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31일 수요일

Ivan's War - Catherine Merridale

개인적으로 “러시아”라고 하면 풍기는 이미지는 뭔가 있어 보이는 나라, 문학과 예술의나라, 또는 이젠 망해버린 사회주의의 심장 등 무거운 것들이다.(사람에 따라 “헐값에 건드릴 수 있는 러시아 여자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볼 때 국내에서는 아직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냉전기간 동안 북한을 지원한 “악의 제국”이란 이미지가 강해서 일 듯 싶다.
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보다 러시아어를 하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적다 보니 러시아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미국에 비해 극히 적었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에서도 소련, 러시아의 희생과 기여는 평가 절하 돼 왔는데 수년 전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된 훌륭한 독소전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기 시작해 이런 인식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러시아 인’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책들은 국내에 제대로 출간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도 2차 대전사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은 해 왔지만 정작 소련에 대해 읽은 책들은 거의 대부분 거시적인 정책, 사회구조, 혹은 특정 전투를 다룬 딱딱한 것 들 뿐 이었고 그 전쟁을 치룬 ‘인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해가 없었다.

Catherine Merridale의 Ivan’s War는 이런 점에서 매우 반가운 서적이다.
Ivan’s War는 책의 제목인 이반(동성애자가 아니다!!!)으로 대표되는 소련인들이 전쟁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풀어 쓰고 있다.
Merridale은 수많은 참전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 하고 기밀 해제된 문서 보관소의 일차사료들을 뒤지면서 쉽고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책을 써 냈다.

그리 긴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전투, 부상, 죽음, 전장의 일상, 귀환 그리고 사랑 등 인간이 전쟁에서 겪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거의 다루고 있다.

책에 나오는 소련인들(대부분 러시아인들 이지만 간혹 소수민족의 이야기도 있다)의 이야기는 전쟁 이후 공식화된 소련식의 ‘영웅’ 또는 독일이나 미국이 그리는 ‘잔혹한 야만인’과는 거리가 멀다.
소련인들 역시 다른 나라의 인간들 처럼 전투마다 공포를 느끼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전쟁과 군대라는 거대한 바퀴에 깔려 으스러질 뿐이다.
소련이 붕괴되기 까지는 결코 공식적으로 언급할 수도 없었던 죄수부대 이야기나 소련 정부에 반항하는 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의 농민들, 조국을 위해 희생했지만 반역자로 낙인 찍힌 전쟁포로들, 승리한 조국에서 한몫 챙겨보고자 갑자기 애국자로 돌변하는 1943년의 빨치산 등 ‘정말로 인간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흔히 “러시아인의 야만성”이 원인으로 설명되는 1945년 독일의 대학살에 대한 러시아 인들의 입장도 흥미롭다.
많은 병사들이 독일에 대한 적개심과 함께 무의식적으로 경외하던 독일에 대한 승리감,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들은 러시아, 소련인들이 민족주의와 소련 정부의 선전과 함께 확대 재생산 됐는데 독일문화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퇴폐적인 문화로, 소련은 사회주의로 건강한 정신을 가지게 된 사회라는 인식을 가진 병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영국이나 벨기에가 아프리카에서 학살을 자행할 때 학살대상에 대해 문화적 우월감을 가졌기 때문에 학살이 가능했던 것 처럼 소련인들도 승리를 거듭하면서 가지게 된 독일에 대한 우월감이 학살의 동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전쟁이 끝난 다음의 삶을 한 장을 할애해 다루고 있다.
1945년에 귀국한 병사들은 승리한 영웅들로 환영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귀국한 병사들은 아무런 환영 없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적을 무찌르고 승리했지만 고향에 돌아와 남은 것이 집조차 없어 구덩이를 파고 생활하는 아내와 자식들 이라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상이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전을 해친다는 이유로 강제로 도시에서 추방된 사람이라면 과연 그 누가 승리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를 덮친 1946년의 대기근이 수많은 아사자를 냈다는 대목에서는 제 3자의 입장에서도 뭐라 말 할 수 없는 비참함이 느껴질 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러시아인들에 대해 단순한 감정(혐오감, 경외감 등등)을 느끼기 보다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술자리에서 거창한 ‘국가 전략’을 논하는 멍청이들이나 주석궁으로 탱크를 몰고 가자는 정신병자들을 볼 때 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책 마지막 부분을 치열한 격전에 펼쳐진 프로호로브카의 박물관을 방문했던 이야기로 마무리 하고 있다.
매우 감동적이어서 그대로 인용해 본다.

나는 러시아의 격전지였던 프로호로브카 박물관의 큐레이터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참전용사들이 박물관을 찿으면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들은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신답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떨 땐 그냥 서 있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지요.”

댓글 4개:

  1. ���� ���� �� ������ �ʹ�4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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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처음엔 끔찍이(the terrible) 이반 이야기인가란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개인기록이나 미시사를 볼 때는 그 나름대로의 장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영역된 아나톨리 체르냐예프(CPSU CC 국제부차장)의 일기를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의 색안경을 통해 비밀의 방을 본다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속기 쉬운 경험이라는 인상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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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좋은 지적이십니다. 확실히 개인의 회고를 통한 시대상의 재현은 다소 위험한 부분이 많죠. 저도 나이 먹은 어르신들을 인터뷰 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골라내느라 애좀 먹은 경험이 있거든요.(어떤 분은 2차대전과 한국전쟁기의 경험이 뒤섞여 가히 판타지 소설이 나오시더군요)

    ※끔찍이 이반... 정말 좋은 우리말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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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도 이반 뇌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클릭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그나저나...큐레이터의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그 말...그 고통을 아는 분들도 이제 얼마 안 남으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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