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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2일 수요일

로마군의 중장기병은 어느 정도 규모였을까?

번동아제님이 쓰신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기병 부대의 편성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로마의 경우는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로마군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뒤져서 계산을 대략 한 번 해 봤습니다.

몇몇 연구자들의 2차 문헌을 가지고 대략 추정한, 정확성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글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고 그냥 재미삼아 한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로마군에 중기병이라는 병과가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는 제법 이른 시기입니다. 이르면 1세기 중엽(68년, 유대전쟁 당시)에서 늦어도 2세기 초 사이에는 로마군에도 중기병창(kontos)를 장비한 기병부대가 확인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후 로마군에는 지속적으로 중기병이 증가합니다. 그리고 숫자만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종류도 제법 다양해졌던 모양입니다. 로마군을 연구하는 군사사가들은 문헌상에 남아있는 로마군의 기병 병과가 보병 보다 다양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3~4세기 경에 이르면 로마군의 중기병 부대는 scutarii, promoti, stablesiani, 그리고 clibanarii와 cataphracti 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장기병, 즉 말갑옷 까지 완벽하게 갖춘 기병은 clibanarii와 cataphracti 두 종류 입니다.

그렇다면 전체 기병에서 중장기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됐을까요? Hugh Elton의 Warfare in Roman Europe AD 350~425에서는 clibanarii와 cataphracti, 이 두 병과의 기병이 로마군의 전체 기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중앙군이라고 할 수 있는 comtatenses에서는 대략 15%, 지방군에 해당되는 limitanei에서는 2%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pp.106~107)

그 다음으로는 로마군의 총 병력 중 기병은 얼마나 됐는가가 되겠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로마군의 전체 기병 숫자에다가 위에서 언급한 Elton의 추정치를 곱해서 중장기병의 숫자를 산출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기병은 대충 어느 정도였을까요?

4~5세기경 동로마와 서로마의 중앙군 및 지방군의 병력 규모는 당연히 학자들 마다 추정치가 차이가 납니다. (로마사 전공자가 아니긴 하지만)Edward N Luttwak의 The Grand Strategy of the Roman Empire에는 후기 로마군의 규모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추정치를 정리해서 실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서로마군은 최저(J. Szilagyi의 추정) 226,000(중앙군 94,000/지방군 122,000) 최대(A. H. M. Jones의 추정) 311,000(중앙군 111,000/지방군 200,000)이고 동로마군은 최저(Varady의 추정) 262,000(중앙군 96,300/지방군 165,700) 최대(E. Nischer의 추정) 426,500(중앙군 94,500/지방군 332,000)입니다.

문제는 총 병력에서 기병이 어느 정도냐 인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Luttwak의 책에는 보병대 기병의 비중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서적에 실린 통계를 이용해 봤습니다.
Warren Tredagold의 Byzantium and Its Army 284~1081에는 Notitia Dignitatum에서 인용한 395년경의 동로마군 편제가 실려 있습니다. 다행히도 여기에는 전체 병력 중 기병의 비중이 나와 있군요. 여기에 따르면 중앙군에서 기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20.7%(104,000명 중 21,500명)이고 지방군에서 기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동부군이 49.9%(병력 195,500명 중 97,500명), 서일리리쿰군이 44.4%(병력 63,000명 중 28,000명)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여기다가 위에서 언급한 중장기병의 비중을 넣어서 계산을 해 보겠습니다.

중앙군 : 21,500 ⅹ 0.15 = 3225
지방군 동부군 : 97,500 ⅹ 0.02 = 1950
지방군 서일리리쿰군 : 28,000 ⅹ 0.02 = 560

395년경 동로마군의 중장기병은 대략 5,735명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위에서 언급한 Luttwak의 저서에 실린 수치를 가지고 Notitia Dignitatum의 기병 비율과 Elton이 추정한 기병 중 중장기병의 비중을 가지고 계산하면 대략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동로마군의 중장기병(4~5세기경)
총 병력 426,500 기준 : 중앙군 2,977 지방군 3,320
총 병력 262,000 기준 : 중앙군 3,033 지방군 1,657

서로마군의 중장기병(4~5세기경)
총 병력 311,000 기준 : 중앙군 3,497 지방군 2,000
총 병력 226,000 기준 : 중앙군 2,961 지방군 1,220

신뢰도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심심풀이 수준의 계산이지만 나름대로 꽤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2006년 4월 29일 토요일

아즈텍의 전쟁수행 양식과 보급문제(삼탕!)

제목은 거창하나 내용은 어린양 블로그의 다른 글들이 다 그렇듯 별 거 없다.

몇 년 전에 Center for Hellenic Studies에서 나온 War and Society in the Ancient and Medieval Worlds라는 책을 얼떨결에 구하게 된 일이 있었다. 고대사쪽은 거의 아는게 없는지라 내가 왜 이 책을 가지게 됐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인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꽤 재미있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각 문화권 별로 여러개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Ross Hassig가 쓴 14장의 아즈텍 문화권의 전쟁이다.

Ross Hassig에 따르면 아즈텍 제국의 전쟁 수행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잘 발달된 도로망의 부재(대 도시를 제외하면 군사적으로 쓸만한 도로가 없었다고 한다)와 적절한 수송수단의 부재였다고 한다. 특히 도시간의 전쟁에서 이런 문제점은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고 한다.

아즈텍 군대의 기본 단위는 대략 8,000명 정도의 병력으로 구성된 xiquipilli라고 하는데 말이 없었으므로 전 병력은 보병이었고 행군 속도가 지독히 느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양이다. Hassig는 하나의 xiquipilli가 하룻 동안 이동할 수 있는 최대의 거리가 19km정도 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로사정이 열악해서 행군 대형은 쓸데 없이 길었다고 하는데 한개의 xiquipilli가 행군하면 부대 선두의 사제 부터 제일 후위의 병사까지의 길이가 대충 12km 정도 됐다고 한다.

※ 참고로, John Haldon의 저서에 따르면 도로망이 비교적 양호한 9세기경 비잔티움 군대의 경우 보병 10,000명과 기병 5,000으로 편성된 부대의 행군 대형은 14km였다. 여기서 본대 보다 2~3km 앞서서 나가는 정찰대와 역시 본대 보다 2~3km 뒤에서 따라오는 후위 부대가 차지하는 거리를 빼면 실제 행군 대형은 8~9km 정도다.

문제는 8,000명 정도의 대 병력이 이동하면서 보급을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도시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모든 보급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보급품은 병사 개개인이 가지고 다녀야 했고 무게와 부피가 많이 나가는 식량은 병사 한명당 한명의 짐꾼(tlamemes)이 배속되었다고 한다. 보통 짐꾼 한명이 23~25kg정도의 식량을 지고 행군했는데 이건 아무리 후하게 쳐 줘도 병사 두명과 짐꾼 한 명이 8일 정도 먹는 분량이었다.
결국 아즈텍의 도시 하나가 다른 곳과 전쟁을 벌일 경우 최대 작전 가능 범위는 대략 65~70km정도였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Hassig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3일간 행군한 뒤 하루 싸우고 하루 쉰 뒤 3일간 행군해서 돌아와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황제가 지휘하는 군대는 행군로 상의 도시들에게 사전에 식량과 보급품을 모으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도시들 보다는 작전 가능한 범위가 좀 더 넓었다고 한다.

※덤으로 Hassig의 설명에 따르면 아즈텍의 전쟁에서 "기습"이란 요소는 별로 달성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 도시가 다른 곳과 전쟁을 벌일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장에서 소집 명령을 내리고 소집 명령이 내려지면 calpoleque라고 불리는 각 지역의 대표가 자신의 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모아 온 뒤 숫자가 차면 행군을 시작했는데 위에서 말한대로 행군 속도가 지독하게 느려서 군대가 출정을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서 상대방이 전쟁이 시작된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뭐, 아즈텍의 전쟁은 종교 행사적인 성격이 되려 강했다고 하니 기습같은건 애시당초 고려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