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로 영어권에서 소련의 시각을 반영한 군사사 서적들이 폭발적으로 출간됐습니다. 2차대전의 다른 측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약간의 부작용도 있었는데 소련이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생산한 주장들이 여과없이 '진실'로 받아들여진 것 입니다. 물론 2차대전사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보완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면에서 데이빗 글랜츠의 When Titans Clashed와 독소전쟁 항공전에 대한 개설서인 본 하데스티의 Red Phoenix Rising 증보개정판은 꽤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두 서적 모두 1990년대에 소련의 시각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공헌했지만 동시에 소련 중심의 시각에서 오는 문제점도 고스란히 안고 있었습니다. 증보개정판으로 이런 문제점은 다수 해결됐으나 여전히 미진한 점이 몇가지 보입니다. 글랜츠는 여전히 독일 기록과 상충되는 일부 기록에서 소련쪽 주장을 옹호하고 있으며(체르카시 전투 등), 본 하데스티의 책도 쿠반 전투 같이 소련 기록이 완전히 엉터리인 경우 '양쪽 모두 전과를 과장했다' 같은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에 정확한 전과 산정이 어려워 과장이 발생하는건 만국공통이지만 사실 소련처럼 역사서술의 방향을 뒤틀 정도로 심각한 과장을 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할 점 입니다. 쿠반 항공전을 예로 들면, '독일 공군이 천여대의 항공기를 상실하고 제공권을 빼앗겼다'와 '독일 공군이 쿠르스크 공세를 위해 쿠반 지구의 공군력을 대거 북부로 이동시켜 소련 공군이 우세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지요.
개인적으로 독소전쟁사는 앞으로도 수십년간 새로운 사실이 발굴되면서 기존의 서술도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를 뒤흔든 연구자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세번째 개정판은 무리겠지만 그들의 업적을 이어받을 후속 연구자들이 등장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