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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7일 일요일

러시아의 국가 범죄 은폐 의혹?


Dig Near Stalin-Era Mass Grave Looks To Some Like Kremlin Dirty Work

Russian digs accused of covering up Stalinist crimes

9월에 있었던 AFP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유해 발굴작업을 명분으로 소련의 학살 범죄를 은폐하는 공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제2차대전 중 핀란드군이 학살한 소련군 포로 유해를 발굴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 핀란드군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소련군 포로들을 대량 학살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발굴을 주도하고 있는 군사사학회(РОССИЙСКОЕ ВОЕННО-ИСТОРИЧЕСКОЕ ОБЩЕСТВО [РВИО])는 문화부장관 블라디미르 레딘스키와 우익 정치인 드미트리 로고진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용단체'입니다. 실제로 이 단체의 활동에 대해서는 러시아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지요.

러시아 인권운동단체들은 이 발굴이 스탈린 시절 소련 정부가 자행한 정치범 학살을 은폐하려는 공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푸틴 집권 이후 퇴행적이고 쇼비니즘 적인 분위기에서 소련 시기를 미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주도 하에 적극적으로 역사 왜곡에 나서는 분위기는 매우 우려스럽군요. 카틴 학살 같이 소련의 전쟁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다른 국가의 범죄라고 날조공작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니 만큼 러시아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찝찝함이 느껴지는군요.


2016년 12월 26일 월요일

소련 전차부대가 소련-핀란드 전쟁에서 얻은 전훈

지난번 스탈린 동지의 현대전 강의라는 포스팅에서 1940년 4월 14일 부터 17일 사이에 모스크바에 열린 핀란드전 전훈을 평가하고 분석하기 위한 주요 지휘관 회의에 대해 언급했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는데,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기갑부대의 운용에 관한 재검토라고 생각됩니다. 전차의 운용 문제는 여러 차례 간헐적으로 논의됐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4월 14일과 17일에 있었던 회의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는 전차의 분산운용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논의되었습니다.

번역을 하다보니 녹취록이 불완전하게 작성됐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내용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더러 있죠.


먼저 1940년 4월 14일 저녁 회의에서 있었던 관련 발언을 인용해 봅니다.



시니친Синичкин(북서전선군 전차-장갑차 병과 정치위원): 여러분. 이 회의에서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는게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서부 우크라이나 사태(폴란드 병합)과 핀란드와의 전쟁에서 있었던 전차 및 장갑차 부대의 운용에 관한 것 입니다. 
먼저 전차와 보병간의 협동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전차 부대에 복무했습니다만 대규모 훈련에서 보전협동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에 보전협동을 제대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전차여단을 소총병군단에 배속시키고 각 군단장에게 보전협동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한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소총병사단에 배속된 T-26이나 T-38을 장비한 전차대대는 효용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단에 배속된 전차대대는 정비 부대가 없거나 보전협동을 총괄할 주체가 없어 전투력이 형편없었습니다. 제대로 통제할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전차를 분산 운용하는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소총병사단 예하의 전차대대는 폐지해야 합니다. 

다음 문제는 전차 및 장갑차 부대의 지휘 체계입니다. 군관구와 전선군, 야전군 단위에서 전차부대를 올바르게 운용하지 못했습니다. 전차-장갑차 병과 총국Автобронетанкового управления РККА은 감독 및 검열 업무를 담당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차부대가 충분한 준비태세를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구조하에서는 부대에 대한 명령권과 명령을 감독할 권한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붉은군대와 전선군, 야전군, 군관구의 전차부대 행정 구조는 공군의 예를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하면 전차부대에 대한 지휘를 강화하고 훈련을 총괄하여 통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휘와 훈련을 담당하는 부서는 전차 부대의 현황에 관해 해당 군사위원회와 지휘관에 보고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사 문제에 대해서 몇마디 더 하겠습니다. 여러 작전에서 전차 부대가 수행한 역할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계실겁니다. 하지만 전차부대의 간부는 제대로 선별되지 못했습니다. 예를들어 레닌그라드 군관구에서는 예하 전차부대들의 인사 교체를 대위 한명에게 맡겼습니다. 이 대위가 어떻게 혼자서 간부들을 파악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전차부대 간부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들에 대해 검토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지휘관을 선정하는데 혼란이 초래됐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차-장갑차 병과 총국장이 전차부대의 인사권을 가지는 것이 대안이라고 봅니다. 이게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다음 문제는 전차에 관한 것 입니다. 여러분. 아군의 전차는 대구경 포탄은 커녕 일반적인 37mm 포탄 조차 막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적의 대전차 화력을 감안해, 대구경의 주포와 더 두꺼운 장갑을 갖춘 전차를 도입해야 할 때 입니다. 

스탈린: T-26 전차의 45mm 주포*의 성능이 부족하다는 겁니까? 

시니친: 충분합니다. 하지만 KV전차는 45mm 주포*가 적합하지 않습니다. 

스탈린: 75mm 급 주포*라면 충분하겠습니까? 

시니친: 예. 그 정도라면 충분합니다. 신형전차들을 최대한 빨리 배치해야 합니다. 

1940년 4월 14일 저녁 회의, Alexander O. Chubaryan and Harold Shukman(ed.), Stalin and the Soviet-Finnish War 1939~40, (Routledge, 2013), pp.24-25에서 재인용.



* - 원 영어번역문에는 '장갑(Armor)'으로 되어있는데 문맥상 전차의 무장을 뜻하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주포'로 옮겼습니다.

1940년 4월 17일에 있었던 마지막회의에서는 당시 붉은군대 전차-장갑차 병과 총국의 국장이었던 파블로프Дми́трий Григо́рьевич Па́влов가 핀란드전 시기 기갑부대의 전훈에 대한 총괄 평가를 했습니다. 여기서 전차부대의 분산운용을 강력히 비판하고 집중운용을 위해 편제를 개편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쿨릭Григо́рий Ива́нович Кули́к(1급 야전군지휘관, 포병 총감, 회의 진행자): 파블로프 동지의 발언이 있겠습니다. 

파블로프Дми́трий Григо́рьевич Па́влов(2급 야전군지휘관, 붉은군대 전차-장갑차 병과 총국장): 이번 전쟁에는 우리가 보유한 모든 종류의 전차를 투입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해야 겠습니까?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전차들은 국내에서 개발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이것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이렇다 할 대전차무기가 없어 기관총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식민지전쟁에 쓰려고 개발한 것들을 개량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여러분은 아군 전차의 운용 경험과 그 실상에 대해 잘 아실 것 입니다. 저는 제7군 소속 전차부대 전체와 제13군 소속 전차부대 일부의 작전을 검토했습니다. 제34전차여단과 다수의 전차를 보유했던 한 전차대대가 전멸한 일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기 위해서 관련된 자료들을 검토했습니다. 여기서 도출한 결론은 다른 부대의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와의 전쟁 중 전차부대 지휘관들은 무지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나쁜 결과가 초래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작년 12월 제138소총병사단이 실시한 보전협동작전과 최근 전선에 투입됐던 제100소총병사단의 보전협동작전을 비교하면 낮과 밤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12월에 제138소총병사단을 지휘한 사단장은 허세가 심한 겁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단의 각 병과간 협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제100소총병사단의 사단장은 매우 겸손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전차 부대와 밀접하게 협력하여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동지여러분, 저는 이 사례를 통해 우리 군대가 지나치게 허장성세를 부리지만 전투는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 입니다. 이제 핀란드의 전장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핀란드 전역은 대규모의 전차 부대를 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먼저 밝히겠습니다. 하지만 키비니에미Kiviniemi에서 전차군단을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전차군단을 투입해서 핀란드군의 후방으로 진출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확실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겁니다. 전차군단을 돌려보내라고 명령한 것은 야전군 지휘관 메레츠코프
Кири́лл Афана́сьевич Мерецко́в였습니다. 

쿨릭: 그 결정은 잘 못된 것이었소. 

파블로프: 전차군단을 돌려보내라고 한 결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 또한 그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문에 아군은 확실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돌파를 활용할 수 있는 독립적인 행동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서 연대지휘관 바라노프가 지휘하는 전차여단을 투입한 바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아주 명확한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라노프의 전차여단은 1개 소총병대대를 배속받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보병을 배속받은 전차여단을 독립적인 임무에 투입하는 구상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전차여단들(35, 40전차여단 등)은 대대단위로 분산되어 소총병사단에 배속됐습니다. 이들은 공군이 ‘지원 요청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용됐습니다. 물론 대대단위로 분산된 전차들도 잘 싸웠고 때로는 탁월한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우리 붉은군대는 여러가지 악재를 안고 있었습니다. 사단단위로 전차를 분산 운용한다면 다른 전쟁에서도 재앙을 면치 못할 겁니다. 제가 딱 잘라 말하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가 전차와 타 병과의 협동 작전에 대해 가르쳐 온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전차부대는 아무런 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7,000여대의 전차를 소총병사단에 배속시켜 분산운용했기 때문에 전차부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소총병사단에 배속된 전차대대는 T-37과 T-36전차를 장비하고 있었는데 이 차종은 매우 약하고 무력했습니다. T-37전차의 기동력으로는 진창을 돌파할 수 없었습니다. 이 전차를 배속받은 소총병사단들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지금 말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오류를 지적해 주십시오. 전차부대를 연대본부나 사단본부를 호위하는데 사용하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신원미상 참석자: 사실입니다. 

파블로프: 핀란드전에 투입된 전차는 7,000여대에 달합니다. 전차여단에 편성되어 여단 단위로 작전한 전차대대들은 여단본부가 지속적으로 통제했기 때문에 올바르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으며, 훨씬 유용했습니다. 여단 참모장교들 뿐만 아니라 여단 정치장교들도 예하 전차대대들의 지휘통제에 참여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렐류센코Дми́трий Дани́лович Лелюше́нко 동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공격할때 정치장교들은 보병진지로 가서 보병들이 전차를 엄호하는 것을 직접 감독했습니다. 그래서 보전협동이 매우 원활히 이루어졌습니다. 전차여단이 파견한 전차와 보병의 협동작전을 항상 감독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게 뭐겠습니까. 당장 소총병사단에 배속된 전차들을 전차여단을 증강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키예프 군관구의 4개 전차여단은 각각 전차 14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와의 전쟁 때문에 키예프 군관구의 전차여단들이 축소된 것 입니다. 만약 전시동원에 들어간다면 키예프 군관구의 전차여단들은 준비를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레닌그라드 군관구에서는 원래 키예프 군관구 소속이던 전차들을 원대복귀 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관행을 중단해야 합니다. 제가 지휘관으로 있는 한 전차부대들의 편제를 파괴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전차가 필요하다면 부대 전체를 배속 변경하면 됩니다. 

또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인력 보충 문제입니다. 전차부대는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새로 병력을 보충 받을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T-26 전차로 구성된 전차여단장은 T-26이 BT전차보다 우수하다고 할 것이고, BT전차로 구성된 전차여단장은 반대로 이야기 할 겁니다. 이것은 일종의 애국심입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에 애정을 가진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설사 T-26과 BT전차가 중기관총을 막을 능력은 없다해도 말입니다. 적 대전차포 진지가 무력화되기 전에 공격을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옳은 말 입니다. 하지만 전차병은 단일한 보충체계를 통해 보충되어야 합니다. 
당과 정부는 전차 생산에 반영할 사항들을 지적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앞으로는 45mm 대전차포는 물론 3인치급의 포탄도 방어할 수 있는 전차를 생산해야 합니다. 그러한 방어력을 갖춘 신형 전차가 지금 생산 중입니다. 현재 우리는 부상을 입은 전차병들이 어디에 수용되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귀향 조치를 받아 가족과 재회할 때에나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본인은 전차여단을 다음과 같이 편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각 전차여단은 더 많은 전차병과 지휘관들을 훈련할 수 있는 훈련대대를 가져야 합니다. 치료를 받고 원대복귀한 지휘관들은 먼저 훈련대대에 배치된 뒤 새로운 보직을 받아야 합니다. 

신원미상 참석자: 전차 조종수는 어떻게 합니까? 

파블로프: 보충대대가 전차여단의 모든 보충인력을 담당합니다. 저는 전차여단의 보직을 거치지 않은 장교는 군관구사령부에 발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차여단에 배속될 장교들은 먼저 보충대대에 가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제정 시절에 하던 방식이지만 우리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충부대에서 교육훈련을 담당할 기갑 장교들이 필요합니다. 여단에 배속된 장교들을 교육훈련에 차출하는 것은 안됩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인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부대의 부상병들을 돌보았으며 부상병들도 그들을 돌보는 게 누구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대를 이탈하는 인원도 많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제 수륙양용 T-37 경전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전차는 특수한 차종이므로 예비대에 넣어야 합니다. 군단 직할의 강력한 대대로 편성해 필요한 경우 군단장의 승인하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입니다. 신형전차 문제에 있어서, 저는 여러 동지들이 국방인민위원장이나 스탈린 동지께 전문을 마구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은 우리에게 군 조직 문제를 올바른 방법으로 다룰 기회를 주었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신형 전차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기존의 전차가 형편없다는 불평을 쏟아냅니다. 그리고는 ‘T-34와 KV 전차를 보내주십시오. 이 전차들은 다른 지역에는 적합하지 않고 우리 담당 지역에 적합합니다’라고 합니다. 사실이 이렇습니다. 저는 이런 요청에 대해 일일이 답을 하지 않겠습니다. 총참모부가 신형 전차를 어떤 군관구에 대량으로 배치하겠다고 결정하면, 다른 군관구에서는 자신의 차례가 올 때 까지 기다리면 될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군사훈련 및 T-34와 KV전차를 T-26, T-37, BT전차 등과 함께 운용하는 방식을 가르칠 것 입니다. 구식전차들은 메뚜기떼 처럼 T-34와 KV전차의 뒤를 따라 어떠한 임무라도 수행해야 하며, 또한 적의 대전차 방어선을 돌파해야 합니다. 

포병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저는 포병을 높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종종 전차는 무시하곤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보병은 전차의 지원 없이는 머릿이 한마리 죽이지 못합니다. 보병은 전차 없이 공격할 수 없습니다. 

스탈린: 전차는 이동식 포병이오. 

파블로프: 전차는 직사를 하지만 포병은 간접사격을 합니다. 이런 차이점이 있습니다. 

스탈린: 전차는 장갑을 두른 포병이오. 

파블로프: 저와 보로노프가 지휘관으로 있는 이상 우리 두 사람의 협력은 막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포병과 기갑 병과를 갈라놓아 협력을 방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게 첫 번째 요점입니다. 두 번째로, 보로노프 동지께서 좋은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보병과 포병의 협력 문제입니다. 만약 어떤 기갑 병과 장교가 보병 병과 장교보다 보병전술과 작전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이런 장교는 전차부대에 필요 없습니다. 

신원미상 참석자: 파블로프 동지가 옳습니다. 

파블로프: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갑 병과는 전차 부대의 교범 보다 보병 교범을 더 신경써서 연구해야 합니다. 전차 부대는 보병 부대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차를 이런 식으로 운용해서는 안됩니다. ‘7km 앞으로 진격해 숲에 있는 적을 소탕하라’ 또는 ‘우리가 식사하거나 세면을 하고 있는데 전차 부대가 경비를 서지 않는다면 너희 중대를 포격해 버리겠다.’  

스탈린: 그건 근거없는 풍문이오. 

파블로프: 아닙니다. 

스탈린: 동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거 아니요? 

파블로프: 아닙니다. 전차 부대가 큰 피해를 입은 이유는 부적절한 운용 때문입니다. 제86소총병사단에는 용맹한 지휘관이 한 명 있었습니다. 이 사단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울거나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각 연대에 말 20마리를 배속시켜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부대에 배속된 차량이 야지에서 제대로 기동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요구는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 루마니아로 진격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 남부 지역의 군사-지리 현황을 연구했습니다. 루마니아 지역의 기후와 토양은 말이 끄는 수레라 할 지라도 두달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 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현재 야지에서 기동할 수 있는 차량을 개발 중입니다. 하지만 이 차량은 겨우 100m를 달리고 고장나 버렸습니다. 이 차량은 GAZ-65입니다. 

신원미상 참석자: 궤도차량이 필요하다는 것이군요. 

파블로프: 그렇습니다. 자동차 부대의 경우 기동이 힘든 진흙탕 길 때문에 트럭을 운용하는데 부담이 클 것 입니다. 트럭을 정상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최선의 방법은 연대에 배속된 트럭들을 모두 모아서 사단의 중앙 통제를 받는 특수 연대, 혹은 특수 대대로 운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예비부품을 확보하고 정비하는데 용이할 것입니다. 그렌달Владимир Давыдович Грендаль 동지는 예비부품 공급과 정비가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기동부대들을 위해 민간 차량들을 대규모로 징발했는데 이것들은 결국 다시 민간에 돌려줘야 합니다. 예비부품 수급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공장은 전선의 부대에 예비 부품을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했습니다. 공장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군이 보유한 차량 중 많은 수가 예비부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비 시설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스탈린: 차량 정비를 이야기 하는거요? 

파블로프: 예비부품을 확보해야 차량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무자비하고 이것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가용한 수단은 모두 동원해야 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겠습니다. 각 군관구에는 군수보급과 전차-장갑차부대를 담당하는 부서를 별도로 설치해야 합니다. 스탈린 동지께서는 동원 및 훈련을 통제하고 예상되는 전역에 대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전차-장갑차부대 총국의 조직을 분리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스탈린: 그 문제는 해당 총국의 관할이오. 그 조치를 취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고 옳을 수도 있소. 

파블로프: 스탈린 동지. 저는 전차-장갑차병과 총국을 분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군사훈련만을 담당할 조직이 필요합니다.  

1940년 4월 17일 저녁 회의, Ibid., pp.259~263에서 재인용.

2015년 12월 7일 월요일

스탈린 동지의 현대전 강의

1940년 4월 14일 부터 17일 사이에 모스크바에서는 핀란드전 전훈을 평가하고 분석하기 위한 주요 지휘관 회의가 열렸습니다. 여기에는 스탈린도 직접 참여해 지휘관들의 의견을 듣고 스탈린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 포병 운용에 관한 내용을 발췌해 봅니다.


(전략) 

스탈린: 제122소총병사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소? 

추이코프(핀란드 침공시 제9군 사령관): 제122소총병사단의 병력은 12,000명이었고 여기에 1개 산악소총병연대, 제88소총병연대, 그리고  NKVD 1개 연대가 배속되었습니다. 

스탈린: 제122소총병사단의 정면은 130km고 담당 지역에는 이렇다 할 자연장애물이 없었소.

추이코프: 스탈린 동지. 만약 제122소총병사단이 퇴각하지 않았다면 이 사단도 다른 사단들 처럼 남쪽으로 부터 포위를 당했을 것 입니다. 이 사단은 35~40km를 후퇴했습니다. 

스탈린: 이 사단은 국경으로 부터 120베르스타(약 8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철수를 멈췄소. 이 사단은 대략 스무번은 포위될 가능성이 있었소. 이것은 사단장에게 달려있는 것이오. 만약 훌륭한 사단장이 있다면 사단도 잘 운용될 것이요. 형편없는 사단장이라면 사단을 붕괴시키거나 사단의 사기를 떨어트릴 것이오. 훌륭한 지휘관은 형편없는 사단이라도 훌륭한 사단으로 만들 수 있소. 지휘관들이 항상 그들의 지위에 걸맞는 역량을 지닌 것은 아니지. 
동지가 부대를 지휘하는데 방해가 되는 자는 없었소? 

추이코프: 없었습니다. 

스탈린: 주저하지 않고 ‘없었다’고 말하는구려. 

추이코프: 질문하시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누가 방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스탈린: 나야 모르지요. 그저 당신에게 질문하는 겁니다. 

추이코프: 없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특히 군사위원회의 성원들과 협조를 잘 했습니다. 이제 레닌그라드 군관구에서는 기존의 전차 중대, 차량화 소총중대, 혹은 유사한 중대의 편제에 기반한 수색대대를 편성 중에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수색대대가 제9군의 작전지역 같은 곳에서 유용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편제의 수색대대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스키 부대가 필요합니다. 스키 부대는 겨울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여름에는 소택지에도 투입할 수 있습니다.무장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동화기 사격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탄약 소모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데그차레프 기관단총을 직접 시험사격해봤는데 이건 매우 우수한 무기였습니다. 한 발만 명중 시켜도 목표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사격을 하면 목표를 명중시키는데 더 많은 탄환이 필요합니다. 

스탈린: 핀란드군이 기관단총을 쏘는 것 처럼 하시오. 여기서 쏘는거요.[의미 불명] 탄약을 조금만 사용한다면 더 많은 병력을 희생해야 하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병사를 아끼면서 총포탄을 더 많이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총포탄을 아끼면서 병사를 더 많이 희생시킬 것인지. 어느게 낫겠소? 

추이코프: 정확한 사격으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 당신은 틀렸소. 그런건 진부한 생각이오. 만약 아군 포병이 특정한 목표물만 타격했다면 아직도 핀란드와 전쟁을 하고 있었을 거요. 우리 포병이 승리한 이유는 하룻 동안 23만발의 포탄을 퍼부었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들은 포탄을 많이 소모했다고 비난하기도 하더군. 나는 이런 자들이야 말로 문제라고 생각하오. 이왕이면 23만발 보다 40만발을 퍼붓는게 낫지 않았겠소? 만약 포탄 20발 중에서 한 발이라도 헛간이건 뭐건 간에 목표를 맞춘다면 그건 괜찮은 일이오. 만약 100발의 포탄을 쐈는데 99발은 빗나가고 한발만 목표를 맞췄다 치더라도 이건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이런 식으로 포탄을 퍼부어서 적의 후방을 타격하고, 적이 방어선을 강화하는 것을 막으며 적의 움직임을 봉쇄했던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핀란드군을 패배시켰소. 당신은 포병 사격에 정신이 붕괴되어 달아난 핀란드군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오? 핀란드측은 포격으로 충격을 받은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한 특수 시설을 개설했다고 하오. 이것이 바로 포병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오. 현대전에서 총포탄을 아껴서는 안됩니다. 탄약을 아끼는 것은 범죄요. 총포탄을 아끼지 않고 퍼부었다면 인명 희생도 줄고 전쟁도 다섯배는 빨리 끝낼 수 있었을 거요. 

추이코프: 제가 스웨덴 의용군을 상대로 1만발의 포탄을 사용하자 곧바로 왜 그렇게 많은 포탄을 사용했냐는 전문을 받았습니다. 

스탈린: 누가 그랬소? 

추이코프: 총참모부였습니다. 

스탈린: 그건 잘못된 것이오. 총참모부가 현대전의 본질을 모르는구만. 

추이코프: 저는 총참모장으로 부터 왜 그렇게 많은 포탄을 사용했냐는 전문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스웨덴 의용군을 상대로 더 많은 포탄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 4만발은 쐈어야지. 만약 더 많은 포탄을 사용했다면 올해 2월에는 승리했을 것이오. 전쟁을 한달만 더 일찍 끝냈다면 비용을 얼마나 아낄 수 있었겠소? 10억 루블은 절약됐겠지. 그리고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거요. 포탄이 별거요?  만약 당신이 현대전에 대해 생각한다면 이런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포병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오. 당신은 더 많은 소총수가 필요했다고 하지만 그 불쌍한 동무들이 뭘 할 수 있었겠소? 포병이 없다면 이들은 헛되이 죽었을 거요. 

추이코프: 스탈린 동지. 제9군 구역에서 공병이 포병 진지를 구축하는데는 최소한 5일이 소요되었습니다.  

스탈린: 괜찮소. 포병 진지를 준비하는데만 10일이 소요되더라도 말이오. 제8군과 제15군도 비슷한 조건에 있었소. 모든 것은 포병에 달려있소. 포병이 모든 것을 결정한단 말이오. 

추이코프: 공군도 포병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오. 항공기는 기상 조건에 영향을 받지않소. 항공기 지원을 많이 받을 수도 없소. 게다가 항공기는 기상조건에 좌우되니 언제나 쓸 수 있는게 아니오. 하지만 포병은 날씨에 구애받지 않잖소. 당신도 포병을 후방에 남겨둬야 한다는 이론가들을 알고 있을 것이오. 이들은 사단 전체에 스키를 지급해 보병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했지. 허무맹랑한 소리 아니오? 핀란드군은 강력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있었소. 이들은 중기관총과 37mm포, 3인치 포를 가지고 있었지. 야포를 견인하는게 어렵다는 이유로 포병을 후방에 남겨둔 스키 사단이 적군의 요새화된 방어선을 공격했다면 사상자만 잔뜩 내고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을 것이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추이코프: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군단 포병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우리는 군단 포병을 활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군이 레폴라Repola로 진격했을때 아군의 보병, 포병, 공군의 합동 작전은 최고로 잘 수행되었습니다. 아군은 4만발의 포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레폴라 방면에 할당된 재고량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스탈린: 말을 끊어서 미안하오. 포탄 사용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소? 

추이코프: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도로 상태와 보급이었습니다. 


(후략)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열린 대 핀란드전 전훈 수집을 위한 지휘관 회의, 1940년 4월 15일 제3차 모임.  Alexander O. Chubaryan and Harold Shukman(ed.), Stalin and the Soviet-Finnish War 1939~40, (Routledge, 2013), pp.94~96에서 재인용.

2009년 1월 12일 월요일

Germany and the Axis Powers - by Richard L. DiNardo

옛날 농담 하나.

히틀러와 도죠가 지옥에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히틀러가 말하길.




“다음 전쟁은 이탈리아를 빼고 합시다.”

이 썰렁한 개그가 상징하듯 2차대전 당시 독일과 그 동맹국들간의 공조체계는 엉망이었습니다. 이미 푀르스터(Jurgen Förster) 같은 쟁쟁한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디나르도(Richard L. DiNardo)의 Germany and the Axis Powers 역시 독일과 동맹국들의 관계에 대해서 기존의 연구들과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붕어빵 같이 똑같은 내용이라면 굳이 책을 쓸 필요가 없었겠지요. 디나르도는 독일과 동맹국들의 관계를 각각 전략 차원과 작전 차원에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작전 단위에서는 독일군의 각 병종 별로 동맹국들과의 협력의 성과가 달랐습니다. 저자는 독일 공군이 동맹군과의 관계에서 가장 양호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중해 전역에서 몰타에 대한 공격과 루마니아의 플로예슈티(Ploieşti) 방공전을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 공군도 궁극적으로는 동맹국들을 하위 동반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중요한 기술 협력에서는 비협조적이었다는 한계를 지적합니다. 독일 육군과 동맹국의 관계는 최악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동부전선입니다. 독일 육군은 동부전선에 대규모의 동맹군을 끌어들였지만 정작 동맹국에 대한 군사원조와 보급에는 비협조적이었으며 이것은 1942~43년 겨울의 대재앙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합니다. 동부전선에서 동맹군 사령부에 파견된 독일연락장교들은 종종 상대방이 무례한 간섭으로 여길 정도로 행동해 거부감을 키우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아마 동부전선의 독일과 그 동맹국들의 관계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과 미국의 관계와 비교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가 독일 육군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꼽는 것은 롬멜인데 저자는 롬멜은 동맹군인 이탈리아군을 잘 활용했다고 높게 평가합니다.

저자는 전략 단위의 동맹 관계에 대해서는 더욱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미국과 영국과 같이 통일된 전략적 지휘체계가 없었다는 꼽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이탈리아가 아프리카와 발칸반도에서 무모한 모험을 벌여 독일을 수렁에 빠트린 것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독일과 그 동맹국들의 전략적 이해 관계가 제각각 이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합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이해관계 차이는 지중해 전역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동부전선에서도 동맹국들이 각각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치중했기 때문에 1944년에 파탄을 가져왔다는 것 입니다. 독일의 동맹국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핀란드도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1942년 말부터 전쟁에서 빠질 구실만 찾았으며 독일의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공세에 무관심했다는 점은 독일과 동맹국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흥미 있게 생각한 것은 독일은 미국보다 뒤떨어지는 산업력으로 미국이 자국의 동맹국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 입니다. 독일은 동맹국들에게 군사 및 경제원조를 하면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미국이 아니었으니 이런 체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우수한 해군을 가졌지만 석유 부족으로 1942년 초부터 작전에 지장을 받았습니다. 독일은 지중해 전역을 위해서 이탈리아 해군에 대한 석유 보급에 신경 썼지만 독일의 능력으로는 이탈리아 해군을 지원하는 것이 역부족이었습니다. 1943년 이후 동맹국들은 독일에 더욱 더 많은 원조를 요구했지만 이제는 독일 스스로도 자국의 필요량을 채우는데 급급해 졌습니다.

저자는 독일이 1차대전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독일은 1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라는 제 1의 동맹국을 단순한 하위 협력자로 대했는데 그러한 과오를 2차대전에서도 반복했습니다. 특히 전략적 차원에서의 동맹 관계는 완전한 실패 그 자체였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반대로 독일의 적국들은 1차대전과 2차대전 모두 독일보다는 양호한 동맹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차대전 당시 영국-프랑스의 관계나 미국-영국의 관계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독일과 그 동맹국들과는 달리 동등한 입장에서 관계가 가능한 강대국들이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독일의 주요 동맹국들은 하나 같이 독일보다 국력이 압도적으로 떨어지는 국가들이었고 열강 대접을 받던 이탈리아도 그 점에서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만약 독일이 자국과 동등한 수준의 동맹을 가졌다면 2차대전사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한국전쟁시기 한미관계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한국은 월등한 국력의 강대국을 동맹으로 가진 만큼 이 저작이 충분한 시사성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