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독일 제9군 사령부의 오룔 전투 보고서에 실린 삽화

바그라티온 작전 관련 문서들을 살펴보던 중 1943년 7월에서 8월에 걸쳐 오룔 돌출부에서 전개된 독일군의 퇴각전에 대한 전투 보고서를 찾았습니다. 제목은 'Schlacht im Orelbogen'으로 총 12쪽 입니다. 분량은 그리 길지 않은데 몇 편의 삽화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딱딱한 공식보고서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삽화를 집어넣은게 좀 재미있더군요.(물론 만화를 그려넣은 보고서도 있더군요. 이건 미군도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 가장 멋있는(?) 걸로 한장 올려봅니다.


격파된 T-34의 옆을 지나가는 4호전차들과 하늘 위의 슈투카들이 인상적이네요.

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1943~44년 겨울전역에서 제1SS기갑사단의 전차 손실

지난번에 썼던 「후퇴전에서 기갑부대의 전차 손실에 대한 잡상 - 바그라티온 작전의 독일 제4, 5기갑사단의 경우」와 내용이 연관되는 포스팅이로군요. 기갑총감부 문서를 보다가 흥미로운 통계를 하나 찾았습니다. 1944년 5월 제1SS 전차연대에서 작성한 보고서인데 1943~44년 겨울 동부전선에서 상실한 전차 내역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1SS 기갑사단은 1943년 겨울 소련으로 이동할 당시 완편된 상태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장기간의 후퇴전을 치뤘지요. 링크한 포스팅에서 다루는 제4, 5기갑사단과 비슷한 경우이니 비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표1. 제1SS 기갑사단의 전차 손실(단위 : 대)
손실 원인
4호전차
5호전차
6호전차
자폭(A)
27
40
13
자폭(B)
17
34
6
적의 공격
62
47
12
정비를 위해 본국으로 송환
8
40
6
타 부대에 인계
2
4
1
[표 출처 : “Totalausfälle an Pz.kpfw.” (1944. 5. 9), RG242 T78 R622]
[자폭A는 기계고장이 원인인 경우, 자폭B는 피격, 지뢰에 의한 피해가 원인으로 견인을 할 수 없어 자폭시킨 경우.]

4호전차의 경우 자폭 보다는 적에 의해 격파된 비율이 높은데 판터와 티거는 정반대라는 점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4호전차는 자폭시킨 것이 44대, 적의 공격으로 상실한 것이 62대인데 판터는 자폭시킨 것이 74대이고 적의 공격으로 상실한 것이 47대 입니다. 판터의 경우 정비를 위해 본국으로 송환한 숫자도 상당한 점이 눈에 들어오는 군요. 티거의 경우도 판터와 비슷합니다. 링크한 글의 제4, 5기갑사단의 경우도 양상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하게 만드는 자료입니다. 실제 서부전선에서의 손실을 보더라도 판터와 티거의 경우는 자폭의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지요.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제프" 디트리히와 미국 정신과의사의 면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당시 피고인들의 정신상담을 담당했던 미국 정신과의사 리언 골든슨Leon Goldensohn의 면담록을 읽는 중 입니다. 나치 독일의 굵직한 거물들이 나오니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히는군요. 오늘은 “제프” 디트리히Josef Sepp Dietrich를 면담한 부분을 읽었는데 이것도 역시나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 하나를 발췌해 보지요. 1946년 2월 28일에 있었던 면담이라고 합니다.

골든슨 : 히틀러가 1940년 이전에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까?

디트리히 : 물론이오. 전쟁을 일으켰잖소. 전쟁에 진 패자는 한심해 보이는 법이지. 독일의 외교는 형편 없었소.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 부터 말이오.

골든슨 : 무슨 이야기입니까?

디트리히 : 지도를 한번 펼쳐봐요. 독일이 어디에 붙어 있습니까? 독일을 둘러싼 나라들을 한번 봅시다. 그리고 독일의 적국과 우방국을 찾아 보시오. 그러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알 게요.

Leon Goldensohn(Author), Robert Gellately(Editor), Nuremberg Interviews : An american psychiatrist’s conversations with the defendants and witnesses, (Vintage Books, 2004), p.283

양면전쟁을 두 번이나 경험한 군인다운 평가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재미있는 또 다른 요소는 여러 인물들의 주관적인 인물평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물평이니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게 많습니다. 골든슨은 디트리히에게 롬멜에 대해 물어봅니다. 디트리히는 롬멜에 대해 꽤 냉정한 평가를 내립니다.

디트리히 : 롬멜 원수는 나와 대략 비슷한 연배였소. 기갑전에 능통한 장군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랬지.

골든슨 : 롬멜 원수가 유능한 기갑부대 지휘관이 아니란 겁니까?

디트리히 : 평범한 수준이었소.

(디트리히는 롬멜에 대해 매우 냉정했다.)

디트리히 : 병과를 바꾸는건 어려운 일이오. 롬멜 원수는 보병전에 능통한 장군이라고 해야겠지. 롬멜 원수는 침착하지 못한 성격이라서 모든 것을 한번에 해치우길 원했소. 그리고 나면 흥미를 잃어버렸지. 나는 노르망디에서 그의 부하였소. 롬멜 원수가 좋은 장군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 성공을 거두면 괜찮았지만 상황이 역전되면 침울해 졌소.

Leon Goldensohn(Author), Robert Gellately(Editor), ibid., p.280

디트리히는 면담에서 자신이 카톨릭 신도임을 강조하면서 나치즘에 경도된 인물은 아니었다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이러한 자기 변론은 전후 서독에 거주한 무장친위대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논조라 꽤 재미있습니다.  몇년전 포스팅 했던 “기이한 도덕적 먹이사슬”에 인용한 글 처럼 나치당의 사조직이 아니라 독일군의 일원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전차 및 돌격포 손실률

지난번에 올렸던 「2차대전 후반기 독일군의 대전차포 손실률」의 후속 포스팅입니다. 넵. 또 통계자료 하나로 대충 때우는 땜빵 포스팅입니다. 이왕 읽으시는 김에 역시 지난번에 썼던 「후퇴전에서 기갑부대의 전차 손실에 대한 잡상 - 바그라티온 작전의 독일 제4, 5기갑사단의 경우」도 같이 보시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통계부터 나갑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인용한 통계와 마찬가지로 손실률의 단위는 %이고 매달 1일 보유하고 있던 차량 숫자를 기준으로 그달 마지막 날까지 집계된 손실 대수로 나눈 것 입니다.

표. 독일군의 전차 및 돌격포 손실률(1943.7~1944.9)


돌격포
3호전차
4호전차
5호전차
6호전차
1943.7
12
15
28
41
18
1943.8
10
15
22
32
22
1943.9
10
9
15
25
15
1943.10
13
11
16
26
15
1943.11
14
18
23
20
11
1943.12
9
10
24
19
23
1944.1
15
10
22
30
22
1944.2
14
9
12
24
5
1944.3
13
4
9
3
9
1944.4
18
15
18
31
23
1944.5
7
2
6
15
5
1944.6
8
10
15
15
20
1944.7
36
12
28
28
45
1944.8
16
5
23
22
24
1944.9
26
29
52
60
35
[표 출처 : “Anl zu Nr.3730/44 gkds Gen.Insp.d.Pz.Tr : Pz u. Stu.Gesch Verluste 1943/44” (1944.11.6), NARA RG242 T78 Roll145]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돌격포가 회전포탑을 가진 전차들에 비해 낮은 손실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 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1944년 7월에는 티거 다음으로 높은 손실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겠지만 돌격포는 티거 만큼이나 높은 피아 교환비율을 보이는 장비입니다. 1944년 7월에 유독 높은 손실률을 보이는 이유는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중부집단군의 기갑전력 핵심을 이루던 돌격포여단들이 대거 괴멸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추후 바그라티온 작전 관련 포스팅을 할 때 다룰 기회가 있겠지요.

1943년 7월에 판터가 유독 높은 손실률을 기록한 것은 다들 아시다 시피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한 판터D형이 기계결함 등으로 지독한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손실이 점차 줄어들어 4호전차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요.

역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지난번에 올렸던 대전차포의 손실률과 마찬가지로 1944년 7월부터 폭증하는 손실률입니다. 노르망디 전역과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인한 패배의 타격이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1944년 9월에는 엄청난 손실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시기에 집중적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독립 기갑여단들의 피해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