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0일 일요일

2차대전기 미영 연합군의 전차 손실에 대한 통계 :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

늘 그래왔듯 통계 몇 개로 때우는 땜빵 포스팅 한개 나갑니다.

2차대전 시기 셔먼으로 대표되는 미영연합군의 기갑차량들은 거의 대부분 야라레메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물건들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 시피 셔먼이 유별나게 문제가 많은 물건이라기 보다는 주적인 독일군의 대전차 화력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관련된 이야기는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제 블로그에서도 몇차례 이야기를 했으니 “또 저 이야기냐?” 하실 분도 많을 듯 싶습니다. 그래도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 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포스팅에서 다룰 자료는 1951년 3월 31일 발행된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입 니다. 이 보고서는 방대한 표본조사를 통해 작성되어 신뢰도가 상당히 높은 편으로 지금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좋아할 만한 기갑차량의 손실 원인에 대한 분석으로 손실원인, 화기의 종류, 승무원의 사상률 같은 통계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이 짧은 포스팅에서 보고서의 내용을 다 다룰수는 없으니 몇가지 흥미로운 통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보지요.(이 포스팅에서 다루지 못하는 내용은 앞으로 조금씩 다뤄보겠습니다.)


1. 연합군 전차의 손실 원인

제일 먼저 연합군 기갑차량의 전투 중 손실 원인에 대한 통계입니다. 유럽전선에서의 손실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표의 출처는 모두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2]

표1.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미영연합군의 전차 손실(1941~1943)

표본
포격
지뢰
판처파우스트
/판처슈렉
박격포
기타
원인불명
미군
(1942~1943)
277
59
19
0
0
14
159
영국군
(1941~1943)
1,718
1,381
260
0
2
74
0
프랑스군
(1943)
39
30
9
0
0
0
0

표2.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전선에서 미영연합군의 전차 손실(1943~1945)

표본
포격
지뢰
판처파우스트
/판처슈렉
박격포
기타
원인불명
미군
(1943~1945)
743
234
139
37
3
42
134
영국군
(1943~1945)
926
449
189
59
13
25
167
캐나다군
(1943~1945)
739
176
102
12
4
16
152

표3. 서유럽 전선에서 미영연합군의 전차 손실(1944~1945)

표본
포격
지뢰
판처파우스트
/판처슈렉
박격포
기타
원인불명
미군
(1944~1945)
4,257
1,738
614
412
25
143
809
영국군
(1944~1945)
1,685
929
419
179
7
67
63
캐나다군
(1942~1945)
845
279
74
46
8
31
224

서유럽 전선에서는 판처파우스트와 판처슈렉에 의한 손실이 상당히 높게 나타납니다. 2011년에 올렸던 베를린 전투 당시 소련군의 전차 손실 원인에 대한 글에 서도 언급했지만 전쟁 후반기에는 독일군의 보병용 대전차 화력이 증대되면서 연합군 전차에 상당한 위협을 주게 됩니다. 참고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연합군의 기록에서 판처파우스트에 의한 전차 손실이 보고된 것은 1944년 2월 이라고 하는군요. 훗날 주한미군사고문단장을 역임하는 로버츠 준장은 1945년 4월 21일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판처파우스트는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경험한 적의 대전차 무기 중 가장 지독한 물건이다. 이 무기는 아군의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데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도 쉽게 다룰 수 있다. 현재 아군의 전차를 위협하는 유일한 무기는 판처파우스트다.”라고 평했습니다. 실제로 연합군의 라인란트 전역에서 발생한 전차 손실의 25~35%가 판처파우스트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군요.1)

다음으로는 태평양 전선의 기갑차량 손실입니다. 이 지역은 유럽과 달리 대규모의 기갑전력이 투입되지도 않았고 손실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나름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보여줍니다.[마찬가지로 표의 출처는 모두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2]

표4. 인도-버마 전선에서 영연방군의 전차 손실

표본
포격
지뢰
HEAT
박격포
기타
원인불명
영연방군
(1945)
102
64
19
9
0
3
7

표5.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의 기갑차량 손실

표본
포격
지뢰
HEAT
박격포
기타
원인불명
미육군
(1944~1945)
393
134
113
0
7
92
9
미해병대
(1942~1945)
416
121
101
0
8
53
28

표5를 보시면 태평양 전선에서 유독 “기타” 손실이 높게 나타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태평양 전선의 “기타” 손실에는 일본군 보병의 육박공격이 상당수 포함되는 모양입니다.2)




2. 연합군 전차의 피격 부위

다음은 피격 부위에 대한 통계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포격과 (판처파우스트 류의) 보병용 대전차화기가 전차의 어느 부분에 명중했는지를 분석한 통계도 실려있습니다. 그 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표6. 포격에 의한 연합군 전차의 피격 부위

표본
포탑
차체
서스펜션
미군
(서유럽 1)
784
247
408
123
미군
(서유럽 2)
284
88
145
51
미군
(이탈리아)
23
7
9
7
영국군
(서유럽)
320
104
166
50
영국군
(이탈리아)
24
10
12
2
영국군
(북아프리카)
31
15
4
12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0, p.21. 미군의 통계 중 서유럽 1은 제1군에서 집계한 통계이며 서유럽 2는 제3, 7, 9군의 통계를 합산한 것이다.]

표7. 보병용 대전차 화기에 의한 연합군 전차의 피격 부위

표본
포탑
차체
서스펜션
미군
(서유럽 1)
119
45
67
7
미군
(서유럽 2)
52
18
28
6
미군
(이탈리아)
1
0
1
0
영국군
(서유럽)
145
76
57
12
영국군
(이탈리아)
4
2
1
1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2. p.22]

그리고 조금 더 상세하게 조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격파된 107대의 셔먼을 분석해서 피격 부위와 관통 유무를 정리한 것인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표8. 셔먼 전차의 피격 부위와 관통 유무

명중
관통
방어
차체후부 상면
2
2
0
포탑 측면
28
14
14
차체상부 측면
47
42
5
차체하부 측면
27
27
0
포탑 정면
13
10
3
차체 정면
30
22
8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figure 12.]

방어력이 가장 강력한 포탑 정면과 차체 정면도 명중 당하면 관통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약간 의외인 것은 포탑 측면의 경우 상대적으로 관통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전체적인 평가에 영향을 끼칠 수준은 아니로군요. 다 아는 이야기지만 셔먼 전차는 일단 독일군한테 맞으면 뚫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연합군 전차를 격파한 추축군 화포의 구경

다음으로는 추축군 화포의 구경에 따른 손실입니다.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선은 표본의 숫자가 상당히 적습니다. 서유럽 전선의 통계도 표본이 충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일정한 경향은 보여주는 듯 합니다. 독일군이 노획 무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해서 그런지 서유럽전선에서 조사된 통계는 화포의 구경이 잡다합니다.

표9. 연합군 전차를 격파한 추축군 화포의 구경(북아프리카 전선)

미군
영국군
47mm
5

50mm
1
15
75mm
2
10
77mm
1

88mm

110
105mm

1
210mm

4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6, p.28]

표10. 연합군 전차를 격파한 추축군 화포의 구경(이탈리아 전선)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
50mm

2
2
57mm
1


75mm

20
13
88mm
1
16
5
105mm


1
150mm
1


155mm


1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5, p.28]

표11. 연합군 전차를 격파한 추축군 화포의 구경(서유럽 전선)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
20mm
3

2
37mm
2

16
40mm
3


47mm
3


50mm
1
3
1
57mm
6


75mm
290
34
9
76mm
12


77mm
1


88mm
224
81
95
105mm
24
1

150mm
13


155mm
5


170mm
2


178mm
7


210mm
1


240mm
2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14, p.27]


4. 유럽전선 전차 승무원의 피해

이 보고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전차가 격파될 경우 사상자는 얼마나 발생하는지 조사를 했다는 것 입니다. 보고서 작성자들이 사용한 표본은 유럽전선에서 격파된 미군의 중형전차 274대(승무원 1370명)와 경전차 48대(승무원 192명) 입니다. 보고서 원문에는 손실 원인별 인명손실이 자세하게 분석되어 있는데 이것까지 다루면 구글문서도구에서 다루기 곤란할 정도로 표가 복잡해 지니 단순하게 정리한 통계를 올립니다.

표12. 미군의 중형전차 전차병 손실(괄호는 사상자에서 차지하는 비율)

전사
부상
행방불명
무사함
전차장
36(23.1%)
108(69.2%)
12(7.7%)
118
사수
38(27.1%)
90(64.3%)
12(8.6%)
134
장전수
30(21.4%)
95(67.9%)
15(10.7%)
134
조종수
31(24.2%)
86(67.2%)
11(8.6%)
146
전방기관총수
36(27.3%)
87(65.9%)
9(6.8%)
142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20, p.38]

표13. 미군의 경전차 전차병 손실(괄호는 사상자에서 차지하는 비율)

전사
부상
행방불명
무사함
전차장
13(43.3%)
17(56.7%)
0
18
사수
12(38.7%)
18(58.1%)
1(3.2%)
17
조종수
13(40.6%)
19(59.4%)
0
16
전방기관총수
14(43.8%)
18(56.2%)
0
16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21, p.39]

역시 전차의 손실 원인과 비교하면 포본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한가지 재미있는 점이 보이는데 썩어도 준치라고, 중형전차인 셔먼의 승무원이 스튜어트 보다는 안전하다는 점 입니다. 스튜어트 전차의 승무원은 전차가 격파될 경우 전사하거나 부상당하는 비율이 65.1%에 달하지만 셔먼 승무원은  50.8%입니다.(;;;;;;;) 게다가 스튜어트는 전사하는 비율이 사상자의 41.6%지만 셔먼은 24.6%로 사망률이 월등히 낮습니다.(물론 판터와 판처파우스트에 시달리던 전차병 본인들에겐 별 위안이 안됐겠지만 말이죠.)




1)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pp.9~10.
2) Ibid., p.11.

2013년 3월 9일 토요일

양키 센스;;;;

얼마전 읽었던 책에서 배꼽을 잡았던 부분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총 인구의 10퍼센트가 기아로 사망했는데 근대적인 국민국가체제가 들어선 이후의 산업화된 국가 중 이런 사례는 흔치 않다. 이곳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채식주의자인데 그들이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Most everyone is vegetarian, but not by choice.) 흔히 먹는 식사는 채소를 넣은 옥수수죽이다. 평범한 북한 사람들은 소고기를 구경조차 하기 힘들어서 일 년에 한번 먹는 진미일 정도이다. 2011년 2월 북한의 농촌 지역을 방문한 어떤 NGO에서는 북한 사람들의 영양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단백질이 함유된 식품을 마지막으로 먹어본게 언제입니까?” 응답한 사람의 거의 전부가 마지막으로 달걀이나 고기를 먹어본 날자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영양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Victor Cha, The Impossible State : North Korea, Past and Future, (Harper Collins, 2012), p.8.

개인적으로 북한을 싫어하긴 합니다만 가난 가지고 조롱하는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웃지 않을 수 없군요. 솔직히 웃고 나서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어제는 CNN에서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김정은을 보고 울부짖으며 열광하는 초라한 행색의 북한인들을 보여줬는데 자연스럽게 이 부분이 떠오르더군요. 아마 김정은의 늘어진 턱살을 볼 때마다 이 구절이 떠오를 겁니다.

맥아더 기념관 - 2


맥아더 기념관 - 1


지난번에 올리다가 인터넷 접속이 잘 안돼서 그만뒀던 맥아더 기념관 사진을 계속 올립니다. 돌아오니 인터넷 속도와 안정성이 높아서 좋군요.

시간이 모자라서 급하게 사진을 찍다 보니 초점이 안맞은게 많습니다. 많이 아쉽군요.

기념관 한 쪽에는 태평양전쟁에서 맥아더를 보좌했던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제8군 사령관을 지냈던 아이첼버거의 초상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제8군 사령관 로버트 아이첼버거
맥아더의 참모장 리처드 서덜랜드
말 많은 정보참모 윌로비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필리핀에 상륙하는 맥아더와 참모진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있었습니다. 사진으로 유명한 그 장면이죠.



다음으로는 필리핀 전역과 일본의 항복을 다룬 전시실이 있습니다.


전시물은 대체로 평이합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활약한 전함 캘리포니아와 호위항공모함 갬비어 베이의 모형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캘리포니아의 모형은 좀 투박합니다.


왠지 비싸보이는 전함(.....) 캘리포니아

갬비어 베이의 모형은 상대적으로 멀쩡합니다...

그리고 필리핀의 레지스탕스 운동에 관한 설명문이 이어집니다.



다음으로는 일본 침공작전인 "다운폴" 작전에 관한 설명문이 나오고...



일본의 항복이 이어집니다.


일본의 항복선언문
그 유명한 미주리 갑판의 기념판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일본의 항복 이후에는 맥아더의 영광이 절정에 달했던 일본 점령기에 대한 전시물이 있습니다. 일본 점령과 맥아더가 추진한 일본 개혁에 관한 내용들이지요.




그리고 마카사 쇼군에게 올라온 진상품들이...






한국전쟁에 관한 전시는 상대적으로 평이합니다.





맥아더의 해임을 비판한 Carey Orr의 만평. 트루먼은 난쟁이로 묘사되고 있지요.

마지막으로는 맥아더의 해임과 그 이후의 활동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왼쪽 아래의 레코드판은 맥아더가 의회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을 녹음한 것 이라네요.
역시나 유명한 맥아더의 원수모와 담뱃대, 그리고 선글라스 입니다.
맥아더가 받은 주요 훈장. 아랫줄 오른쪽에서 네번째에는 한국에서 받은 무공훈장도 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서 구경을 날림으로 한게 아쉬운데 제가 이곳을 방문하고 얼마 있지 않아 신관이 개관을 했습니다. 다음번에 이곳을 방문하면 신관을 구경하게 되겠지요.

맥아더 기념관은 Norfolk라는 큰 도시에 있다 보니 주변에 돌아볼 곳이 많았습니다. 근처에 버지니아 비치도 있어서 그냥 놀러가기에도 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념도서관과 박물관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가 아이젠하워 기념관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말그대로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아이젠하워 기념관과는 천지차이였습니다.

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돌아왔습니다.

어제 귀국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가벼운 두통과 이코노미석의 어린아이들 울음소리로 굉장히 끔찍했습니다. 그나마 기내식이 위안거리였지만 너무 조금 주더군요. 흐흐흐.

돌아와서 라면 한개 끓여 먹고 바로 잤습니다. 많이 피곤한가 했는데 평소 처럼 눈이 떠지더군요. 오늘 하루를 더 쉬고 일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블로그는 조만간에 공개로 돌려 놓겠습니다.

2013년 2월 4일 월요일

독일 야전군의 작전일지에 관한 잡상

이곳에 온 뒤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이크로 필름실에 있는 독일 노획문서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서 많은 문서를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제2기갑군, 제3기갑군, 제4군, 제9군의 작전일지를 대략이나마 훑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작전일지들의 틀은 같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보인다는 것 입니다. 독일 야전군의 작전일지는 일정한 작전이 끝난 뒤 정리한 일지와 그 일지에 부속되는 문서들로 구성된 부록으로 포함됩니다. 작전일지도 중요하지만 연구자들에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일지의 기초자료가 되는 부록이라 하겠습니다. 이 부록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야전군의 참모부가 작성한 일지와 그 예하제대, 혹은 상급제대간의 교신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일지의 구성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예를 들어 1943년 말 이후 제4군과 제9군은 작전참모부의 일지가 각 부서별로 세분화 되어있고 특히 대전차전 담당 참모Stopa, Stabsoffizier für Panzer-Bekämpfung의 보고서가 별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반면 제3기갑군은 작전참모의 일지에 모든 정보가 통합되어 있는 식 입니다. 제3기갑군의 작전일지에는 대전차전 담당 참모의 기록이 매우 소략합니다. 제9군의 대전차전 담당 참모의 일지는 꽤 상세해서 1944년 7월 이후의 경우에는 야전군 예하 제대들의 기갑차량 및 대전차포 현황은 물론 매일 매일의 전차 손실, 적 기갑차량 격파에 대한 정보가 매우 풍부합니다. 제4군의 경우는 보병용 대전차화기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상세한 점이 장점입니다. 그 밖에 제9군의 작전일지는 하위 제대의 병력 현황에 대한 정보가 다른 야전군 보다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상당한 장점이지요. 다른 야전군의 경우는 병력 현황에 대한 정보가 불규칙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넉넉해서 다른 야전군과 하위 제대의 일지들도 살펴볼 수 있다면 더 흥미로운 점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략 훑어보면서 느낀 감상은 야전군 수준의 자료만으로도 제법 미시적인, 바꿔 말하면 꽤 재미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많이 발굴해 낼 수 있겠다는 것 입니다. 물론 하위 제대의 자료까지 찾아볼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만 불행히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군요.

2013년 1월 8일 화요일

어떤 명령문

1944년 7월 27일 오후에 제4군 사령부가 모길료프 요새지구(Fester Platz) 사령관 에르드만스도르프(Gottfried von Erdmannsdorf) 소장에게 내린 명령문입니다.



"총통각하의 명령에 따라 모길료프 요새지대를 포기하지 말고 최후까지 방어하라."

2차대전 말기에 히틀러에 의해 내려진 수많은 사수명령 중 하나이지요. 이런 짤막한 명령문에 수천, 수만명의 생사가 좌우되었습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료입니다.

2013년 1월 4일 금요일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 독일 제4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현황

독일 제4군의 문서를 읽다가 재미있는 통계를 발견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직전인 1944년 6월 10일에 집계한 독일 제4군 예하 사단의 장비 보유량에 대한 통계입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각 사단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량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단이 인가량을 훨씬 초과한 보병용 대전차화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이 시기 독일군의 보병사단들을 살펴보면 사단 직할 대전차대대에 1개의 돌격포대가 배치되는 등 대전차전력이 크게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보병용 대전차화기의 대량 배치도 그 일환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시 중부집단군 소속 사단들의 중화기 현황은 이 글을 참고하십시오.

재미있는 통계입니다. 한번 보시죠.

표. 독일 제4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 보유량(1944. 6. 10)

사단
판처슈렉
판처파우스트
대전차소총
인가량
30
1,000
-
18기갑척탄병사단
71
1,500
-
267보병사단
88
1,430
-
57보병사단
72
983
-
기갑척탄병사단FHH
88
1,550
-
12보병사단
80
1,179
5
31보병사단
119
1,147
-
337보병사단
86
1,182
4
110보병사단
66
1,236
-
260보병사단
141
1,366
6
25기갑척탄병사단
55
1,313
-
78돌격사단
58
1,248
3
[표출처 : “Armeeoberkomando 4, O.Qu./WuG(T), Az 72g, Nr.3794/44geh, Waffenlage”(1944.6.11), RG242 T312 R239]

2013년 1월 3일 목요일

5ㆍ10선거 관련 기록사진

미합동참모본부의 한국전쟁시기 파일을 훑어보던 중 5ㆍ10선거에 관한 문서를 발견했습니다. 예전에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 파일에서 봤던것 같은데 한국전쟁시기의 파일에서 같은 문서가 나오니 재미있더군요. 마침 문서에 첨부된 기록사진들이 재미있어서 한번 올려봅니다. 몇장의 사진은 꽤 유명한데 제가 처음 보는 사진도 있네요. 사진에 대한 영문 설명이 붙어있으니 따로 설명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같이 포함되어 있는 제헌의회 개회식 사진은 워낙 유명하니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