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는 지구인들이 벌이는 그 전쟁과 같은 살인 행위에 트랄파마도어인들이 곤혹스러워하거나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지구인들의 잔학성과 굉장한 무기들이 결합되면 결국에는 순결한 우주의 한 부분이, 나아가 전체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염려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에 관한 질문은 한번도 나오지 않았고, 빌리 자신이 말을 꺼낸 뒤에야 비로소 나왔다. 동물원 관객 중에 누군가가 해설자를 통해 지금까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빌리의 대답은 이랬다.
“한 행성의 모든 주민이 어떻게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태초 이래 무의미한 살육에 열중해 온 행성에서 왔습니다. 내 나라 사람들이 급수탑에 넣고 산 채로 삶아 죽인 여학생들의 시체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시 자기들이 절대 악과 싸우고 있다는 긍지에 차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빌리는 드레스덴에서 삶아져 죽은 시체들을 보았다.
“그 뿐입니까? 나는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에는 삶아져 죽은 여학생들의 오빠와 아버지들이 살육한 인간들의 지방으로 만든 촛불로 밤을 밝혔습니다. 지구인들은 우주의 골칫거리임이 분명합니다! 다른 행성들이 지금은 무사하더라도 곧 지구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내게 비결을 좀 가르쳐 주세요. 내가 지구로 가져가서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게요. 어떻게 한 행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빌리는 자기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랄파마도어인들이 작은 손을 쥐어 눈을 가리는 것을 보고는 당혹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그 몸짓이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그가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 이었다.
“제발-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는 몹시 풀이 죽어 안내원에게 말했다.
“내 말이 뭐가 그리 바보 같다는 거지요?”
“우린 우주가 어떻게 멸망할지 아는데-” 하고 안내원이 말했다. “지구는 그 일과 아무 관계가 없소. 지구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만 빼면.”
“어떻게- 우주가 멸망합니까?” 빌리가 말했다.
“우리가 날려 버리지. 비행접시에 쓸 새 연료를 실험하다가 말이오. 트랄파마도어의 시험 조종사 하나가 시동 버튼을 누르면 온 우주가 사라져 버리는 거요.”
그렇게 가는 거지.
“당신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예방할 방법도 있을 것 아니에요?” 빌리가 말했다. “그 조종사가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까?”
“그는 이제까지 늘 버튼을 눌렀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요. 우리는 늘 그에게 그렇게 하게 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요. 그 순간은 그런 식으로 되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하고 빌리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구에서 전쟁을 예방한다는 생각도 어리석은 거군요.”
“물론이오.”
“하지만 이 행성은 평화롭잖아요?”
“오늘은 그렇소. 다른 날들은 당신이 보았거나 읽은 어떤 전쟁보다 잔혹한 전쟁을 벌이지. 우리가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그냥 전쟁을 보지 않을 뿐이오. 무시해 버리는 거지. 우리는 영원토록 즐거운 순간들만 보며 지내요. 오늘 동물원에서 처럼. 이 순간은 정말 멋지지 않소?”
“멋집니다.”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지구인들도 그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요. 끔찍한 시간은 외면해 버리고 좋은 시간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오.”
커트 보네거트 지음/박웅희 옮김, 『제5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아이필드, 2005), 138~141쪽
2012년 8월 9일 목요일
외계문명(?????)의 지혜
꽤 즐겁게 읽었던 소설의 한 토막.
2012년 8월 6일 월요일
Wolfram von Richthofen : Master of the German Air War
독일공군에 관한 책은 세기 힘들정도로 많지만 독일공군의 장군을 다룬 평전은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저작으로는 악명높은 데이빗 어빙David Irving이 집필한 독일공군원수 밀히Erhard Milch의 전기인 The Rise and Fall of the Luftwaffe : The Life of Field Marshal Erhard Milch 정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2008년에 출간된 제임스 코럼James S. Corum의 리히토펜 전기, Wolfram von Richthofen : Master of the German Air War는 독일공군 장성을 주제로 삼은 보기 드문 저작입니다. 제임스 코럼은 독일공군의 창설에서 프랑스전역 까지를 다룬 The Luftwaffe: Creating the Operational Air War, 1918-1940의
저자로서 독일공군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제임스 코럼은 기존의 저작에서도 리히토펜의 역할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는데 결국에는
리히토펜을 독립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확대했습니다. 그 결과물인 이 전기는 제 기준에서 본다면 상당히 좋은 저작이라고 생각됩니다.
보기 드문 독일공군 장성에 대한 전기일 뿐만아니라 상당히 균형이 잡혀있으며 독일공군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는
저작입니다.
먼저 리히토펜에 대한 군사적인 측면의 서술을 살펴보지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코럼은 기존의 연구에서 독일공군 내에서 리히토펜의 역할에 대해 다룬바있습니다. 군인으로서 리히토펜은 독일공군의 교리와 조직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개척자이자 유능한 야전지휘관으로 요약됩니다. 스페인내전에서 보여준 탁월한 지휘능력과 현대적인 공지협동작전의 기틀을 확립한 것 만으로도 리히토펜의 군사적 능력은 높게 평가받을 만 합니다. 저자는 2차대전 초기 리히토펜이 승승장구하면서 항공사단장에서 항공군단장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공군원수로 진급하여 항공군을 지휘하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합니다. 또한 스페인내전과 2차대전 기간 중 보여준 탁월한 군사외교가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리히토펜은 스페인내전 당시 부터 탁월한 정치감각을 보여줬으며 2차대전 발발 뒤에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 군사외교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동맹국과의 관계가 원할하지 못했던 독일에서 리히토펜과 같은 인물은 독특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리히토펜의 성공을 단순히 그의 능력만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탁월한 군사사가 답게 리히토펜이 참여한 각 전역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농업국가로서 근대적인 공군을 건설할 능력이 부족했던 폴란드, 규모는 컸으나 근대적인 항공전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했던 프랑스와 소련 공군에 대한 서술은 독일공군이 어떻게 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리히토펜이 살았던 시대와 그가 몸담았던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독일이 소모전에 말려들어가면서 서서히 패배로 치닫는 과정에서는 독일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영국본토항공전에서 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정보력의 부족, 그리고 독소전쟁으로 이어지는 거시적인 전략의 결여로 인한 방향성 상실은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독일육군과 마찬가지로 작전 단위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독일공군이 잘못된 전략으로 소모되는 과정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독소전쟁에서 리히토펜의 제8항공군단이 운용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독일공군이 능력이상의 임무를 담당하면서 서서히 붕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독일공군이 소모전으로 붕괴되는 모습은 리히토펜이 마지막으로 지휘한 지중해전역에서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리히토펜이 1940년 공군소장의 계급으로 항공사단을 지휘했을 때 1943년에 공군원수의 계급으로 항공군을 지휘했을 때 보다 더 많은 항공기를 지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전략의 결여로 인한 소모전의 결과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이 저작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데이빗 어빙의 밀히 전기가 독일측의 시각을 강하게 반영해 우호적인 논조로 씌여졌다면 코럼의 리히토펜 전기는 서술대상의 과오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스페인내전 당시 게르니카 폭격에 대한 서술에서 이 점이 두드러집니다. 코럼은 케르니카 폭격은 민간인을 목표로 한 ‘테러폭격’이 아니었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간인 피해도 과장된 것임을 지적하지만 동시에 리히토펜은 군사적인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인으로 스페인 민간인의 희생에는 무관심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아마 어빙과 같이 독일측에 우호적인 저자가 같은 내용을 서술했다면 게르니카 폭격이 민간인에 대한 테러공격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리히토펜에 면죄부를 주려 했을 것 입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히틀러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저자는 리히토펜이 다른 귀족 출신들과 마찬가지로 바이마르 공화국체제 보다는 나치즘에 우호적이었으며 또한 히틀러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음을 지적합니다. 코럼은 1944년 7월 20일의 쿠데타에 보여준 태도를 통해 완고한 보수주의자로서의 리히토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리히토펜이 히틀러를 지지한 동시에 히틀러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서 나치체제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비단 히틀러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프로이센 군사귀족으로서의 보수성에 대한 서술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리히토펜의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타국에 대한 우월감은 그런 사례의 하나입니다. 저자는 리히토펜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서 리히토펜을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오류들이 있어 다소 아쉽기는 합니다. 특히 군사용어나 인명의 오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 입니다. 코럼은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를 계속해서 ‘폰 파울루스’라고 적고 있는데 코럼 같은 군사사가가 이런 실수를 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육군이나 소련군의 부대명칭을 표기는 데 있어서도 사소한 오류가 몇개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몇가지 오류에도 불구하고 리히토펜 전기는 매우 훌륭한 저작으로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 입니다.
먼저 리히토펜에 대한 군사적인 측면의 서술을 살펴보지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코럼은 기존의 연구에서 독일공군 내에서 리히토펜의 역할에 대해 다룬바있습니다. 군인으로서 리히토펜은 독일공군의 교리와 조직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개척자이자 유능한 야전지휘관으로 요약됩니다. 스페인내전에서 보여준 탁월한 지휘능력과 현대적인 공지협동작전의 기틀을 확립한 것 만으로도 리히토펜의 군사적 능력은 높게 평가받을 만 합니다. 저자는 2차대전 초기 리히토펜이 승승장구하면서 항공사단장에서 항공군단장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공군원수로 진급하여 항공군을 지휘하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합니다. 또한 스페인내전과 2차대전 기간 중 보여준 탁월한 군사외교가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리히토펜은 스페인내전 당시 부터 탁월한 정치감각을 보여줬으며 2차대전 발발 뒤에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 군사외교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동맹국과의 관계가 원할하지 못했던 독일에서 리히토펜과 같은 인물은 독특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리히토펜의 성공을 단순히 그의 능력만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탁월한 군사사가 답게 리히토펜이 참여한 각 전역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농업국가로서 근대적인 공군을 건설할 능력이 부족했던 폴란드, 규모는 컸으나 근대적인 항공전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했던 프랑스와 소련 공군에 대한 서술은 독일공군이 어떻게 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리히토펜이 살았던 시대와 그가 몸담았던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독일이 소모전에 말려들어가면서 서서히 패배로 치닫는 과정에서는 독일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영국본토항공전에서 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정보력의 부족, 그리고 독소전쟁으로 이어지는 거시적인 전략의 결여로 인한 방향성 상실은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독일육군과 마찬가지로 작전 단위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독일공군이 잘못된 전략으로 소모되는 과정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독소전쟁에서 리히토펜의 제8항공군단이 운용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독일공군이 능력이상의 임무를 담당하면서 서서히 붕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독일공군이 소모전으로 붕괴되는 모습은 리히토펜이 마지막으로 지휘한 지중해전역에서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리히토펜이 1940년 공군소장의 계급으로 항공사단을 지휘했을 때 1943년에 공군원수의 계급으로 항공군을 지휘했을 때 보다 더 많은 항공기를 지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전략의 결여로 인한 소모전의 결과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이 저작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데이빗 어빙의 밀히 전기가 독일측의 시각을 강하게 반영해 우호적인 논조로 씌여졌다면 코럼의 리히토펜 전기는 서술대상의 과오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스페인내전 당시 게르니카 폭격에 대한 서술에서 이 점이 두드러집니다. 코럼은 케르니카 폭격은 민간인을 목표로 한 ‘테러폭격’이 아니었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간인 피해도 과장된 것임을 지적하지만 동시에 리히토펜은 군사적인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인으로 스페인 민간인의 희생에는 무관심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아마 어빙과 같이 독일측에 우호적인 저자가 같은 내용을 서술했다면 게르니카 폭격이 민간인에 대한 테러공격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리히토펜에 면죄부를 주려 했을 것 입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히틀러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저자는 리히토펜이 다른 귀족 출신들과 마찬가지로 바이마르 공화국체제 보다는 나치즘에 우호적이었으며 또한 히틀러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음을 지적합니다. 코럼은 1944년 7월 20일의 쿠데타에 보여준 태도를 통해 완고한 보수주의자로서의 리히토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리히토펜이 히틀러를 지지한 동시에 히틀러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서 나치체제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비단 히틀러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프로이센 군사귀족으로서의 보수성에 대한 서술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리히토펜의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타국에 대한 우월감은 그런 사례의 하나입니다. 저자는 리히토펜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서 리히토펜을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오류들이 있어 다소 아쉽기는 합니다. 특히 군사용어나 인명의 오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 입니다. 코럼은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를 계속해서 ‘폰 파울루스’라고 적고 있는데 코럼 같은 군사사가가 이런 실수를 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육군이나 소련군의 부대명칭을 표기는 데 있어서도 사소한 오류가 몇개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몇가지 오류에도 불구하고 리히토펜 전기는 매우 훌륭한 저작으로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 입니다.
2012년 7월 31일 화요일
기대되는 스카이보우의 신제품
자주 가는 1/48 스케일 모형 사이트를 갔다가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현재 AFV클럽에서 발매중인 1/48 스케일 AFV를 원래 생산한 곳이었던 스카이보우가 신제품을 내놓은 모양이군요. 티거1 초기형에 치머리트 코팅이 된 형식이랍니다.
스카이보우에서 대략 20종 정도의 제품을 설계해 놓았다고 알려졌고 실제로 파이어플라이는 신제품 공고에도 실렸었는데 티거와 Sd.kfz 251 이후로는 소식이 없던 차에 매우 반갑습니다.
국내에도 입하되면 좋겠군요. 안되면 해외주문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스카이보우에서 대략 20종 정도의 제품을 설계해 놓았다고 알려졌고 실제로 파이어플라이는 신제품 공고에도 실렸었는데 티거와 Sd.kfz 251 이후로는 소식이 없던 차에 매우 반갑습니다.
국내에도 입하되면 좋겠군요. 안되면 해외주문이라도 해야겠습니다.
2012년 7월 29일 일요일
이승만 우상화에 대한 잡상
1990년대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각급 학교에서는 반공교육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저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이라서 학교에서 500원씩 내고 재미없는 반공영화를 봐야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모든 반공교육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어서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에 대한 내용은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생각에도 워낙 멍청한 이야기들이었으니 말입니다. 나이를 먹은 뒤 실제로 북한 문헌을 보면서 이런 멍청한 짓을 확인하면서 비웃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것 저것 주워듣다 보니 지도자 숭배라는 역겨운 문화가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찝찝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이 당선될 때 마다 반복되는 당선자 찬양은 표현 수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첨을 위한 글이라는 점에서 밥맛떨어지는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소위 ‘國父’라는 이승만 우상화는 가장 정도가 심한 것이어서 혐오감을 느끼다 못해 즐기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 보니 이승만 우상화에 대한 글을 심심치 않게 읽게 되더군요.
특히 이런 우상화는 195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집니다. 특히 1960년 선거를 앞두고는 이기붕에 대한 선전과 엮여서 더욱 눈뜨고는 못 볼 수준이 되지요. 최근에 읽은 것 중에서 해군의 정훈잡지였던 월간 『해군』 1959년 8월호에 실린 글들이 인상적입니다. 1959년 8월호에는 이승만에 대한 특집과 함께 이기붕에 대한 특집이 함께 실렸는데 적당히 참고 읽어줄 만한 글도 있지만 「豫言者로서의 李承晩 大統領」처럼 민망한 글도 있습니다. 8월호에 실린 글을 한편 인용해 보겠습니다.(문장이 비문 투성이인 것은 넘어가죠)
글자만 몇개 바꾸면 북쪽에서도 쓸만한 글이라 하겠습니다. 195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정권재창출의 필요가 높아진 자유당, 특히 자유당의 강경파들은 이승만 우상화를 강화하고 여기에 이기붕 끼워팔기를 시도하는데 이것은 마치 김일성-김정일을 세트로 끼워파는 방식을 연상시킵니다. 다행히도 전자는 실패했지요. 사실 지도자에 초월적인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권위를 얻고 이것을 집권의 정당성으로 삼는 방식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단지 막연한 이미지를 팔아먹으면서 집권을 꿈꾸는 오늘날 과거의 망령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것 저것 주워듣다 보니 지도자 숭배라는 역겨운 문화가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찝찝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이 당선될 때 마다 반복되는 당선자 찬양은 표현 수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첨을 위한 글이라는 점에서 밥맛떨어지는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소위 ‘國父’라는 이승만 우상화는 가장 정도가 심한 것이어서 혐오감을 느끼다 못해 즐기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 보니 이승만 우상화에 대한 글을 심심치 않게 읽게 되더군요.
특히 이런 우상화는 195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집니다. 특히 1960년 선거를 앞두고는 이기붕에 대한 선전과 엮여서 더욱 눈뜨고는 못 볼 수준이 되지요. 최근에 읽은 것 중에서 해군의 정훈잡지였던 월간 『해군』 1959년 8월호에 실린 글들이 인상적입니다. 1959년 8월호에는 이승만에 대한 특집과 함께 이기붕에 대한 특집이 함께 실렸는데 적당히 참고 읽어줄 만한 글도 있지만 「豫言者로서의 李承晩 大統領」처럼 민망한 글도 있습니다. 8월호에 실린 글을 한편 인용해 보겠습니다.(문장이 비문 투성이인 것은 넘어가죠)
배달민족의 영원한 태양이시며 정의의 천사이신 우리 국부 리승만박사님 께서 조국의 자주 독립과 국제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싸워오신 형극의 길은 그대로 대한민국 중흥의 혈사이고 세계인류 평화의 건설자이시며 님께서 앞으로 실현하시려는 그 원대한 포부는 바로 겨레와 인류가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서는 반듯이 따라야 할 거룩한 정경대도이다.
겨레와 민국의 자유번영을 위하여 90평생을 아낌없이 헌신하여 오신 국부 리승만 박사께서는 유엔한국위원단 감시아래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케하고 초대 국회의장이 되시였고 헌법을 제정공포한 제헌국회에서 절대다수의 득표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시였다.
초대 대통령의 중책을 맡으시고 내각조직과 정권이양을 완료한 ‘리’대통령께서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자주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시였다. 표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에서 선포문을 낭독하시는 국부 리승만 대통령의 감격어린 모습이다.
「표지설명」,『해군』(1959. 8)
글자만 몇개 바꾸면 북쪽에서도 쓸만한 글이라 하겠습니다. 195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정권재창출의 필요가 높아진 자유당, 특히 자유당의 강경파들은 이승만 우상화를 강화하고 여기에 이기붕 끼워팔기를 시도하는데 이것은 마치 김일성-김정일을 세트로 끼워파는 방식을 연상시킵니다. 다행히도 전자는 실패했지요. 사실 지도자에 초월적인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권위를 얻고 이것을 집권의 정당성으로 삼는 방식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단지 막연한 이미지를 팔아먹으면서 집권을 꿈꾸는 오늘날 과거의 망령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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