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7일 목요일

기갑총감부 보고서 "노르망디 전선에서의 대전차전 경험"

독일육군 기갑총감부 문서 중에서 1944년 6월 25일에 작성된 “노르망디 전선에서의 대전차전 경험Erfahrungen der Panzer-Bekämpfung an der Invasionfront Normandie”라는 문건은 1944년 6월 6일 부터 6월 24일까지 독일군이 미영연합군의 기갑부대를 상대하면서 얻은 경험에 대해 담고 있습니다.1) 독일군의 정보분석에 대한 문제점과 미영연합군의 기갑전력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7월 5일에 작성된 다른 문서의 부록인데 해당 폴더에 원문서는 없어서 이 문서만 인용합니다.

이 보고서의 서두에서는 노르망디 전역 초기에 독일군의 야전 부대들이 연합군 기갑장비들을 식별하고 정보를 수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된 이유는 노르망디에 배치되었거나 증원된 부대들이 전차식별에 필요한 정보자료를 제대로 보유하지 못했거나 오래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정보 때문에 연합군의 기갑장비에 대해 과장되거나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되어 전차공포증Panzerschreck에 걸릴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로 연합군 포로로 부터 획득하는 정보가 늘어나면서 이것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합니다.2)

이 보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연합군의 기갑장비 및 대전차화기에 대한 평가

이 보고서는 6월의 교전을 통해 새롭게 파악한 연합군의 전차가 크롬웰 순항전차와 M4A4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셔먼에 대해서는 “서방의 T-34(T-34 des Westen)”라고 칭하고 있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M4A4에 대해서는 기존의 셔먼과 달리 58구경 76.2mm포가 주무장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M4A4 중에 많은 수가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다 보니 모든 M4A4가 17파운드포를 탑재한 것으로 혼동한 모양입니다. 또한 신형 셔먼의 장갑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75mm포의 경우는 원거리에서 격파할 수 있으며 50mm포도 근거리에서 관통이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3)
크롬웰 순항전차에 대해서는 포탑은 처칠 보병전차와 유사하고 차체 및 전반적 형태는 크루세이더 전차와 유사한 혼종Kreuzung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크루세이더 전차 보다는 장갑이 강화되었지만 처칠 보다는 약하다고 지적합니다. 크롬웰은 50mm급 이상의 화기라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처칠 보병전차에 비해 공격이 쉽다고 평가합니다.4)

M4A4와 크롬웰 순항전차를 제외한 차종은 이미 정보가 있기 때문인지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M5 경전차에 대해서는 별칭이 코만도Commando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칠 보병전차의 경우는 공병전차AVRE, 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로 개조된 차량에 대해 특기하고 있습니다. 테트라크 공수전차는 장갑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20mm 대공포로 상대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군이 M6 중전차를 노르망디에 투입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면서 추후에 전장에 투입할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투입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M6 중전차에 대해서는 드레드노트라는 별칭을 붙이고 있는데 정보 출처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영연합군이 M3 그랜트나 발렌타인 같은 구식 전차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특기하고 있습니다.5) 구식전차를 투입하지 않았다는 점은 전쟁 말기까지 온갖 잡다한 차종을 사용하던 독일군의 입장에서 특이하게 생각됐을 수도 있겠습니다.

대전차포 중에서는 영국군의 6파운드 대전차포(독일군은 5,7cm Pak L/70으로 호칭)와 3인치 대전차포(독일군은 7.62mm Pak Mk.I L/52로 호칭) 두 종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6파운드 대전차포의 성능은 독일군의 중전차를 격파하기에 부족하지만 교전거리가 짧은 노르망디 지역의 특성상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3인치 대전차포에 대해서는 Pak40과 관통력이 비슷하지만 포 자체의 무게가 무거워서 전술적인 기동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한편 연합군에 92mm 대전차포가 있다는 정보에 대해서는 대공포를 대전차포로 오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6)


2. 연합군의 전술에 대한 평가

연합군의 기갑전술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습니다. 독일군은 미영연합군이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서 실행한 상륙작전과는 다르게 초기에 보병과 함께 전차를 상륙시킨 것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상륙 제1진으로 투입된 영국군 전차들이 상륙하자 마자 곧바로 공격으로 전환해 보병의 지원도 받지 않고 독일군의 화점이나 저항거점을 공격한 것을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화점과 저항거점을 대전차지뢰와 대전차호 같은 거부수단으로 보강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7)

연합군의 기갑전술에 관한 부분에서 꽤 재미있는 내용은 미군과 영국군 전차 승무원들의 사격이 독일군 만큼이나 신속하고 정확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점 입니다.8)

또한 미영연합군이 기갑수색부대를 활발하게 활용하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전차가 대규모로 투입되고 있으며, 여기에 장갑차와 기계화보병이 함께 편제되어 정찰을 수행하는 점을 특기하고 있습니다. 연합군이 정찰임무에 경전차를 대량으로 투입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각 부대에 전차가 나타난다 해도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교전할 것을 숙지시키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가지에서는 소화기로도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이 없는 지역이라 하더라도 경전차를 동반한 연합군의 기습적인 정찰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숙지시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9)

Caen 일대에서 영국군이 보여준 기갑 전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독일군은 영국군이 캉 일대의 개활지에서는 보통 50대 내외의 소규모 전차부대를 투입하고 있으며 보병의 직접지원이 부족해서 상황이 유리한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카쥬 지형에서는 기갑 부대들이 보병의 지원을 잘 받으면서 작전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차를 호위하는 보병들이 독일군 보병의 근접공격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10) 포병과 기갑부대의 협동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포병 관측이 곤란한 지역에서도 매우 모범적인mustergültig운용을 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11)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연합군 공군의 강력한 전술지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독일군의 대응에 대한 평가

독일군의 대응에 대한 평가 중에서는 대전차자주포와 돌격포의 운용에 대한 평가가 재미있습니다. 대전차자주포나 돌격포는 전차부대에 비해 단차 단위나 소대 단위의 전투 훈련을 많이 받은 편이기 때문에 보카쥬 지형에서 유리했다는 점 입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회전포탑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견인식 대전차포에 대해서는 혹평이 중심입니다. 자체적인 기동력이 없기 때문에 교전거리가 짧은 보카쥬 지형에서는 운용하기가 어렵고 적의 포격이나 폭격에 쉽게 무력화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역에 투입된 제21기갑사단 소속의 견인식 88mm 대전차포 대대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88mm 대전차포는 유효사정거리가 매우 길기 때문에 넓은 간격을 두고 배치해도 화력의 집중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12)

독일군의 대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병의 육박공격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 입니다. 독일측의 기록에 따르면 6월 6일 부터 6월 24일까지 총 108대의 미영연합군 전차를 보병 육박공격으로 격파했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6개의 독일군 사단이 격파한 미영연합군의 전차 숫자와 격파 수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르망디 전선 독일군의 연합군 전차 격파 대수 및 격파 수단

전차
돌격포
대전차
자주포
견인식
대전차포
견인식
88mm
대공포
야포
보병공격
17SS

7

5



5
352보병


21


21
25
30
2기갑



15


4
5
교도기갑
85

16
7


4
40
12SS
105


16



23
21기갑
37


15
43

3
5
[표출처 :  “Anl 5 zu Gen .Insp.d.Pz.Tr, Chefgruppe Nr.1839/44 g.k.v, ‘Panzerabschuss-Liste’”(1944. 7. 3), H16/201 Pz Offz b Chef Gen St d H, RG242 T-78 R620 Folder 3, NARA, pp.1~2.]

노르망디 전역 초기 3주간에 해당하는 보고서이기 때문에 이후 미영연합군의 전술적인 개선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없지만 독일군의 초기 대응과 시행착오에 관해서는 흥미로운 점을 보여주는 보고서입니다.


주석
1) “Erfahrungen der Panzer-Bekämpfung an der Invasionfront Normandie”(1944. 6. 25), H16/201 Pz Offz b Chef Gen St d H, RG242 T-78 R620 Folder 3, NARA
2) ibid., pp.1~2.
3) ibid., pp.2~3.
4) ibid., p.3.
5) ibid., pp.3~4.
6) ibid., pp.5~6.
7) ibid., p.7.
8) ibid., p.8.
9) ibid., p.8.
10) ibid., p.10.
11) ibid., p.11.
12) ibid., pp.12~13.

2014년 3월 21일 금요일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7권 1호 특집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의 최신호인 제27권 1호를 훑어보는 중 입니다. 최근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에 대한 특집호로 구성되어 제2차 세계대전사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는게 유감입니다. 3월에 출간되다 보니 최근 전개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문제는 다루지 못했지만 이것은 아마 여름에 나올 제2호에서 다루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27권 1호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편의 논문이 실려 있습니다.


Roger N. McDermott, “The Brain of the Russian Army: Futuristic Visions Tethered by the Past”

Jacob W. Kipp, “‘Smart’ Defense From New Threats: Future War From a Russian Perspective: Back to the Future After the War on Terror”

Daniel Goure, “Moscow’s Visions of Future War: So Many Conflict Scenarios So Little Time, Money and Forces”

Timothy Thomas, “Russia’s Information Warfare Strategy: Can the Nation Cope in Future Conflicts?”

Alexander Golts, “Reform: The End of the First Phase—Will There Be a Second?”

Keir Giles, “A New Phase in Russian Military Transformation”

Dmitry (Dima) Adamsky, “If War Comes Tomorrow: Russian Thinking About ‘Regional Nuclear Deterrence’”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논문을 조금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논문인 로저 맥더못Roger N. McDermott의 “The Brain of the Russian Army: Futuristic Visions Tethered by the Past”는 러시아의 국방개혁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몇가지 측면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비판적인 경향이 강한 글 입니다.
 필자는 근본적으로 러시아 국방부의 기획 수립 능력 자체에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소련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러시아군의 폐쇄성과 형편없는 통계 조사 능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사례의 하나로 러시아 국방부가 군 연금 대상자 통계조차 똑바로 내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합니다. 2006년에 러시아군이 작성한 통계에서는 2011년까지 연금 지원 대상자가 24,000명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2011년이 되자 연금 지원 대상자는 45,000명이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1) 필자는 빈약한 통계 조사 능력과 같은 부실한 기반에 의거해 수립하는 계획이 제대로 추진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통계 자료를 획득할 수 없으니 연구조사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러시아군의 행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례로 드는 것 중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국방개혁의 목표 중 하나는 장교단을 축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2010년까지도 감축 목표에 전역자로 인한 자연 감소를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2) 이쯤 되면 주먹구구식이라고 비난을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필자는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획 능력을 결여한 러시아 국방부가 러시아군 총참모부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 병력 운용의 문제를 들고 있습니다. 러시아 육군이 사단체제에서 여단체제로 개편되면서 전투 준비태세가 강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12개월 징집병과 지원병으로 구성된 러시아군의 전투 준비태세는 의심스러운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필자는 러시아 국방부가 기획능력의 난맥상을 감추기 위해서 새로운 여단체제의 효율성을 과대선전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3)
 이같은 문제점은 장교에 대한 인사 정책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필자는 러시아군이 2008년에 장교의 숫자를 35만5명에서 15만명으로 감축하기로 한 결정이 체계적인 기획의 결과물이 아니라 단지 “외국 군대의 장교 비율을 참고해서” 장교의 숫자를 총 병력의 15%로 한다는 목표에 따라 설정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15만명으로의 감축을 시작한 2008년 부터 장교 감축의 목표를 22만명으로 재조정한 2011년 까지 장교를 감축하면서 일어난 주먹구구식의 행정 사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읽다보니 너무 황당한 내용이라서 제가 오독을 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장교 숫자를 감축해야 한다는 이유로 2년 동안 간부후보생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애교일 정도입니다.4) 그리고 육군을 여단 체제로 개편하면서 이에 걸맞는 장교 교육 체계는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실제로 2009년도에는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여단장 보직에 대령을 임용하기 위해 여러명의 대령을 면접한 결과 후보자로 올라온 대령의 대부분이 여단을 지휘할 능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5) 제가 조지아 전쟁 시기에 썼던 “소련-러시아 장교단의 붕괴와 그 후유증, 1987~”이라는 글에서 이야기 했던 것 처럼 여전히 장교단 붕괴의 여파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다음으로는 러시아군의 여단 편제 개편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데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상군의 여단 대부분이 편제 미달이다.
2. 지원병과 징집병에 혼재되어 있어 전투 준비태세가 부족하다.
3. 대부분의 여단이 여전히 구식장비로 무장하고 있으며 신형장비의 도입이 지지부진하다.
4. 장교단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5. 지휘부의 능력이 부족하며 특히 대대급으로 내려가면 문제가 심각하다.
6. 유능한 부사관이 부족하다.6)

 2011년에 편성된 우주-방공군Воздушно-космическая оборона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제가 정말 모르는 부분이니 생략하겠습니다.(;;;;)


 두번째 논문으로 실린 제이콥 킵Jacob W. Kipp“Smart’ Defense From New Threats: Future War From a Russian Perspective: Back to the Future After the War on Terror”는 소련 붕괴이후 러시아 군부의 미래전에 대한 전망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비록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전에 쓰여진 글이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접하고 보니 이해가 잘 가는 글 입니다. 냉전 이후 러시아를 둘러싼 안보정세의 변화를 러시아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설명해 주는 글 입니다. 이 글은 별도로 소개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언제 번역할 시간이 나면 좋겠군요.


세번째 논문인 다니엘 고어Daniel Goure의  “Moscow’s Visions of Future War: So Many Conflict Scenarios So Little Time, Money and Forces”도 꽤 재미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읽다 보면 러시아라는 나라는 석유를 가진 북한 같다는 인상을 받게됩니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대응, 그 한계에 대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소련이 붕괴한 이후 경제적, 군사적인 몰락에 따른 트라우마로 러시아 지도층이 안보문제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며 때로는 피해망상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진단합니다. 이때문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존의 세력권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고 보는 것 입니다.7) 이러한 설명을 받아들이면 현재 러시아 지도층의 생각은 1차대전 직후의 독일 지도층과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러시아 지도층은 나토의 동진을 러시아에 대한 최대의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과거 소련의 세력권에 있던 지역들이 러시아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게다가 미국과 비교했을때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국력은 열세하고 경제력과 인구 같은 치명적인 문제들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내부에서는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가 러시아를 미국 경제에 종속된 자원 수출국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상당하다고 지적합니다.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 지도층이 보여주고 있는 강경한 태도는 러시아가 처한 전략적인 열세를 정치-군사적으로 만회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 입니다.8)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의 핵전력이 중요하게 다루어 집니다. 전략핵무기는 러시아가 서방, 특히 미국과 전략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9) 이것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1980년대 이래로 미국에게 큰 격차로 뒤지고 있는 재래식 정밀유도무기의 열세를 메울 대안이 바로 전술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여전히 전술핵 사용을 상정한 훈련을 활발히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10) 또한 핵무기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항할 경제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푸틴이 밝힌 것 처럼 러시아가 자체적으로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지 않고 미국과의 핵경쟁을 하려면 더 많은 핵투발 수단을 보유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11)
 재래식 전쟁에 있어서는 러시아가 “세력권”으로 인식하는 지역에 대한 미국-나토의 제한적인 침공을 저지하는 양상의 분쟁을 예상하는 모양입니다. 동시에 서방과의 재래식 전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네트워크 중심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테러전과 사이버전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분야가 아니어서 생략합니다.


 네번째 글인 티모시 토마스Timothy Thomas“Russia’s Information Warfare Strategy: Can the Nation Cope in Future Conflicts?”는 러시아의 정보전, 사이버전 능력에 대해 다루는 부분인데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다섯번째 글은 알렉산더 골츠Alexander Golts의 “Reform: The End of the First Phase—Will There Be a Second?”입니다. 이글은 메르베데프가 집권하던 시기에 진행된 군사개혁을 평가하고 현재 푸틴 정권하에서 진행되는 군사개혁을 전망하는 내용인데 첫번째 글과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문제점은 첫번째 글에서 지적했던 내용들과 겹치는게 많습니다.
 먼저  현재 러시아의 징병제에 대한 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러시아는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징집 가능한 인적자원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만18세의 남성은 2011년에 648,000명이었지만 2015년에는 592,000명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합니다. 인구 구조상 유지하기가 곤란하다는 이야기지요. 게다가 징집 기간이 12개월 밖에 안되는 것도 문제로 꼽고 있습니다. 6개월 단위로 신병들이 교체되는데 이런 상태로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게다가 러시아 정부와 군부에서는 징집병과 지원병의 비율을 조정하는 문제에 있어 상당한 혼란을 보여왔습니다. 장기적으로 지원병의 비율을 늘릴 계획이라곤 하지만 세르듀코프가 국방부 장관으로 있던 시기에 보여준 난맥상을 볼 때 계속해서 징집병 위주의 군대로 갈 수 도 있다는 지적입니다.12) 그리고 러시아의 경제력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필자는 현재 러시아의 경제 수준으로는 쇼이구가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뒤 제시한 71만명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현재 GDP의 3~4%를 국방비에 투입할 경우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병력을 50~60만명 수준으로 평가합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이 경제력에 비해 과도한 병력 규모를 유지하려 하는 이유는 고위 장교단의 관료주의적 발상에 기인한다고 봅니다.14)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군요. 그리고 지원병에 대한 처우도 썩 좋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425,000명의 지원병을 확보하는 계획도 실패할 것으로 봅니다. 실제로 2003~2008년 기간 동안 추진된140,000명의 지원병을 확보한다는 계획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의 지원병 중에서 3년간의 복무기간을 마친 뒤 복무기간 연장에 동의하는 인원은 전체의 3분의 1남짓에 불과하다고 합니다.15) 장교와 부사관의 자질 향상 및 충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민군관계에 대한 지적도 있는데 이건 이야기가 더 길어질 것 같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여섯번째 글인 케어 자일스Keir Giles “A New Phase in Russian Military Transformation”는 맥더못이나 골츠와 달리 러시아의 국방개혁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2008년 부터 2010년까지 상당한 혼란이 있었지만 2011년 부터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으며 현재의 푸틴 정권도 국방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방위산업과 무기 획득 체계의 개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다만 러시아군의 병력 구조 문제나 군 간부단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는 점이 조금 의문입니다.


 마지막 글인 드미트리 아담스키Dmitry (Dima) Adamsky“If War Comes Tomorrow: Russian Thinking About ‘Regional Nuclear Deterrence’”는 아직 읽지를 않았습니다.


 꽤 흥미로운 특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올 여름에 나오게 될 27권 2호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크게 다루지 않을까 싶으니 목을 빼고 기다려 봐야 겠습니다.


1) Roger N. McDermott, “The Brain of the Russian Army: Futuristic Visions Tethered by the Past”,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7-1(2014), p.16.
2) ibid., p.18.
3) ibid., p.19.
4) ibid., p.25.
5) ibid., p.27.
6) ibid., pp.29~30.
7) Daniel Goure, “Moscow’s Visions of Future War: So Many Conflict Scenarios So Little Time, Money and Forces”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7-1(2014), p.69.
8) ibid., pp.71~72.
9) ibid., p.75.
10) ibid., p.81~82.
11) ibid., p.85~86.
12) Alexander Golts, “Reform: The End of the First Phase—Will There Be a Second?”,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7-1(2014), pp.134~135.
13) ibid., p.135.
14) ibid., p.136.
15) ibid., p137.

2014년 3월 12일 수요일

Obama’s Not Carter, He’s Eisenhower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공으로 국제정세가 뒤숭숭합니다. 뭐, 제가 이쪽에 대해 아는건 별로 없지만 워낙 중요한 사태다 보니 시간이 나는대로 외신 보도들을 챙겨보고 있습니다. 물론 정보량이 방대하고 현안에 대해 아는게 적다 보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현재 미국의 태도에 다소 불안감을 느끼는 편인데 제 시각과는 방향이 다른 글을 한편 읽게 되어서 번역을 해 봅니다. 포린 폴리시에 제임스 트라웁James Traub이 기고한 Obama’s Not Carter, He’s Eisenhower라는 글인데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이기는 게 뭐 대수냐!”는 담대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뭐, 시각에 따라서는 정신승리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입장에서 느긋하게 대응하자는 이야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하게 읽히긴 합니다만 이런 시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오바마는 카터가 아니다, 그는 아이젠하워다.

그리고 오바마는 서방이 전쟁에 승리할 것을 알기 때문에 푸틴이 전투는 승리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제임스 트라웁

헝가리 정부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직후인 1956년 11월 4일, 소련군의 전차들이 부다페스트로 진격했다. 헝가리의 봉기 군중이 마지막으로 보낸 절망적인 내용의 전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져 있었다. “그들이 지금 막 미군이 한두시간 내에 부다페스트로 올 것이라는 소문을 전해왔다. … 우리의 상황은 나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중이다.” 미군은 부다페스트로 가지 않았다. 아이젠하워는 소련을 동유럽에서 몰아내겠다고 호언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헝가리의 봉기는 분쇄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도부는 아이젠하워가 소련에게 굴종한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애들레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은 아이젠하워가 “자유국가들의 동맹이 존립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몰고 가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

러시아가 또 다시  인접국가를 침공하자 미국 대통령도 또 다시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는 아이젠하워와 같은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오바마는 쉽게 재선된 아이젠하워가 받았던 비난 보다 더 심한 강도의 비난을 받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침공한데 대해 오바마가 신중한 태도를 취하자 그가 나약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며, 전 세계의 악당들은 오바마의 불안정한 리더쉽을 보면서  미국의 보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평이 더욱 더 퍼지고 있다. 공화당의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은 얼마전 트위터에 2012년 미국 외교관 크리스 스티븐스Chris Stevens가 리비아에서 살해됐을때 리비아를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격적인 행동”이 초래됐다고 썼다. 그레이엄은 당파적인 입장에서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오바마를 비판하는데 동참하고 있다. 수많은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나의 동료 데이빗 로트코프David Rothkopf는 오바마와 지미 카터를 비교하는 글을 쓰면서 허약한 대통령의 기준으로 “카터를 꼽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여기에 인간 관계와 유사한 점이 있다. 악당들이 말을 알아듣게 하려면 위협을 가하는 수 밖에 없다. 악당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행동을 멈출 것이다. 내 동생을 때리면 나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국제관계의 영역에서 럼즈펠드의 그 유명한 “나약함이 도발을 불러온다.(Weakness is provocative.)”는 격언의 바탕이 되었다. 럼즈펠드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 중동의 다른 모든 악당들에게 경고가 될 것이며 이런 악당들이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을 재고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럼즈펠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라크 침공의 경험을 통해 호전적인 태도가 나약함 보다도 더 도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개인의 생활이나 국제 관계를 막론하고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충동은 참기가 힘들다. 악당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은 멋지게 보이며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악당은 거들먹 거리며 걸어다니고 약한 사람들은 움추려든다. 우리는 잔인한 짓만 빼고 악당들 처럼 자유롭기를 갈망한다. 월터 미티Walter Mitty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미국처럼 놀이터에서 가장 잘나가는 골목대장이라면 악당들의 이런 행동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빅 브라더에 짜릿함을 느낀다. 미국인들이 “고르바초프! 베를린 장벽을 없애버려요!”라고 절규하도록 만든 로날드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평화적으로 해체하게 만든 그의 후임자 조지 부시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세계는 부시에게 더 많이 감사해야 한다.

아이젠하워는 악당들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파멸을 불러올 수 도 있을 정도의 위협을 가해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적국이 우리가 신경쓰는 것 이상으로 희생양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경우가 그러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헝가리를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푸틴이 친서방적인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크림 반도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믿는것과 같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크림 반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영역이었으며 로시아 흑해함대의 기지였으며, 오랫동안 부동항을 갈망해온 러시아를 만족시키는 지역이다. 푸틴 같은 깡패(thug)는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위협을 받는다면 그가 할 줄 아는 유일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야만적인 폭력말이다. 오바마가 보다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면 푸틴이 손을 뗄 것이라는 생각은 공상에 불과하다. 이건 마치 “누구 때문에 중국에서 패배한 것이냐?”와 같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나약해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줬다는 비난과 같은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식이다. “누구 때문에 벵가지에서 패배한 것이냐?” 아니면 시리아 라던가.

아이젠하워는 결국에는 소련이 서방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오바마 또한 푸틴에 대해서 아이젠하워가 소련에 대해 가졌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오바마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푸틴이 탁월한 전략가라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포린 폴리시의 편집위원인 윌 인보든Will Inboden은 오바마의 행동은 어린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하는 수준인데 푸틴은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푸틴은 러시아를 핵무기를 가지지 못한 사우디 아라비아로 만들었을 뿐이다. 러시아는 땅에서 캐내는 것 말고는 수출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산유국에 불과하다. 푸틴이 잭나이프를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수준이라면, 나머지 세계는 레이저를 사용하는 법을 익히고 있는 수준이다.

오바마의 대외정책 수행을 카터와 같다고 이야기 하지만 아이젠하워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오바마처럼 전임자로 부터 물려받은 방대한 국방 예산이 국가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다. 항상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아이젠하워는 적은 수단으로 더 많은, 혹은 사용하는 수단 만큼의 결과를 얻어내려고 노력했다.(스티븐 세스타노비치Stephen Sestanovich는 맥시멀리스트Maximalist에서 아이젠하워와 오바마를 “긴축”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내가 지난주에 기고한 글에서 쓴 것 처럼, 오바마가 대외 정책에서 추구하고 있는 가장 큰 목표는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테러와의 전쟁을 포함한 지난 정권에서 이어진 분쟁들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오바마가 대외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계속되는 문제는 오바마의 정책에 결단성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갈수록 외골수로, 상상력이 결여된 축소지향적인 방향을 추구하는데 있다. 오바마는 임기를 시작할 때 핵무기 비확산과 기후 변화와 같은 국제적인 문제에 관한 국제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원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바마는 전임 대통령때 부터 시작된 통제할 수 없는 분쟁을 중단할 수 없으며, 미국 국민들은 그의 개혁안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알게됐다. 결국 오바마의 열정은 사그러들었고 그의 (사고:역자) 지평은 줄어들었다. 그대신 오바마는 미국이 세계 각지의 분쟁에서 확실하게 거리를 두는 것을 선택했다. 무엇보다도 시리아가 그런 경우였다. 오바마는 시리아에서 자행되는 최악의 만행에 대해 단호해 보이는 제스쳐를 취하는 정도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행동은 나쁜 일이다. 한때 오바마가 제창했던 희망과 그가 안주하기로 선택한 편안한 장소와의 거리는 아이젠하워의 말뿐인 반공주의와 그의 실용적인 타협안 사이의 거리보다 더 멀다. 백악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브라이언 카툴리스Brian Katulis는 최근 오바마가 더이상 미국 국민들에게 국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마도 오바마는 국제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듯 싶다.

나는 오바마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오바마가 하는 일이 훌륭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바마의 실패는 그의 불안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가 초기 부터 러시아에 대해 보다 대결적인 정책을 취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오바마가 그렇게 했다면 그는 군비통제나 아프가니스탄, 이란 문제에서 그랬던 것 처럼 동맹국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푸틴이 꿈꾸는 것 처럼 미국과 러시아가 동등한 입장에서 대결하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이 초래되었다면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통합되는 것 같은 용납할 수 없는 위협에 직면하여  러시아에서 민족주의적인 여론이 거세지도록 선동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오바마가 2년 전에 시리아의 반군을 훈련시키고, 군자금을 지원하며, 장비를 제공하는 것을 승인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오바마가 시리아 문제에 개입하지 못한 것이 그의 임기 내내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오바마가 푸틴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리아인들을 압제로 부터 구출하기 위해 개입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오바마는 몇가지 제제조치와 올 6월에 소치에서 개최될 예정인 G-8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취소하는 등의 조치를 결합하여 러시아를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계속해서 푸틴 개인에 대한 숭배에 붙들려 있는 이상 오바마가 취하게 될 조치들은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고립된다면 푸틴의 입지만 강화될 것이다. 동구와 서구가 대립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듯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가 동맹국이나 적절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대결은 한쪽에 일방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냉전 당시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하더라도 서구는 꾸준한 인내심을 가지고, 미래는 자유민주주의의 편에 있다는 신념을 확고히 하여 대결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저는 이런 시각을 썩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미국이 유리할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단기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될 국가가 우크라이나 하나로 끝난다는 보장은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벌어진 전쟁에서 무너진 작은 국가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올 여름쯤에 나올 국제관계나 군사전략 관련 저널들이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룰테니 그때쯤 잘 정리된 재미있어 보이는 글들을 더 번역해 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Journal of Strategic Studies나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에서 특집을 내줬으면 좋겠네요.

2014년 3월 8일 토요일

Tiger im Kampf 제3권

작년 하반기에 볼프강 슈나이더의 신작 Tiger im Kampf 3권이 출간되었습니다. 땅크 중의 땅크, 티거에 대한 책이 나온다니 지르는게 의무라고 생각돼서 연말에 받은 원고료로 책을 지를때 함께 주문했습니다. 12월 말에 책이 도착했는데 이걸 받아서 펼쳐본 순간 약간 난감한 느낌이 들더군요. 뭐랄까, 살짝 실망감은 드는데 또 한편으로는 마음에 드는 구석도 있습니다;;;;;;


제3권은 1권과 2권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다룬다고 광고를 하기에 무슨 내용이 들어갈 것인지 궁금했는데 제 예상과는 아주 살짝 다른 구성이었습니다. 구성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글이 너무 적고 사진 중심이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편집도 상당히 어수선한 느낌입니다. Schneider Armor Research가 작은 개인 출판사이긴 합니다만. 사진 설명이 충실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텍스트가 부족하니 많이 아쉽군요. 보는 분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수 있겠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쓸데없이 일찍 샀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좀 더 싼 영어판 페이퍼백이 나올때 사도 괜찮을 구성이더군요.


텍스트가 많지 않아서 내용 설명은 간단합니다. 자잘한(?) 내용, 좋게 말하면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내용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시리즈가 티거 전차에 관련된 자료집의 성격을 띄고 있으니 설명도 좀 단조로울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제3권에서는 거의 티거 I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간혹 기술적인 부분에서 티거 II에 대한 내용을 다루긴 하지만 비중은 부차적입니다. 그래도 대략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이야기 하는게 좋겠군요.


Tiger im Kampf 3권은 총 다섯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은 독일군 중전차대대의 편성과 지원부대의 역할, 초기의 기술적문제, 티거 생산 공정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독일군 중전차대대의 편성에 대해서는 1권에서도 간략하게 다루었는데 3권에서는 본부중대, 정비중대, 보급중대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느낌입니다. 각 중전차대대에 배치된 베르게판터의 수량과 배치일시를 정리한 도표와 같은 흥미롭고 자잘한 정보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1장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티거 개발 과정과 초기 생산공정의 문제점을 설명한 부분입니다. 티거 개발에 얽힌 흥미로운 증언과 함게 헨쉘사의 티거 생산공장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는데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 중에서도 로베르트 페르투스Robert Pertuss 박사의 기록이 흥미롭습니다. 티거의 생산공정에 관해서는 공장의 평면도에 각 생산공정 과정을 담은 사진과 설명을 덧붙여 전체 생산공정을 이해하기 쉽게 구성해 놓은 점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제2장은 독일군 중전차대대의 병력 충원과 훈련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구성이 다소 난잡하다는 느낌인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전차대대의 하나는 병력 보충과 훈련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 동맹국들의 티거 획득 시도와 운용입니다. 중전차대대의 병력 보충과 훈련에 관한 부분은 다시 제500보충전차대대Panzer-Ersatz-Abteilung 500의   편성 활동, 티거 전차 승무원의 훈련 과정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500보충전차대대의 편성에 관한 내용은 상당히 유용합니다. 대대의 편성과 차량 수령에 대한 통계는 관심을 가질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500보충전차대대의 훈련장 지도에 필자의 해설이 덧붙여져 있는데 이것도 꽤 유용한 정보입니다. 전쟁말기 제500보충전차대대의 작전은 제2권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간략하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각 훈련과정에 대해서 1~2쪽 분량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이 조금 짧지만 정리는 잘 된 편입니다.
제 임의대로 분류한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일본, 이탈리아 등 독일의 동맹국과 티거 전차가 관련된 이야기를 짧게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1943년 일본 군사사절단이 동부전선의 중전차대대와 독일 본국의 훈련부대, 헨쉘 공장을 방문해 티거를 시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이 꽤 많이 실려있습니다.(제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처음 본 사진도 여러장입니다.) 다음으로 1944년 여름에 이탈리아군이 티거 전차를 동반한 보전협동훈련을 하는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제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헝가리군의 티거 운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3장은 티거 운용과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인데 책 전체에서 가장 구성이 잘 되어 있고 설명도 충실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흥미를 가지실 것 같습니다. 특히 디테일한 묘사를 좋아하는 소설가나 만화가들에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다루는 내용이 꽤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4장은 실전 운용에 관한 부분입니다. 야전에서 각 승무원이 담당한 임무와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승무원의 보직별 임무, 공동 임무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만화가나 소설가들이 좋아할 것 같은 내용입니다. 그리고 제4장에서는 철도 및 선박을 이용한 티거의 수송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제5장은 중전차대대의 전술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제5장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티거에 대한 연합군의 대응을 설명한 부분입니다. 특히 1944년 6월~8월 기간의 제502중전차대대의 보고서를 정리한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실전에서 소련군의 각종 화기가 티거I에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급 및 정비에 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티거 전차가 독일의 선전활동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책인데 제 입장에서는 염가판 페이퍼백이 나온 뒤에 사도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티거 전차 애호가라면 당장 지르시길 추천합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사진들은 염가판 페이퍼백으로 보기엔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