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은 여러가지 일 때문에 독서량이 그야말로 위험한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난감할 정도로 독서량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재미있는 책을 한 권 건졌다는 점 입니다.
시노하라 하지메(篠原一)의 『역사정치학 : 혁명, 전쟁, 민주주의를 통해 본 근대유럽의 정치변동』은 예상 이상으로 내용이 재미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책 입니다. 일단 서문에서 저자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인 시노하라 하지메는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실제로 실험을 할 수 없는 만큼, 역사적 자료와 사례를 제쳐두고서는 분석을 알차게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19세기 중반부터 2차대전 까지의 유럽사에 이론적 틀을 적용하면서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글을 써 나가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강대국에 치우친 서술을 탈피하고자 북유럽과 중동부 유럽의 소국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균형잡힌 서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개설서로서 매우 좋은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가 주된 이론적 틀로 사용하는 개념은 달(R. A. Dahl)의 폴리아키(polyarchy) 입니다. 시노하라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민주주의가 확립되기 이전의 유럽 정치를 폴리아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론적 틀에 대한 설명을 한 뒤에는 바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로 들어갑니다. 먼저 2장에서 19세기 중반 폴리아키의 성립 이전까지의 유럽 정치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있는데 개설서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절대왕정의 성립부터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구체제의 붕괴까지의 유럽정치사를 짧은 분량 안에 아주 잘 요약해 놓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영국과 프랑스를 필두로한 폴리아키의 성립과 중동부유럽, 남유럽의 상대적 후진성을 설명하고 또 폴리아키의 성립과정에서 등장하는 노동운동 등의 저항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19세기 중후반기의 정치변동에서 북유럽과 스위스 등 작지만 ‘선진화(?)’된 국가들의 정치적 발전과정이었습니다. 이들 지역에 대해서는 중동부유럽의 후진 듣보잡(?) 국가들에 비해 존재감은 느끼되 정작 제대로 된 지식이 없었는데 이 책에 요약이 잘 되어 있는덕에 기초적인 개념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이후의 정치사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니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개설서 입니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했듯 중소규모 국가의 정치사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습니다. 번역도 일부 명사가 영어식으로 옮겨진 것을 제외하면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모습을 형성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의 정치 양상을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