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1일 토요일

한국의 ROTC제도 도입에 대한 잡담

한국의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ROTC제도의 영향을 일정 부분 받은 것 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ROTC 제도가 실시된 배경은 미국과는 조금 다르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ROTC제도는 미국의 1차대전 참전 1년 전인 1916년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미국은 평화시에 대규모 육군을 보유하지 않던 국가였기 때문에 전쟁이 임박하면서 장교, 특히 초급장교를 대규모로 충원할 제도가 필요했고 그 결과 ROTC가 도입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ROTC는 군대의 대규모 증강을 염두에 두고 시행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ROTC제도는 1960년 도입되었고 1961년 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한국군의 증강이 완료되어 오늘날과 비슷한 수준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한국의 ROTC제도는 대규모의 군대, 특히 대규모의 육군이 만들어진 다음에 여기에 필요한 장교단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것 입니다. 명칭과 기본적인 성격은 미국의 ROTC와 같지만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은 미국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ROTC가 육군의 대규모 증강을 앞두고 실시된 선행조치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국의 ROTC는 육군이 급속도로 팽창한 뒤 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실시된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59년에 육군본부 인사국에 있던 손창규(孫昌圭) 대령은 육군대학에서 발간하는 『軍事評論』5호에 육군의 인사문제에 대한 글을 한 편 기고했는데 이 글에는 1년 뒤 도입될 ROTC제도의 성격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이 몇 군데 있습니다.

현역병역의무연한을 무한정하고 넘어서 장기복무하게 되는 것을 꺼려하여 대부분의 대학졸업자들이 단기복무를 희망하지 장교복무를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곧 국민의 인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데 배치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동원시에 대량으로 필요한 예비역 초급장교를 확보하는데 있어 대학졸업자는 병(兵)으로 있기 때문에 현역복무연한을 훨씬 넘어서 장기 복무하다가 도태당한 자들을 그 대신으로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예비군의 건전한 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 하겠다. 단기복무제도와 공정한 병역의무의 의의와 가치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제도를 발전시킬 상태에 놓여 있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만시지탄의 감을 느끼는 상태로 전환되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孫昌圭,「오늘의 淨軍과 내일의 淨軍」『軍事評論』5號(195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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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복무장교제도가 없으면 대학졸업자의 대부분이 장교희망을 안 할 것이다. 이러한 현황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교가 대학졸업한 병사를 거느려야 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단기 현역복무장교제도가 없기 때문에, 즉 장교로 임관되면 전원이 장기복무자의 과정을 밟어야 되므로 경비의 난비(亂費)는 물론 많은 장교의 강제 도태 문제를 불가피하게 만들고만다. 사실인즉 우리는  휴전직후부터 이 제도를 수립했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을 양성하는데 소요되는 경비는 예비군의 장교양성비도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단기복무후 비교적 장기간 예비군의 장교로 복무하기 때문이다.

孫昌圭, 위의 글 16쪽

손창규의 글은 당시 한국군이 직면한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군대가 대규모로 증강된 만큼 장교단도 폭증했는데 이것은 장교의 진급적체를 사회문제로 만들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장교단은 많은수가 직업군인을 희망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이들을 정리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설사 장교단을 한번 정리한다 하더라도 장교 충원방식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군, 특히 육군의 감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지만 이승만 정부는 병력 감축에 미온적이었습니다.(그리고 여기서 약간의 병력만 감축된 뒤 60만의 대군이 오늘날 까지도 유지되고 있지요.) 결국 장교인사문제가 심각한 상황이 되어서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고려되기 시작했던 것 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장교 처우는 매우 좋지 않았고 언론에서 “싸구려군대”라고 자조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군대가 필요로 하는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은 군대에 장기복무하는 것을 기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장교 충원방식의 변화가 필요했고 ROTC 제도는 이점을 개선해 줄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혔습니다. 1950년대 말 부터 1960년대 초에 걸쳐 장교단의 교체가 실시되고 ROTC와 같은 개선된 제도가 도입됨으로서 1950년대 말의 심각한 장교 인사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ROTC 라는 미국의 제도가 한국의 실정에 맞게 변용되는 과정은 꽤 흥미롭습니다. 제가 인용한 이 짤막한 글에서는 그 과정의 단편적인 면을 보여줄 뿐이지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시에도 대규모 육군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안보적 환경입니다. 사실 한국군을 논하는데 있어 이걸 빼면 전혀 이야기가 전개될 수 없지요.

댓글 14개:

  1. 박종민3:54 오후

    엇.. 맨처음 이군요..

    요즘에 논의되는 국방개혁 문제도 결국은 이 육군 비대의 불균형이 곪을 데로 곪아 생긴 문제아닐까요.

    해군, 공군이 결국은 고위장교 나아가 장성의 자리싸움까지 비화되는 문제는 결국 "60만 대군"이 유지되는 한 끊임없이 생겨날겁니다. 지금 시끄러운 문제가 유야무야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제 개인적인 비관론도 여기에 이유가 있구요.

    지금 다툼을 보면 구 일본제국군의 참상이 현실로 보여지는 거 같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대통령은 최소한 군대를 다녀와야 되는 데, 지금 대통령도 그렇고 차기 유력주자라는 여성분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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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길 잃은 어린양9:32 오후

    글쎄요. 대통령이 군대를 다녀와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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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국에서는 대규모의 군대가 필요할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제도가 한국에서는 이미 있는 대규모의 군대를 '효과적'으로 굴리기 위해 도입되었다니 안보상황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좀 미묘한 기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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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좋은글 잘 봤습니다.

    우와 ㅋ 이거 ROTC 도입 취지 자체가 구 일본군하고 너무 같아서 깜놀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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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길 잃은 어린양5:25 오후

    1948년 시점에서는 한국군이 60만을 넘어가게 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이 거의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전쟁을 거치면서 갑자기 군대가 불어나고 뒷수습을 하는 과정이 1950년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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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길 잃은 어린양5:26 오후

    그러고 보니 장지량 장군이 일본 육사에 있을 때 동기들이 하나같이 고등교육과는 거리가 먼 농촌 출신의 순박한 청소년들이었다고 회고한게 생각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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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좌경학생7:42 오후

    난 전시에 몸빵할 값싼 장교양성이 목적인줄 알았는데. 하긴 그게 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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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길 잃은 어린양7:48 오후

    그게 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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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드레드노트12:01 오전

    저희 아버님께서 대학생이실 때(60년대 후반) 학점 좋은 친구 한 분(서울대)께서 강제로 ROTC에 편입된(!) 적이 있다고 하셔셔 '웡미?' 한 적이 있었지요.

    당시 군사정권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감이 심한 고로 ROTC 지원율이 저조하서 그랬다던데...글쎄 ROTC에 강제로 들어갔다는 말은 아버님 말씀이지만 저도 아직까지 반신반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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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길 잃은 어린양6:53 오후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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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뭐 알오티씨본격적으로 도입전 육이오전쟁당시 부족한게 바로 현장지휘관 만성부족이였으니깐여;;;오죽하면 뭐 현지임관하사를 햇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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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길 잃은 어린양12:41 오전

    핵심은 진급적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장교 육성 방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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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조국의방패8:25 오후

    군 무관후보생제도이전에 1958년도 부터 실시한 해군 예비원령을 빼놓수 없지 않을까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58년도 부터 80년 후반 혹은 90년 초까지 실시된 해군 예비원령이
    rotc의 의의에 더 가까운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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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길 잃은 어린양10:38 오후

    예. 지적하신 것 처럼 해군예비원령이 성격상 미국에서 실시하던 ROTC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자그대로 '예비역'으로 편입되는 것이었으니.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예비역 부사관까지 포함한 것이 조금 차이라고 생각되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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