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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3일 토요일

The Pentagon and the Presidency - by Dale R. Herspring

The Pentagon and the Presidency : Civil-Military Relations from FDR to George W. Bush

Dale R. Herspring의 이 저작은 꽤 흥미로운 저작입니다. 먼저 민군관계(Civil-Military Relations)와 문민통제(Civilian Control) 문제를 군의 시각에서 바라봤다는 점이 참신합니다. 기존의 유명한 저작들, 특히 새뮤얼 헌팅턴의 연구는 탁월하긴 하지만 주로 민간관료집단의 관점에서 민군관계와 문민통제를 설명했지요.

Herspring은 프랭클린 루즈벨트부터 현재의 행정부에 이르기 까지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행정부와 군의 관계를 군대가 민간통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의 첫 머리에 브래들리의 유명한 “There is no place in a democratic state for the attitude that would elevate each military hero above public reproach simply because he did the job he has been trainded for and is paid to do.”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전통적인 미국의 직업군인의 가치관이 국방부 자체가 새로운 관료집단으로 등장하면서 변화하고 있으며 군 엘리트들이 행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려고 노력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각 행정부의 민군관계를 대통령과 고위 장성들에 초점을 맞춰 주요 정책에 있어 군 엘리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중요 군사문제에 있어 정부의 정책 수행과 군대의 군사적 요구는 어떻게 상호작용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개설서로 사용하기에 적절할 정도로 정리가 잘 돼 있고 2차대전과 그 이후 미국이 수행한 중요한 군사작전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지식을 제공해 줍니다.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만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1차 사료의 인용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매우 불만입니다. 특히 상당수의 1차 사료가 이용 가능한 70년 이전의 행정부들에 대해서도 신문, 회고록 수준에서 자료 접근이 끝나고 있는데 이 점은 아쉽습니다. 이런 문제점은 비교적 당대의 문제, 특히 레이건 이후 행정부들에 대한 분석에서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언론에 공개된 내용이기 때문에 자료적인 측면에서는 이렇다 할 장점이 없습니다. 자료의 제약 때문에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저자는 카터와 클린턴 시기의 민군관계에 대해서 좋지 않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뭐, 사실 이 두 대통령이 군대와 많이 충돌했고 특히 후자는 예산을 무기로 군대를 압박하는 만행(?)을 별 생각없이(?) 저지르기도 했지요.

개설서로는 훌륭하지만 추후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부족한 점이 많을 듯 합니다. 그래도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고 저자의 접근 방식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2006년 4월 29일 토요일

아즈텍의 전쟁수행 양식과 보급문제(삼탕!)

제목은 거창하나 내용은 어린양 블로그의 다른 글들이 다 그렇듯 별 거 없다.

몇 년 전에 Center for Hellenic Studies에서 나온 War and Society in the Ancient and Medieval Worlds라는 책을 얼떨결에 구하게 된 일이 있었다. 고대사쪽은 거의 아는게 없는지라 내가 왜 이 책을 가지게 됐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인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꽤 재미있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각 문화권 별로 여러개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Ross Hassig가 쓴 14장의 아즈텍 문화권의 전쟁이다.

Ross Hassig에 따르면 아즈텍 제국의 전쟁 수행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잘 발달된 도로망의 부재(대 도시를 제외하면 군사적으로 쓸만한 도로가 없었다고 한다)와 적절한 수송수단의 부재였다고 한다. 특히 도시간의 전쟁에서 이런 문제점은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고 한다.

아즈텍 군대의 기본 단위는 대략 8,000명 정도의 병력으로 구성된 xiquipilli라고 하는데 말이 없었으므로 전 병력은 보병이었고 행군 속도가 지독히 느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양이다. Hassig는 하나의 xiquipilli가 하룻 동안 이동할 수 있는 최대의 거리가 19km정도 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로사정이 열악해서 행군 대형은 쓸데 없이 길었다고 하는데 한개의 xiquipilli가 행군하면 부대 선두의 사제 부터 제일 후위의 병사까지의 길이가 대충 12km 정도 됐다고 한다.

※ 참고로, John Haldon의 저서에 따르면 도로망이 비교적 양호한 9세기경 비잔티움 군대의 경우 보병 10,000명과 기병 5,000으로 편성된 부대의 행군 대형은 14km였다. 여기서 본대 보다 2~3km 앞서서 나가는 정찰대와 역시 본대 보다 2~3km 뒤에서 따라오는 후위 부대가 차지하는 거리를 빼면 실제 행군 대형은 8~9km 정도다.

문제는 8,000명 정도의 대 병력이 이동하면서 보급을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도시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모든 보급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보급품은 병사 개개인이 가지고 다녀야 했고 무게와 부피가 많이 나가는 식량은 병사 한명당 한명의 짐꾼(tlamemes)이 배속되었다고 한다. 보통 짐꾼 한명이 23~25kg정도의 식량을 지고 행군했는데 이건 아무리 후하게 쳐 줘도 병사 두명과 짐꾼 한 명이 8일 정도 먹는 분량이었다.
결국 아즈텍의 도시 하나가 다른 곳과 전쟁을 벌일 경우 최대 작전 가능 범위는 대략 65~70km정도였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Hassig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3일간 행군한 뒤 하루 싸우고 하루 쉰 뒤 3일간 행군해서 돌아와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황제가 지휘하는 군대는 행군로 상의 도시들에게 사전에 식량과 보급품을 모으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도시들 보다는 작전 가능한 범위가 좀 더 넓었다고 한다.

※덤으로 Hassig의 설명에 따르면 아즈텍의 전쟁에서 "기습"이란 요소는 별로 달성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 도시가 다른 곳과 전쟁을 벌일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장에서 소집 명령을 내리고 소집 명령이 내려지면 calpoleque라고 불리는 각 지역의 대표가 자신의 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모아 온 뒤 숫자가 차면 행군을 시작했는데 위에서 말한대로 행군 속도가 지독하게 느려서 군대가 출정을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서 상대방이 전쟁이 시작된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뭐, 아즈텍의 전쟁은 종교 행사적인 성격이 되려 강했다고 하니 기습같은건 애시당초 고려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