 확실합니다만.

2007년 12월 16일 일요일

대선후보 도우미를 해본 결과...

어부님과 Bigtrain님 블로그에 가 보니 대선후보 도우미라는게 링크되어 있더군요. 좀 뒷북이긴 한데 결과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저는 상당히 보수 우익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군요. 아니. 문국현이 보수우익인가...

2007년 11월 26일 월요일

승리의 총재님

기호 8번 허경영



경부운하 따위는 버로우!


총재님은 바이칼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